[공동체]유기농 초당두부 만드는 수레마을 공동체 이야기 > 세상, 한 걸음


[공동체]유기농 초당두부 만드는 수레마을 공동체 이야기

"따로, 또 같이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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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거 진짜배기네!"가 첫 느낌이다. 입에는 부드럽고, 코로는 구수하면서도 고소하다. 다음으로는"원래는 이런 맛이었구나"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대체 뭘 먹었냐고? 바닷물과 국산콩이 가마솥에서 합체. 새벽을 가르는, 손으로 만든 두부다."이 두부를 먹는 사람들,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두부. 이 두부를 만드는 곳은 "수레마을 공동체"다. 다섯 명의 장애우와 6명의 비장애우가 함께 사는 "수레마을 공동체" 그들을 만났다.

수레마을은 강원도 강릉 사천면에 있다. 작은 논들과 저 앞에 바다가 보이는 곳. 아담한 이층 건물에 1층은 두부를 만드는 작업장이고, 2층에는 그들의 살림살이가 있다.

수레마을의 식구들은 총 11명. 정신지체 장애우 3명과 뇌성마비 장애우, 청각장애우, 자원활동가, 그리고 수레마을 주인장인 임동식씨의 가족이 같이 산다.

임동식씨(38)는 서울에 있는 규모가 큰 생활시설에서 자원활동을 하다가, 대규모 시설의 문제점을 느끼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설에서 장애가 가장 심했던 정신지체장애우와 함께 강릉에 내려왔다고.

그 이는"어울릴 수 있는 깊이가 다르죠. 규모가 작을 때와 클 때는. 수레마을은 가족 같은 공동체, 장애우의 자립을 지원할 수 있는 공동체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수레바퀴에는 축과 바퀴 살이 있죠.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바퀴 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여줘야 합니다. 누가 앞서도 안되고, 뒤쳐져도 안되죠.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서로 힘을 합하는 것. 그것이 수레마을의 모습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수레마을"이름에 얽힌 재미난 얘기를 해줄까요? 하며, 임동식씨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의 친구가 공동체의 이름을 묻길래 가르쳐줬더니, "잉? 장애우들이랑 호프집을 차렸냐?"라고 되묻더란다. 알고 보니"수레마을"을"술의 마을"로 잘못 들었다나(^^!)

임동식씨는 이 공동체를 꾸려가기 위해서 식구들이랑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십여 년을 사는 동안 여덟 번 이사를 했다. 소금강 민박, 세차장, 포장마차 장사, 마른 오징어 판매, 중국집 배달, 우유 배달, 새벽 거리의 커피장사 등등.

포장마차를 통째로 도둑맞고, IMF타격으로 세차장 문을 닫고, 태풍 루사로 민박 시설도 무너지고, 게다가 배타적인 지역 정서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그럴 때마다 서울의 한 수화교실에서 만난 아내 강명희씨가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수레마을은 한살림(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법으로 생산한 먹을거리를 나누는 생명살림운동을 펼치고 있음) 강릉지부의 두부 납품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자, 그러면 이제 그들의 두부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의 1층 이야기 : 기다림의 미학, 수레마을 두부

수레마을의 보금자리 1층에서는 두부가 만들어진다.
부뚜막에는 반들반들한 무쇠가마솥 세 개가 앉혀져 있다. 그리고 체로 쓰는 흰 천들이 정결하게 걸려있다. 크고 길쭉한 양은통들과 나무로 된 두부 틀거리, 멧돌, 정수기, 분홍색 바가지...작업장은 한 눈에도 "정겨운 먹을 거리를 만드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그들은 새벽 1시부터 두부를 만든다. 그리고 채 가시지도 않은 어둠을 뚫고, 두부를 각 가정과 한살림에 배달한다. 두부의 따스함은 수레마을의 소리 없는 덤이다.
수레마을의 두부는 콩을 가는 과정만 빼면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친다. 콩을 가는 동안 지름 80㎝정도의 큰 무쇠 가마솥에서는 정수된 물을 끊인다. 곱게 갈아진 콩을 넣고, 거품을 걷어내고, 찬물을 부어 다시금 끊이고 불조절 하기를 서너번. 다 익어 구수한 콩내가 퍼지면, 고운 체에 받쳐 건더기를 걸러낸다. 위에 걸러진 건더기가 비지다.
그리고 밑에 고인 액체에 바닷물을 붓는다. 30분 정도 기다리면, 뭉글뭉글하게 뭉쳐진다. 순두부가 되는 거다. 나무로 짠 틀에 이 순두부를 붓고 멧돌 등으로 묵직하게 눌러 또 30여분 기다리면, 드디어 수레마을 표 "두부"가 태어난다.
기자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임동식씨가"두부는 기다림의 음식이에요"라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수레마을 두부는 화학 응고제로 덥썩 굳히지 않는다. 우리 콩에 바닷물을 넣어 굳기를 기다린다. 꼭 필요한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맛이 나기 때문이라고. 화학 반응으로 생기는 맛을 만들고 싶지 않단다. 두부를 찬물에 텀벙 넣어서 식히는 법도 없다. 기다린다.
자를 수 있을 만큼 식으면, 긴 자를 대고 조심스럽게 자른다. 이렇게 3번 정도 작업하면 하루 평균 60∼90모 정도의 두부를 만든다고.
임동식씨는 "전부 국산 콩만 쓰기 때문에 콩을 확보하는 일이 힘듭니다. 저희는 형편이 안돼서 추수철에 모두 마련해놓지 못하거든요. 주문은 느는데 콩 수급이 안되서 못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라고 아쉬워했다.
이 작업을 주도하는 사람은 이광현씨(30. 뇌성마비 1급)와 최도순씨(25. 청각장애, 왼손장애)다. 이광현씨는 두부 제조 과정의 책임자. 광현씨는 새벽 1시부터 종종걸음으로 정성을 들인다. 그 이는 "우리 몸에는 우리 콩이죠.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을 재래식으로 만드는 것이 자랑스럽죠"라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자칭"배달의 기수"인 최도순씨. 힘든 점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비오는 날이 힘들죠. 두부에 물이 들어 갈까봐"라고 답한다.
수레마을 두부를 먹는 사람, 자기도 모르게 행복해질 것 같다.

〈그들의 2층 이야기 : 우리 집은요, 무엇이든지 다 나눠야 돼요〉
그럼 2층으로 올라가볼까.
거실에는 11명의 식구 수에 맞는 씽크대와 넉넉한 알루미늄 선반, 그 위에 놓인 자잘한 양념통들이 보였다. 그리고 수레마을 식구들이 함께 식사를 할 넓직한 책상. 그런데 정말 눈에 띄는 것은 이 부엌에서 칼질을 하는 한 남자였다.
두 달 전부터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서승욱씨(36). 서울서 안경사로 일하다가 여행 삼아 강릉으로 내려왔다. 터미널에서 껌을 파는 휠체어 장애우를 만나 함께 며칠 지내다가, 그 분의 소개로 우연히 수레마을로 오게 되었다고.
임동식씨는 "승욱씨 처음 봤을 때, 머리도 길고 수염도 길렀죠. 빼빼 말랐지, 노숙자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 온지 며칠 뒤에 "제가 음식 좀 만들어도 될까요"하더니 만두탕수육인가를 뚝딱 만들어서 내놓더라구요. 얼마나 감탄했던지..."라고 다시 입맛을 다셨다. 어쩐지 기자에게 내어준 "수박샤베트"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승욱씨의 취미와 특기는 요리다. 승욱씨는 "음식을 맛나게 만들어 식구들과 함께 먹는 것이 그저 좋아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조용히 웃었다.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서너개 있었다. 승욱씨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주다가 "와!!"하고 탄성이 나왔다. 맑은 아침 햇살이 비치는 큰 창에 주렁주렁 열매처럼 매달린 것들이 있다. 그것은 메달이었다.
이 메달들의 주인공은 라정철씨(34세). 그 이는 1급 정신지체장애우이면서 왼쪽 편마비 증세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만능 스포츠맨. 육상과 탁구를 좋아한다. 탁구는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력도 수준급. 창문에 주르륵 매달린 저 메달들이 모두 탁구대회, 그것도 전국 장애인체전, 부산 아태장애인대회 등에서 입상한 것들이다. 1991년도에는 미국 인터내셔널 써머 스페셜 올림픽에서 개인단식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정철씨는 서울에 있는 주몽재활원에서 나이가 차서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자, 아는 분의 소개로 이 곳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랑의 일터"라는 곳에서 낚시바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단다. "탁구칠 때가 제일 기뻐요. 감각적으로 치고 나면 온 몸에서 힘이 나거든요"라는 정철씨의 눈이 반짝했다.
수레마을 식구들과 같이 생활한지 벌써 15년째라는 백도영씨(28). 임동식씨가 서울서 내려올 때 같이 온 이다. 그 이는 정신지체 1급에 청각장애까지 있는 장애우다. 자해가 심하고 신변처리도 안돼서 가족들이 애를 먹는다고. 그렇지만, 수레마을에 한번이라도 왔던 사람들이 제일 잊지 못하는 사람은 도영씨라고 한다. 그 이는 처음 보는 기자가 낯설어서 피하기만 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또 한 명의 정신지체장애우가 있었는데, 지부규씨(20)다. 부규씨는 갓난아이일 때 엄마가 가출하고,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 아빠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이웃 할머니 손에서 머슴처럼 크다가 수레마을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연년생 누나 지옥분씨는 할머니의 박해를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가, 6년만에 이곳에서 동생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수레마을의 이 식구들을 해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이. 바로 임동식씨 아내, 강명희씨다. "장애우들과 함께 하려는 남자와 같이 평생을 하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결혼하려고 시댁에 인사 갔을 때, 시어머니가 "저 애 좀 말려다오"그러시대요. 그냥 평범하게 살라고, 남편을 좀 말려달라고 하셨죠. 전 그때 웃었어요. 앞으로도 웃을 일만 있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명희씨의 이런 따스한 마음이 수레마을의 든든한 뒷배경 이었다.
그녀에게는 눈이 동그란 두 아이가 있다. 임형선(10)과 임성범(5).이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식구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형선양은 "태어나서부터 같이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인가보다 해요. 사탕을 주는 정철이 삼촌, 잘 놀아주는 부규 오빠, 아무런 반응이 없는 도영이 오빠... 좋은 점도 있고 싫은 점도 있죠"라며 명랑하게 말했다.
식구가 많아서 불편한 점은"우리 집은요, 무엇이든지 다 나눠야 돼요. 먹는 것이랑, 엄마도 아빠도 나눠야 해요. 그래서 삐질 때도 종종 있어요. 불편한 거요? 샤워할 때, 옷 입을 때, 밥 먹을 때. 식구가 너무 많아서 자리가 좁아요"란다.
커서 선생님도 되고 싶고, 연예인도 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다는 형선이. "운명에 맞기고도 싶어요. 하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라고 답하는 속내 깊은 아이다.
이른 새벽부터 두부를 만들고 배달하고보니, 아침이 한낮처럼 길다. 하지만 수레마을의 아침도 여느 가정과 같이 분주하다. 11명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각자의 계획대로 움직인다. 새벽 내 두부를 만든 이는 잠을 청하고, 정철씨는 일터로 간다. 부규씨와 형선양 , 성범군은 명희씨가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승욱씨와 옥분씨는 아침식사 뒷정리. 그리고 도연씨와 함께 산책을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회는 일종의 두려움을 준다. 사회가 강요하는 대열에서 이탈하면 곤한 삶이 될 거라는 두려움. 더 바쁘게, 더 많이 가져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두려움의 늪에 점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살아가는 수레마을 가족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서로 힘을 보태주고 의지하는 모습들...
그들은"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걸까"를 다시한 번 생각하게 한다.



글 사진/ 최희정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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