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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작은책 편집장 안건모씨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그 안에는 삶이 담겨져 있다

본문

 
 

 

 


‘일하는 사람들의 책’이라는 「작은책」. 언뜻 식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직접 쓰고 이 얘기로만 만들어진 잡지는 없었다.
「작은책」은1995년도부터 시작해서 현재 102호를 냈다.
「작은책」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실하게’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 “없는 얘기 억지로 지어내지 말고, 남의 나라 말로 어렵게 쓰지도 말라”며 「작은책」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작은책」의 편집장 안건모씨다. 노동자가 글쓰는 세상을 말하고 있는 안건모씨.
「함께걸음」이 만났다.


「작은책」의 사무실은 양쪽 큰 빌딩 사이에 암팡지게 둥지를 튼 작은 한옥이다. 마당 한 쪽에는 감 몇 알이 여유롭게 매달린, 제법 잘 잘란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 잎이 수북히 떨어진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탁자와 의자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실은 함께걸음 인터뷰 때문에 그이는 담을 넘어야(?) 했다. 맞지 않는 사무실 열쇠 때문이었다. 영차하면서 훌쩍 담을 넘는 안건모씨. 어쩌면 그이는 그렇게 차별의 벽을 뛰어넘어 왔을 것이다.

 〈목숨걸고 싸워야 되는 세상인가요〉
김정렬(이하 김) : 반갑습니다. 「작은책」이 100호를 넘어섰다고요. 축하드립니다.
안건모(이하 안) : 감사합니다. 힘든 고비 넘기고 맞는 100호라서 그런지 뿌듯하네요
김 : 「작은책」을 봤더니, 글쓴이들이 거의 노동자들이네요?
안 : 네.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가 주제입니다.
김 : 요즘 노동자들이 요즘 손해배상 가압류 때문에 자살도 하고,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고 생각되는데요.
안 : 그럼요. 이건 노동자 죽으라는 겁니다. 제가 아는 정비사 친구도 H여객에서 손배 가압류 거는 바람에 자살하려는 생각 많이 했더라구요. 결국 퇴직금 포기하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손해배상 가압류를 풀어주더라고요. 그 친구 다 정리하고 시골 내려가 버렸어요. 정말 속상합니다. 아마 이게 제 친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김 : 우연인지 필연인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사회 취약계층에만 가중되는 것 같아요.
안 : 네. 동감합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벌써 열사가 6명이나 생겼잖아요. 집권 10개월 동안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그래도 노무현은 건전한 보수인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나봐요. 분신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엉뚱한 소리나 해쌓고.
김 :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들 문제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쪽은 어떤가요?
안 : 시내버스에 아직 이주노동자들은 없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셉니다. 회사 쪽에서 제일 쉽게 쓰는 방법은 촉탁 기사라는 건데요, 정년 퇴직한(버스의 정년은 58세) 기사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거죠. 그동안 우리 회사에는 비정규직 기사가  없었는데, 요즘 10명이나 생겼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에 관한 단체 협약이 아주 나쁘게 되어 있어서, 입사하면 6개월간 상여금이 없고, 퇴직한 달에도 상여금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비정규직 버스 노동자들은 1년에 상여금 1번 받을까 말까죠. 더 심각한 문제는 비정규직 버스 노동자들의 권리행사를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겁니다. 조금만 떠들면 그만두라고 합니다. 다른 사업장의 비정규직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보다 더 열악할 겁니다.
김 : 신용카드 때문에 파탄하는 노동자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현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안 : 월급 가압류 들어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걸 보면 기사들도 신용불량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게다가 회사에 밉보인 사람들에게는 회사 이미지 떨어뜨렸다고 나가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김 : 노동자들도 그렇지만 농민들 문제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집회 때 5만 여명의 농민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안 : 목숨걸고 싸우는 겁니다. 다른 것은 경제논리에 밀려서 포기한다 치더라도, 쌀만은 지켜야 하는데, 지금 쌀 자급율이 25%밖에 안된답니다.
김 : 몇 해전 중국 마늘 수입 안할려다가 핸드폰 안팔린다고 다시 수입 개방했었죠. 그 꼴 날 것 같습니다. 어떤 신문은 농민도 살고 기업도 살아야 된다며 서로 타협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이것이 올바른 언론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안 : 물론 아니죠. 어디 기업과 농민을 견줄 수나 있는 형편입니까?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큽니다. 제가‘안티 조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인터넷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일단은 사회의 화두를 끌어나가는 세력은 조중동이죠. 모순이지만 전라도에서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 조선일보라고 합디다. 그러니 무슨 놈의 세상이 변하겠습니까. 일단 안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으면서 비판하지 말고, 아예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워낙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서 영향을 안받을 수가 없거든요.

 
〈저는 버스운전 기사입니다〉
김 : 안건모씨 일하시는 얘기가 궁금하네요. 언제부터 버스 운전을 하셨습니까?
안 : 27살부터 했으니까, 한 20년 됐네요. 실은 「작은책」 편집장 되고 나서 버스운전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도 힘들어서요. 그런데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릴까봐 그럴 수 없었어요. 저는 버스 운전을 천직으로 생각합니다.
김 :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시나요?
안 : 한 10시간에서 11시간 정도요. 평균 4∼5시간 정도 밖에 못자요. 살찔 시간도 없어요.(하하) 사실 엄청 힘들죠. 죽는 사람도 많아요. 우리 회사에서 벌써 과로사로 두 사람 죽었어요. 집에서 잠자다 죽고, 설 쇠러 가서 죽고.
김 : 정말 안타깝습니다. 안건모씨도 건강에 신경 쓰셔야겠네요. 그런데 혹시 버스 운전하시면서 장애우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안 : 네. 자주 봅니다. 물론 휠체어를 탈 정도로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아니지만. 목발을 짚거나, 시각장애우들이 종종 버스를 탑니다. 기사들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언제나 따스하게 바라보지 못한다고 해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시내버스 운전할때 몇 년동안  단골이던 뇌성마비 장애우 학생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특수학교 다니는 학생이었나봐요. 그런데 제가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아서 안타깝더라구요. 얼마 전 길에서 그 학생을 만났지 뭐예요. 하도 반가워서 ‘어디 가니’했더니 저를 알아보대요. 고등학교 졸업했다는데, 말이 많이 좋아졌더라구요.

「작은책」에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심각한 삶의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좀 따스하게 쓰라라는 항의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안건모씨는 “그럼 「좋은생각」봐.”라고 대꾸한단다. 어쩝니까, 어둡지만 그게 현실인데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 「작은책」이 일하는 사람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이유가 있었다.

〈어쩝니까 현실 그대로 보여줘야죠〉
김 : 그러게 힘들게 일하시면서 글까지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처음 어떻게 글을 쓰시게 되었나요?
안 : 「작은책」이 계기가 됐죠. 「작은책」초기, 청계천 피복노조에 있던 박영숙씨라는 분이 여성노동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썼는데, 그런 글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지어낸 이야기만 보았는데, 실제 노동자가 직접 쓴 글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거 보고 울었어요. 야, 이게 우리 얘기구나,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죠. 그래서 97년도에 「작은책」에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라는 글을 보냈어요. 그때부터 시내버스 이야기를 한 2년 연재했죠. 그 때 시내버스 운전하기 엄청 힘들었어요. 저임금에 불안정한 고용, 쉴 틈도 없는 배차시간 등등. 그래서 세상을 비꼬는 말투로 써서 「작은책」에 보냈죠. 저는 글을 쓰면서 글쓰기를 배웠어요. 입으로 하는 데로, 경험한 것을 쓰라 하셨던 이오덕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 : 올해 5월부터는 아예 「작은책」편집을 책임지게 되셨는데, 혹시 계기가 있었나요?
안 : 저는 초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락카칠하는 일부터 시작한 노동자입니다. 그래서 편집장 시켜준거 같아요.(하하) 노동자들이 쓴 글을 잘 이해할 수 있어서.
김 : 「작은 책」에는 심각한 얘기가 많은 것 같던데요.
안 : 네. 그런 말을 종종 듣죠. 따뜻하게 쓰라하는 사람도 많구요. 그치만 세상이 그렇지 않은 걸 어쩝니까. 환장하겠어요. 그럴 때마다, 그럼 「좋은생각」봐 임마라고 하죠. 그 책은 따스하고 다 에피소드니까요. 그 책을 보면 자기가 조금 양보하면 좋은 세상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암만 봐봐요. 현실과는 다른 쪽으로 점점 더 마취될껄요. 「작은책」과 틀린 점이 그거예요. 어쩝니까. 어둡기는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줘야죠.

〈삶에서 나오는 글쓰기〉
김 :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저도 종종 글을 씁니다만, 쉽지 않더라구요.
안 : 노동자들이 쓰는 글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듣고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쓰니까 쉽게 나오죠. 쓸 거 없으면 쓰지 말아아죠. 억지로 쓸려니까 어려운 겁니다. 남 가르키는 글이나 쓰게 되고. 아무리 좋은 생각으로, 옳은 주장을 가지고 있어도 어려운 말로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글이란 것이, 학교서 배운 것처럼, 지어내는 것이라고 알았어요. 그것이 아니더라구요. 이것을 깨달은 순간 글이 됩디다. 제 글을 보고는 이게 무슨 글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가 현장에서 쓰는 말투로 글을 쓰니까,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나봐요. 노동자들도 지식인 글만 보고 살았기 때문에 글은 멋이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죠. 하지만 지금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것도 「작은책」의 보람이죠. 누구든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죽- 써보면, 살아있는 우리 글로 쓰게 되고, 글솜씨도 많이 늡니다.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작은책」을 알고부터는 소설이라도 읽을라치면 우리말 아닌 말들, 특히 그녀 이런 단어들, 그런 것이 자꾸 거슬려서 진도가 안나가요.
김 : 「작은책」의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는 앞으로도 변함 없겠죠?
안 : 그럼요. 우리가 삶을 담아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수구적인 지식인들, 저는 이들을 ‘얼치기 지식인’들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들에게 계속 세뇌당해 왔잖아요. 그래서 글도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왔죠.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꿀려면 우리가 그 얼치기 지식인들을 세뇌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글을 써야 세상을 비판할때도 ‘시팔좃팔’만 찾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얼치기 지식인들에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김 : 「작은책」에서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면요?
안 :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고, 전쟁 발원지인 미국에 대한 실상을 파헤지는 연재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도 혈맹이니 동맹이니 하면서 미국에 대한 허상을 깨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거든요. 물론 진보적인 잡지가 있지만, 너무 어려워서 우리 같은 노동자들은 접근을 못해요. 노동자들이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게 쉽게 풀어보고 싶습니다.
김 : 「함께걸음」이 장애우들이 많이 보는 잡지이니만큼 평소 장애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안 : 저는 장애우들이 잘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다닐 수만 있어도  장애우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그건 기본 아닌가요? 장애우들이 지금 어디 맘대로 다닐 수 있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안바뀌죠? 조그만 빌딩 지을 때 좀만 신경써서 경사로 놓고, 거리 환경 조성할 때 좀 더 배려하면 되는데, 왜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기가 장애우가 아니라서 그런가요?
김 :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아질 「작은책」기대하겠습니다.
안 : 네.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나를 가슴 깊이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어떤 글들을 읽었던가도 돌이켜보았다.
‘글의 힘은 말보다 강하다’며 일하는 사람일수록 글을 써야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안건모씨. 그이는 세상을 바꿀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하는 사람이 글 쓰는 세상. 「작은책」이 품은 결코 작지 않은 희망이다.

대담 김정열 소장/ 정리 최희정 기자/ 사진 윤정은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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