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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시민운동으로 눈에 보이는 천국을 만들어야죠"

박원순 변호사

본문

박원순 변호사는 미국에 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리프트가 장착된 일반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가 안정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5분여를 담담히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일찍이 장애우 전용주차공간을 마련해둔 사회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그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장애우를 ‘장애가 있는(disabled)’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다른 능력이 있는(differently abled)’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부르는 그네들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말로만 아니라 여러 제도나 법률 정책으로 마련해 운영중인 것이 보기 좋았다며 “우리 나라는 장애우종합법이 아직 없죠?”하고 안타까워했다.

 

 매일매일이 전쟁상황이에요.”
걸려온 전화통화 중에 박원순 사무처장이 하소연하듯 이렇게 내뱉었다. 그 말이 과장섞인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대개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직 외에 최근 총선시민연대 상임 집행위원장직을 맡아 그곳에서도 거의 상근을 하게 됨으로써 두 개의 거대한 조직을 아우르는 총사령관인 된 그에게 ‘시간적 여유’란 오래 전에 잊혀진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그래도 함께걸음의 인터뷰 제의에는 선뜻 응해주었다. 외롭고 힘든 시민운동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동지로서의 애정이 발휘됐을까. 98년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시민운동가들이 그를 ‘올해의 시민운동가’로 꼽은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지난 10년간 가장 훌륭한 시민운동가’로 뽑을만큼 그는 이제 변호사라기 보다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서 명망을 얻고 있다. 그러한 명망이 단순히 참여연대의 눈부신 활동을 등에 업은 평가가 아님을 진지하고 정력적인 박 사무처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 올해 부쩍 시민단체에 상근하는 변호사들의 사례가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이전에 박 처장님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변호사직을 그만 두고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맡게 되셨을 때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아유, 저보다 김 소장님이나 이성재 의원이 더 오래, 더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 시민운동을 해오셨잖아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경우도 처음부터 시민운동가가 되겠다거나, 사회 대의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내 모든 걸 다 바치겠다, 하는 생각으로 참여연대에 오지 않았거든요. 참여연대를 만들어가면서 그 이전에 인권변호사하면서 아, 이런 운동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 지원을 좀 하다가 참여연대에 한발 두발 빠지게 됐죠. 사무처장 처음에 맡았을 때만 해도 제 변호사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게 도저히 양립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상근을 한 게 96년 1월부턴데, 지금은 나같은 경우가 도대체 뭐가 이상한 거냐,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더군다나 변호사란 직업이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너무나 정상적이고 당연하고 요구되고 소망되는 그런 영역이라고 봐요. 우리 사회가 점점 민주주의가 되면서 법치주의 사회가 돼가는 것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장애우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합리적 기회균등 요구에 대한 것들도 그러한 제도를 보장하는 법률 제개정 운동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 법률운동이죠. 심지어 총선시민연대에서 불법 시민불복종 운동조차도 우리는 권익운동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게 법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까 저는 되도록 다른 분들 앞에 안 서고 뒤에 서려고 하는데도 변호사라 법률적인 권위가 있다고 사람들이 자꾸 앞으로 밀어요, 제가 한 마디 한 것이 언론에도 자꾸 부각돼 앞에 나오고. 그런 걸 보면서 더욱 느끼는 건데 이제 변호사가 시민운동에 있어서 역할을 안 할 수가 없는 시대로 가고 있어요. 앞으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도 법률 분과가 하나 생겨나서 변호사가 상근자로 일하는 그런 시스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희 참여연대에도 한 분이 와서 일반 상근자처럼 예산감시운동쪽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연구소에도 현재 장애우인권센터가 운영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활동에 기대가 크지만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막연한 것보다 법률의 구체적인 부분을 파고 들어서 구체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거기에 법률자문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근 변호사가 생겨야죠. 곧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이제는 변호사가 시민운동에 적극 나서야 할 때

─ 99년 3월부터 두 달여 미국 아이젠하워재단에서 마련한 연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많은 시민운동단체를 방문하고 ‘미국시민운동기행’이란 부제의 책을 내셨지요. 저도 그 책을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만 책 말미에 보니까 농담처럼 연수를 마치고 두 달만에 귀국하려고 할 때 직원들이 좋은 세월 끝났다고 한숨쉬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언급하셨던데, 실제로 조직 내에서 어떤 사무처장이신지도 개인적으로 궁금한데요.
“제가 언뜻 보기에는 유순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한 조직의 실무적 책임자라는 것은 일반 간사들의 안주감이 돼야 한다, 사무처장이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건 마냥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간사들에 의해서 하루 빨리 추방운동이 벌어져서 쫓겨나기를 제일 바랍니다. 그게 안돼서 제가 초조해하고 그러는데.(웃음) 사실 변호사라는 일이 직업상 글자 하나 하나를 챙기게 되거든요. 제가 간사들한테 늘 하는 말이 정말 치밀하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적당히 좋은 일 하러 왔냐고 잔소리를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나 기업의 문화를 우리부터 없애야 한다고. 사실 성명서를 쓸 때 운동하던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문장에 ‘당장 뭐 하라’, 하는 표현이 자주 나오곤 하는데 좀 더 부드럽고 호소력이 있는 문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상대방도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강압적인 느낌을 주는 문장은 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죠. 예컨대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간사들이 제 지적 중에 잔소리라고 느끼는 게 있겠죠. 김 소장님은 어떻습니까?(웃음)”
─ 그 말씀 듣고 보니 제가 참 위안이 되는데요,(웃음) 앞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그렇게 미국의 NGO단체들을 둘러보고 나신 소감이랄까, 저희는 또 복지관련 단체들에 대한 정보도 듣고 싶습니다만.
“미국에는 95년 현재 62만여개의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본 곳은 겨우 1백30여곳밖에 안돼요. 그래서 단견일수도 있지만 미국의 시민운동은 지나치게 법률의존적이고, 재단의존적이어서 우리가 뒤따라야할 최선의 모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 정말 부럽고 아쉬운 점이라면 재정여건이죠. 미국에서는 수많은 공익재단이 번성하고 있는데, 97년 말 현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백60조원 정도가 공익재단의 돈으로 쌓여 있더라구요. 지난 7년에 비해서 거의 배로 늘어나는데 앞으로 가면 더 늘어날 것이고 매년 써버리는 정부예산에 비해 이건 계속 축적돼 나가기 때문에 그 액수를 언젠가는 압도하겠죠. 거기서 공익운동의 희망을 봤고 그 힘으로 미국의 21세기는 NGO시대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그런 게 아직 없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금 중에는 영세가정 자녀들이 여름캠프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금도 있어서 참 부러웠죠. 앞으로 우리 나라에도 장애우재단도 만들어지고 또 세세하게 자활프로그램기금이나 장애우실업기금도 만들어져야죠.
─ 특히 요즘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시민운동이 이전보다 활성화된 시대를 맞고 있고, 그 중에서도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의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일을 해왔다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 가운데 참여연대가 중심되게 추구하는 특별한 지향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국가권력, 권력의 감시기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동안 시민운동에서 그런 역할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질적이고도 체계적인 감시를 잘 못했잖아요. 과거의 재야운동은 비민주적인 권력을 총체적으로 제거하고 새로운 민주권력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했고, 경실련이 표방했던 것은 대안을 마련해가기 위해 토론이나 정책 제시같은 것을 해왔다면 참여연대는 그것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해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재벌의 전횡과 횡포를 막기 위한 어떤 제도를 마련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 제도가 정착이 되도록 이를테면 구체적으로 재벌을 상대로 고발을 하고 소송을 제기하거나 주주총회에 가서 고발을 하고 법적 무기들을 동원해서 법적으로 강제하는 활동을 하는 거죠. 또 사법감시를 위해서 사법정보자료실의 3천건에 달하는 판검사들의 파일을 우리가 다 갖고 있잖아요. 그 판결들을 감시하는 겁니다. 연구소에도 그런 센터가 만들어지면 장애우권익에 관해서 개개 판검사들이 과연 어떻게 판결하고 결정해왔는가 하는 자료를 계속 모았다가 그 사람이 대법관이 될 때 이 사람은 장애우권익문제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태도를 보여서 안된다고 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이렇게 참여연대가 실효성이 있는 운동을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서 10조원이 넘는 돈이 국민들에게 다시 제대로 돌아가게 됐어요. 지난 해에도 이건희 회장 재산이 이재용씨에게 넘어간 과정을 우리가 문제삼아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변호사나 회계사들을 상대로 부가세 매기라고 청원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는 휴대폰의 전파사용료 같은 것, 한 개에 1만2천원씩, 그게 지금 보급된 것이 2천3백만대라는 것 아닙니까. 그게 몇 조가 되거든요. 사회복지부문에서도 아시겠지만 국민연금제도도 학자적 수준의 대안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깨뜨려서 새로운 틀을 짜도록 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하고 했던 그 과정이 국민연금 계획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작은권리찾기나 예산감시운동같은 실효성 있는 운동을 계속 하겠다는 겁니다.”

 

 참여연대 활동 통해 국민에게 돌려준 돈 10조원

─ 어떤 자료에서 참여연대의 지출규모를 보니까 5억이 넘더라구요. 그걸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참여연대는 월급도 적고 국고를 받는 것도 아니고, 상당한 이윤이 남는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재정운영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구요. 제 입장에서는 박 처장님이 굉장히 외로울 것이라고 헤아려지기도 했구요.
“그 5억원도 사무국 예산이고 각 부서별 독립재산은 빠져 있습니다. 나머지 부서들은 각자의 회원을 갖고 각자 자기 의사결정구조를 가지면서 독립채산제로 돼있죠. 아무튼 지금은 너무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부터 저희는 간사가 열 몇명씩 될 정도로 크게 시작했잖아요. 돈문제가 닥치면 정말 깝깝해져서 중소기업 사장의 심정을 알겠다 싶더군요. 시민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월급을 못준다고 소장님이나 저같은 실무책임자가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저도 똑같이 월급 못 받는 건데요. 저도 월급을 작년 1월부터인가 비로소 받기 시작했어요. 아무튼 주변 사람들한테 돈을 빌리러 다니고, 얻으러도 다니고 그랬는데 사람이 말이 그렇지, 빌려주긴 쉬워도 빌리거나 얻어 오려면 그게 쉽습니까. 그 후에 정부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받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다가 재정에 큰 도움이나 장기적인 해결책이 안되겠다 싶어서 내부에서 결의를 하고 98년부터 안 받았잖아요. 그러면서 회원사업을 통한 재정수익사업에 있어서 여러 시험과 노력을 했죠. 작년 회비충당률 평균이 70 몇 퍼센트인데, 하반기말쯤에는 회비에 의해서 80, 90%를 충당하는 구조가 됐구요. 여기 느티나무에서 한 달에 1백50에서 2백만원의 수입이 있고, 보험사업에서 한 3백만원, 연간 후원회라든지 콘서트등을 통해서 보충을 좀 하지요. 그래도 월급도 많이 올려서 현재는 대략 90만원 정도 되거든요. 앞으로는 인건비가 최저임금을 넘어서도록 하면서도 100% 자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평생회비같은 건 안썼거든요. 적립하니까 한 8천만원 되고, 지금 공익변호사기금같은 특정 목적기금으로 어떤 분이 정말 우리랑 모르는 분인데 인터넷의 공익변호사기금 모집광고를 보고 5천만원을 내놓으셨어요. 물론 참여연대 경우는 언론에 많이 알려지고 해서 더욱 일이 쉽게 풀려온 측면이 있지만 모든 운동단체가 정말 끈기있게 일을 하면 정말 돈은 저절로 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날 어려웠을 때부터 제가 이 말은 해왔어요. 정말 일을 잘 해라, 일을 잘 하면 사람이나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언론도 마찬가지거든요. 언론이 보도할 때 그 단체에서 내는 자료를 신뢰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믿음을 준다면 돼죠.
앞으로 총선연대의 결과가 성공하든 실패하든간에 시민운동의 큰 물결은 아무도 거역하고 저항할 수 없는 시대로 간다고 보거든요. 그 과정에서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한두 단체가 아니라 전체 시민단체들의 성장과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가야죠. 그것 중의 하나가 1시민 1시민단체 회원가입운동을 편다거나 회원사업을 잘 할 수 있는 공동워크숍 같은 것을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 시민운동에서도 모금은 예술이다, 또는 과학이다, 하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그가 시작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 만들기 운동

─ 예전에 저한테 주위 어른들이 뭐하냐고 물으셨을 때 설명하기가 곤란했는데 이제는 시민운동을 한다고 해도 많이 이해를 하시는 편입니다만 박 처장님도 처음에 변호사직을 버리고 시민운동가로 나섰을 때 가족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으셨을텐데요.
“저야 뭐 저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으니까요. 집에서 나와서 친구들하고 밥먹을 때는 제가 돈을 안내고 그래서 그다지 돈에 구애받지 않았는데(웃음), 아이들한테는 물론 그런 상황이 고통으로 왔겠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니까. 그런 현실에 불만이 있어선지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자기는 돈버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도 하고 그러면서 이제는 아빠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이해하더라구요. 이제 우리 시민단체 실무자들도 마찬가지로 이왕이면 직업란에 자랑스럽게 시민운동가라고 쓰고, 시민단체에서 정년퇴임을 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는데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소장님이나 저같은 사람들의 역할이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돈을 많이 못 주지만 자기 계발을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제가 모든 시민단체를 다해드릴 힘은 없고 일단 참여연대부터 잘 운영하도록 해야죠. 제가 아름다운재단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수혜자가 참여연대일수만은 없고, 모든 시민단체들이 더 많은 수혜를 받을 수 있게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거든요.(웃음) 아직 그런 습관이나 문화가 안 생겨서 그렇지, 우리 민족이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남의 일에 무관심한 그런 민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돈을 많이 모으면 정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도 많이 지원하고 싶어요. 사실은 제일 아쉽고 힘들고 그런 분야중의 하나거든요. 제가 요즘은 이런 공약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웃음)”

─ 그런데 다른 단체의 실무 책임자분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상근자들이 보수문제 때문에 생활이 안돼서 활동을 금방 접게 되는 것을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많이 고민된다고 하거든요. 사실 운동도 사람이 하는 건데 굶어 죽지는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장 방법을 찾기가 어렵거든요.
“미국에 대니 서가 하는 말을 듣고 한 가지 느낀 것은 용깁니다, 용기. 그냥 한 번 해보면 되는 거예요. 이 친구가 유명한 토크쇼에 나가기 위해서 여러 번 대시를 했더니 거기 스탭들이 귀찮으니까 3만 달러를 모아 와봐라 그랬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백화점 분수대 동전을 모아오고 우리로 말하면 국회의원들 직접 찾아가서 10불 정도씩 받고 해서 금방 3만 달러를 모았다잖아요. 좋은 일 하겠다고 달라고 하는데 안 주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다가가는데 있어서 한 마디로 용기가 열쇤데 우리 시민단체 사람들은 너무 용기가 없어요. 제가 신입간사들한테 무조건 부딪쳐라, 깨지더라도 목표를 세우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부딪치라고 말하곤 하죠. 그러다 보면 굶어 죽지 않는 운동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교회나 절에 가면 헌금하고 시줏돈을 내놓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빌면서. 그런데 시민단체들이 하는 운동은 눈에 보이는 천국을 만들자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천국을 우리가 못 팔고 있어요.(웃음) “

 

 당장 눈 앞 보다 이후 5년, 10년을 보자

─ 이제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대해서 얘길 나눠볼까요. 지금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데 진행하면서 한계랄까, 여전히 극복해야 할 시민운동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한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낙선낙천리스트가 발표되는 것에 너무 큰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른바 ‘음모론’ 을 통해서 드러났지만 이 운동은 많은 부분에서 지역감정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보거든요. 어떻게 지역감정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사람 찍어라, 하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 운동의 한계는 자명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유권자들의 정치무관심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 내면서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조그마한 발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의 20, 30대를 봐라, 그 사람들이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났을 때를 봐라, 바뀔 것이다, 라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 해도 큰 일이죠.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게 구체적으로 낙선대상자가 얼마나 낙선되느냐 하는 문제도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과연 투표율이 얼마나 될 것이고 낙선대상자였던 사람들의 지지도가 얼마나 낮아지느냐 하는 겁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유권자들이 참여하고 그 가능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참여하는 것이 정말 더 소중한 성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총선의 경우에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100%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압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죠. 지금 NGO시대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서글프고 때로는 절망적이죠. 그래도 5년이 지나고 또 5년이 지나 보십시오. 그 시간 동안 사회 각분야에서 열심히 참여운동을 한다면 그 거대한 물결에 남아있는 반역과 반동의 깃발들은 다 꺾일 것이고, 적어도 다음 총선에서는 음모론같은 주장을 펴는 자민련같은 정당은 없어질 것이라는 거죠. 참여연대가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저런 식의 운동이 되겠느냐고 했지만 이렇게 발전해 가고 있지 않습니까. 또 언젠가는 예전에 참여연대가 그런 운동도 했느냐고 말할 때가 올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벌이고 있는 여러 사업이 분화돼서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이 제 바람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합니다.”

─ 예전에 인권변호사로서 국가보안법문제나, 정신대문제 영역에서도 많은 활약을 해오신 걸로 압니다만 시민운동가로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부문을 비롯해서 평소 생각해오던 바를 유감없이 펼치고 계신 것 같습니까.
“어느 날 보니까 제가 시민운동의 일선에 서 있게 됐지만 저는 여전히 그냥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8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운동역량이 민주적 정부를 세우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지금의 민주주의, 민주화라고 하는 것이 다양성과 다양한 수준을 요구하잖아요. 이렇게 되니까 할 일이 오히려 많아지고 구체화되면서 나눠지게 되는 거죠. 전에는 무조건 독재권력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 됐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참여연대도 다양한 사업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참여연대의 지나온 과정을 보면 더 많은 일에 대한 요구와 요청에 대한 대항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웃음) 수많은 연대사업제안을 받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참여연대가 지향하고자 하는 권력의 감시기능에만 주안점을 두려고 하죠. 사회복지위원회가 있어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복지운동을 하는데 참여연대가 있어서 힘을 뺐거나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하면 내일 당장이라도 그만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위해서 참여연대가 있는 거지, 참여연대를 위해서 있지는 않거든요.”

 

 사이버참여연대를 웹진형태로 운영할 터
  
박원순 변호사는 미국에 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리프트가 장착된 일반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가 안정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5분여를 담담히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일찍이 장애우 전용주차공간을 마련해둔 사회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그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장애우를 ‘장애가 있는(disabled)’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다른 능력이 있는  (differently abled)’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부르는 그네들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말로만 아니라 여러 제도나 법률 정책으로 마련해 운영중인 것이 보기 좋았다며 “우리 나라는 장애우종합법이 아직 없죠?”하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총선연대에서는 일단 국회에 초점을 맞췄지만 다음 4년 뒤에 또 한 번 총선연대활동을 하게 된다면 구체적인 법안을 놓고 평가할 수 있어야죠. 이번에는 국민의 보편적인 지지를 얻기 어려워서 그랬지만 다음에는 장애우 관련종합법률에 관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중요한 잣대가 돼서 우리의 낙선운동에 기초가 돼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 아쉽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이번에 함께걸음이 창간 12주년을 맞았습니다. 함께걸음을 내면서 연구소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지만 오랜 동안 기존 언론에서 장애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매체를 갖자는 문제의식 속에서 함께걸음을 계속 낼 수밖에 없었죠.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사회’나 함께걸음같이 기존 언론이 다하지 못하는 나름의 역할을 해내는 대안매체에 대한 요구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이러한 대안매체들이 갈 길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제도언론에 대항하는 대안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잘 만들어서 자기 독자를 가질 필요가 있지요. 동시에 저희같은 경우는 사이버공간을 주시하고 있는데 그래서 앞으로 실물 참여연대에 버금가는 웹진 형태의 사이버참여연대를 만들 계획입니다. 지금 10대사업 중의 하나가 별도의 독립 법인으로 해서 주식회사로 투자를 받아서 주식시장에 등록을 하는 것까지를 장기적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별도 사무실도 찾고 있는 중이고, 나중에는 완전독립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업하는 사람들도 참여연대 같은 큰 단체가 운영해서 제공하는 내용이면 사업성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실물 공간에서 KBS나 중앙일보같은 제도 언론하고 함께걸음이나 참여사회가 어떻게 경쟁이 됩니까, 안돼죠. 그렇지만 인터넷 속에서는 자본이 달리더라도 창발력과 내용에 있어서는 경쟁이 가능한 거죠. 저희는 앞으로 사이버참여연대에 현재 역량의 반을 투입해서 일반 시민들이 갈구하고 고민하고 생활하는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요, 함께걸음도 장애우들이 함께걸음 사이버 공간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이 들도록 보다 포괄적인 웹진형태로 가도 좋을 것 같은데요.”

─ 마지막으로 함께걸음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저는 사실 장애우가 아닌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자원활동하고 회비내는 것, 이것이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지만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참 큰 것이잖아요. 이런 것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다, 돈의 액수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 거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말하는 사람처럼 미운 사람이 없거든요. 이 세상을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적 구성원으로서 해서는 안될 말이죠. 자신의 조그마한 뭔가를 바꾸고 보태면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것인데 직접 나선다면 더 좋고, 여건이 안된다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단체를 위해서 작은 보탬이 되도록 기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21세기를 맞는 가장 큰 미덕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난 2월 16일, 박원순 변호사는 선거법을 어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지검에 출두하기도 했다. 애초에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를 비롯한 많은 지도부들은 구속을 각오했기에 주위 사람에게 면회오고 사식 넣어달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고 했다.

총선 때까지 그의 안녕이 걱정스럽지만, "시대칙오적인 악법이 단지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켜져야 한다면 그 악법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 이라며 그는 오히려 의연하다.  지난해 역사상 곱씹어야 할 세기적 재판들을 정리한 책을 내놓기도 한 박사무처장, 그가 이끄는 시민운동의 흐름으로 인해 우리 역사에는 또 하나의 "세기의 재판"이 기록될지도 모른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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