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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자폐아 교육은 누구보다 아버지가 적임자예요”

자폐아의 아빠 임기원씨

본문

흔히 ‘자폐’라고 하면 장애영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아, ‘레인맨’의 그 더스틴 호프만같은...?”이라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성냥개비들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그 수를 맞춰내고,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우며 특히 카지노 카드게임에서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비상한 능력을 발휘, 돈을 싹쓸이하여 동생을 기쁘게 했던 영화 속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자폐’라는 장애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자폐아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비교적 우호적인 마음으로, 약간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갖고 다가설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얼굴 가까이 다가가서 불러도 듣는 것 같지 않고, 오랜 동안 쳐다보아도 눈을 맞추려 하지도 않고, 말이 아닌 동물같은 소리만 지르거나 계속 같은 동작만 반복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나 몸을 때리거나 손을 물어뜯기도 하고, 이유없이 한참이나 미친 것처럼 울고 웃고 우는 자폐아들의 모습을 특수교육기관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신질환 같은 장애도 아닌 것이, 그렇지만 너무도 낯선 모습에 흔히 아이큐가 낮다고 하는 정신지체아나 외모부터 조금 두드러지는 다운증 아이들은 그에 비하면 ‘양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지만 어떠한 의사소통도 가능하지 않은 듯한 그 아이들과 마음의 준비없이 한 동안을 지내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기자도 체험한 바 있다.

 

자폐아인 큰 아들 상협이 위해 직장에 사표

임기원(42) 씨에게도 그런 큰 아들 상협이가 있‘었’다. 상협이가 첫아이였던지라 다른 아이들은 어떤지 잘 살펴볼 기회도 없었던 임씨는 그냥 조금 늦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 생후 이십이개월에 자폐아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사실 어떤 장앤지 잘 몰랐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형수님이 일러주지 않았다면 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그렇게 일찍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설마”했다가 결국 자폐아라는 진단을 받고 하늘이 노래졌지만 그 이후에도 아버지로서 상협이의 교육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대기업 샐러리맨이 그렇듯이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자폐에 관한 책을 읽어보거나 주말에 가족과 같이 교외나 동물원 등지로 나가 바람을 쐬도록 해주는 일 정도였다.
그러나 밖에 나갔을 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만 해대는 상협이 때문에 피곤함과 낙담만 더해져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또 회사에 나가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와서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두드러지는 큰아들의 기괴한 행동에 연년생 둘째 아들까지 기르느라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아내의 하소연을 답답한 가슴으로 들어야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상협이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이제는 일상적인 대화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일반초등학교에 진학에 그럭저럭 진도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하나하나 가르치고 알려줘야 할 것이 많아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못하지만 이제 상협이는 그에게 희망이며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존재이다.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은 그런 상협이의 변화가 있기까지 그는 남자의 삶에 있어 절반 이상의 의미일 수도 있는 ‘일에의 성공’을 접었다. 꽤 안정적이었던 직장을 그만 둔 것이다. 물론 네 식구의 생계를 생각할 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나중에라도 스스로에게, 또 상협이에게 떳떳할 수 있”기 위하여 상협이가 갖고 있는 장애와 진지하게 대면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상태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상협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솔직히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내년이라고 해서, 내후년이라고 해서 상협이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노릇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학도 일년 미루고 일단 상협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 유치원도 이내 그만두게 하고 처음 일년을 그는 거의 하루 종일 상협이와 붙어 지냈다. 상협이는 기본적으로 자는 상태와 일어난 상태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늘 멍한 얼굴로 자기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상협이에게는 눈을 감은 것이나 뜬 것이나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밖에 나갈 때는 언제 차도에 뛰어들지, 계단 높이 올라가 아래로 뛰어내릴지 몰라서 항상 손을 꽉 잡고 다녀야 했는데, 그러다 다쳐도 신체적인 아픔이나 고통도 전혀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지금은 일어난 거야, 그러니까 씻으러 가야지”, 하고 그때 그때의 상황을 말로 설명해주고 이해하도록 했다. ‘아프다’라는 것을 느끼고 알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뺨을 때리기도 했다. 최소한 아픔이라는 것을 알아서 미리 사고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심하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말이다.
그러나 처음 일년 동안은 임기원 씨에게도 낙담과 울분의 연속이었다. 모진 마음을 먹고 상협이와 하루 종일 붙어 지내며 나름의 교육과 관찰을 계속한지 육개월이 지났을 무렵, 상협이가 여러 방면에서 약간 발전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수준과는 아직도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자폐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했기에 상협이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다.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산골 허름한 집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추위와 굶주름에 떨며 살고 있는 장애우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며 ‘상협이도 언젠가는 저런 곳에서 저렇게 살아야겠구나’하는 생각에 정말 서러움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고 한다.
특히 퇴직하면서 얼마간 손에 쥐었던 퇴직금은 아이엠에프 한파의 영향으로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제가 자라면서 사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안 겪어봤거든요. 그런데 그땐 경제적으로도 무척 힘들게 되니까 정말 고통스러워서 말 그대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호흡곤란까지 오더라구요.”

 

자폐탈출에 필요한 이만 시간의 교육

상협이가 자폐아의 표준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고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는 않은 수준이어서 그랬겠지만 다행히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네다섯 살 무렵부터 상협이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다른 비장애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출판사이름, 제작 연월일 등 책에 써 있는 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댔다. 그렇게 이삼년 동안 책을 읽었지만 단지 글씨만 읽었을 뿐이고, 그 글자들이 품고 있는 기쁘다거나 슬픈 감정, 길다, 짧다 등에 대한 인지나 더러움 같은 느낌의 인지, 단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도 없이 뇌는 완전히 ‘백지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화내용은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자폐아에게는 아무런 의미없는 소리였고, 그래서 대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던 것이다.
임기원 씨는 그런 깨달음이 충격이었다. 상협이에 대한 교육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되돌려 상협이의 시각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일곱 살이나 넘긴 상협이가 왜 그런 기본적인 인지나 느낌조차 형성되고 있지 않은지는 도무지 알지 못하다가 구십팔년 초인 몇 달 뒤 상협이가 내뱉은 단편적인 말들과 행동을 분석한 결과 자폐아는 논리보다 시각이 우선하는 ‘시각우선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협이가 하루 열시간 정도에 이르는 아버지와의 집중된 교육을 통해 조금씩 의미있는 문장을 내뱉기 시작한 후 하루는 방에 있는 대나무 바구니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무섭다며 도망가는 것이었다. 혹시 어떤 그림이나 영상이 생각나서 그러는 것 같아 바구니를 보고 생각나는 그림을 가져와 보라고 했더니 가져온 ‘콩쥐팥쥐’ 동화책에 팥쥐어머니가 콩쥐를 야단치는 장면에 그려 있는 것이 방에 있는 대나무바구니와 비슷했다. 그때 그는 상협이가 그토록 몰두하던 것의 실체가 바로 그림이나 영상같은 시각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순간 자폐라는 장애를 갖고 대학교수의 자리에까지 올라 유명해진 미국의 ‘탬플 그래딘’이라는 인물이 자서전에서 ‘나는 논리적,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영상으로 생각하는 시각사고자’라고 쓴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상협이가 가끔 무섭다고 하는 것들이 동화책에 무섭게 그려진 해적그림이나 나뭇가지나 그것으로 연상되는 소리들이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늦게, 그래서 동생인 상빈이와 같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학교가는 길에 있는 나무가 무섭다며 다른 길로 돌아다녔던 상협이었다.
한 번은 동네 공원에서 축구를 하는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혼자 정신없이 웃어대기도 했는데 그것이 얼마 전 본 텔레비전 광고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폐아들이 그런 것처럼 텔레비전광고뿐만 아니라 상협이는 액션영화나 자동차의 빠른 질주나 폭파장면에도 열광했고, 자동차의 시각적 속도에 대한 쾌감으로 길가에서 갑자기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돌진하는 일도 많았다. 특히 높은 곳에는 맹목적으로 올라가려고 하고 올라가서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굉장한 쾌감을 느끼는지 아프다는 느낌없이 미친 듯이 웃어대기도 했다. 침대에서 뛰는 상하운동을 몇 시간씩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상협이의 모습에서 자폐아가 시각우선자라는 사실은 임씨가 발견해낸 자폐를 해석하는 하나의 핵심열쇠다. 이렇게 시각이 우선하기 때문에 청각이나 후각 같은 오감의 불균형 현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한 과민반응으로 자폐행동이라고 불리는 이상행동을 하거나 시각의 세계만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 영상에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단순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적절하게 이성적인 인지나 논리체계로 옮겨오는 교육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폐인간으로 고착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시각의 영향이 얼마나 강하길래 자신을 보호해주는 부모에 대한 개념도 없고, 자기 보호 본능같은 동물적인 본능까지 마비될까 싶겠지만, 말하자면 폭탄물로 치면 핵폭탄같다고 할까요. 핵폭탄이 지나간 자리처럼 시각에 집착하는 성향이 뇌를 초토화시켜서 뇌의 작동을 아예 정지시켜 버리는 거죠. 그래서 하루 이십사시간 내내 시각적인 영상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다행인 것은 뇌의 논리적인 작동이 정지되었다는 것이지 결코 그 기능이 죽은 건 아니라는 거죠.”
임기원 씨가 자폐아의 경우 누구보다 부모가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반 특수교육기관에 다닌다고 할 때 하루 한두 시간의 교육으로는 그렇게 강력한 본능적 쾌감을 억누르고 논리의 세계로 이끌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정에 근거한 무한한 인내심을 갖고, 강력한 통제법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부모만이 시각우선 성향으로부터 논리의 세계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폐의 핵심을 모르는 몇몇 부모들은 비용을 지불한 대가로 그 아이에게 근본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글익히기나 덧셈, 뺄셈, 영어 같은 일반적인 지식을 갖춰 나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한다. 또한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특수교육기관도 그 부분의 교육에 치중하게 되는 악순환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칼라티브이와 자폐출현의 상관관계

상협이는 레인맨처럼 비상하게 무언가를 외우고 기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신이 읽은 동화책의 일천오백여개의 그림들이 각각 어느 책의 몇 페이지에 있는지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기자도 상협이가 비디오가게에 꽂혀있는 수십개의 비디오제목들을 줄줄 외워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칠십권의 책에 있는 천여개의 단어를, 그 단어뿐 아니라 설명까지 통째로 외워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상협이의 이러한 시각우선자의 성향을 정상적인 논리우선자로 인지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임씨는 점차 깨달아 나갔다.
비장애아가 이십사시간 뇌를 작동시키면 약간의 인간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하는 세 살 정도가 됐을 때는 뇌작동 시간이 이만 시간 정도가 된다. 따라서 자폐아의 경우 자폐탈출에 의식적인 이만 시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임 씨의 분석이다. 그 시간 동안 현실에 정신을 집중하는 살아있는 느낌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하루 여덟시간 이상의 집중적인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임씨는 만오천 시간을 조금 넘긴 상태다. 다행히 그 진도에 기대하는 행동을 상협이가 보여주고 있어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
자폐아의 발생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명확한 이유가 규명되지는 않았다. 유전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임신 중의 부모의 문제가 아이에게 이어지지 않았나 해서 자책을 하게 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자폐아의 부모로 알려진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혼으로 인한 마음의 불안이 둘째딸의 자폐를 부른 게 아닌가 해서 오랜 동안 마음고생을 했다고 털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 두고 거의 이년여 동안 정말 미친 것처럼 자폐에 대한 자료들을 섭렵해 나갔다는 임기원 씨는 자폐발생과 관련해 한 가지 묘한 우연의 일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폐 현상이 시기적으로 칼라티브이의 등장과 관련이 있어요. 시각우선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이전에도 있을 수 있었지만 현대에 이르러 인류가 칼라티브이의 강렬한 영상에 노출되면서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해져서 지금의 자폐아가 나타난 것 같거든요. 제가 의학 계통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백퍼센트 자신할 수는 없지만 자폐 출현과 역사적인 사실들을 비춰보면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자폐는 사십년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하는데, 자폐아의 출현에 대해 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없고 미국이나 우리 나라가 처음에는 상류층에만 발생하다가 대중화된 시점이 칼라티브이의 출현·대중화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그가 아는 한 자폐가 선진국의 문제지 아프리카 오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그 근거가 되는데, 그것은 곧 칼라티브이로 대변되는 현대 문명이 낳은 장애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우리 나라에 현재 약 사만명의 자폐아동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렇다면 수치상으로 육십년대에도 최소 이만명은 존재했을텐데 당시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런데 육십년대 칼라티브이가 들어온 후 칠십년대부터 칼라티브이가 대중화가 된 후 부쩍 우리 나라에도 자폐아의 출현이 늘어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협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요”

상협이에 대해 반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일학년 때는 그저 임씨의 얼굴을 피하려고만 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협이가 이상하다는 표현임을 임 씨는 알았다. 그러나 이학년이 되자 친구들은 “괜찮아요” “말을 빨리 해서 잘 못 알아 듣겠어요”하고 얘기했다. ‘이상한 아이’에서 ‘조금 모자란 아이’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기분좋은 증거였다. 뽀얀 피부에 귀염성있게 통통한 상협이는 영악하게 장난치는 다른 남자 아이들에 비해 착하고 편안하기 때문인지 반 여자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고 친한 ‘여자친구’도 있다. 친구들이 가끔씩 집에 놀러 오기도 한다. 
상협이는 받아쓰기는 백점, 그러나 문제가 논리적으로 살짝 꼬인 시험에서는 형편없이 낮은 점수를 받아온다. 아직 논리적 사고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엔 돈에 대한 개념을 알아 엄마아빠 주머니에서 돈을 몰래 빼가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면 가끔씩 꾀도 부리지만 비장애 아이들이 자라면서 흔히 보여주는 정상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상협이가 예쁘게만 보인다고 한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일은 하기 싫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꼭 해내 임씨에게 서늘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물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듯 멍한 표정으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순간도 아직 가끔은 있다.
상협이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의 공부가 큰 효과를 가져왔다는 사실과 이제는 그것을 중지하더라도 퇴행을 하지는 않을 정도의 단계까지 왔다는 믿음이 있어 이제 그는 조금 든든하기도 하다.
현재의 상협이를 보고 “원래 상태가 좋은 가벼운 장애수준이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구십오년경 높은 빌딩의 꼭대기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옥상으로 올라가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마침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순간이나 음식점에 가면 계속 돌아다니면서 아무 음식에나 손을 대고 집어먹어 다른 손님들을 화들짝 놀라게 해 계속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임기원 씨는 회사를 그만둔 후 수유역 앞에서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아침에 나갔다가 오후 다섯 시쯤 들어와 상협이와 지내고 다시 밤 열한 시쯤 카페를 정리하러 나간다. 틈틈이 상협이를 키우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정리해 지난 해와 올해 ‘자폐아와 아빠(덕수출판사)’, ‘아들아, 아빠 눈보고 말해(동아시아출판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사년여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갈수록 좋아지는 상협이를 보면서 자식을 되찾은 듯한 기쁨을 맛보게 됐지만 어느 새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에도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그는 어느 순간 발견했다. 이전에는 남들처럼 아무 문제 의식 없이 넓은 아파트, 새 차, 증권 등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좁지만 서로 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며 또래 아이들이 많은 서민형 아파트가 좋고, 큰 차 보다는 작은 차가 환경을 위해서 좋고, 증권은 인간의 정신을 물질적인 욕심에 집중시키면서 건전한 발달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일에의 성공을 버린 대신 자신에게 소중한 한 인간의 정신을 만들어가는 숭고하고 보람있는 일에 대한 보람을 가지게 됐고, 자신의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상협이의 정신도 제자리를 찾아갈 수 없다는 긴장감 속에서 자신부터 더욱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이제 그는 더 나이가 들면 상협이와 함께 공기좋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시골생활을 경험해서 부담이 없기도 하지만 상협이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 만약 상협이가 직업을 가진다면 독특한 재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는 컴퓨터관련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갈수록 영악해지는 다른 아이들과 계속 일반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게 해야하는지는 사실 고민도 된다.  현재로서는 국어, 산수, 바른생활 같은 초등학교까지의 수업은 충실히 따라가더라도 수업이 전문적인 지식으로 채워지는 중.고등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상협이에게 특별히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단다.  성적에 신경쓰지 않고 일반적인 교과 대신 상협이의 장점을 살리는 내용 중심으로 교육할 생각이다.  물론 이런 저런 앞날에 대한 계획은 상엽이가 보여주는 여러 가능성을 계속 지켜보며 다양한 길을 열어두기로 했다. 
  "저도 다른 자폐아 부모들처럼 예전에는 상협이가 차라리 다운이나 정신지체를 가졌으면" 하고 바란 적도 많은데요.  이제는 저도 가늠하지 못하는 믾은 가능성을 가진 듯한 자폐아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요즘엔 상협이와 지내는 게 참 즐거워요."

 

글 한혜영/사진 김학리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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