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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지난날 가수로서의 삶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장애우로서의 삶이 남아 있습니다"

클론의 강원래씨

본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재활병동에 입원해 있는 클론의 강원래씨를 병실에서 만났다. 1인실 병실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침대와 냉장고, 몇가지 가구가 차지한 공간을 빼면 강원래씨와 그 곁에서 병상을 지키고 있는 애인 김송 씨가 잠잘 자리도 마땅찮아보였다.

지난해 11월 9일 교통사고가 난 이후 6개월째 치료중인 강원래 씨는 현재 3, 4번 척수신경 이상으로 가슴 아래 하반신이 완전 마비된 상태이다.

강원래 씨를 만나 자신에게 닥친 현실인 장애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소외 문제와 편견에 대한 생각들과 그간의 솔직한 심경들을 들어보았다.

▲클론강원래
강원래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해 11월. 사고가 난 후 6개월 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어느 정도 사고 직후의 충격에서 벗어나 상당히 안정돼 있는 것 같았다. 차분히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상태와 치료 과정, 재활 상태 등을 "병상일지" 형식으로 기록해 TV를 통해 보여주면서 장애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맞설 단단한 의지를 키우고 있었다.

강원래 씨는 지난달 함께걸음에서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장애우들이 국토 종단한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자신도 컨디션만 괜찮았으면 참가해도 좋았을 것이며 함께걸음 열독자임을 밝혔다. 우선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인사에 방송을 본 시청자나 병원에서 "많이 좋아졌다"거나 "곧 퇴원해도 되겠다"는 말을 종종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의 말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더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시림들의 위로와 격려의 말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져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아직은 다리 살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네요.

"제가 원래 허벅지가 24인치 정도 됐었어요. 웬만한 운동선수 싸이즈였죠. 다른 환자들이나 면회오시는 분들은 다리살이 하나도 안 빠졌다고 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빠진거거든요. 허벅지 보면 끔찍해요. 사고 후에 다리살 빠지는 게 가장 슬프고, 윗몸일으키기 같은 상체운동을 할 수 없으니까 배가 나오는 걸 느낄 때도 착잡해요. 사고날 때 눈의 시신경도 다쳤거든요. 그래서 시력이 자꾸 나빠지는 것도 짜증나죠. 헬멧을 쓰고 있는 상태였는데도 그렇게 된 걸 생각하면 끔찍하죠. 몸이 예전처럼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해요. 여기 병동에 있는 다른 환자분들 중에는 몇 십년씩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기적을 바라기 힘든 상황이죠." 그래서 좋아졌다, 일어설 수 있겠다" 같은 말을 들으면 오히려 답답하고 가슴이 더 아파요."

 -그래도 헬멧을 썼던 게 천만다행이네요.

 "헬멧은 항상 쓸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쳐다보니까요. 그런데 화가나는 건 사람들이 오토바이 사고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예요. "혹시 헬멧을 안쓴 건 아니였을까, 난폭하게 폭주족처럼 운전을 한 건 아니였을까" 그런 추측들 말이예요.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교통사고를 당한 건데 사람들은 그저 오토바이 사고라고 인정해버리는 거죠. 우리나라는 오토바이에 대해서는 무조건 나쁜 인식이 박혀 있잖아요. TV에 나가서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는 사고의 책임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도 보는 사람들마다 그놈의 오토바이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데 그 차가 중앙선을 넘어온거지 제 과실은 없어요. 저는 중앙선 옆 1차선도 아니고 2차선을 달리고 있었어요."

 -차로 다닐 수도 있었을텐데 왜 끝까지 오토바이를 고집 했어요?

 "차가 막히잖아요. 차는 너무 짜증나요. 차에 대한 욕심도 없구요. 꿍따리 샤바라로 가수왕이 되고 몇억을 벌었을 때도 저는 프라이드 타고 다녔어요. 차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사고나고 나니까 인생살이가 우리나라 길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꽉 막힌 길에서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 봤자 거기서 거기예요. 신호등은 항상 있는 거고, 그냥 앞차 가면 가는대로 순리대로 가야지 되는 것 같아요. 오토바이 타고 먼저 가겠다고 하다가 이렇게 됐잖아요. 그냥 순리대로 살았어야 하는데 너무 급하게 살다보니 사고가 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겠지요?

 "내 잘못이 아니라 사고로 인한 거였잖아요. 처음에는 밤새도록 울고 그랬어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주사바늘 다 뽑아던지기도 했어요. 이렇게 되고 나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찾아오더라구요. 기치료 하면 일어설 수 있다, 닭발을 구워먹으면 낫는다. 이것저것 하라고 난리들인데 짜증나요. 내가 장애우라는 걸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인 게 한달도 채 안된 것 같아요."

 -사고 이전에는 장애우 문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으셨지요?

 "관심은 없었는데 마음에 남는 일은 몇가지 있었지요. 딱 1년 전 이예요. 매니저한테는 그냥 노래부르는 스케줄이 있다고만 전해들었는데 도착해보니 국립재활원이더라구요. 그날이 장애인의 날이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병원인가보다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뇌성마비 장애아이들이 몸을 비틀면서 춤을 추고 야단법석이었어요. 밑에 있는 분들도 휠체어를 타고 계셨구요. 그래서 여기가 장애우병원인가보다 했지요. 그렇게 공연이 끝났는데 뇌수술을 했는지 머리를 빡빡 민 한 덩치 큰 아이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거예요. 매니저가 막아섰는데도 막무가내로 달여와서는 준엽이 손을 잡고 놓지를 않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일주일동안 꿈에 나타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동안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팬들의 모습하고는 너무 달랐던 거죠. 그 친구도 분명히 우리를 좋아하는 팬이어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인데 우리는 그걸 몰랐던 거예요. 그 친구는 준엽이 팬이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던 초코파이를 준엽이한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올라온건데 매니저가 막아서니까 무대로 뛰쳐나온거였더라구요. 그때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지고 판단해야겠구나" 하고 처음 생각했지요. 그런데 제가 몇 달 전에 국립재활원에 갔어요. 농구게임한다고 해서 구경갔거든요. 1년 전에는 공연하러 갔던 곳인데 1년이 지난 후에는 내가 장애우가 돼서 그곳에 가게 되니까 사람 팔자라는게 참 우습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비장애우들을 봐도 부러운 게 없어요. "언젠가 저 사람도 이렇게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제는 장애우이라는 벼슬이 주어졌으니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장애우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이제는 장애우를 바라보는 입장이 아니라 내가 바로 장애우 주체인데 그런 일을 한다고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렇다고 거창하게 무슨 단체를 만든다는 건 아니구요, TV에 나와서 혹은 잡지 취재를 할 때 한번이라도 우리 사회가 장애우들이 살아가기에는 얼마나 힘든 곳인지 얘기를 한다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솔직히 제가 옛날처럼 당구장에 갈 수 있겠어요? 당구 장은 지하나 2층에 있잖아요. 그러면 계단을 어떻게 올라가겠어요. 그런 것을 뜯어 고치자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왜 강원래가 계단을 올라갈 수 없을까? 계단이 있으면 들어주면 될텐데" 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거든요. 이렇게 아주 작은 생활시설에서부터 바뀌어져야 한다는 운동을 하고싶다는 거예요. 저에게 클론으로서의 삶이 있었다면 앞으로 주어진 장애우로서의 삶이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우로서의 현실, 이제 직시하게 돼

 -바깥 외출은 자주하시나요?

 "얼마 전에도 휠체어를 타고 신촌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남들 모르게 위장을 하고 나갔는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모두들 깜짝 놀라요. 제가 침대에만 누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나 봐요. 많이 좋아졌다며 격려들을 해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보통 사람들은 장애우들의 아픔을 잘 몰라요. 자신과는 거리가 먼 딴 세상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휠체어를 타면 마치 스노보드를 타는 느낌이예요. 시선이 일반 사람의 높이와 다르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섭고 험하게 느껴져요. 또 제가 처한 현실을 확실히 느끼겠더라구요. 경사로가 없어서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물론 이동의 문제가 가장 절실하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물리치료만 해도 그래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들이 사립화가 되어있지 않잖아요. 건강할 때 같으면 돈 내고 헬스클럽 가서 운동하면 돼죠. 그런데 장애우 들은 병원이 아니면 운동할 곳이 없어요. 그런데 병원에 오면 좌절하고 힘들던 기억밖에 없는데 오고 싶겠어요? 오기 싫죠. 빨리 사립화가 되어서 장애우도 엘리베이터 타고 가서 휠체어 세워두고 자기 맘껏 팔운동이라도 하고 그러면서 사회속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답답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 보고 배운 장애우들이라고 하면 시장 근처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이미지 밖에 떠올려지질 않아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사회 인식이 이렇고 편의시설도 지금처럼 엉망이면 장애우들은 세상으로 나올 수가 없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뽀뽀뽀"에 휠체어 탄 학생들이 나와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어울리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들하고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그런 걸 배우고 알아야죠. 나도 내가 하루에 다섯번씩 호스 꽂아서 오줌 쌀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런데 난 장애우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하는지 몰랐다니까요. 교과서에도 안나오잖아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막말로 인터넷 보니까 장애우가 400만이라는데 그러면 10명 중에 한명이라는 얘긴데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우리 사회에서 무얼 가르치고 있냐는 말이예요.

 약간만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게 안타깝죠. 장애우들을 봐도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잘 몰라요. 실제로 제가 거리에 나갔을 때 아주머니들이 힘내라면서 등을 치거든요.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치명적으로 위험할 수 있어요."

 -그렇죠. 일반 장애우와 척수장애우는 다르잖아요. 일반장애우는 밀리는 순간에 앞으로 짚기라도하지만 척수장애우는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 것을 사람들이 알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모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거예요. 그래서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같은 경우에는 감각이 없어서 다쳐도 아픈지 모르니까 더 위험한 것 같아요. 예전에 형이 휠체어를 고쳐주다가 공구를 휠체어 위에 올려놨대요. 그런데 제가 그걸 모르고 깔고 앉은거예요. 두시간동안 공구 찾으러 돌아다녔잖아요. 나중에 혹시 몰라서 엉덩이를 들어봤더니 그 밑에 있더라구요."

 -그러다가 욕창생길 수도 있있는데 지금 욕창은 없죠?

 "중환자실에서는 꼬리뼈에 욕창이 생겼었죠. 지금은 자꾸 움직이니까 괜찮아요. 욕창보다도 요즘은 대소변을 마음대로 볼 수 없으니까 답답하고 힘들어요. 물도 하루에 정해진 양만큼 마셔야 하니까요. 덕분에 술과 담배를 끊기는 했어요. 담배는 폐활량 때문에 안피우고, 술은 안마시니까 끊게 되더라구요. 건강을 위해서 군대왔다 생각하고 참는거죠."

 가수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 없어. 이제는 느리게 살고 싶다.

-아무래도 가수였으니까 다시 노래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텐데요.

"인터뷰할때마다 말하는 건데 지금은 다시 노래부르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사진을 찍던 사람이 손이 마비가 되거나 눈이 안보이게 되면 다치자 마자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사진은 어떻게 찍나 걱정할까요? 아뇨.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보다는 담배는 어떻게 피우나, 밥은 어떻게 먹을까 그런 아주 기초적인 생각부터 하게 되거든요. 저도 마비가 되었을 때 노래를 다시 불러야겠다, 무대에 다시 서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었어요. 영화는 어떻게 보러 가나, 휠체어 타고 넘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부터 들더라구요. 휠체어 타고 가수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폐활량이 안되는 걸요. 지금 제 상태는 여자의 기본 폐활양에도 못미쳐요.

 사람들은 다 그러죠. 힘내라고, 가수활동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제 속도 모르고 하는 얘기들이예요. 폐활량이 안돼서 소리도 못지르는데요. 그나마 나와 같은 정도의 마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제가 예전부터 건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폐활량이 좋은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은 없죠. 의사들도 더 좋아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얼만큼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진 않아요."

 -다치기 전에 인기를 먹고 살았잖아요. 알아보는 것도 그냥 알아보는 게 아니라 꽤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다치고 나서 그런 의미에서의 차이를 느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어요?

 "제가 운동 삼아서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자주 돌아요. 간호사들이나 병문안 온 사람들이 "야, 강원래다" 하면서 막 웃어요. 그럴 때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러면 휠체어 돌려서 그냥 간다구요. 어떤 때는 화가 나서 "내가 니 친구냐, 왜 반말하느냐고" 말하기도 해요. 지금 제일 힘든 건 사람들의 시선들이예요. 강원래씨 힘내라는 말, 꼭 나을거라는 말도 힘들죠. 우리나라 척수환자들이 10만명정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연예인이라고 해서 나을 수 있느냐, 그런 건 아니잖아요. 특별히 강원래 씨는 꼭 나을거라는 말이 참 듣기 싫어요.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물론 척수장애를 가진 분들 모두가 걷는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걷지 못하는 게 사실이니까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공수정해서라도 예쁜 아이는 꼭 낳을 거예요

-결혼하고 아이 낳으실 거죠?

지금 열심히 작업중이예요. (웃음). 사고난 후에 1년이 지나면 인공수정이 힘들 수 있다고 해서 일주일에 두세번씩 정자를 채취해서 냉동시키고 있어요. 인공수정해서라도 예쁜 아이 낳아야죠. 다시 걷고 싶다던지, 무대 위에서 노래불렀던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재미 없잖아요. 그런데 아이 낳는 일은 해보지 않은 일이니까 내가 장애우의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아빠가 된다는 것은 새로 사는 일이니까 꼭 해보고 싶어요. 아이 키우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예쁜 아이 낳으시길 바래요. 아이 낳으면 밖에서 했던 고민들이 아이 때문에 없어지기도 하고 그래요. 아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들일거예요.

 "송이가 쌍둥이거든요. 그리고 인공수정을 하면 쌍둥이일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구요."

 -결혼은 언제해요?

 "내년 정도로 계획하고 있어요."

 -퇴원 후에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자양동에 강이 보이는 빌라를 샀어요. 내부도 장애우용으로 다 바꾸어 준다는 조건으로 입주하기로 했지요. 19층 짜리 빌라인데 11층이구요, 엘리베이터가 서면 한층에 집이 하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집만 산다고 끝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직장도 구해야죠. 직업이야 앉아서 하는 일은 다 할 수 있으니까 DJ도 할 수 있고… 누어서 매일 생각하는 거죠. 앉아서 하는 직업이 뭘까? 생각은 많이 하는데 아직은 정하진 못했어요. 일하면서 불편한 것 뿐이지 할 일은 많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찾고 있어요."

 -얼마 전에 삐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는데 느리게 살겠다는 결심만 서면 이제 행복시작입니다. 앞에서도 간간히 장애우 문제를 주장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할 일이 전보다 훨씬 더 많아질 수도 있겠어요.

 "TV나 언론매체를 통해서 꾸준히 그런 권리들을 주장해야겠지요. 길가다가 보면 경사로에 차를 세워두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거 볼 때 화가 나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젠 내 문제가 됐으니까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아직 확실히 정해진 계획은 없어요. 할 일도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으니까요. 옛날처럼 그렇게 돈에 얽매이고 인기에 얽매여서 바쁘게 살지는 않을겁니다. 내 마음에 드는 재미있는 거 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요."

 어느새 투병 생활 5개월로 접어든다. 이제는 병원의 반복되는 아침 스케줄에도 익숙하다. 일어나 세수하기 무섭게 아침 식사시간과 선생님들의 회진이 이어진다. 그리고 치료가 시작된다. 치료를 받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 그리고 다시 치료시간. 오후가 되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야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제는 병원의 소독약 냄새에도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아득할 정도다.

 강원래 씨는 1시간 정도의 인터뷰가 끝나자 김송 씨가 새벽에 여러 번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자야 한다면서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좀 어렵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김송씨가 새벽에 여러 번 일어나야 하는 것은 강원래 씨의 대소변 처리문제 때문이다. 하반신 마비로 대소변의 감각을 느낄 수 없어 인위적인 처리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원래 씨의 말대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가수로서의 삶이 그에게 있어 신명나는 삶이었다면 앞으로 펼쳐질 장애우로서의 삶 역시 기운찬 시간들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정리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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