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장애우 공동체 "함께 사는 세상" 과 유찬호 신부 > 세상, 한 걸음


정신지체 장애우 공동체 "함께 사는 세상" 과 유찬호 신부

장애우 얼굴에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했죠

본문

 
‘교회’에 가면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자신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때로는 바라는 바가 물질일 수도 있고, 개인의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채워진다면 좀더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절대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이다.
이번 호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는 좀 색다른(?) 교회를 찾아갔다.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장애우와 함께 하는 삶으로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 봉천동에 있는 ‘함께 사는 세상’이 바로 그 곳이다. 그곳에서 유찬호 신부와 장애우들을  만났다.  
신도림 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봉천동 고갯길을 올라 가다보면 왼쪽으로 ‘함께 사는 세상’이 나온다. 옛날에는 ‘봉천동 달동네’로 유명 한 곳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개발이 시작되더니, 이제 어디서도 ‘달동네’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길다는 사실말고는...

바쁘다 바뻐! 그래도 즐겁다
종점을 한 정거장쯤 앞두고 내린 곳 에 ‘함께 사는 세상’이 있다. 반듯하게 지어진 5층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무실이 있고 정면으로 작업장이 있다.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모두들 일손이 바쁘다. 가끔 오는 자원 활동 아주머니까지 도와주지만, 납품일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는 분 소개로 주유소에서 나눠 줄 전단 6장을 하나로 묶는 일이 들어 왔는데, 골고루 한 장씩 짝 맞추는데 드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주위 분 소개로 주유소 전단 작업을 맡긴 했는데, 물량이 너무 많아서 일부만 하고 나머진 돌려보내야겠어요.”
유찬호 신부가 즐거운 웃음을 웃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직업 마련 프로그램의 하나로 우편물 발송작업을 하고 있다. 대형 디엠(DM) 발송업체와 달리 장애우들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감당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함께 사는 세상’의 식구들이 손 작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양은 10만 부까지다.
몇 군데 발송 작업을 고정적으로 보내주는 곳이 있지만, 가끔 이렇게 대량으로 오는 작업들을 해야 겨우 최저 임금에 맞는 월급을 맞춰줄 수 있다. 알음알음으로 소개해 들어오는 일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야기 끝에 함께걸음에도 발송의뢰를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유 신부가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영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나눔의 집과 함께 한 9년
‘함께 사는 세상’은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 산하의 센터로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위한 그룹홈과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1층에는 사무실과 작업장이 있는데 주일에는 이곳에서 예배를 한다. 2층에는 그룹홈과 부엌이 있다. ‘함께 사는 세상’의 식구들은 이곳에서 다 함께 점심을 먹는다. 마침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던 유 신부가 식당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께 농담을 건넨다.
“남들은 광우병이다 조류독감이다 해서 고기가 싸니까, 우리는 값이 쌀 때 고기나 실컷 먹을까요?”
유 신부의 말에 아주머니가  “어제도 고기를 먹었다.”고 응수한다. 점심을 먹는 도중 유 신부가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유찬호 신부는 ‘함께 사는 세상’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유 신부와 봉천동 ‘나눔의 집’ 의 인연은 오래됐다.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함께 사는 세상’에서 자원 활동을 했고, 신부가 된 다음 자연스럽게 발령을 받았다. 그러니 봉천동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9년이나 됐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사이 ‘함께 사는 세상’도 많이 변했다.
지금의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는 120 평의 넓은 단독주택이었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가정주택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공동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우선 전체가 모여 앉아 예배를 할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오래된 단독주택을 헐고, 그 자리에 지금의 5층짜리 번듯한 건물을 지었다. 그게 작년 7월이다. 건물을 새로 증축하느라 유 신부는 억 단위의 빚이 생겼지만 태평하기만 하다.
“돈이야 어떻게든 되겠죠.”
건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유 신부가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그룹홈이었다. ‘함께 사는 세상’ 에 다니는 장애우 4명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도록 이곳 2층에 살림집을 마련해줬다.
“장애우들을 위해서라도 가족으로부터의 독립해서 생활할 필요가 있어요. 독립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도 필요하고. 실제로 이곳 작업장에서 일하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월급을 가져가면 부모님들이 누구보다 좋아하세요. 사람구실 못할 것 같은 자식이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오니...얼마나 감회가 크겠어요.”
유 신부의 평소 소신은 이렇다. 
장애우들이 집에서 걱정꺼리로 살기보다는 직장을 갖고, 조금이라도 월급을 받으면서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우들이 닦으면 얼마나  깨끗한데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일하기 싫어할 때면 유신부는 장애우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 ‘00씨는 어른이다’, ‘어른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해줘요. 월급을 타고 부모님께 선물도 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물건도 사면서 돈을 번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 가는 것 같아요.”
유 신부는 장애우들의 고집을 이렇게 말한다.
“장애우들에게는 소외된 것이 많다. 그래서 뭘 하지 말라고 하면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장애우들은 뭔가를 원할 때 얻어 내는 다른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 유 신부의 설명이다. 그래서 언제나 “줘”라는 말만 하게 되고, 그것이 장애우들의 고집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유 신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정신지체 장애우들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고민 끝에 새로 시작한 일 중에 하나가 세차일이다. 정신지체 장애우 5명 정도가 그룹이 돼서 차를 닦는 것이다 .
현재는 강남에 있는 한 주차장과 이야기를 해서 고정적으로 세차를 하고 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 매월 정기적으로 세차를 하는 사람도 있고, 시간 될 때 이용하는 손님도 많다. 한번 세차비용은 1만 5천원이지만, 1달에 4번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은 5만원으로 할인도 해준다. 
“세차일 정도면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일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어요. 다른 세차처럼 물을 이용하지 않고 걸레로 다 닦아내니까 건물을 지저분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장애우들이라 꼼꼼하게 일해서 고객들의 반응도 좋아요.”
유 신부는 세차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만큼 반응이 좋아서일 것이다. 세차작업을 하는 장애우들은 직접 세차일을 할 건물로 출근한다.
유 신부는 강남 주차장 외에도 더  많은 세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 저기 말을 건네고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려면 주차장의 크기나 차량도 어느 정도는  돼야 하고 출퇴근하기에 너무 먼 곳도 안 된다.
하지만 일단 세차를 시작하면 누구나 만족할거라고 유 신부는 말한다. 그만큼 장애우들에게 적절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장애우들도 독립해서 사는 게  좋다
직업을 얻은 그 다음은?
당연히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결혼이다. 유 신부는 장애우들의 그룹홈 가구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결혼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우선은 그룹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에요. 현재 ‘함께 사는 세상’ 내부에서 그룹홈을 운영하고는 있는데, 지금처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집을 마련해서 운영하는 그룹홈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 거에요. 내부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이 안정되면 다른 장애우들의 부모님들도 설득할 생각입니다.”
그룹홈에는 장애우 4∼5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지만, 사회복지사나 비장애우가 함께 살면서 장애우들의  생활을 보조해줘야만 한다. 주변 사람들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룹홈을 꾸릴 공간이 문제다. 생활비는 월급으로 충당한다고 하더라도 생활할 공간을 마련하는데 몫돈이 들기 때문이다. 유 신부는 4-5명이 그룹홈을 꾸린다면 각자의 집에서 조금씩 돈을 내 전세를 얻는 방법이 좋다고 말한다. 그 정도는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책임질 수 없다면 후견인이 있는 그룹홈도 대안일 수 있다.
그룹홈이 장애우들끼리의 공동체 생활을 통한 독립이라면 유 신부는 결혼을 통한 독립도 생각하고 있다. 지난 호 ‘사람 사는 이야기’에 서 만났던 정신지체부부의 결혼이야기를 했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평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정신지체 장애우들끼리 만나 결혼해서 산다는 것이 희망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유 신부는 현실이 뒷받침 되는 한 장애우들에게 직업이 필요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집을 나와서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  부의 삶이 장애우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교조 활동으로 교사들이 학교에서 내몰리던 80년대 환경 속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별다른 생각이 없어도 운동을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묻어갈 수 있었죠. 공동체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이 함께 가는 게 중요한데, 내겐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운동인거죠.”

“문지방을 넘으면 죽음이더라”  죽음과의 인연
왜 신부가 됐냐는 질문에 유  부 는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상하게 시체와의 인연이 깊었어요. 중학교 때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는 걸 봤는데 사람이라는 게 너무 힘없이 죽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노래를 듣는데  ‘문지방을 넘으면 죽음이더라’는 내용의 가사를 들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 가사가 그렇게 마음에 와서 닿더군요. 죽음이라는 게 내 뜻이나 의지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유  부는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고 싶었다. 아마 죽음과의 인연이  그로 하여금 신부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  부는 ‘ 신부’는 천주교 신부만 있는지 알았다. 그러다 형님의 소개로 ‘성공회’라는 것이 있는 줄 알게 됐고, 결국은 신부가 됐다.
“교회는 빈민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는 선교를 통해 운동을 하는 거죠. 인간해방이 목적이니까요.”
유 신부에게 신부로써의 삶에 만족하냐고 물으니, 짤막하게 대답하며 웃는다.
“여기까지 잘 왔다 싶어요.”
친구들을 만나면 세상사는 힘든 이야기를 하다가 유 신부를 부러워하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비록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월급은 적지만, 유 신부만큼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현재’를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항상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희망’이라는 말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저는 현재를 제대로 잘 살면 미래가 온다고 믿거든요. ”
유 신부는 현재 이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30년 동안 ‘주십쇼’라는 기도만  했는데, 어느 날인가 주님이 ‘내게 바라는 게 뭐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울림이 들렸어요.”
그는 행복이란 바이러스처럼 전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이 행복해야 그 바이러스가 주위사람에게도 번져 같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 예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생활하는 장애우들의 이야기를 물었다. 유 신부는 대뜸 상훈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폐증이 있는 상훈이는 도통 대화가 안되더라는 것이다. 얼굴도 어둡고 혼자서 모퉁이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아서 당연히 유 신부의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 신부는 상훈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상훈이의 얼굴에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상훈이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예수의 모습이 보이고 내게 말을 하더군요. ‘나도 자유롭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깨닫게 됐죠. 장애우든 누구든 다 나름대로 예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요.”
그 뒤로 유 신부는 상훈이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상훈이 안에 있는 예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관심이 있으면 알게 되고, 그럼 길이 보인다. 상훈이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상훈이에게도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자폐증이 있어서 누구랑도 어울리지 못하는 줄 알았던 상훈이가 문철이와는 장난도 치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 신부는 말이 안통하고 답답했는데 말이다. 심심하면 상훈이는 몸이 불편한 문철이를 건드려 쓰러뜨리기도 하고 괜히 툭툭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기도 하고.
지금도 유 신부는 상훈이가 문철이에게 건네는 말을 알아듣지 못 한다. 하지만 문철이를 통해 상훈이를 공동체의 일원을 끌어들일 수는 있다. 상훈이와 함께 움직이고 싶으면 문철이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유 신부나 다른 친구들은 상훈이에게 말을 못해도 문철이는 상훈이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 
그래서 유 신부는 상훈이가 ‘함께 사는 세상’의 시험대라고 말한다. 장애우들이 인간적으로 활동하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 주면 그 안에서 장애정도가 조금씩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 환경이란 장애우들이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일과 함께 웃고 생활하는 친구(함께 사는 세상) 가 그 조건일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의 환경이 좋아지고  안정되면서 상훈이도 자폐증상이 조금씩 나아진다. 어두웠던 얼굴이 밝아진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래서 유 신부는 상훈이가 ‘함께  사는 세상’의 시험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훈이의 얼굴이 밝아지면 ‘함께 사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고, ‘함께 사는 세상’에 문제가 있으면 상훈이의 얼굴이 어두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내 몫이 닿는데 까지만 할래요 
지금은 유 신부가 ‘함께 사는 세상’ 을 맡아 운영하고 있지만, 나눔의  집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면 떠나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유 신부는 ‘ 함께 사는 세상’이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누가 와서 운영을 하든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내 몫이 어디까지인지를 보려고 해요. 내 개인이 아무리 잘해도, 다른 사람이 왔을 때 그 틀이 무너져 버린다면 소용이 없죠. 개인의 능력보다는 잘 만들어지고 갖춰진 시스템에 따라  ‘함께 사는 세상’이 움직이면 좋겠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유 신부는 지방으로 내려가 장애우들과의 공동체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공동체로 묶인 삶을 생각하고 있다. 농사도 같이 짓고 같이 쓰고 나누면서 가족처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생각을 해볼 뿐이지 꼭 해야겠다는 욕심은  없다.
유 신부는 올해 둘째 아이를 얻게  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도 부인 류미례씨의 배가 많이 불러 있었다. 아이가 둘이면 신부 월급으로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웃기만 한다. 다른 가족들은 아이가 둘이 된다는 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해주는데,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나온는 것이다. 한마디로 천하태평이다.
환하게 웃는 유 신부의 웃음에 세상 근심도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 것만 같다.

글 사진 서현주 객원기자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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