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중앙위원 심상정 씨 > 세상, 한 걸음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심상정 씨

제도권에 소리치는 ‘스피커’ 되겠다

본문

이번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심상정 중앙위원(45).
심 위원은 78년도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재학 중 노동운동에 투신해 25년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외치며 운동해온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성 노동운동가다. 심상정 위원은 노동운동은 대중운동이고 그들과 함께 할 뿐이라며‘진자리’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 이는 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고, 전국민주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쟁의국장과 조직국장, 금속산업연맹 사무차장, 금속노조 사무처장 등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최근 한겨례의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과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가 발표한 ‘여성후보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든 민중에게 희망 주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심상정 위원, <함께걸음>이 만났다.

 

 
아예 타협을 거부하는, 신자유주의 자본
박옥순(이하 박) : 민노당 비례대표로 출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많이 바쁘시죠.
심상정(이하 심) : 쑥스럽습니다. 그동안 지원만 하다가, 이렇게 직접 출마 하려니 얼떨떨해요. 준비할 것도 많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고민이 많습니다.
박 :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심 : 노동운동 하면서 노조운동을 사회 근본 변화로 연결시키는 것이 늘 제게는 한계였고, 아쉬움이었어요. 그리고, 특히 일하는 여성, 장애우 여성에게, 이 정도로는 안되겠다는 부채의식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에 금속노조 임기 마치고 민노당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노동운동이 노동만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야 대안사회의 전망, 세력으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노동운동, 사회변혁운동은 약자를 위한 운동입니다. 어려움을 느끼는 쪽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박 : 비례대표가 되시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심 : 저는 제도권에 소리치는 ‘스피커’역할을 할 겁니다. 떠들어야 되요. 장애우들이 처한 실상조차 모르는 사람 많습니다.  아무리 거리에서 으샤으샤해도 공허한 메아리 되는, 그런 설움 우리 많이 당했잖아요. 이런 일에 의원직을 바치고 싶습니다. 사회운동의 확대와 결합에 의원활동의 촛점을 맞추고 싶어요.

올해 1월 한겨례가 선정한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에 뽑힌 소감을 묻자, “정말 당혹스러웠어요.”라며, 구색 맞출려고 여성도 뽑나보다 생각했단다.
심 위원은 노동운동은 대중운동이고, 조합원들과 같이 운동했을 뿐이라면서, “개인 이름으로 가로챈 것 아닌가, 송구스러웠습니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박 : 심 위원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중에서 노동부분의 인물로 선정되셨는데요, 노부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심 : 저는 크게 기대 안 합니다. 현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가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을 여과없이 거침없이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거기에 개혁정권이니 도덕정권이니 하는 것을 덧칠해서. 민주노총이 대화와 타협을 안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자본이 아예 타협을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공세(攻勢)적이고 광범위한 신자유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항거하고 있는 겁니다. 노무현 개인의 의지나 생각의 문제라기보다는, 노무현에게 자기의 사회 개혁을 뒷받칠 할 단단한 기반이 없는 거죠. 그래서 거대한 자본의 힘에 쉽게 굴복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싸울 수 밖에 없고요.

세상에 사기 당한 느낌, 운동을 시작하게 하다
박 : 심상정 위원은 이십여년 넘게 노동운동만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짧다고 할 수 없는, 긴 세월인데요. 노동 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 참 어려웠던 때이기도 했는데요.
심 : 대학교 들어가보니 학생들이 야학을 많이 하더라구요. 하지만 당시 저는 그것을 낭만적인 사고라고 치부하고 있었어요. 야학으로 사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관련 공부 하다보니, 사회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78년도에 서월야학을 내 발로 찾아갔죠. 그 때 느낌은 뭐랄까, 세상에 사기 당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79년도부터 공장에 들어가게 됐죠. 일을 해보니까, 너무나 힘들고 댓가도 참혹하고. 그에 비해서 노동자들은 너무나 성실하고 이해심 많고, 그 박봉 쪼개서 동생학비며 부모님 생활비 부치고. 저는 그들에게 인간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어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으로써, 사회구조를 이해한다면 정말 좋은 사회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래서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때였죠. 선배들, 사회정화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삼청교육대 등으로 엄청 끌려갔죠. 노동 운동의 암흑기였습니다. ‘노동’이라는 단어만 사용해도 빨갱이였고, 노동자들은 공돌이, 공순이라고 하대 당했던 시기였죠. 밤 10시까지 잔업하고 새벽까지 공부했어도 아침에는 일곱시에 칼 출근했죠. 사실 힘든 줄 몰랐어요. 하지만 그런 생활 한 4∼5년하니까 탈진하더라구요. 혹시 아세요? ‘두 시간 밧데리’라고. 그게 뭐냐면, 눈뜨고 두시간 뒤에는 식물인간 상태 되는 거예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어요.

운동가라고, 여성의 고통이 면제였겠어요, 하면서 심 위원은 노동과 여성문제는 곧 내 문제라고 했다. 특히 장애 여성은 반드시 비례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민노당이 4년 후, 장애여성 비례대표 만들테니까, 준비하세요.”라고.

고목나무에 새순 붙인다고 꽃피나요?
박 : 심상정 위원에게 여성계 쪽에서도 바라는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맑은정치여성네크

 
 
 
워크가 제시한 ‘100인 여성 후보’이시기도 한데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이뤄야할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심 :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가장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남성위주의 정당구조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치개혁 전반의 문제와도 밀접합니다. 한나라당이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것은 고목나무에 새순 접붙인다고 꽃 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칩니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 해야죠.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잘 된 나라들은 세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요. 첫째는 여성의 노조 조직율이 높고, 둘째는 진보정당이 집권해 있거나 다수당이며, 마지막으로 정당명부 비례대표가 일찍 실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진보정치 안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가장 고통받고 있는 노인, 저소득, 장애 여성의 요구가 반영, 확대되는 방향으로 정치세력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애여성은 비례대표로 반드시 돼야 합니다. 민노당이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4년 뒤에는 만들어내겠습니다. 준비해두세요. 장벽에 부딪혔을 때는 존재에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노동의 원리도 그렇고요.
박 : 노동운동계처럼 억세고 힘든 곳에서 여성운동가로써 이십여년간 버텨오셨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심 : 잘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노동운동판에서는 여성운동가들에게 ‘말로 하지, 왜 우냐’, ‘좋은 말로 하지, 왜 성질부터 내냐’라고들 합니다. 후자는 저를 두고 하는 말이구요. 하하. 여성들이 태어날 때부터 잘 울거나, 성질부터 내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죠. 저를 예로 볼까요. 회의에 가면 이삼십명 남성 중에 혼자 여성이었죠. 안건도 잘 채택 안됩니다. 조직 문제, 당 문제 많은데 쓸데없는 소리한다는 말도 들었죠. 뚫을 수 없는 남성의 가부장적인 벽 앞에서 여성들은 울거나, 저 같은 경우는 독기를 품게 됩니다. 다음 회의 가서는 소리부터 지르죠. 그러면 기타 안건으로 채택됩니다. 이런 게 현실입니다. 아이구, 말로 다 못하죠. 어떤 사람은 너는 다 인정해주는데 뭘 그러냐하지만, 여성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 남성들 굉장히 어색해 합니다. 남자 상사가 성질내면 그 자리에서 끝나지만, 여성상사에게 혼다면 뒷자리까지 꼭 말 돌죠.
박 : 오랜 시간 노동 운동하신 분이라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표정이 정말 편안해 보이세요. 혹시 그런 말 들으신 적 없으세요?
심 : 하하. 부잣집 마나님 같다는 소리 종종 들어요. 재미난 얘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제가 90년도에 전노협 쟁의부장이었어요. 쟁의부장이니 뭐냐면 , 가두투쟁이나 비택(정해져있지 않는 게릴라식 투쟁방법)하고, 화염병 만들고, 속칭 ‘인민무력부장’이라고들 했죠. 결혼 전에, 현대 중공업 노조 백여명 모아두고 이런 것들을 교육하러 갔는데, 저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대요. 다들 문을 쳐다보던데요. 우락부락한 남자가 들어올 거라고 예상하면서. 그러다 곱상한 제가 앞으로 나서니까, 다들 탄성을 지르더군요.
박 : 재밌네요. 심 위원님, 집 얘기 좀 해주세요. 노동운동하랴, 아이 키우랴 정말 바쁘셨겠어요.
심 : 저는 거의 박빙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여성 노동자들이 다 그렇죠. 저는 두 남자랑 살아요.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고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부터 엄마는 이런 일 하는 사람이니까, 너는 엄마를 잘 이해해주고 도와줘야한다고 교육(?)했죠. 어릴 때부터 아이가 알아듣던지 못알아듣던지 간에 스케줄을 말했죠. 엄마가 월, 화, 수요일 출장인데, 일요일은 아무데도 안가고 너랑 같이 있을꺼야 하는 식으로.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를 예측할 수 있도록. 아이가 엄마에게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는 것은 전빈련 쪽이예요. 미개발지역 반지하 빌라 살아요.
박 : 그래도 활동하려면 재정이 필요할 텐데…
심 : 지금까지 한 것처럼 살면 되죠 뭐. 의원 되도 밥 사주고 뭐 사주고, 그런 짓하고 싶지 않아요. 당에서 복무하는 노동자로 일하고 싶습니다. 지원하는 사람들요? 그것도 자신의 운동 일환인데, 스스로 해결해야죠.

장애문제, 사회 공동체적인 의식으로 풀어야
심상정 위원은 상식적인 사회라면, 노동운동은 그렇다치더라도, 장애문제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능력, 경쟁, 시장이라는 개념만 있지, 참여, 분배, 등은 없다고 진단했다.
심 위원은 기부나 후원에 의존하는 미국식 복지정책보다는 사회가 책임지는 유럽식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 장애 문제는 법이나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참 많은데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심 : 지금 우리 사회는 기업만 앞으로 쭉- 나가 있어요. 세계 자본주의라는 큰 체제 아래, 하위체제로 편입되어 있죠. 큰 톱니바퀴가 한 번 돌 동안, 작은 톱니바퀴는 여러 번 돌죠. 아귀를 맞출려고 하니까, 속도전이 될 수 밖에요. 그러나 기업만큼, 사회의 다른 조건들은 발전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왔습니다.
제가 아직 장애 문제 쪽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장애 문제는 사회가 마땅히 공동체적인 의식으로 껴안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특히 장애여성이 처한 극단적인 상황으로부터 방어가 될 수 있도록, 민노당, 민주노총, 민중노동 전반에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밀어붙이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못낼지라도, 확실히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심 위원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그러자 그 이는 “장애우 여러분, 좌절하거나 아파하시지 말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싸우세요. 누군가 알아서 해주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언제 마흔 다섯 살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심상정 위원.
그 이는 왜 힘든 거 없었겠어요, 육체적인 것이 힘드나요, 그보단 사람 사이가 힘들지,하며 슬며시 웃는다.
오랜 시간 여성 노동자로써 우리 사회의 격변기를 헤쳐나온 심 위원은,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운동의 원리를 온 몸으로 전하고 있었다.

대담 박옥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실장)
정리 최희정 기자
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