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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뉴스 김오달 기자

실패도, 성공도 좋다! 다만 도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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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들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곳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애우가 있다.

얼핏 보면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별히 들은 이야기를 녹음하거나 수첩에 받아 적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눈 이야기는 며칠 후면 기사로 쓰여져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그가 바로 김오달 기자다.


의욕만만, 자신만만, 새내기 기자 김오달!

현재 김오달(뇌성마비 지체장애 2급)씨의 직업은 브레이크 뉴스(http://breaknews.com)의 시민기자다.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브레이크 뉴스 두 곳에 기사를 올렸는데, 그의 기사를 실어준 곳은 브레이크 뉴스였다. 그것이 기회가 돼 지금까지 30편이 넘는 기사를 올리고 있다. 일주일에 평균 3~4편을 쓰고 있는 것이다. 주제도 다양하다.

장애우들의 이동권이야기, 이주노동자들의 싸움, 이승연 사태를 통해 바라본 언론, 촛불집회와 정치, 파병반대, 독도문제까지. 실로 안 끼는 곳 없이 다 낀다.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그래서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ꡒ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데, 그래서 제 삶 속에서 시도도 많이 해봤어요. 결국 이런 제 관심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게 기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ꡓ

이제 겨우 두달된 새내기 기자의 자신만만함이 어이없을 정도다. 자신있냐는 질문에 그는 선뜻 ꡒ자신있다ꡓ고 대답한다. 글도 잘쓰냐는 질문에도 ꡒ브레이크뉴스에 올라간 기사를 읽어보라ꡓ며 웃는다. 자신감에 찬 태도다. 글쓰기가 아니라 기사의 내용으로 승부하는 기자라는 자존심 때문은 아닐까.


포기할 수 없는 ꡐ창작ꡑ 열정

여기에 오기까지 그는 직업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 신문편집, 만화작가, 공공 근로, 포스터 모델, 컴퓨터 강사, 기자까지.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 시작은 컴퓨터였다. 광원대학교 부설기관에서 컴퓨터공학을 6개월 동안 배운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저 그랬다.

ꡒ컴퓨터를 좋아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냥 하는 건 좋은데 막상 공부로 하려니까 좀 그렇더라고요.ꡓ

덕분에 컴퓨터는 남들 부럽지 않을 만큼 배웠고 다룰 줄도 알게 됐다. 두 번째 도전은 편집을 하기 위해 맥킨토시를 배운 것이다. 95년도에 3개월 정도 학원을 다니면서 편집을 배웠는데, 덕분에 ㅎ신문사에서 편집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마감하는 일간지여서 밤 12시쯤 나가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하는 것이다. 김오달씨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다음해에는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삼수를 해서 대학교에 들어갔다.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지원했다. 용인의 학교에 보낸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반대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들어간 국어국문과도 그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소설을 쓰려고 들어간 국어국문학과였는데, 이론위주의 수업이 많았던 것이다.

1학년 때는 운동권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5․1메이데이에 나가는 등 운동을 했다. 그럭저럭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장애우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장애우들을 상대로 컴퓨터를 가르쳐 주거나 노인분들의 목욕을 거든 것이다. 그러나 학과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다음이라 과외활동만으로 학교에 적을 두고 다니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휴학까지 했지만 결국 2000년, 학교를 관두고 말았다.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관심 있어요.

학교를 관뒀다고 해서 창작에 대한 그의 욕심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만화시나리오 수업을 듣고 직접 창작을 하기도 했다. 김오달씨가 관심을 가졌던 장르는 <퇴마록>과 같은 동양환타지였다. 이쯤에서 김오달씨와 관련된 믿지못할 이야기를 한가지 해야겠다. ꡐ임금님귀는 당나귀 귀ꡑ를 외쳤던 심정이라고나 할까.

왕관을 만드는 사람은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보고 생명에 위협을 느껴 말하지 못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누가 과연 믿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장황하냐 싶겠지만, 그럼 들어보시라.

귀신을 본다는 것이다. 김오달씨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길거리고 어디서건 쉽게 귀신을 본다고 말했다. 그냥 길을 지나가다 보면 귀신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ꡐ어떻게 생겼냐?ꡑ, ꡐ귀신인지 어떻게 아느냐?ꡑ, ꡐ김오달씨가 귀신을 본다는 걸 아느냐?ꡑ, ꡐ무섭지 않느냐?ꡑ, ꡐ어떤 귀신이 제일 무섭냐?ꡑ는 질문을 쏟아 부었지만 그는 이런 질문들에 익숙한 듯 천연덕스러웠다.

ꡒ귀신은 형체가 좀 흐릿해요 그래서 그냥 느낌으로 알아요.ꡓ

ꡒ내가 귀신을 보면 서로 눈이 마주치니까 귀신도 내가 자길 보는 걸 아는 것 같아요.ꡓ

ꡒ처음에는 무서웠는데,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지금은 괜찮아요.ꡓ

ꡒ애들 귀신이 제일 무서워요. 아직 살아보지 못하고 죽어서 원한이 많거든요.ꡓ

뿐만 아니다. 어렸을 적 김오달씨가 네살 때 부모님을 교회로 전도하는 신통함도 가지고 있었다. 겨우 네살짜리가 뭘 안다고 어머니에게 ꡐ교회가 좋다ꡑ며 교회에 다니기를 권한 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는 하지 않는다.

귀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또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6개월 동안 잠지리에 들 때마다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결국 액땜을 하듯이 일주일 간 설악산을 다녀오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됐다.

ꡒ스님한테 제가 가위 눌린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시더라고요. 원래 제 몸은 귀신이 들어와야 할 몸인데 기독교 때문에 못 들어 와서 그렇게 가위에 눌리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스님이 제게 뭔가를 하셨는데 아마 퇴마의식을 행하셨던 것같아요. 그 뒤로 가위눌림이 사라졌으니까요.ꡓ

어찌 들으면 꾸민 이야기같고, 너무 태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김오달씨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인 듯도 하고.

이런저런 귀신과의 인연으로 김오달씨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의 창작작품에 주요 소재가 됐다.


장애 때문에 더 강해진 의지력

김오달씨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아직 걸음마도 못하던 아기였을 때다. 엄마 품에 안겨 집으로 오는 도중 택시를 탔는데 그만 버스와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어 그냥 넘어갔는데, 교통사고 이후로 김오달씨가 경기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감기정도로 생각해서 침을 맞기도 했는데, 검사결과는 뇌성마비로 나왔다. 교통사고로 인해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의사의 말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워낙 예민하고 약해서 단순한 사고만으로도 다칠 수 있는데, 김오달씨가 그런 경우였다.

지금이야 건강하고 씩씩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김오달씨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한 아이였다. 같은 삼육재활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중에 그보다 장애가 약했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지금의 그를 보면 놀라워 할만큼 그의 건강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ꡒ어머니가 그러세요. 그때 의지력을 너무 많이 써서 지금 이일 저일 하는 것 같다고. 마치 아이들이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이 그렇게 걷는 연습을 했으니까요.ꡓ

걷지도 못하는 어린애가 걷겠다고 너무 많은 노력과 의지를 기울여서 평생에 쓸 것을 그때 다 써버렸다는 것이 김오달씨 어머니의 생각이다. 비록 어린애지만 그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 걷기 연습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았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어머니께는 눈물겹도록 안타까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집회대열 맨 앞에서 싸우는 장애우 기자?

김오달씨는 아직도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다. 기사 많이 쓰고 노력한다고 수입하나 없지만 여전히 의욕적으로 기사쓰기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쓰는 기사에는 좋은 세상에 대한 그의 열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기사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였다.

기사를 쓰게 된 동기는 간단했다. 작년 12월 파병반대 집회에 나갔다가 알게된 이주노동자 한 명이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연대방문 차 들렸던 성당에서 김오달씨는 바로 연대농성에 들어갔다. 일주일도 넘게 이주노동자들의 천막농성에 동참한 것이다. 그리고 기사를 썼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다짐을 서슴치 않았다.

ꡒ7월부터 시행되는 법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러니 고쳐야죠.ꡓ

그의 의지만큼이나 강한 것이 취재현장에서 기자로서의 그의 활동이다. 여기저기 카메라 들고 뛰어다니고, 집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스케치하는 일반 기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집회대열의 맨 앞에 서있다. 그래서인지 전경이나 경찰들도 그를 기자로 봐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ꡐ장애우가 기자?ꡑ라는 선입견도 있다. 아무리 자신이 기자라고 외쳐도 무시되기 일쑤다.

ꡒ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어볼까 고민중이에요. 장애인버스타기를 취재나간 적이 있는데, 아무리 기자라고 이야기해도 안믿는거에요.ꡓ

김오달씨는 취재원에 대한 취재권 박탈을 이유로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해 볼까 생각중이다.  

반면 장애우 기자로서의 그는 취재원들로부터 환영받는 존재다. 집회현장의 사람들과 함께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고 싸우는 기자는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우라는 점도 기자라는 직업인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장점이 된다.

ꡒ기자로 안보이니까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 치우친 기사를 쓰거든요. 일반 언론이 너무 저쪽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면 전 이쪽의 입장에서 글을 쓰니까요. 개인적으로 이주노동자나 장애우 문제,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모두 우리 사회에서 착취 당하고 차별 당하는 사람들이잖아요.ꡓ


도전! 김오달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오달씨는 공공근로로 생계비를 벌었다. 그러나 낮에 직장에 근무하면서 도저히 기자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중요한 사건이 터지는 순간을 놓쳐버리기가 일쑤였고, 결국 공공근로를 관둬야만 했다. 그리고 나니 이제 생계가 막막하다. 현장취재를 주로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식비나 차비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브레이크 뉴스의 시민기자는 수입이 되질 않는다. 아직은 정식기자로 등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구상중이다.

가칭 인터넷문화연대!

민중가요 포털사이트(http://www.plsong.com)와 함께 민중가요를 통한 사업을 벌여볼 생각으로 일을 추진중이다.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김오달씨는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ꡐ가능하다ꡑ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민중가요들은 저작권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작권처리부터 시작해서 온라인 서비스를 할 생각이다. 수익도 만들고 민중가요도 널리 알리고. 이른 바 일거양득,  현재 그의 사업구상을 구체화 할 사이트도 기획중이다.


김오달씨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조금은 미심쩍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귀신을 본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민중가요를 통한 수익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아스러운 구상까지. ꡐ정말 될까ꡑ싶은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재미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들려줄 이야기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사람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쫓아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른 살도 안된 나이에 이런저런 다양한 삶에 도전하고 일어서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쩌면 오늘은 김오달씨를 시민기자로서 만났지만, 내년 이맘 때 쯤은 사업가 김오달씨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오달, 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ꡐ실패도 좋다. 성공도 좋다! 끊임없는 도전만이 있을 뿐이다.ꡑ 이 정도면 어떨까.


글 서현주 객원기자 / 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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