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 > 세상, 한 걸음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

“사람이 사람답게, 그게 복지죠”

본문

17대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캐츠프레이즈를 기억하는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다 평등하게 행복해지고 싶었던 모든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가슴 벅찬 즐거운 상상이 모락모락 피어났었다.
여기 그 모두가 꾸던 꿈을 현실로 안착시키기 위해 기지개를 펴는 사람이 있다.
보건복지위원회와 예결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42세)
얼마 전 이동보장법률 제정 청원을 위해 장애우 단체들과 함께 국회에 들어가려다, 경찰의 저지로 1시간 30분 동안이나 업무방해를 받으며 어이없는 실랑이를 벌였던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장애우 정책의 사랑이 자주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자립생활 패러다임’이란 것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는 현애자 의원을 함께걸음이 만나보았다


그이는 최근 민주노동당이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소수정당이란 점 때문에 국회 운영과정에서 겪은 차별에 대응하느라 정작 할 일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지 못하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쪼개 정립회관 사태와 관련, 직접 방문하여 조속한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장애 관련 법 제정 청원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장애계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해 구체적 연대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사람들은“국회에 동지 하나 생겼다”며 든든해한다.
애초 현 의원은 농민운동의 경험 때문에 농림해양수산원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하지만 10여명의 위원이 골고루 배치되어 활동해야 하다보니, 당에서 제시한 전략상임위 10개를 놓고 의원단이 협의해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강기갑 의원과 같은 농민 출신이기 때문에 현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를 결정했다. 그래도 올바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소외된 이웃의 삶을 제대로 보고 ‘사람답게 사는’모습을 정책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기 때문. 농촌에서 농민으로 살면서 불편했던 부분들이 총체적인 복지정책의 허술함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현 의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양한 복지정책 진전이 ‘진보’
함께걸음(이하 함께): 우선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복지’의 개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애자 의원(이하 현): 역사적으로 ‘복지’라는 개념이 냉전 시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 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지 정책이 소외된 계층의 보다 분명한 주장을 희석한다는 주장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양한 사회 복지 제도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부단한 피와 땀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의 교리로 자리 잡은 지금, 복지 정책이 후퇴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가 단순히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의 수정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듯이, 다양한 복지 정책을 후퇴 없이 전진시키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진보’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보건복지위는 빈민, 장애우, 노인, 아동 등 소외계층의 보건과 복지 정책을 생산해내는 곳인데, 그동안의 관심 분야와 달라 힘들진 않으십니까?
현: 네, 업무영역의 범위가 매우 넓죠. 영역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도 뚜렷하구요.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더 힘이 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원래 일 제대로 하려면 힘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함께: 각 분야의 현안에 대해 파악중이시겠지만 장애우 정책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 만일 당사자들이 정부의 이동권, 연금, 고용, 정보접근 등의 정책에 대해 직접 점수를 매긴다면, 낙제점이 아닌 것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요. 장애우복지 정책이 총체적으로 미비하기 때문에 장애우 당사자들에게는 모두가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장애우 자립생활에 대해 좀 각별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장애우들이 가진 장애를 어떻게 극복시켜 줄 것이냐는 재활 측면의 접근법이 많았죠. 저 또한 편의시설 등 물리적 환경 개선만 이루면 되지 않는가 하는 단편적인 사고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장애를 가진 사람들 스스로가 시민이고 국민이다, 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고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시혜적 관점을 버리고, 장애우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발상을 가지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이란 거죠. 자립생활 운동을 촉진하는 정책을 통해 장애우들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함께: 장애우 복지 정책이 시혜적 관점을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정책의 방향 자체가 탈시설화, 소규모화, 인간화를 지향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시설장들과의 싸움이며, 결코 녹록치 않지만 꼭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인데요, 장애우들이 장애를 이유로 시설에서 생활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시설에 버려지고 대규모화되면서 대상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사실이라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시설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며, 임기 내에 시설정책에 대한 대안은 갖고 계시는지요?
현: 아, 제일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얼마 전 장애를 가진 분 스스로가 장애우 시설을 ‘장애인 수용시설’이라고 하더군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수용이라뇨? 시설은 갇혀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자유롭게 오가며 이용하는 개념으로 목적과 성격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규모가 작아지고, 많아져야 하며, 접근이 쉬워야겠지요. 지역사회 내 거주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데, 문제는 어떻게 이 방향으로의 변화를 만드느냐 아니겠습니까. 방안을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겠습니다.
함께: 복지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산입니다. 정책이 곧 예산이고 예산이 곧 정책인데요, 턱없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사용되고 있지 못한 점도 문제입니다. 적정한 예산은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 정책을 토론하다보면, 마지막에 이르는 곳이 예산문제예요. 그래서 보건복지위 소속이지만, 복수 상임위로 예결위를 선택했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복지시설과 관련해 종사자들 사이에서 예산 집행이 불합리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데, 비단 복지시설뿐 아니라 불합리한 요소가 곳곳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산 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할 것입니다.

  장애우 문제를 비장애우 입장에서 보는 것이 ‘보수’
함께: 장향숙 의원과 정화원 의원이 장애계의 대표성을 갖고 국회에 들어가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지만 여당과 보수당이라는 점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노당과 사안에 따라서는 공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관계는 어떠십니까?
현: 민주노동당의 장인인 복지 정책이 가장 선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저는 그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면, 장애우 당사자들의 입장에 덧칠하지 않고 가장 충실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우 현안에서는 비장애우의 입장에서 장애우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보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사자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이 진보죠. 그런 측면에서 제 자신도 부단히 장애우들과 대화하고, 제 사고의 좁은 틀을 깨나가지 않으면 현안에 따라 보수로 기울어버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향숙 의원과 정화원 의원께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우의 입장을 가장 잘 아실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당론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두 의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격식 없이 두 분과 협의하고 싶습니다.
함께:  장애계의 현안 중 차별금지법 제정이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의원들이 모임을 구성하고 법안을 상정하기도 하던데요, 국회차원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장애인차별에 대한 심각성과 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의원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두 가지 특징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첫째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영역이 방대한 법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죠.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영역들은 정부의 여러 부처로 그 소관 업무가 분산되어 있습니다. 정부 부처의 유기적인 협조 체계 가 필수조건입니다. 어느 한 부서가 자기주장을 앞세워서 충돌이 생기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제도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차별의 문제까지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국회에서는 초당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법안 제정을 위한 의원 모임은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최근 김근태 의원이 복지부장관이 취임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장애계에서는 김근태라는 정치적 거물이 복지부를 맡게 되어 복지부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와 정치적 안배 차원에서 민생문제가 다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어떤 견해이며, 기대가 있다면 어떤 부분입니까?
현: 보건복지 업무에 추진력이 생길 거라는 기대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민생문제가 끌려갈 것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있는데, 어느 한쪽으로 갈지는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은 경험 있고, 각 당에서 신망을 받고 있는 분들이 보건복지 분야에 오신 만큼 서민의 복지 실현에 획기적인 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민주노동당 의원이 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를 존경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건 70년대 일이지요. 그런데 2000년대, 21세기에, 장애계에서는 ‘장애우도 인간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이제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되었고, 그 중에서도 장애인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빈곤문제 해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 장애우들의 기초 생활이 6만원의 생활 보조금으로 불가능하죠. 장애연금을 통해 장애우들이 최저 생계비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장애인들의 고용이 확대되어서 땀 흘려 일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는 경제생활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장애인복지, 장애인고용정책이 근본적 지점에서 신자유주의와 팽팽한 대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기 내에 장애우들의 기초 생활에 대한 개선을 넘어, 장애우 정책을 포함한 보건복지 정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바쁘신데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현: 네, 민주노동당 10명의 국회의원이 모든 걸 다할 수는 없을 겁니다. 또 신자유주의정책을 기조로 하는 열린우리당 또한 한계가 명확합니다. 저희가 의미있는 법안을 만들더라도 발의 자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보수 기득권층의 저항은 녹록치 않을 것입니다. 저희 과제이지요. 운동세력의 과제일 수도 있구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스기사

현애자 의원은 누구

고등학교까지 내내 제주도에서 생활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가정관리학과를 들어가긴 했어도 공부는 뒷전이었다고 한다. 80학번인 그이에게 대학은 학문을 연마하는 곳이기 보다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며, 사회 속의 현애자, 한 개인을 진실되게 바라보게 만든 깨우침의 터였다. 동아리였던 탈춤반 활동을 마치 전공처럼 인식하고 3학년 때는 서울지역대학생문화패연합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현장문화운동을 고민하던 대학교 4학년 때, 그이는 갑작스런 몸의 이상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온 몸의 관절이 아프며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더니, 그로부터 3년 간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병원을 가봐도 특별한 병명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뭐가 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 일을 계기로 요양 차 고향인 제주도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다. 그래도 피끓는 청년의 열정은 어쩔 수 없는 것. 그이는 제주지역의 특색에 맞는 문화운동을 위해 극단 ‘누리’를 창립하고, 농민항쟁인 ‘방성칠난’을 소재로 극을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80년대 중, 후반 이런 극을 정부가 허용할 리 없었다. 결국 경찰 조사를 받고 극단이 흐지부지해 버리면서 1년 동안 준비한 극은 무대에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오히려 ‘포기’보다 활동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겠다는 ‘패기’로 작동한다. 이후 ‘제주지역문화운동협의회’를 꾸려 각 읍, 면 단위를 돌며 한달 간 농촌순회공연을 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으로 이 때를 꼽는데, 모두가 한바탕 신나게 놀았던 그 때를, 지금 생각만 해도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온단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메커니즘과 삶에 있어 무엇이 소중한 지를 깨달았던 그이였기에,  눈과 머리, 마음에 들어오는 건, 사람이 떠나고, 하챦은 일로 치부 받는 농업, 농촌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88년 대정읍 농민회 간사로 본격적인 농민운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농민이지만 농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사와 생업이라는 이중의 책임을 지면서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여성농민의 삶에 눈이 꽂힌다. 직접 논으로 밭으로 뛰어다니며, 여성 농민을 만나 농민운동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그렇게 평생 흙만 만지며 순박하게 살아가던 이들이 여성으로서, 농민으로서 자기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 결국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97년 제주여성농민회를 결성하게 된다. 이렇게 문화운동에서 농민운동으로 전환한 것을, 그이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애자 의원의 고민과 관심은 여기에 머무를 수 없었다. 경제성장이란 구호 아래 민족농업이 붕괴하고, 노동자, 도시서민들이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우리 사회 모순을 보며,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등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길이 자신의 몫이라 느낀 것이다.
끝 갈데 모르는 운동에 대한 열정과 강한 실천활동은 소외받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정치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흙이 그리운 국회의원
현 의원이 마지막 당부의 말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실정치의 벽에서 느씨는 당혹스러움은 그리 만만치않다고 한다. 얼마 전 같은 농민 출신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의정활동 한 달만에 벌써 ˝자연과 흙이 그립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는 ˝상식과 예의를 벗어난 국회, 파행적인 관행과 타성에 적어 있는 국회가 어찌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했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밎어 사람들에게 온 힘을 다하여 먹을 것을 제공하고, 가을이 되면 그 왕성한 푸르름을 훌훌 벗어던지고 나못으로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이, 그리고 거짓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정화시켜 새로운 생명의 터전을 준비하는 흙이, 몹시도 그립다˝는 그의 말에서 순수함과 열정, 원칙을 관철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의원 역시 그 글을 보았다며, ˝깊게 공감한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 10명의 의원이 모든 것 다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최선은 다해야죠. 벌써부터 풀어야 하는 과제가 너무 많이 보입니다˝라며, 각오를 다지는 듯한 표정엔 강한 의지가 묻어있다.

여성, 농민, 어머니로서의 현애자
이제 현 의원은 4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정시친 현애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제주도가 고향이자, 활동의 근거지였는데, 아직도 남편과 가족 모두가 제주도에 있기 때문이다. 현의원을 한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내이며, 두 아이의 엄마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제주도에 간다. 교통비를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바쁜 국정활동을 하면서도 끝과 끝인 서울에서 제주도를 오가는 생활이 어떻게 가능할까? 답은 간단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으면 부가능했겠죠.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 흙을 만질 수 있다는 기쁨이 저를 밀어가는 것 같아요. 남편도 전농제주도연맹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죠. 국회의원이지만 전 여전히 농민입니다˝
하지만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난 후, 아직은 낯설기만 한 전셋집에 홀로 들어가 캄캄한 집안의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볼 때, 윽 그건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그 복잡 미묘한 강정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더욱이 많은 관계망에 놓여 있는 현 의원이기에 지금의 상황은 상상으로도 충분히 가늠되지 ㅇ낳을까. 그래서인지, ˝의원으로 당선되고 나서 아주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어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이전에는 남편이며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하우스에서 채소일을 하며 여성농민회 일을 보러 나가고 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모든 활동이 바뀌었죠.˝라고 스스로도 말한다. 게다가 물리적 환경도 바닷가가 인접해 있는 제주도 대정마을과는 너무도 달라 서울의 길이 모두 골목 같은 느낌이라는데...그럼에도 보좌관들과 함께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정선아 사진기자가 위치를 바꿔 사진을 찌고 싶다고 하니, 다른 책상으로 옮겨 앉는다. 그리고 카메라를 응시하는데, 표정이 없다. 한번만 웃어달라는 요청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데, 옆에서 허정문현 보좌관이 한 마디 거든다. ˝어? 의원님, 이제 포즈가 좀 나오시는데요?˝그에 대한 현 의원의 응수 ˝몇 번 하니까 나오는 것 같아 아니, 그래도 아직은 어색해˝
그러나 현 의원은 어느 새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4년 내내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인터뷰 홍여준민 기자/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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