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기러기 고기 드시러 오세요 " > 세상, 한 걸음


[사람사는 이야기]"기러기 고기 드시러 오세요 "

기러기 농장에 이어 새로 생긴 서산의 명물... 기러기 칼국수집을 찾아서

본문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하는 생계문제는 누구에게나 큰 걱정거리다. 취업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에 하나인 한국사회에서 직업을 얻기까지 장애우들은 비장애우들보다 더한,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 그나마도 장애인을 고용한 업체에게 주어지는 고용장려금이 있을 때 이야기다. 고용장려금이 삭감되고 나서는 여기저기서 장애우들의 취업이 막혔다는 성토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호 ‘사람사는이야기’에서 만난 사람도 이런 장애우들이 겪는 문제점들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서산 ‘기러기 농장’의 팀장을 맡고 있는 김태웅(지체장애 2급)씨를 만나봤다.

피서인파로 가득 찬 고속도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달려 충청남도 서산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서울에서부터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거리지만 이날은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산농장에서 새로 식당을 열었다기에 김태웅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파는 음식점이 없다면 직접 팔자!
전화통화를 할 때만해도 ‘기러기 칼국수집’이라고 해서 작고 허름한 식당을 생각했다.
 
그러나 식당은 예상외로 컸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빵빵한 에어컨까지, 도심의 여느 식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첫눈에 알아본 김태웅씨 뿐이다.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태웅씨는 앉아서 손님을 맞이한다.
가게가 좋다는 말을 건네자마자 김태웅씨는 기러기 고기부터 먹어봐야 한다며 방으로 안내했다. 탕으로 끓여 나온 음식을 먹으며 ‘기러기 칼국수’집을 연 사연을 물었다.
“2001년도에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로부터 인건비 지원을 받아 서산농장을 시작했어요.”
서산에 기러기 농장은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직업창출을 위한 실험장으로서 시작됐다는 것이 김태웅씨의 설명이다.
“그래도 지체장애우들은 갈 곳이 있어요.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죠.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달라요. 그래서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위
 
한 프로그램들을 고민하자는 뜻에서 서산농장을 시작한 겁니다”
막상 기러기를 기르기 시작했지만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전국을 통틀어 기러기 고기를 판매하는 곳이 10군데 남짓. 기러기 고기가 대중음식으로 퍼지지 못한 데는 ‘기러기 고기’라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여기에 작년 조류독감이 겹치면서 그나마 있던 몇 군데마저 문을 닫거나 주문을 줄였다.
“몇 마리씩 팔리는 걸로는 농장이 유지가 되질 않아요. 농장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식당을 생각했는데, 나중에 돈 벌면 하자던 생각에서 접었었죠. 그런데 오히려 농장이 너무 힘들 때 해결책의 하나로 식당을 시작하게 됐네요.”
판로가 막히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기러기 고기를 직접 판매해 보자는 거였다. 장사만 잘 되면 농장에서 나오는 고기 전량을 식당에서 소화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대충 해본 계산으로 식당운영비가 농장에 줄 기러기 값까지 하루 50만원 어치를 팔면 식당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기러기 고기를 먹어 본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요. 뭐 그런 걸 다 먹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달라져요. 냄새도 없고 담백해서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은 또 찾을 만큼 좋아해요. 그래서 문을 연지 몇 일 안됐지만, 장사는 잘 될거라고 믿어요. 실제로 먹어 본 사람들의 반응도 좋구요”

날아가는 하우스를 잡으려고 10명이 매달리기도…
많은 가축들 가운데 기러기를 선택한 것은 음식물찌꺼기를 먹여서 키우기에 가장 좋은 가축이 기러기라는 생각에서 였다. 사료비가 만만치 않아서 음식물 찌꺼기를 활용해 키울 수 있는 가축을  생각했는데 돼지, 오리, 개, 기러기만이 여기에 해당했다. 돼지나 오리로는 다른 곳들과 경쟁력이 없고 그래서 기러기를 선택했다. 기러기라는 것 자체가 특색이 있어서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농촌생활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김태웅씨는 2002년도에에 있었던 태풍이 가장 힘든 기억이라고 말한다.
“10명이 하우스를 붙잡고 태풍을 이겨보려고 버텼어요. 그 속에 새끼 기러기들이 있었으니까요. 나중에는 붙잡고 있는 사람이 위험해서 바람의 저항을 줄여보려고 낫으로 비닐

 
을 갈기갈기 찢기도 했는데,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죠”
폭풍으로 인해 4월부터 키워 온 기러기 새끼들이 다 날아갔다. 기르던 5천 마리 가운데 4천 마리가 죽어버린 것이다. 닭은 부화해서 40일 후면 팔 수 있고, 오리는 50일이면 팔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피해 복구가 빠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러기는 6개월은 길러야만 팔 수 있다.
폭풍으로 4개월을 기른 기러기들을 잃었으니 앞으로 6개월은 더 있어야 팔 수 있는 기러기들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폭풍피해로 인한 보상이라도 받아볼까 싶어 백방으로 뛰었지만, 기러기는 가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나마도 한 푼도 못 받았다. 피해를 입은 후 서산시장이 찾아와 건네 준 1백만 원이 다였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시설복구만하고 다시 기러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제 2의 기러기 농장을 꿈꾸며

 
고비를 넘기고 나자 2003년에는 기러기가 만 마리까지 늘어났다. 숫자로만 보다면 좋아할 일이지만 많으면 많은대로 걱정거리가 생겼다. 사료 값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 진 것 것이다.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한달에 한 번 사료로 쓸만한 빵들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숫자가 많지 않을 때는 사료와 함께 주면서 그럭저럭 유지가 됐다. 그러던 것이 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사료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자그마치 사료 값만 700~800만원이 들었다. 야채찌꺼기도 먹이고 기러기 숫자를 줄이기 위해 싸게 팔아 보기도 했지만 사료값은 여전했다.
요즘은 기러기가 3천수로 줄어서 그나마 괜찮다. 조류독감으로 많은 수의 기러기를 도축했고 기러기 숫자도 많이 줄었다. 3천마리 정도면 학교급식 남은 것이나 대형음식점에서 오는 짬밥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기러기들을 어디다 팔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전국에서 기러기 고기를 파는 음식점이 고작 10군데 남짓하니 판로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도 일부에서는 자신들이 기러기를 직접 길러서 팔고 있으니 농장으로 오는 주문이 많을리 없다.
“팔 곳이 없으니 당장 농장문을 닫아야 할 판이잖아요. 그래서 직접 음식점을 경영해서 농장에서 기른 기러기들을 소화할 생각을 하게 된거죠. 음식점 장사만 잘 되면 농장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김태웅씨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기러기 고기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음식이 맛있었는지, 장사가 잘돼야 농장도 산다며 강조하기를 빼놓지 않았다. 김태영씨는 타고난 장사꾼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음식점이 잘 돼서 농장에서 기른 기러기 고기를 소화해 낼 수만 있다면 제 2의 기러기 농장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장애우들을 위한 직업창출에 남다른 관심 가져
김태웅씨는 대학교 때부터 장애우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장애우인 자신이 뭘해서 먹고살까를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장애우들의 직업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공과목을 한사코 밝히기 거부하던 김태웅씨는 장애우로써 전공과목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는 말만을 했다. 당시 친구들은 장애우에 대한 공무원할당제에 기대를 걸고 공무원시험을 봤다. 하지만 그건 대학교를 나온 장애우들에게 주어지는 특권과도 같은 것이었다. 학력이 낮은 장애우들은 갈곳이 없었다.
김태웅씨 역시 전공과는 상관없는 보석 세공일을 따로 배웠다. 다리가 불편한 김태영씨에게 보석세공일은 부담도 없었고,  배우면서 재미도 느꼈다. 결국 ‘금은방’가게를 연 것이 김태영씨의 첫 직장이 됐다.
“전 본래 활동적인 사람인데, 금은방을 10년 동안하고 나니까 가게에 가만히 있는 게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1년은 놀자는 마음으로 IMF(아이엠에프) 때 금은방을 관뒀어요. 그러던 중에 연구소에서 연락이 온거죠.  실직자 모임터를 만든다고 함께 하자고요.
대학시절 처음으로 서울시내 대학에 ‘평우회’라는 장애우 동아리를 만들고 연구소 창립총회 때 장애우학생들의 바람을 발표한 일로 연구소와 첫 인연이 있었거든요.”
그 뒤 김태웅씨는 연구소에서 장애우들의 직업창출 프로그램을 맡아서 운영했다. 금은방을 시작하기 전 따놓았던 사회복지사 자격이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는 법인으로 독립한 재활용센터와 세차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우들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기러기 농장역시 이런 프로그램의 하나다. 그래서 김태웅씨는 기러기 농장이 공동체 생활이 아니라 고용관계에 있는 직장임을 강조했다.

“기러기 농장은 공동체나 시설이 아닌 직업입니다”
현재 농장에서 일하는 장애우들이 김태웅씨를 비롯해 8명, 작년 조류독감 여파와 고용장려금 삭감으로 같이 있던 장애우 5명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흔히 말하는 정리해고를 한 셈이다.
장애우들을 돌려보내기 보다는 조금씩 덜 받고 함께 힘든 시기를 이여나가 보지 그랬냐는 질문에 김태웅씨는 ‘기러기 농장’은 장애우들의 직장임을 강조했다.
“조금씩 덜 받고 같이 버틸 수도 있지만 그럼 공동체 생활이나 수용시설과 다를 바가 없죠. 서산농장은 공동체 생활을 위한 모델로 운영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고용형태만이 아니라 이들에게 주어지는 월급에도 같은 개념이 적용된다.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우들에게는 주어지는 월급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60만원 남짓이 다다. 그중에서 숙식비에 해당하는 30만원을 다시 농장에 주고 나면, 실제로 남는 돈을 30만원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셈이니 식대를 내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따로 농장과 떨어진 곳에서 따로 생활을 하다가 농장 옆에 있는 조립식주택으로 옮겨야만 했다. 집 임대료와 주방아줌마 인건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려운 건 농장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냄새나는 농장 옆에 살면서 한 달 내내 일하고  받는 돈이 고작 30만원이라니, 여기서도 장애우들의 삶은 만만치가 않았다. 기러기 칼국수 집이 잘되면 이들의 사정도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식당을 또다른 희망으로 바라보는 임종순씨
기러기 농장과 칼국수집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김태웅씨가 장애우들이 가질 수 있는 장애우의 직업으로써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면, 식당에서 음식서빙을 봐주는 임종순씨는 조금 다르다.
딸 혜정이가 중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자폐증상을 가진 장애우다. 심하지는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비장애우와 다른 혜정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슬슬  딸 혜정이를 위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혜정이가 어렸을 때는 장애우들의 조기교육에 관심이 갔어요. 그때만 해도 서산에 장애우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직접 장애우들의 조기교육에 관해서 배우고 교회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한 조기교육 프로그램이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데, 혜정이는 다 컸잖아요.”
장애아이를 가진 부모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관심영역이 달라진다. 중학교에 다니는 혜정이가 사회인이 됐을 때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임종순씨는 앞이 깜깜했다.
장애인 부모창립 총회 때는 기러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태웅씨를 불러 시범사례를 듣기도 했다. 그게 바로 김태웅씨와 인연의 시작이었다. 1년이 지나, 식당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김태웅씨가 같이 일할 사람을 부탁하는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김태웅씨의 부탁으로 장애아이를 둔 부모 가운데서 식당일을 도와 줄 사람을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어요. 기러기 칼국수집에서 일할 사람은 장애우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니까요. 결국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직접 나서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임종순씨는 농장과 식당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만약 이런 모델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혜정이를 위한 직업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식당에 댈 수 있는 물건이 원자재인 기러기만이 아니라, 야채와 국수 등 좀더 다양하고, 그럼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해서 많은 장애우들이 함께 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깔끔한 혜정이한테 식당은 어울리는 직업일 수 있다는 것이 임종순씨의 생각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정말 편해요. 사람들은 기러기 농장을 견학하고 냄새난다고 싫어했지만 전 그 냄새가 싫지 않더라구요. 인연이 있었나 봐요”
웃는 인상이 좋은 임종순씨는 힘든 식당생활에도 여전히 밝아 보였다.  

꿈으로 가는 길
기러기 칼국수집에서는 지금 4명이 일하고 있다. 주방에서 일을 봐주시는 2분과 홀에서 일하는 임종순씨, 계산대를 맡고 있는 김태영씨까지. 식당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답게 이들은 식사를 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했다.
고기가 담백하다는 말에 ‘그렇죠’라는 반응을, 탕을 끓여 먹고 난 국물로 만들어 주는 죽이 정말 맛있다는 말에 ‘만족의 웃음’을 보였다. 죽은 따로 돈받고 팔아도 좋겠다는 말에 주방장님은 열심히 기러기죽이 얼마나 맛있는지와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어떻게 끓이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에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기러기 칼국수집은 여느 식당과는 좀 다르다. 단순히 돈벌 목적으로 개인이 가게를 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태웅씨에게는 장애우들이 키우고 있는 기러기를 소비해 줄 판매장으로써의 의미가 있고, 임종순씨에게는 딸아이를 위한 실험무대로써의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의 생각처럼 장애우들이 생산하고 직접 판매한다면, 그 과정에서 장애우들의 다양한 직업이 만들어 진다면… 농장에서 일하는 장애우, 야채를 키우는 장애우, 음식을 포장하는 장애우, 음식을 나르는 장애우… 꿈만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장애우들의 꿈이기에 누구나 ‘기러기 칼국수’집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막 음식사업에 뛰어든 김태웅씨의 말대로 좀더 좋은 환경 속에서 장애우들이 일할 수 있는 제 2, 제 3의 서산농장이 생겨나길 바랄 뿐이다.

글 서현주 객원기자
서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