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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어느 무명 여성장애우의 죽음-이숙경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속에 살다간 그녀, 이 숙 경

본문

이숙경이란 여성장애우의 죽음을 통해 본 장애를 가진 여성의 삶.
요즘 장애계에서는 여성장애우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뉴욕에서 있었던 국제장애인권리조약 대표자회의에서도 여성장애우 조항을 포함하자는 논의가 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장애우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성이라는 것과 장애라는 것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여성장애우 운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도 그것은 공허한 한풀이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도 여성장애우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받은 차별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그것을 여성문제와 연결시킬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난 ‘이숙경’ 이란 여성장애우의 죽음 앞에서 이 땅의 여성장애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숙경, 그녀는 삶에 충실하려 몸부림 쳤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숙경 이란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싶어서이다.
그녀의 빈소는 초라하지 그지 없었다. 변변한 상주 하나 없었다. 왜냐하면 결혼을 못한 터라 남편도 자식도 없기 때문이다. 문상객도 없었다. 학교 교육을 많이 받았어야 동창들이 있고, 직장을 다녔어야 동료들이 있는 건데 그도 저도 아니니 주위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 몇몇이 그녀의 빈소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무덤도 없다. 한 줌 흙으로 공중에 흩뿌려졌다. 그녀가 이 땅에 태어나 소아마비란 장애 때문에 46년 동안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도 살아보려고 애쓰던 그 집념과 의지에 대한 평가 없이 이숙경 이란 존재는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유명한 사람들은 사후에도 훈장을 추서받고, 그 사람을 기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편다. 하지만 무명의 여성장애우에 불과했던 그녀는 서둘러 잊혀지고 있다. 이 땅의 많은 무명의 여성 장애우들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사라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몸서리쳐지는 ‘차별’의 구렁에서, 살다… 가다.
그녀는 가끔 이런 넋두리를 했었다.
“세상이 좋아지면 뭐해, 난 나이 제한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는데….”
장애우복지제도가 하나씩 발표되었지만 그 제도는 신세대 장애우의 몫이었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 그 제도를 이끌어낸 구세대의 장애우는 나이 제한에 걸려 또 다른 차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열심히 살았다. 세상이 더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 속에서 그녀는 컴퓨터를 공부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3년 전 폐암이 선고되었다. 만약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자격이 없다고 우리는 분개했었다.
장애 때문에 죽도록 힘들게 살았건만 막상 죽음 앞에서 그녀는 삶을 더 원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치료비가 새로운 고통이 되었지만 치료를 중단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보험만 됐어도 얼마나 좋아. 장애우는 암보험도 못 들게 하면서 암에 걸리게 하면 어떡해, 이런 차별이 세상에 어딨냐구!”그녀가 한 말이었다.
장애우는 정말 억울하다. 예고도 없이 장애가 덜컥 찾아와 평생을 괴롭히더니 그것도 부족해서 느닷없이 암까지 닥쳐와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니 해도해도 정말 너무하다.

사라져버린, 한 줌의 재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녀의 빈소에 이·숙·경 이란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난 그녀를 어떻게 표현할까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장애운동을 열심히 하다 죽은 한 뇌성마비 여성은 열사로 추모되고 있지만 그녀는 그런 주변머리도 없다. 그녀는 모든 것을 그냥 참으며 착하게 살았던 무명의 한 여성장애우다. 이런 무명의 여성장애우가 어디 그녀 뿐이랴! 수많은 무명의 여성장애우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장애와 여성이라는 차별을 당연한 일인 양 강요했고, 암 보험 가입조차 거부했다. 우리 사회는 연약한 여성장애우에게 온갖 차별과 불이익을 휘둘러 죽음으로 몰고 갔다. 정치인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정치인들이니 말이다.
장애 때문에,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사회가 부끄럽다.
장애 때문에 그 흔한 암보험 조차 들 수 없는 우리 사회가 정말 원망스럽다.
무명의 여성장애우도 인간답게 살다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무명의 여성장애우로 살다간 이숙경 그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여성장애우 모임에 나오라고 연락이 왔었어. 근데 그런 모임도 여유가 있어야 하지. 차비 들어가지, 밥 사먹어야지, 모임하다 보면 이것저것 드는 비용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 갈 돈 있으면 뭐를 배우러 다니겠다. 뭐라도 배워두면 나중에 취직할 수 있잖아.”
여성장애우 목소리가 한껏 높아진 것 같지만 무명의 여성장애우는 아직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 소리 없이 살고 있다.



글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


 

작성자방귀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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