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웅·임정선 씨의 알콩달콩 신혼이야기 > 세상, 한 걸음


방재웅·임정선 씨의 알콩달콩 신혼이야기

“깨소금 냄새, 소문 좀 내 주세요~”

본문

 
결혼식을 올린 지 이제 5개월밖에 안됐으니, 뭐 서로 히히낙낙, 하하호호 혹은 헤~, 하고 입벌리고 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갔지만, 음…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좀 중증이었다.
신세대 부부답게 그걸 쑥스러워하며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문 내달라고 나오는 길에도 당부를 잊지 않는다.
늘상 그 날이 그 날 같은 요즘, 방재웅(남, 35세), 임정선(여, 34세) 씨에게서 몸에 무지 좋다는 엔돌핀을 전이 받은 느낌이다. 자, 그럼, 그들의 신혼생활에서 행복 바이러스에 걸려보자.

내민 손을 맞잡은 두 사람
주변에선 이미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에서는 방송모니터 활동과 레저버디 활동, 문화나눔 1%운동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 모든 활동에 중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진성 회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 활동을 하다 만난 최초의 커플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으니, 부러움 반 ,시기 반의 눈총을 받고 있는 터이다.
“2003년 12월에 문화센터에서 라보엠이란 오페라 나눔 활동을 했는데, 그 때 정선씨가 먼저 같이 가자고 했죠.”
사랑의 감정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움트는 것이니, 이럴 땐 누군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하는 것. 재웅 씨보다 활달하고 밝은 정선 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그래서 덥석 OK 하신 건가요? 기다렸구나?”
기다린 것은 맞았다. 그러나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한 박자 쉬고 넘어갔다. 그는 엄마랑 성당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며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 첫 번째 데이트를 흔쾌히 승낙을 했는데, 엄마와 성당 가겠다고 한 것은 핑계였다고 한다. 잠시 둘러댄 것일 뿐이었는데, 그 이유가 “한번은 튕겨 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여자 어디 있겠는가.
“어, 그럼 사실이 아니었어? 정말 그랬던거야?”
“내가 좀 소심하잖아, 이해해.”
하지만 너무너무 좋은 가슴 뜀을 어찌 쉽게 감출 수 있었겠는가. 또박또박 천천히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수줍음이 느껴졌다.
재웅 씨는 20대 초반 중도 장애를 갖게 된 후 좋은 것이나 싫은 것이나, 자신의 감정을 남들 앞에서 솔직히 내보이는 걸 주저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애를 갖게 된 이후 운동신경이 떨어지고 말 또한 소통에는 아무 문제없어도 느리다고 할 수 있으니, 남들 이야기를 빨리 치고 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장애라는 것이 편견으로 작용해 우습게 볼 것 같아 되도록 감정 표현이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좀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좋은지 싫은지 끝까지 듣고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전 그게 좋았어요. 한번은 어떤 주제에 대해 남들이 이야기 다하고 다른 주제 이야기하는데, 바로 전 주제에 대해 말을 하는 거예요. 말이 느리니까 무슨 소리 하는건가 다들어봐야만 하는데, 다 듣고 나면 바로 전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완전히 뒷북치는 거죠.” 사랑하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신이 나는가 보다. 내내 싱글벙글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보시면 알잖아요.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해도 표정 변화가 없어요. 웃긴 얘기할 때 자기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진짜 재밌지 않아요? 이 사람이 그런 타입이예요.”

중도 장애 이후 그는…

 
 
하지만 재웅 씨가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아까도 언급되었듯, 일부러 그러는 것
 
이라고 한다. 솔직히 표현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볼까봐. 그래서 그는 생각하고 대응하느라 표정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매사에 진지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 같은데, 장애 때문에 갖게 된 성격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죠. 2학년 마치고 방위로 군복무를 한 후 다시 복학을 했는데, 기숙사 오픈하우스에서 친구들 5명과 멀티미디어쇼를 벌였죠.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기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그래서 잠시 공부를 뒤로하고 친구들과 창업을 한 거죠.”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재웅 씨는 사업을 위해 5명의 친구들과 독립해 밥, 빨래, 청소 등을 함께 하며 동거생활을 시작하지만, 혈기 넘치는 남자 5명이 제대로 된 살림을 꾸리며 생활했을리 만무하다. 불규칙하고 처음 해보는 사업인지라 6개월만에 스트레스만 점점 쌓여 팀은 해체되고 각 자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은 그의 매제가 된 친구가 당시 컴퓨터 학원을 경영하고 있어 강의를 나가며 도와주기도 하고, 실력이 소문나 있어 여러 곳에서 돈 되는 일이 들어오면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재웅 씨는 “계약은 했는데 시간은 없고 일은 많고, 정말 무리를 많이 했죠.”라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한다. 일단 휴학을 하고 일을 시작한 것이니 책임감 있게 자신의 앞날을 헤쳐갈 준비를 꽤나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 옆 독서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더란다. 총무를 부르기 위해 일어섰는데, 어찌된 일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고, 걸을 수도 없었다. 그 후부터는 아무런 기억이 없단다. 깨어나니 1달이 지나 있었다고 한다. 재웅 씨가 또 다른 삶을 살게 만든 그 일. 바로 94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뇌혈관 기형,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혈관이 기형적이라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모르고 살았던 거죠. 한 달 후 깨어나기는 했지만, 6개월 동안은 휠체어도 못 탈 정도로 침대에 누워만 있었어요. 그 때 소원이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죠.”
의식은 돌아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몸에 대한 기대는 날로 더해 갔고, 열심히 운동하고 물리치료 받으며, 앉기를 고대했다. 그리고 두 달만에 휠체어에 앉았고, 3년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걷기 시작했다. 거의 4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상태는 작은 동네 한 바퀴 도는데 2시간이 넘게 소요될 정도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운동했고 지금도 운동능력을 키우기 위해 걷기와 헬스를 하며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장애를 갖고 난 후 재웅 씨는 신부나 수사가 되려고 했다. 결혼은 생각도 안했단다. 하지만 운명의 그녀, 정선 씨를 만나는 순간 하느님의 제자가 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애정에 질투 비슷한 것이 일어났다.
 “아니 신부님이 되시려고 했던 분이 여자 한 명 만났다고 그렇게 금새 맘이 바뀌나요?”
라고 질문을 했는데, 답은 재웅 씨가 아닌 정선 씨가 들려준다. “대단하죠?” 와 동시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재웅 씨는 그런 정선 씨가 귀엽고 사랑스러운가 보다. 그냥 쓰윽 눈길 한번 주면서 웃을 뿐이다. 하지만 정선 씨를 잠재우는 농 하나 잊지 않는다. “결혼 전에 연애도 한 번 못해 본 게 너무 억울해. 학교 다니고 좋았을 시절, 잘 보낼 수 있었는데, 일만 하다가 이렇게 됐으니, 이제 코 끼었네. 하하”
주부 9단의 정선 씨
“처음에 만나 보니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하는 게 없는 거예요. 제가 이 사람을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천천히 느리게 말하고 움직이는 재웅 씨에게 일종의 모성본능이 자극되었나 보다. 그럼, 그래서 잘 챙겨주고 있나? 물론 신혼 5개월 째인데 재웅 씨가 5kg이나 살이 쪘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음식을 정말 잘해요. 못하는 게 별로 없어요. 재봉질, 요리….” 재웅 씨는 떡 만두국 한 그릇을 다 먹더니 현미밥 한 그릇도 뚝딱이다. 남산만한 배를 툭툭 치며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이다.
저녁시간에 찾아갔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녹차가루 넣은 떡 만두국을 끓여 주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만두가 손이 여러 번 가는 만만치 않은 음식인데, 직접 빚었단다. 그 모양도 단아한 게 참 이뻤다.
좋은 음식 앞에 두니 술 생각이 나는 건 당연. “반주할까요?”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선 씨는 베란다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오더니, 서로가 “오늘은 술이 잘 들어가네?”하면서 세 병을 끝장냈다. 사진기자가 전 날의 전적으로 해독이 안된 상태라 우리 세 사람이 부어라 마셔라 했지만, 웃음 바이러스는 취기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만 벌거스름 해 졌을 뿐, 대화는 점점 더 재미나게 진행되었다. 말 수 적은 재웅 씨가 그 날 따라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정선 씨 왈 “다 술 때문이죠. 정말 다행이네. 인터뷰가 쉬워지죠?”

양가의 반대, 그러나 “그냥 한다”

 
정선 씨는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보행이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없으며, 오히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재봉질, 요리 등 손으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에도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 양가 부모님 모두 반대하셨어요. 자기 자식의 장애보다 상대편 장애가 더 심하게 보이는 거죠.”
결혼 전 남자친구가 많았다던 정선 씨는 애인보다 친구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면서 공통의 주제도 별로 없고 혼자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연애해서 결혼할 때가 된 건가?’싶을 때, 옆을 보니, 재웅 씨가 듬직하게 서 있었단다. 처음에는 연애만 열심히 해 볼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니 더 빨리 하고 싶었다는 정선 씨. 그래서 작전을 어떻게 짜고 승낙을 받았냐고 물으니, 역시 그녀의 성격이 곧바로 드러난다.  “그냥 한다! 였죠”
처음 재웅 씨 부모님은 “그럼 나가 살아, 니 맘대로!”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그들의 강력한 저항정신은 양가의 반대를 한 달 이상 끌고 가지 못했다.
그리고 재웅 씨는 부모님이 “나가”라고 하셨는데, 결국 자신들이 부모님을 사시던 집에서 “나가시라(?)”고 했단다. 불효막심 한 놈? 천만의 말씀, 그 반대였다.
“제 이름으로 청약을 든 게 있는데, 아파트가 되어 부모님이 그곳으로 가셨죠. 이 집은 원래 부모님과 제가 살던 집인데, 저희가 나가시라고 했어요. 결혼도 그냥 한다 하고, 또 살던 집에서도 나가시라 하고, 하하.” 신혼집도 도배와 새 가구 때문에 깔끔하고 아늑한 느낌이었지만 그들은 부모님이 더 좋은 집에서 사시라고 양보를 한 것이다. 둘 다 맏이로 태어나 부모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은 통하는 게 있나 보다.
“하지만 여전히 저희 엄마는 이 사람 속을 모르겠다고 하세요. 나랑 있을 때는 정말 유쾌하고 말도 잘하고 농담도 많이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물어보지 않는 이상 말을 하지 않거든요.”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하는데, 장모는 평소 조용하게만 있는 재웅 씨에게 서운한 것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있을 거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테니까.
2세, 재웅 씨는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정선 씨는 “아직 없어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라고 단호히 말한다. 재웅 씨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라 그런가 보다.

자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실은 둘 다 지금 경제적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별로 쓰는 돈이 없기 때문에 큰 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현재는 재웅 씨가 중증장애우 가정을 방문해 실시하고 있는 정보화교육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부다.
“쇼핑몰을 준비하고 있어요. 둘 다 컴퓨터는 잘 하니까 집안에서 하면 문제없죠.” 베트남 비누가 향도 좋고 천연재료로 만들어져 수요자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장애를 이유로 얼마나 차별 받았는지 몰라요. 전화하면 목소리 듣고, 어디 아프냐고 해요. 처음엔 장애가 있다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곧장 반말을 하는 거예요. 내참 기가 막혀서. 그 다음부터는 감기라고 하죠. 그러면 또 친절하게 알려주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취업하기 전 단계부터의 차별은 물론 들어가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해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경험을 서로가 했던 터라, 그들은 자영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취업 전에는 그래도 장애우라고 인센티브 같은 것이 주어지지만, 들어가면 완전 경쟁 상태에 놓여져 절대적 평가로 능력을 검증 받죠. 하지만 장애우가 그게 되나요? 들어가면 아무런 조치도 없어요. 그냥 알아서 해라는 식이죠. 버틸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자격증을 5개나 갖고 있는 재웅 씨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과 비장애우 기준의 능력평가와 무한경쟁 시스템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정선 씨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도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업상담을 하러 갔더니, 저 보고 언어장애가 심해 어렵겠다고 말해요. 그게 공단에서 할 소리예요? 그리고 제가 언어장애가 심해요? 못 알아듣겠어요? 뇌병변장애우는 취업 안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해요. 상담하다가 앞에 두고 동료랑 커피 마시러 가구요.”
정선 씨는 “장애우 중에서도 뺀질거리고 허술해 보이지 않으면 막 대하지는 않지만, 나처럼 겉모습에서 장애가 드러나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라며 흥분했다. 그러자 재웅 씨가 특유의 장난 끼로 다독여 준다. “어? 난 잘 생겼는데 왜 함부로 대하지?”
하하하 웃으며 장애우 노동현실의 개탄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지만, 여하튼 그들이 준비하는 자영업이 ‘선택 ’인줄 알았더니, 편견과 차별의 현실이 강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일 하지 않아도 행복한 그들
재웅 씨는 방송모니터 활동을 통해 경제적인 능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사회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시선으로 방송매체를 비평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는 여전히 사회 일반의 시선은 심하게 왜곡된 상태로 편중되어 있거나, 비장애우와 똑같은 일을 해도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영웅주의적 시선이 문제라고 했다. 요즘은 그 활동이 뜸한 편이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직업병 비슷하게 TV를 볼 때마다 카메라 앵글의 위치와 연출자의 시선을 연결시켜 보고, 나레이션과 진행자의 멘트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함께걸음에 기고 부탁한다고 했더니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5개월 동안 별 하는 일 없이 그저 집에 있고 운동하고, 산책하고, 장보고, 요리하고, TV 보고, 그러다 술도 한 잔 하며 이야기하는 일이 참 즐거웠다고 한다. 안정적인 노동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집에서 그렇게 둘이 오붓하게 있던 시간들이 참 즐거웠고 행복하단다. 물질적 생활 면에서는 큰 욕심부리지 않고 작게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을 알고 있고, 내면적으로는 서로의 통함이 삶을 행복하고 풍부하게 해준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본격적인 모니터를 해보라는 권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이들이 서로 그렇게 즐거워하다가 TV보면서 토론하고 그걸 문서로 정리하면 척박한 장애문화비평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는.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의 발로였다.

콩깍지 벗겨져도 좋은 그들
이들 부부는 몇 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 해 열애중일 때 100일 기념으로 방재웅씨는 “우리 사랑 100일 되었어요. 자, 100원씩만 넣어주십시오”라며, 돼지저금통 하나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강탈 아닌 강탈을 했다고 해서 ‘앵벌이 커플’이라고도 불리워지고, 결혼사진첩의 느끼한 두 사람의 모습 때문에 상반된 ‘귀족부부’란 별명도 있다. 정선 씨가 말만하면 모든 걸 척척 수행하는 재웅 씨는 그래서 ‘움직이는 리모콘’이기도 하다. 물론 뭐 하나 정선 씨 맘에 들게 하는 게 없어 그녀가 다시 움직이고 손을 대야 하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말 잘 듣는 남편이 착해서 참 좋단다.
단호하고 분명한 성격이지만 너그럽고 유쾌한 정선 씨.
자신은 ‘소심증’이라고 말하지만, 말없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후, 표정 없고 억양 없는 말투로 툭툭 내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개그맨을 능가하는 재웅 씨.
아무리 봐도 아직 두 사람 눈에는 콩깍지가 낀 것이 분명한데, 서로는 벌써 오래 전에 벗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이 정도니, 내 원 참, 할말이 없다. 그저 흐뭇한 미소와 부러운 눈길만 내비출 수 밖에. 아무래도 그들이 노린 건 이것일텐데…역시나 말려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행복한 전염은 고마운 일이다. ‘남들도 이들처럼’살 수 있다면, 살아간다면, 일상은 얼마나 충만할까.

 

글 홍여준민 객원기자
사진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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