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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투쟁 속에서 한 인간임을 재발견했다는 권은춘 씨

‘나... 이 세상에 숨쉬고 있는 인간이구나’

본문

지난 해 12월,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모성권을 주제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길은 가면, 뒤에 있다’(연출 이수경)는 19명의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엄마’들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솔직하고 애잔한 실태를 인터뷰 형식을 통해 담고 있다. 이 다큐는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선" 부문 초청작(2005)이기도 하며, 지난 3, 4월에 있었던,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장애여성이란 이유로 불임시술은 물론, 연애와 결혼, 출산, 양육 등 평범한 생애주기를 부정당하기 일쑤인 현실에서, 이 영화는 장애여성의 보편적 권리인 모성권이 왜 보장되어야 하며, 사회적 과제는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보석 같은 ‘엄마’들 속에서 ‘활동가’로 거듭나고 있는 권은춘(34세, 뇌병변장애2급) 씨다

▲권은춘 씨
그녀, 420 투쟁을 통해
거듭나다
“도지사님이 앞에 있지만 좀 안 좋은 표현 쓰겠습니다. 도청 직원들 정말 이거 밖에 안됩니까?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요.”
4월 28일 충북도청 한 회의실에서 있었던 이원종 충북도지사와의 간담회에서 권은춘 씨는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다.
남편 이응호(37세, 뇌병변장애1급) 씨가 420 투쟁 중 “장애우는 다 개새끼”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듣고, 또 공무원들에 의해 짓밟히고 계단에서 떨어져 병원 입원중이지만,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원종 도지사는 진상조사 운운했지만, 결국 그녀 앞에서 유감을 표했고, 420 충북투쟁단이 요구했던 4가지 사안, 이동권, 자립생활, 성인장애우 교육권, 장애여성출산도우미 정책을 약속했다. 약 한달 동안 단식과 천막농성을 했고, 2시간의 협상 끝에 일부 정책의 추진을 약속받은 권은춘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내달렸다. 이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차별이 바꿔놓은 그녀의 삶
그런데, 그녀가 병원으로 갔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간담회에 들어갔다가 “버스 업체가 반대해서 저상버스 도입 어렵다”“일반 시민들이 장애우들 같이 이용하는 것에 불만은 없는지, 시범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그 날 온 장애우들도 똑같이 직원들에게 피해를 줬다. 여성직원들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등등 어이없는 변명과 인권침해에 가까운 모욕적 언사가 계속 되는 걸 참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기 때문이다. 가만있다가는 간담회를 초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하지만 밖으로 나와서도 다행히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마 이번 420 투쟁을 통해서 가장 많이 변화한 사람일 걸요? 남편인 이응호 씨보다 이제 훨씬 강한 투사가 됐을 겁니다.” 충북장애인인권연대 홍수기 사무차장의 말이다.
“도청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권은춘 씨가 쓴 글이 있는데, 남편 잘못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도 놓고, 강력히 항의하고 있죠. 전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어요.”
홍수기 차장은 “권은춘, 이응호 씨 부부가 투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니지만, 투쟁을 통해 사랑이 더욱 공고해지는 부부”라고 말을 이었다. “지난해부터 충북장애인인권연대 활동을 시작했는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요즘은 “밥먹자, 술먹자, 얘기하자”가 그녀가 달고 다니는 말이라나.
그 사이 언제 나타났는지, 집회 대열에 합류해 팔뚝질(?)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 이야기 - 직업재활원에서의 충격
집안사정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정규 교육을 마친 권은춘 씨는 14살이 되던 때, 충주 숭덕재활학교에 들어가 기숙생활을 하며 직업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오래 견디지 못했다. “특별하다 싶으면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바로 85년 2월 14일 목요일에 일어난 일이예요.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기숙생활을 하면서, 여자 남자가 어울리는 건 자연스럽기도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방을 쓰는 언니를 좋아하던 오빠가 칼을 들고 들어와서, ‘누구누구 안나오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만나고 싶은데, 그 언니가 싫다고 거부하고 숨으니까 화가 나서 그런 거죠. 전 정말 충격이었어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기도 했구요.”일이 더 커질까봐 보육사나 학교 직원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았던 그녀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또 한번은 언제나 부모님의 등에 업혀 외출을 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휠체어를 봤을 때였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 기어다니거나 누군가 업어주지 않으면 외출을 꿈도 꿀 수 없을 때 다가온 휠체어가 반가웠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고 두려웠다고 한다. “한 오빠가 학교 내 교회에 가야한다고 자꾸 타라고 하는 거예요. 난 불교 신자라 안간다고 했지만 원장이 독실한 크리스챤이라고 가야한다는 거예요. 결국 실랑이 끝에 탔는데, 갑자기 뒤에서 손잡이를 눌렀고, 그 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저는 넘어졌고, 또 다시 태우고 또 그 짓을 하고…. 정말 무서웠죠. 다행히 보육교사가 보고 혼냈지만,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오거나 여성용 패드를 들쳐보거나 하는 짓들을 보면서, 정말 여기 있다가는 나도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많았어요.”
그 사건 이후, 그녀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써서 빨리 4만원만 부쳐달라고 했단다. 그 돈이면 충주에서 청주까지 택시를 타고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권은춘 씨의 가족
그녀 이야기 - 남편 이응호를 만나다
도망치듯 나와, 특별한 교육과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빼앗겨 버린 그녀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론 집안에서 살림 잘한다고 부모님께 칭찬 받고 인정받긴 했지만, 인간적 외로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특히 사람들이 “누구누구 선후배”라며 학맥을 이야기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인간 관계의 단절을 느끼는 그 순간이 참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 이응호 씨가 생각나는 거예요.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선배 연락처 알려달라고 했죠.”
실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관계였지만 모습은 생각이 나더란다. 그런데, 전화는 이응호 씨에게서 먼저 왔다. 목소리를 알아차렸지만 시침 뚝!
“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세요?”
“나야, 나, 나 모르겠어? 나라니까? 정말 모르겠어?”
그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 이야기 - 결혼·출산, 감동의 물결
그 다음부터 이응호 씨는 하루에 10번 이상 전화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대화가 묘하게 진행되었다. “애인 있어?” “그럼요, 삼성에 다니고, 서울에 있고, 월급도 월 200만원이 넘고, 차에 아파트까지 있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권은춘 씨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실은 어렸을 적 언니가 거울 보며 화장하고 이쁘게 차려 입는 걸 보면서 , 막연하게나마 ‘나도 20살이 되면 걸을 수 있겠지…’ 란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철들면서‘그건 어림없다’는 생각과 함께 결혼도 포기하게 되었죠. 스스로 던진 ‘내가 과연 또다른 세계를 감당할 수 있을까’란 물음에 되돌아 온 건‘아니다’란 답 한가지 뿐이었거든요.”
그러니 이성으로 다가오는 이응호 씨를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응호 씨는 뭔가 눈치챘는지  “그럼 남자친구랑 놀러와라. 내가 그 사람 오토바이로 치고 그 앞에서 너와 뽀뽀하겠다”며 과격(?)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끈질긴 구혼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후 “보고 싶었다”는 말과 “권은춘과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적극적인 행동에, 결국 이응호 씨 부모님은 “너 없이 이 애는 죽는다. 제발 결혼해 달라”고 사정했고, 상견례 때 권은춘 씨 아버지는 자식보다 장애가 심한 응호씨를 만나고서도 “너 때문에 남의 아들 죽일 수는 없지 않냐?”며 서로의 결혼을 ‘승낙’하기보다 ‘부추기기’까지 이르른다.
이렇게 그들의 결혼은 양가의 적극적 동의와 권유에 의해 행복하게 치러졌다. 그 후 6개월만에 지금의 아들 탁현이를 가졌고, 행복한 신혼은 계속되었다.
권은춘 씨는 결혼 한 달째 되던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단다. “갑자기 밤에 나갔다 오더니, 자는 사람 흔들어 깨우면서 연노란 조화 꽃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권은춘 씨 사랑합니다’하더라구요. 얼마나 감동했는지, 30분 동안 울었어요.”
게다가 결혼 1주년 때는 꽃다발, 케익, 샴페인, 목걸이, 반지, 핀 등 선물을 한아름 사와 또 감동을 주었다니, “감동! 감동! 감동! 살면 살수록 너무 좋아요.”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그녀는 이제 결혼이 뭔지 알만한(?) 5년 차 주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 애정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그녀 이야기 - 육아
“너를 낳기만 했지, 키우지 못해 미안하다”

처음 임신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남편 몸이 그렇게 불편한데, 임신이 가능해?”라는 질문부터 의아한 눈길까지, 정말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적지 않았단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은 기꺼이 반가워 해주셨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라고 용돈도 주셨단다. 골반이 초등학생처럼 작아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는데, 수술 전 남편에게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뽀뽀해 줘야해”라고 했더니, 이응호 씨는 정말 나오자마자 마취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부모님 앞에서 실천(?)으로 옮겼단다.
하지만 일주일만에 퇴원하면서 구체적인 아이 육아 문제에 닿자, 그들의 고민은 한없이 깊어졌다. 두 사람의 심한 장애 때문에 아들 탁현이를 당분간은 시댁에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몸이 불편해 한번도 아이를 안아보지 못한 채 였는데, 보다못한 간호사가 옆에서 “엄마가 아이 한번 안아 보셔야죠?”했더니, 친정 아버지는 너무나 쉽게 “안을 수 없쟎아”하셨단다. “아무리 불편해도 엄마인데요, 아이를 안아 봐야죠.”간호사의 그 말에 순간 너무 가슴이 아파, 더 이상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었다며, 아이를 뒤로하고 헤어지는 그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팠다고 말한다.
“한 달 후 아이를 찾아갔는데, 말똥말똥 쳐다보는 거예요.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고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어요. 아기를 보면서 말했죠. ‘엄마가 미안하다. 너를 낳기만 했지, 키우지 못해 미안하다’라구요.”
농사를 짓는 시댁에서 계속 있을 수 없어, 17개월 동안 시댁-시누이-시댁-시누이-친정, 5번을 오가다가, 15개월 째 탁현이가 유리에 손을 베었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붕대를 감았다가 절단을 할 위기에 처해진 사건이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듣고 놀라 혼자 달려갔고 몇 곳의 병원을 거친 후에야 드디어 절단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저희 엄마가, 은춘아 미안하다. 엄마가 원망스럽지? 하시는데, 차마 그렇게는 말못하고 괜챦다고 안심시켜 드렸지만 속은 편치 않았어요.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다짐했죠.” 
결국 권은춘 씨 부부는 가족에게, 또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고, 드디어 가족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녀 이야기 - 수급권이라도 평생 보장되었으면

 
하지만 쉽지 않았다. 키우지 못할 거이라는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뿌리치고 아이를 데려왔고, ‘너희가 키우니까 아프지, 다치지, 마르지’그런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단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가족들은 그 애씀과 철저함,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인정해주셨다. 하지만 몸이 불편해 아이가 한 번 없어지면 난리가 나고, 부부끼리도 책임 소재를 따지는 등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도 있단다.
수급권자로 살면서 한 달에 90만원을 갖고 세 가족이 살아남으려니, 핸드폰은 어림도 없다. 저축 35만원, 세금 20만원, 생활비 20만원, 남편 용돈 10만원, 아이 간식 5만원으로 살아가려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만하네, 라고 하겠지만, 그게 어디 사람 살아가는 만족스런 금액일 수 있겠는가. 그 때는 “고맙죠. 정부가 안주면 굶어죽는데, 정말, 진짜 고맙죠.”라고 말하고 만단다. 더 이상 그런 사람과 무슨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수급권이라도 평생 보장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이가 20살이 되면 탈락되겠죠. 그 때는 어떻게 살아요. 또 아이가 자라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월 30만원 씩 꼬박꼬박 적금을 들고 고, 5만원 씩 보험도 들고 있어요. 하지만 저축 금액도 선정기준에 들어가 있으니, 이후가 정말 고민스럽죠.” 미래에 대한 계획마저도 빼앗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딜레마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녀 이야기 - 차별과의 싸움
이응호 씨는 이번 420 투쟁에서 단식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렇게 무디게 해서 뭘 얻을 수 있겠는가!”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처음에는 몇 명 동의하지 않았지만, 자신감과 힘있는 실천 투쟁은 사람을 모아냈다. 9일째 단식을 하다가 밟히고 굴러 떨어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권은춘 씨가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며 함께 했고, 그래서 병원에는 2번 밖에 가보지 못해 미안했단다. “장애 가진 사람들이 변할 필요가 있어요. 서로의 장애도 인정 못하는 태도, 뒷말은 많지만 실천 없이 선물 주고 밥 주는 데나 따라다니고…. 그래서 뭘 하겠어요? 우리부터 변해야 해요. 힘을 모아야죠.” 아직 월, 수, 금 2시간 씩, 자활후견기관에서 파견해주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를 하고 있어 외부 활동이 원만하지는 못하지만, 선택권을 장애 가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으려면, 더욱 더 열심히 투쟁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단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밖에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는 권은춘 씨. 하지만 충북장애인인권연대 활동을 통해, 그리고 적극적인 남편을 통해, 외부와의 소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당차고 힘있게 현실을 응시하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
흘리는 것이 두려워 남 앞에서 음식 먹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항상 휴지를 갖고 다니며 깔끔을 떨던 그녀였지만 “내 손으로 먹다가 흘린 건데 놔 둬! 그리고 넘어질 때면 과감하게 넘어져!”라고 말하며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남편 때문에, 이제는 일주일에 2,3번 일부러 시장도 간단다.
게다가 얼마나 변했냐면, 이번 420 천막농성을 하며 도청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가는

 
데 청원 경찰이 “어디 가느냐? 화장실 갔다 나올꺼냐? 내가 따라가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내가 당신에게 보고할 의무 있느냐! 따라오고 싶으면 와라. 같이 들어가서 나 옷 벗고 오줌 누는 것도 봐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번은 천막에서 크게 노래 부르며 혼자 팔뚝질(?)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달려와서 “오늘 무슨 집회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단다. 그녀는 혼자 노래 연습 중이었는데.
그녀의 당참은 이뿐만 아니다. 근래에도 나이 많은 사람들은 동안(童顔)에다 장애까지 있으니 함부로 반말하는 경우는 여전하단다. ‘아가, 야, 너’이건 보통이라는데,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비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단다. 그 때는 “저, 애 아니걸랑요. 아이도 있어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고 정중하게 말하지만, 오히려 “쳇, 병신 주제에!”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단다. 하지만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그래서 장애 가진 사람들이 더 나와서 당당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한다.  “스스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사회로 나갈 때, 진짜 승리고 운동이예요.”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너무 내부에 칼날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배려 없고 자기 중심적이고, 말로만 투쟁하는 경한 장애를 갖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큰 것 같았다.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3월 26일, 서울에서 있었던 전국장애인대회에서 느낀 것이 많아요.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와 목소리 높이는지. 그래서 두렵지 않아요. 심적으로 굳건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더 확실하게 하고 싶은데요?”
가끔 전경이 불쌍하기도 하고, 너무 가시 돋친 비판적 발언을 하는 건 아닌가, 본의 아니게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슴 아프다는 권은춘 씨는 아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길 원하고, 그 때문에라도 더욱 열심히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한다.
탁현이가 커서 장애가 있는 부모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심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둘째를 낳을 예정이라는 그녀에게, 주변의 만류와 걱정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단지 거기에는 ‘우리의 몫’과 ‘그녀의 몫’이 있을 뿐이다.

 

글·사진 홍여준민 기자
사진제공 프로메테우스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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