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사는 분들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요” > 세상, 한 걸음


“힘들게 사는 분들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요”

연극인 손숙

본문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절이 어둡고 세상살이 모진 바람 속에 홀로 될 때 우리는 고향처럼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를 아무리 멀리 떠나 있어도, 우리가 늘 그를 잊고 있어도 어머니
는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앉아 계십니다.”

  최근 어머니를 다룬 연극 한편이 화제를 모았다. 2월 27일부터 4월 25일까지 두 달여 동안 서울 정동극장에서는 ‘어머니’라는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어머니’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쳐 보리고개와 산업사회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한 어머니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애틋하게 그려낸 연극인데 이 연극에서 주인공 손숙(55)씨는 온 몸을 던져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어머니를 연기해 냈다. 손숙의 ‘어머니’는 경제위기를 맞아 고단한 사람들에게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를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로 무대에 선 지 어언 30여년. 정상에 선 연극인으로, 그리고 라디오 ‘여성시대’의 진행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손숙 씨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정동극장에서 만났다. 손숙 씨를 인터뷰했던 어떤 이는 ‘그의 마른 몸에서 대나무가 느껴졌다라고 썼는데 그 표현에 걸맞게 손숙 씨는 시종 단아한 자세로 연극인생을 회고하며 아울러 그이가 꿈꾸는 바른 세상에 대한 바람을 피력했다.

 

- 연극 ‘어머니’가 사람들을 울리고 있는데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연극이 어떤 연극인지 얘기해 주시죠.
“어머니는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표현한 연극이에요.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면서 가난과 전쟁 속에서 갖게 되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한을 가진 어머니가 절망속에서도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며 살아오신 얘기인데 바로 내 어머니 얘기고 우리들의 어머니 얘기죠. 우리는 즐겁고 기쁠때는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어려울 때는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어머니죠. 그렇듯 이 연극이 사람들 가슴에 다가선 것은 지금 아주 어려운 시기인데 이 때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와 닿는게 어머니라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저는 어머니라는 대상이 어머니를 넘어 우리가 속세의 때를 벗고 고향처럼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영원한 서정성의 고향이고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시대가 변하더라도 어머니라는 명제는 영원하잖아요. 저는 제 연극을 통해 제가 어려운 시기 힘들게 사는 분들의 어머니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극을 하고 있어요.”

 

- 이 연극을 통해 제 2의 연극인생을 출발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요
“제가 연극 ‘어머니’를 20년 계약했어요. 이번이 첫 해 공연이죠. 앞으로 20년동안 1년에 두 달씩 공연을 하게 됐는데 우리 연극사에서 이런 공연은 처음이죠. 20년 후면 제 나이가 일흔 살이 넘어요. 이변이 없는 한 그 때까지 무대에 서게 될텐데, 그래서 요즘 극단 관계자들이 저를 볼 때마다 건강에 조심해 달라는 말을 하죠. 이 연극에 애정을 가지는 한편 무거운 책임감도 갖고 있어요.”

 

- 무대에 서신 지 올해로 몇 년째 되셨습니까.
“30년이 좀 넘어요. 대학에서 연극 시작한 것까지 포함하면 올해로 35년째 무대에 선셈이죠. 극단에 몸담으며 연극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32년째인데 연극을 하며 늘 느끼는 거지만 연극에는 정상이 없어요. 정상을 추구하다 끝나는 거죠.”

 

- 그 동안 연극을 몇 편이나 하셨는지 기억하고 있습니까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한 1백 편 정도 한 것 같아요. 연극 한 편 올리려면 연습하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려요. 그래서 일 년에 두 번 무대에 서기가 힘들죠. 그러니까 제가 30여년 동안 연극을 1백편 했으면 많이 한 거예요.”

 

- 평소 무대에 서면서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는지요.
“거창하게 메시지라기 보다는 연극이라는 게 텔레비전처럼 리모콘 눌러서 보는 건 아니잖아요.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찾아오는 관객들이기 때문에 연극이 주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저는 평소 제 작품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어떤 감동을 한 가지씩 얻어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데 뭔가 카타르시스를 얻어 가셨으면 좋겠다는 거죠. 연극에서 비극의 정의가 카타르시스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카타르시스를 제 연극을 통해 느끼고 마음을 정화시키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사람이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잖아요. 그럴 때 제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고 감동을 느끼면서 한 번쯤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그런 수단이 제 연극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연극을 하고 있죠.”

 

- 평소 어떤 연극인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지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 그래서 그 여배우 연극을 보러 간 게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그런 여배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무대에 서고 있어요.”

 

- 연극 외에 라디오 진행자로도 우리에게 친순한데, ‘여성시대’라는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진행하셨지요.
“올해로 만 10년째 진행자로 일하고 있어요.”

 

- 여성시대를 듣다보면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매우 다양해 흥미를 끌더군요. 여성시대를 통해 사연도 많이 받으시고, 어떤 때는 방송 중에 눈물도 흘리시고 그러시던데 방송을 진행하시면서 느끼시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연극이라는 게 간접적으로 남의 인생을 사는 일이고 그래서 제가 연극을 하면서 간접 경험을 남보다 많이 했다고 자부했었는데 실제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방송을 통해 우리가 사는 얘기들을 편지로 접하면서 연극보다 더 다양하고 사연이 많은 게 우리 인생살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돼요.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용기나 희망을 잃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그런 분들에게 제가 뭔가를 드렸다기 보다는 제가 받은 게 너무 많아요.”

 

- 방송 사연을 들어 보면 특히 가슴아픈 사연들이 많던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사연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요즘 경제가 어렵다 보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연들이 너무 많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의 실직으로 인해 부모가 헤어지면서 아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어요. 며칠 전에도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면서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까 아빠가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다니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까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고 나서 매일 술 먹고 우는 얘기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특히 IMF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편지를 유서처럼 써 보낸 사람들도 있었고, 방송을 진행하면서 경제가 어렵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 장애우들에게서도 사연이 많이 옵니까.
“그럼요, 많이 오죠, 장애우 문제와 관련해서는 얼마 전 대통령께서 말씀을 참 잘하셨는데 대통령이 우리가 감기도 앓고 그러는데 그것도 다 장애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면서 국민들이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비장애우들이 장애우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라든가 인식이 변하는데 저도 일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 며칠 전 우연히 여성시대를 들었는데 국회에서 야당의 모 의원 체포 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국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시던데 평소에 민감한 얘기도 주저하지 않고 하시는 편인가 보죠.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제 얘기에 동의하는 쪽도 있고 안하는 쪽도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여성시대는 가능하면 주관적인 얘기보다는 객관적인 얘기, 그리고 보통 사람들인 우리 국민들의 입장에 서서 얘기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방송을 진행하는데 그렇지만 듣는 쪽은 기분이 좋지 않은 일들이 많겠죠. 여성시대는 개인의 약점과 비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공인의 자세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얘기도 가능하면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그리고 사회적 약자 입장에 서서 얘기하고 있어요. 정의의 편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이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인을 비난 하는 등의 민감한 얘기들은 제 주관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성시대팀이 함께 의논해서 만들어 내고 방송을 한다는 거예요.”

 

-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요.
“열심히 정말 땀흘려서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잘 산다는 게 모두 돈이 많은 부자가 되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불평불만이 적어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하루 속히 됐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항상 그늘에서 어렵게 살고,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을 번 사람들과 권력에 빌붙어서 또 옳지 않은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사회가 되면 안 되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런 바른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꿈을 안고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열심히 살지만 어려움에 부딪치는 사람들에게 방송을 통해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건 살아 오시면서 직접 고통을 겪으신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잇는데요. 가장 힘든 고통은 뭐였습니까.
“저도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어요. 결혼해서 살면서 남편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재산을 다 빚으로 날리기도 했고, 그 외에도 힘든 일이 참 많았죠. 그랬는데 그런 아픔이나 불행이 다시 찾아오면 어렵겠지만 일생에 한 번쯤 찾아오는 불행을 통해 사람 살아가는데 많은 경험과 지혜를 얻는 것도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는 많은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절망의 끝에 가면은 꼭 불빛이 보인다는 걸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 우리 사회에는 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외계층 문제가 해결되려면 개인적인 관심 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평소 소외계층 문제가 해결되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서 저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소외계층 문제도 10년 전이나 20년 전에 비하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죠. 저는 소외계층 문제가 해결되려면 무엇보다도 지금은 모든 게 다정치가 지배하고 있으니까 정치가 정의롭고 정당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정치가 소외계층을 우선 배려하는 정치가 되고, 그 영향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변해서 변화하는 의식 속에서 소외계층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얼마 전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시민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데, 시민운동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요.
“환경문제는 평소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제가 방송진행을 하면서 환경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환경운동연합에서 상징적으로 내가 필요했겠죠. 그래서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게 된 것 같고, 저는 환경운동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시민운동만이 앞에서 말씀드린 국민들의 의식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민운동이 많이 확산 됐으면 좋겠고, 우리 국민들이 시민운동에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시민운동 확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몇 군데 시민운동에 관여를 하고 있어요. 여성쪽은 ‘21세기여성포럼’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데 물론 제가 전면에 나서서 시민운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거절하지는 않고 있어요. 시민운동에 제가 필요하고, 제가 쓰일 데가 있다면 나서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죠.”

 

- 마지막으로 함께걸음의 주독자인 장애우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지금 다 힘들죠. 그리고 장애우 분들은 더 힘드실 거예요. 그렇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찾아올 거라는 걸 말씀 드리고 싶어요. 살다보면 사람들에게 양지만 있지는 않죠. 대로만 있는 게 아니라 길을 가다보면 골목길도 만나서 진흙탕도 딛게 되지만 그렇지만 그 길을 지나면 또 햇볕 밝은 길도 나오거든요. 그런 희망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사셨으면 좋겠어요.”

 

대담 정리/ 이태곤 기자  사진/ 김학리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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