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흙탕물 속에서 걸러낸 "샘물 한바가지" > 세상, 한 걸음


[만나고 싶었습니다]흙탕물 속에서 걸러낸 "샘물 한바가지"

「겨레말 갈래 큰사전」펴낸 박용수

본문

 

 

 "유행색 컬러링으로 새 감각의…" "올 겨울 컬러의 주역은 단연 페미닌 블랙…"
 들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바깥말, 바깥물건에 치여 하루가 다르게 스러져 가는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종로구 묘동 스무평이 채 안 되는 "한글문화연구회" 사무실에서 오늘도 우리말, 우리 일을 되살리기 위해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는 박용수 선생은 이 미련한(?) 물음에 "우리말을 지키고 잘 살려쓰는 길 밖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스로 이 땅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 시인으로 자처하던 육십년대 말「바람소리」를 쓰면서 알맞은 우리말 하나를 찾기 위해 무려 여덟 시간을 허비했던 그는 "제 나라 말로 글 한 줄 제대로 쓸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 몸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때 겪었던 우리말에 대한 목마름은 그뒤 유신과 광주항쟁을 겪으며 "운동"과 "사진"으로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메워가는 가운데서도 성질 급한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마침내 팔십구년 겨울, 안암동에서 한길사까지 이십여분 거리의 "진창길"을 원고 뭉치 하나 내려놓을 데 없어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비지땀을 흘리며 걸어야 했던 "죄 갚음"을 하면서 갈래사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버려지고 깨진 채 길거리를 뒹굴던 "우리말"은 제자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네해가 지난 구십삼년 봄,『겨레말갈래큰사전』이라는 튼튼한 집을 세운 것이다.
 그간의 국어사전이 모르는 낱말의 뜻을 찾아보는 "책읽기 사전"이었던 것에 비해, 갈래사전은 알고 있는 말이라도 그 뜻을 제대로 살려 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각각의 낱말을 사람, 생활, 문화, 산업, 사물, 자연, 동물, 식물의 여덟 말떼로 가르고 이를 다시 이백여 갈레로 나눈 "글쓰기 사전"이다.
 또 이 사전의 올림말에는 우리가 흔히 사투리라고 부르는 "고장말"이 많이 올라있다. 이는 해마다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수천만명이 고향을 찾아 "민족대이동"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서울지방의 중류층이 쓰는 말"이라는 "표준말"의 말뜻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전이 기리는 가장 큰 뜻은 연변의 조선족이 쓰는 말과 북한의 "문화어"를 서북고장에서 쓰는 우리의 대중말로 끌어안아 "말의 통일"을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말은 곧 일이고 기질이기 때문에 말이 다르면 아무리 생김새가 비슷하더라도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박용수 선생은 때문에 "말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 지지않은 통일은 의미가 없다"고 몇 번이나 되집어 말하곤 했다.
 
더욱이 삶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면서 그 말이 본디 가지고 있던 뜻을 잘못 쓰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단순히 그 말을 잘 못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이 쓰이는 지역의 생활모습과 정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전에는 "우등불"과 "화톳불"을 같은 뜻으로 나란히 실어 놓았는데 같은 불이라도 "우등불"은 장백산맥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베어다 켜켜로 쌓아 놓고 그 불빛으로 산판일을 하는 "조명용" 이지만 "화톳불"은 자잘한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손이나 녹이는 "난방용"으로 그 쓰임새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처럼 장백산맥의 크고 울창한 나무숲을 보지 못한 세대는 일을 하기 위해 "우등불"을 밝히는 그 고장의 정서를 전혀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교육 정책은 잊혀지고 잘못 쓰이는 우리말을 되살리지 못하고 한자말과 서양말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얼빠진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용수 선생은 이즈음 또 다른 감동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얼마전 연변을 다녀온 후배가 쓴 "무장다리처럼 크는 연변의 조선족 아이들"이란 글을『우리교육』이라는 잡지에 실은 것을 보고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숨쉬는 우리말의 뿌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험에 잘 치루래?(시험 잘 쳤니?)"
 "모 봤단데(못 봤어)"
 "무에가 어려웠음둥?(무슨 과목이 어려웠는데?)"
 "다 어렵단데(다 어려웠어)"
 "근데요-, 저는요-" 말꼬리를 자르지 못하고 질질끄는, 그래서 약하고 무책임하게 들리는 이녁의 아이들에 비해 무쪽자르듯 분명한 연변의 우리 아이들 말투는 얼마나 싱싱하고 자신만만한지.
 "비록 나라의 정책이 잘못나가 줏대 없는 지식인들이 제나라 말을 지키지 못하고 한자말, 서양말의 머슴으로 살고 있지만 뜻있는 젊은이들이 우리말을 찾고 있고 이처럼 싱싱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글/전홍윤

 "유행색 컬러링으로 새 감각의…" "올 겨울 컬러의 주역은 단연 페미닌 블랙…" 들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바깥말, 바깥물건에 치여 하루가 다르게 스러져 가는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종로구 묘동 스무평이 채 안 되는 "한글문화연구회" 사무실에서 오늘도 우리말, 우리 일을 되살리기 위해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는 박용수 선생은 이 미련한(?) 물음에 "우리말을 지키고 잘 살려쓰는 길 밖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스로 이 땅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 시인으로 자처하던 육십년대 말「바람소리」를 쓰면서 알맞은 우리말 하나를 찾기 위해 무려 여덟 시간을 허비했던 그는 "제 나라 말로 글 한 줄 제대로 쓸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 몸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때 겪었던 우리말에 대한 목마름은 그뒤 유신과 광주항쟁을 겪으며 "운동"과 "사진"으로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메워가는 가운데서도 성질 급한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마침내 팔십구년 겨울, 안암동에서 한길사까지 이십여분 거리의 "진창길"을 원고 뭉치 하나 내려놓을 데 없어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비지땀을 흘리며 걸어야 했던 "죄 갚음"을 하면서 갈래사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버려지고 깨진 채 길거리를 뒹굴던 "우리말"은 제자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네해가 지난 구십삼년 봄,『겨레말갈래큰사전』이라는 튼튼한 집을 세운 것이다.  그간의 국어사전이 모르는 낱말의 뜻을 찾아보는 "책읽기 사전"이었던 것에 비해, 갈래사전은 알고 있는 말이라도 그 뜻을 제대로 살려 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각각의 낱말을 사람, 생활, 문화, 산업, 사물, 자연, 동물, 식물의 여덟 말떼로 가르고 이를 다시 이백여 갈레로 나눈 "글쓰기 사전"이다.  또 이 사전의 올림말에는 우리가 흔히 사투리라고 부르는 "고장말"이 많이 올라있다. 이는 해마다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수천만명이 고향을 찾아 "민족대이동"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서울지방의 중류층이 쓰는 말"이라는 "표준말"의 말뜻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전이 기리는 가장 큰 뜻은 연변의 조선족이 쓰는 말과 북한의 "문화어"를 서북고장에서 쓰는 우리의 대중말로 끌어안아 "말의 통일"을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말은 곧 일이고 기질이기 때문에 말이 다르면 아무리 생김새가 비슷하더라도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박용수 선생은 때문에 "말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 지지않은 통일은 의미가 없다"고 몇 번이나 되집어 말하곤 했다.  더욱이 삶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면서 그 말이 본디 가지고 있던 뜻을 잘못 쓰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단순히 그 말을 잘 못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이 쓰이는 지역의 생활모습과 정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전에는 "우등불"과 "화톳불"을 같은 뜻으로 나란히 실어 놓았는데 같은 불이라도 "우등불"은 장백산맥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베어다 켜켜로 쌓아 놓고 그 불빛으로 산판일을 하는 "조명용" 이지만 "화톳불"은 자잘한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손이나 녹이는 "난방용"으로 그 쓰임새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처럼 장백산맥의 크고 울창한 나무숲을 보지 못한 세대는 일을 하기 위해 "우등불"을 밝히는 그 고장의 정서를 전혀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교육 정책은 잊혀지고 잘못 쓰이는 우리말을 되살리지 못하고 한자말과 서양말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얼빠진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용수 선생은 이즈음 또 다른 감동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얼마전 연변을 다녀온 후배가 쓴 "무장다리처럼 크는 연변의 조선족 아이들"이란 글을『우리교육』이라는 잡지에 실은 것을 보고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숨쉬는 우리말의 뿌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험에 잘 치루래?(시험 잘 쳤니?)" "모 봤단데(못 봤어)" "무에가 어려웠음둥?(무슨 과목이 어려웠는데?)" "다 어렵단데(다 어려웠어)" "근데요-, 저는요-" 말꼬리를 자르지 못하고 질질끄는, 그래서 약하고 무책임하게 들리는 이녁의 아이들에 비해 무쪽자르듯 분명한 연변의 우리 아이들 말투는 얼마나 싱싱하고 자신만만한지.  "비록 나라의 정책이 잘못나가 줏대 없는 지식인들이 제나라 말을 지키지 못하고 한자말, 서양말의 머슴으로 살고 있지만 뜻있는 젊은이들이 우리말을 찾고 있고 이처럼 싱싱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글/전홍윤


 

작성자전홍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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