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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방 한 칸 마련이 우리 식구의 꿈이죠

사람 사는 이야기 - 세 평 공간에서 두 아이 키우며 사는 장애우 부부

본문

희경 씨가 부산에 온 이유

올해 서른네살인 심희경 씨는 정신지체 3급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정선이다. 정선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언니가 오라고 해서 부산 가서 옷 공장에 다녔다. 낮에는 공장에서 시다로 일하고 밤에는 해동 여자 상업고등학교에 다녔다. 말하자면 6-7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학교와 공장이 같이 있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다닌 것이다. 그이는 꼬박 3년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그이 말에 따르면, “한 군데 너무 오래 있으니까 지루해서.” 공장을 그만뒀다. 그런 다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수유리에 있는 한 고시원에 머물렀다. 집도 절도 없는 여성이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그이는 주로 종로 3가에 있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식당을 소개받아 들어가 일했다. 그런데 길어야 몇 달, 짧게는 취직한 지 며칠 만에 식당에서 짤렸다. 왜? 그이가 정신지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이는 “내가 식당에서 일을 열심히 해도 주인이 나가라고 그랬어요. 조금 적응하려고 하면 일하지 말고 나가라는 거였어요. 일 하면서 눌러 붙어 있으려고 하면 주인이 일하지 말고 나가라고 하고, 어떤 식당에서는 일을 못해서 짤리기도 하고, 그래서 한 군데 오래 붙어있을 수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그이는 서울에서 식당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어려운 삶을 살면서 그나마 돈을 조금 모았다. 그런데 그 돈을 사기 당했다. 이게 그이가 부산에 내려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그이 남편 말에 따르면, 그이는 한동안 사람들을 무서워해서, 그 증상이 심각해서 병원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왜 그이는 사람들이 무서웠을까,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에서 고생 고생해서 3백 만원을 벌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지를 못했어요. 어떤 사람이 다리 고치려면 점 보러 가야 한다고 해서, 점 보러 다니다가 3백 만원을 다 날렸어요. 그래서 충격 받았어요. 정말 어렵게 번 돈 이었거든요.”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면서, 고시원비도 낼 수 없게 되면서, 그이는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어디로 가야하나, 다행히 그이에게는 강원도 정선에 집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그런데 그이는 그때 정선행 열차 대신 남은 몇 푼으로 부산행 열차 티켓을 끊는다.
왜 그랬을까, “집에는 돈을 못 벌었으니까 갈 수 없었어요. 그리고 겁이 나니까 안 갔지요.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많이 맞았거든요. 이유는 몰라요. 아버지가 자기 화나는 거 있으면 때리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몽둥이로 때렸어요.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에게 거부감 생기고 피해요. 갈 곳이 없었지만 집에는 가기 싫었어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하우스를 기억자로 찢어놨다고 패요.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거짓말 한다고 또 패요. 아버지가 엄청 때렸어요. 내가 말 하면 더 때렸어요.”



아하 그래서, 어렸을 때 끔찍한 가정폭력의 기억이 있어서 집 대신 언니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갔구나. 그런데 이것도 부산으로 온 이유가 아니란다.

“부산 내려온 건 언니 집 가려고 온 게 아니었어요. 언니도 자기 새끼 데리고 먹고 살기 바쁜데 나를 받아줄 리 만무였죠.”

부산에 왔지만 여전히 갈 곳이 전혀 없었던 그이, 그이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98년 어느 여름날 비가 쏟아지는 오후, 부산 동구 수정동에 있는 한 작은 공원 의자에 앉아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현규 씨, 희경 씨를 만나다

올해 마흔네살인 김현규 씨는 시각장애 4급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이가 태어난 곳은 경남 밀양이다. 그이는 밀양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자 가난이 싫어서 서울로 도망갔다. 서울역앞 남대문 근처 보증금 없는 월 방세 5-6만원의 쪽방에 머물면서 노동일도 했지만 주로 지하철에서 신문을 팔았다.

지금은 그런 풍경이 사라졌지만 한 때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청량리 구간 전철 내에는 신문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객차 내를 돌아다니며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이는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신문 1부를 팔면 100원이 남았어요. 열심히 신문 팔아서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철도공사에서 지하철에서 신문을 못 팔게 했어요. 신문판매원들이 객차 내 왔다 갔다 하면서 승객들에게 불쾌감 준다고 못하게 해서 그만두고, 그 다음부터 노동일을 했어요. 노가다판 돌아다니면서 일용노동자로 일했는데 체력 때문에 3-4일 일하면 하루는 쉬어야 했고, 그래서 돈을 모을 수 없었어요.”



바닥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도 서울서 살 때 자포자기하면서 술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그 원수 같은 술이 그가 장애를 가지게 된 원인이 됐다.

“10년 전 일인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식당 같은 데에 연탄난로가 있고, 난로위에 주전자나 양동이를 올려놓고 물을 끓이는 모습이 흔했어요, 그때 내가 술을 조금 먹었는데, 술 먹고 취해가지고 비틀거리다가 난로를 보지 못해서 양동이 물을 뒤집어 쓴 거예요. 온 몸에 화상을 입어서 피부이식 수술까지 해야 했어요. 눈은 당시 의사가 시각장애우가 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한쪽 눈만 실명하는데 그쳤죠. 영등포 성심병원 중환자실에 한 달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서울 생활에 희의를 느꼈지요.”



사고가 난 뒤 그이는 술을 끊었다. 여전히 쪽방에 살면서 노동일을 했지만 장애 때문인지 일을 나가는 날이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어느 날 부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산을 생각한 것은 밀양 집이 가까워서였죠. 고향에 가고 싶었지만 어차피 고향에 가봤자 해먹을 것도 없고, 땅이라도 있어야 농사라도 지을 텐데, 땅도 없고, 그래서 혹시 부산에 가면 해먹을 게 있을 게 아닌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무작정 부산으로 왔어요. 그때 수중에 3백 만원 정도 있었는데, 막상 부산에 왔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허름한 여인숙에서 살면서 돈만 까먹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지금 살고 있는 방을 알게 돼서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주기로 하고 들어왔는데, 머물 방은 생겼지만 여전히 직장은 구하지 못해서 백수 신세로 지내고 있었지요.”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97년 이었다. 그리고 1년 후인 98년 어느 여름날 비가 쏟아지는 오후, 그이는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을 나섰다. 그이가 간 곳은 집 근처 부산 동구 수정동에 있는 한 작은 공원이었다. 우산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 공원에 도착한 그이는 비가 와서 인적이 없는 공원 의자에, 한 여자가 앉아 우산도 쓰지 않고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단속 때문에 호떡 노점 접어

남자는 곧바로 여자에게 다가갔다.

“비가 많이 오는데, 왜 비를 맞고 있나요?”

남자가 물었지만 여자는 눈길만 줄뿐 처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안해진 남자는 “커피 한 잔 뽑아 드릴까요?”라고 재차 물었다.
여자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근처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한 잔을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가 종이컵을 받아 들자 남자는 “그런데 밥은 먹었나요?”라고 물었다. 그제서야 여자가 "아뇨, 돈이 없어서 하루 종일 굶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여자는 남자에게 “혹시 가진 돈 있으면 김밥하고 라면 좀 사주실래요.”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공원 근처 식당으로 갔다. 여자에게 밥을 사주면서 남자는 "그런데 잠 잘 곳은 있나요?”라고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잘 데 없으면 누추하지만 내가 사는 방이 이 근처에 있는데 갈래요?”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느라 밥 먹기를 멈춘 여자가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해서 그 날 이후 한 방에서 같이 살게 된 여자와 남자는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부부가 됐다.



현규 씨는 “처음에는 아내의 장애를 몰랐어요. 그런데 항상 불안해하고 히히 웃고 그래서 장애를 눈치 챘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아이를 낳으면 괜찮겠지 싶어서 같이 살게 됐어요.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같이 산 정 때문에 헤어질 수 없었고, 그래서 혼인신고 하고 동사무소에 가서 아내 장애 등록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현규 씨 얘기는 이어진다.



“아내가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처음 같이 살 때는 아내가 병원도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첫 아이 임신했을 때 병원에 가자고 그러면 소리 지르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신경질 내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아내가 밥은 어떻게 하는데 반찬을 전혀 만들지 못해요. 그리고 시장가서 뭐 사오라고 그러면 사오긴 하는데 상인들이 주는 걸 그대로 받아와서 상한 음식을 사오기도 하고, 이러니 주위 사람들이 나 보고 아이 세 명을 키운다고 말해요. 빛나 미나 아이 둘에 큰 애까지 키운다고, 그래도 아이 보는 재미에 참고 살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집에 없으면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으니까 직업을 가지기가 힘들다는 거죠.”



지금은 직업이 없지만 그래도 한때 현규 씨는 노점상과 중국집 자장면 배달 일을 한 적이 있다. 그이는 먼저 큰 아이 빛나를 낳고, 먹고 살기 위해 한 동안 호떡을 구워 파는 노점 일을 했다. 집 근처 대로변 육교 밑에서 호떡 장사를 2년여 정도 했는데, 끊이지 않는 구청 단속과,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노점을 접어야 했다.


“우선 벌이가 안됐어요. 하루 5만원 어치 팔면 재료비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동구청 단속반원들이 끊임없이 단속하면서 장사 못하게 해서, 한 번은 호떡 반죽 통을 단속반에게 뺏겼는데, 구청에서 벌금 5만원을 가져오라고 해서, 둘 다 장애우고 애도 있으니까 봐달라고 사정했는데, 안 봐주더라고요. 그래서 장사도 안 되는데 단속당한 게 계기가 돼서 노점을 접었어요. 그러고 나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취직해서 한 5개월 정도 일했는데, 눈 때문에 선글라스 끼고 일하니까 주인이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그만두고, 지금은 설상가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직장 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놀고 있어요.”


가장이 직업이 없는데, 그러면 이 가정은 뭐해서 먹고 살까, 눈치 챘겠지만 이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다. 정부에서 장애 수당을 합해서 월 70만원 정도 생계비를 지원해 줘서 네 식구가 겨우 밥만 먹고 산다.




방 비좁아서 아내 가출

생활고 외에 이 가정을 힘들게 하는 게 또 있다. 다름아닌 가족들의 냉대다. 홀어머니만 있는 현규 씨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부모와 언니 그리고 동생들이 있는 아내 희경 씨 가족은, 두 사람이 작년에 합동결혼식을 통해 뒤늦은 혼례를 치렀지만 결혼식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희경 씨를 모른 체 하고 있다.



“아이 엄마가 둘째 딸 이거든요. 그런데 결혼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아마 장애 때문이겠죠. 집 사람이 장애를 가지지 않았으면 모르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어느 정도로 집 사람을 냉대 하느냐면, 올해 6월 집 사람이 가출해서 정선 자기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집에서 단 하룻밤도 재우지 않고 바로 열차를 태워서 보냈어요. 어미 애비라는 사람이 아무리 자식이 못났지만 멀리서 자식이 왔으면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이고 하룻밤 재워서 보내는 게 도리지, 자식이 못났다고 문전박대 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정말 화가 많이 났어요. 하긴 우리 아이들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얼굴도 모른다고 하면 말 다했죠.”


현규 씨는 이어 같은 부산에 사는 희경 씨 언니도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고 연락했는데도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분개했다.

현규 씨 얘기를 듣고 희경 씨에게 가족이 냉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자, 희경 씨는 “몰라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내친 김에 6월에 아이를 놔두고 가출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자, 희경 씨는 아무 대답이 없다. 대신 현규 씨가 대답한다.


“아내가 이틀을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어요. 자기도 인간인데 부모님이 보고 싶었겠죠. 그리고 이유를 물어보니까 방이 좁고 답답해서 집을 나갔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사는 방이 오래된 건물이어서 비 오면 빗물이 스며들고 곰팡이가 펴서, 곰팡이 때문에 옷을 못 걸어 놀 정도거든요. 누우면 발 뻗을 데도 없고, 칼잠을 자야 하니까 아내도 이렇게 사는 게 답답했겠죠.”



현규 씨 말대로 가족이 사는 방은 채 세 평이 되지 않는 좁디좁은 방이다. 그나마 한쪽 벽을 살림살이가 가득 채우고 있어서 과연 네 식구가 이 좁은 공간에서 잘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그래서 저소득층에게 배정된 영구임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약 200만원인 아파트 보증금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방은 처음 들어올 때 현규 씨가 100만원 보증금을 걸었지만 그 동안 월세를 제대로 못 내 다 까먹은 상태여서 가족이 가진 재산은 전혀 없다. 말하자면 가진 게 전혀 없는 상태에서 월세 10만원만 내며 근근이 살고 있는 것이다.



영구임대 보증금을 마련하려면 어쨌든 현규 씨가 일을 해야 하는데, 직장을 구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와 아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을 나가는 것이 주저된다는 게 현규씨 말이다. 특히 아내에 대한 걱정이 그이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내가 호떡 노점 할 때 재료 사러 시장에 갔다 왔는데 빛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아내가 빛나를 때렸는지 빛나 눈등이 시퍼렇더라고요. 내가 집에 없는 상태에서 그 일이 벌어져서, 윗집에서 아내가 아동학대를 하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나 봐요. 아내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데 경찰서에서 사람이 나오고, 동사무소에서도 사람이 와서 난리가 아니었어요. 그때 저도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그때 사람들에게 소리쳤어요. 아이 엄마가 장애를 갖지 않았으면 아동학대라고 신고하는 게 당연하지만 정신 장애를 갖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굳이 신고한 이유가 뭐냐, 부모가 새끼 키우는데 안 때리고 키우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그때 그 일이 너무 섭섭해서 한 동안 이 동네 사람들하고 얘기를 안 하고 지낸 적이 있어요.”



현규 씨는 이래서 방을 벗어나는 게 어렵지만, 식구들하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중국집 배달 일자리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현재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구임대 아파트 보증금 2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영구임대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네 식구가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지금 살고 있는 방 보다 조금 더 큰 방으로 이사하려면 저소득층 전세자금 융자를 받으면 된다고 동사무소에서 알려줬다. 하지만 전세자금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보증인이 필요한데, 보증 서줄 사람을 구한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니 현규 씨 입장에서는, 나라 안을 온통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부동산 문제가 전혀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사람들이 부동산에 투자해서 몇 십 억, 몇 억, 최소 몇 천 만원을 벌었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 액수에 비교해 껌 값인 몇 백 만원이 없어서 식구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억장이 무너져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빛나 미나가 애교가 많아요. 힘들어도 아이 보는 재미에 살고 있어요. 어쨌든 살아있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식구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지상의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할 수 있겠죠.”

현규 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사진 전진호 기자

작성자이태곤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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