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는 이야기] “어떡하든 힘든 그 순간만 버터보세요” > 세상, 한 걸음


[희망을 찾는 이야기] “어떡하든 힘든 그 순간만 버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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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62년에 경상남도 울주군 안양면 십동리라는 시골 농가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어요. 지금은 울주군이 울산이랑 통합돼서 울산광역시가 됐지요.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면서 목수일도 하셔서 먹고 살았어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아무 탈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들을 뛰어 노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평범한 시골아이였어요. 그러다가 열 살 때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다리를 절기 시작한 거예요.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제 걷는 모습을 보고 저한테 왜 그러냐고, 어디 다쳤냐고 물어보셨죠. 제가 아니라고, 잘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니까 어머니는 제 무릎을 걷어 보셨어요. 그제서야 오른쪽 무릎이 왼쪽 무릎에 비해 부어 있는 걸 발견하셨죠.

 그래서 어머니는 저를 면에 있는 조그만 병원에 데리고 가셨어요. 병원에서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그냥 약만 발라주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별거 아니라고 말해서 어머니와 저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이 지나도 낫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때부터 저는 더 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멀리 부산에 있는 병원까지 다녔죠. 그렇게 매일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입원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병원마다 내가 앓고 있는 정확한 병명을 몰랐어요. 어떤 병원은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하고, 어떤 병원은 결핵성 관절염이라고 그러기도 하더라고요. 지금은 류마티스 관절염인 게 확실해졌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의사들이 이 병을 잘 모르고 있어서 치료가 더 힘들었어요.

 어머니는 농사지어 가지고 쌀을 내다 팔아서 제 병원비를 대셨어요. 누가 어떤 병원에서 치료했더니 잘 고치더라고 하는 소문이 나면 어머니는 바로 그 병원을 찾아 갔어요.

 그래도 안 나으니까 어머니는 무당을 불러 굿도 하고, 부인사라고 하는 강원도에 있는 절에 가서 기도를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절에 가기도 하는 등 하여튼 온갖 방법을 다 썼는데도 제 몸은 점점 더 나빠지는 거예요. 결국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초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그 이후에는 다니지 못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방안에 누워서 천장만 보고 살았는데, 아무도 없는 시골 골방에서 혼자 누워 살아가면서 좌절도 많이 하고, 절망도 많이 했어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부모님이 싸움이라도 하는 날엔 마음이 불안해져서 몸이 더 아팠어요.

 또 어머님이 제 몸을 닦아주시고 다리를 씻겨 주시다가 가끔, 너는 죽지 않고 왜 살아서 이 고생을 하냐는 말을 제게 하실 땐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어머니도 저 같은 자식을 지켜본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그러셨겠지요. 그런데 그런 소리를 자꾸 듣게 되면서 차츰 제가 사는 게 가족들한테 짐이 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골방에 누워 있으면서 저는 늘 죽음만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또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위해 농약병을 입 가까이에 대 보기도 했어요. 자살 연습했냐고요? 암튼 그렇게 해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어요. 그냥 마음이 차분해지고 담담해질 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살다가 제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집을 떠나 시설에 들어갈 결심을 했어요. 그 때 집을 나온 후, 지금까지 계속 시설에서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아직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어요. 제 장애가 워낙 무거우니까. 힘들지요. 하지만 그 당시엔 더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러다 시설에 있으면서부터 교회를 나가게 됐고, 신앙생활을 하게 됐죠.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수녀님 한 분이 절 찾아오셔서 발도 닦아주고, 손톱과 발톱을 깍아 주신 적이 있어요.

 그것이 너무나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서 시설에서 운영하는 교회에 다니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저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았어요. 그게 바로 시를 쓰는 거예요. 시는 내게 장애를 잊게 해주고, 또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대상이에요. 시를 통해서 내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거예요.

 지금은 내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큰 의미에서 보면 풀이나 돌 하나도 조물주가 필요해서 만든 것이고,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처럼 내 존재도 내 자신이 생각하기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다 의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얼마 전 그 동안 제가 쓴 시를 어떤 분의 도움으로 시집으로 엮게 됐어요. 제가 시를 쓸 때 꼭 시집을 내겠다고 써 놓았던 건 물론 아니었어요. 시집, 그거 아무나 내나요, 어디. 그런데 언젠가 나눔의 집을 방문한 한 장로님한테 원장님이 저를 소개하시면서 시도 쓰고 있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그 장로님이 제 방에 와서 시를 몇 편 보시고는 시들이 참 좋다고 기꺼이 시집으로 내주시겠다고 해서 결국 작년 11월에 시집이 나왔어요.

 시집 제목은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샘물처럼 맑아진다>예요. 제가 직접 제목을 붙인 건 아니고, 출판사에서 붙인 거죠. 제가 제목을 붙였다면 ‘하늘빛 물든 마음’이라고 지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상관없어요. 제목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저는 이 책에서 ‘귀가’라는 시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시인 중에서는 천상병 시인을 좋아하는데, 천상병 시인의 시 중에도 귀천이란 시가 있죠.

 ‘물기 머금은 어둠 마시며/ 좁은 골목길 걸어/ 집으로 가는 우리들은/ 작은 나방입니다/
 나비 되지 못한/ 우리 날개는/ 보잘것 없이 초라하지만/ 따뜻한 불빛 하나만 있으면/ 나비보   다 행복해집니다/
 가진 것이 없는 슬픔보다는/ 가질 것이 많은 희망으로/ 마음 넉넉합니다/
 모두 똑같은 번데기에서 나왔는데/ 날개 좀 화려하다고/ 거만한 나비들/ 우리 비웃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따뜻한 불빛/ 하나만으로/ 외롭지 않고/ 돌아갈 집 하나만으로/ 우리 발걸   음은 가볍습니다‘

 이 시를 보셔도 알겠지만, 전 이슬, 노을, 풀꽃, 비, 바람 이런 게 좋아요. 그래서 시도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특히 전 작은 풀꽃을 좋아해요. 저랑 닮은 것 같아서요.

 그런데 요즘은 시가 잘 안 써져요. 감동을 받아야 시가 잘 써지는데, 하루 종일 방안에 누워 있으니까 하루하루가 늘 똑같거든요. 그렇다고 늘 이런 건 아니예요.

 보통 때는 컴퓨터통신의 대화방에 들어가서 사람들하고 대화도 해요. 또 가끔씩 방문객한테 도움을 받아서 휠체어를 타고 나가서 산책을 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저는 장애가 심해서 나가기도 어렵고 방문하신 분 중에 제가 있는 이 끝방 까지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사람은 사랑받을 때 가장 행복한데, 그러나 지금의 제 처지는 그렇지는 못하네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절망에 빠진 분이 있다면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생 떽쥐베리가 한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어요. 지금 당장 몰려오는 태풍은 극복할 수 있지만 미리 그것을 예상할 수 있을 땐 기가 막히는 거죠. 우리에게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겨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을 때, 우리는 더 좌절하고 절망하는 거죠. 아무리 큰 태풍이 닥쳐와도 어차피 지나치게 마련이고 그렇게 어쨌든 극복하기 마련인데 미리부터 좌절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는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더 강한 힘이 생기게 되니까. 어떡하든 힘든 그 순간만 버텨보세요.

 그리고 누구나 본인이 힘들 때는 다 자기만 혼자라고 생각하는데, 주위를 보면 자기를 걱정해주고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그런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힘을 내길 바랄 뿐입니다.

 


구술/ 서주관  정리/ 노윤미 기자

작성자노윤미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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