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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조금씩만 나누며 살면 안될까요?”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의 저자 조병준 씨

본문

  조병준 씨는 인도 캘커타에 다녀온 어느 해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일년 동안 옷을 사지 말고 살아보자는 것이다. 속옷 몇 장과 반바지 두 벌을 사긴 했지만 매제와 친구에게서 입던 바지를 얻어 입으면서 대충 그럭 저럭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 수녀님들은 단 두벌의 수녀복으로 평생을 지내세요. 그 분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너무 많은 옷이 이미 옷장 속에 있는데 더 이상 옷을 산다는 것은, 죄까지는 안된다고 쳐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캘커타, 그 곳이 바꾸어 놓은 조병준(39)씨의 많은 것 중에 이것은 작은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비평서를 두 권이나 낸 문화평론가이자 문예지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그를 사람들은 이제 서슴없이 ‘자원활동가’라고 부를 정도다.

  기실 그의 자원활동 이력은 남들 눈에 도드라져 보일 만하다. 작고한 마더 테레사 수녀의 필생의 사업으로 잘 알려진 ‘사랑의 선교회’ 산하 구호시설인 <프렘단>과 <칼리가트>에서 자원활동자로 보낸 시간이 일년 육개월여. 그 시간은 다시 흥미롭게 나뉘어진다. 처음에는 이틀, 그리고 삼 년여가 지난 두 번째는 세 달, 그 다음 세 번째는 육개월, 그리고 네번째는 올해 구십팔년 일월까지 여섯 달 동안 계속됐다. 캘커타에서 만난 친구들의 초청으로 유럽을 여행한 후 다시 캘커타로 돌아가기도 했다.

  구십년 우연한 인도여행 중 숙소에서 만난 한 여행자의 권유로 처음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쉬시바반(아이들의 집)>이란 시설에 들르고 몇 십일이 지난 후 다른 한국인 여행자 가족과 함께 마더 테레사의 집 가운데 하나인 <칼리가트>에서 하루를 보내게 됐을 때는 사실 그도 평범한 관광객 중 한 명이었다.

  “인도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길거리에 그냥 방치돼 있어요. 어떤 땐 누워 있는 사람들 발을 밟지 않으려고 한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할 정돕니다. 그렇게 워낙 충격적인 모습을 많이 봤지만 쉬시바반에 갔을 때 처참한 환경의 아이들을 지켜보다 구석에 숨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죠. 그리고 칼리가트에서 환자들을 안아 나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처음 봤지만 제 이해의 한계를 넘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냥 잊고 말았어요.”

  다시 두 번째 인도여행 중 역시 마더 테레사 수녀의 집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던 룸메이트를 따라 나선 것이 <프렘단>과 <칼리가트>를 알게 된 계기가 됐다. 프렘단은 거리의 행려병자나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곳으로, 정신지체인이나 팔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의 병동을 포함, 총 3개의 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곳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지속적인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아니면 회복 후 집이나 거리로 되돌려 보내진다.

  또 칼리가트는 원래 힌두교의 죽음과 파괴의 여신 칼리의 신전이었는데, 마더 테레사가 캘커타 시청의 지원을 받아 ‘죽어가는 빈자들의 집’으로 만들었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비참한 거리의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던 이들에게 칼리가트는 평화로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그리고 눈물과 회의 대신에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해내야 할 일이 세상에 널려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소중한 가르침은 늘 함께 보아왔던 마더 테레사 수녀님과 그곳 성직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젊은 자원활동자들을 보며 얻은 것이다.

  지금도 편지로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는 그 친구들은 그의 삶에 여전한 기쁨과 그리움의 원천이다. 최근 그가 펴낸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는 그 친구들에 대한 소개글을 모은 책이다. 특이하게도 출판사를 달리해서 각각 다른 표지와 책크기를 갖고 있는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세상에 나왔다. 두 곳의 출판사가 원했고, 다들 친구들이 있는 출판사라 사이좋게 원고를 나누어 줬다는 것이다.

  그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라에서 평범한 얼굴을 하고 살아갈 사람이지만 인도에서의 그들은 성자같다. ‘돈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벌 수 있다. 지금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어떤 일을 할 때다’라는 생각에 좋은 취업처를 마다하고 인도에 왔다는 프랑스처녀 로르, 오년 마다 한 번씩 독일로 돌아가 돈을 벌어 일부는 캘커타에서 쓰고, 나머지는 아껴 모아서 언젠가는 할아버지 환자를 위한 집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자신의 노년을 보낼 꿈을 꾸고 있는 사십대의 안디, 자원활동을 마치고 오후에는 의약품이 든 상자를 들고 나서서 거리의 의사가 되는 스위스 친구 스테판, 워낙 그런 구호시설에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라 다들 감동스러운 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도가 아닌 세상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도 그 친구들 명단에 끼어있다. 전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가 아주 절친한 동네친구가 된 스페인 친구 안또니오 신부, 유럽여행길에 공원에서 잠시 만났지만 기꺼이 몇날 밤의 숙식을 제공해준 알브레히트 씨 부부 등. 그 친구들을 소개하는, 애정이 듬뿍 담긴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 책을 쓴 조병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문득 궁금해진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 능숙할 영어실력을 갖고 있는, 적지 않은 외국 여성들에게 프로포즈도 받고 각국의 사람들과 우연히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구가 되어 기꺼이 숙박도 제공받는 눈부신 사교력을 갖고 있는 사람, ‘도대체 이 사람 어떤 사람이야’하고 우선 저자 약력을 뒤져보게도 된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석사졸, 석사논문은 ‘텔레비전 버라이어티쇼에 나타난 문화적 원형에 관한 연구’. 방송개발원 연구원, 광고 프로덕션 조감독, 자유기고가, 극단 기획자, 방송구성작가, 대학 강사, 번역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하고 있는 사람. 92년에는 또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 <나눔 나눔 나눔>과 <내 아버지의 집>과 같은 책을 내고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 그 중간에 그렇게 인도나 유럽 등 세상을 여행한 사람.

  <제 친구들하고...> 책에 있는 글 뿐만 아니라 사진들도 너무나 훌륭해 그곳에 있을 때부터 애초에 책출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 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친구들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위해 찍은 것들이었지, 계획상 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활짝 웃고 찍은 제 사진을 보고 제 오랜 친구들은 이 사람이 네가 맞냐고 묻더군요. 제가 원래 잘 웃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전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교제범위의 폭이 비교적 좁은 편이었죠. 그런 제가 인도에서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으로 평가받으리라고는 제 자신도 정말 몰랐거든요. 웃음이란 것이 다른 사람들의 웃음에서 전염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캘커타에서 만난 잘 웃는 그 친구들 덕분에 말이죠.”

  그는 책의 인세로 십이퍼센트를 요구했다. 그 인세는 여섯으로 나뉘어질 것이다. 이퍼센트는 캘커타 마더 테레사의 집으로, 두 번째 이퍼센트는 인천과 안산에 있는 마더 테레사의 집으로 보내질 것이다. 또 세 번째 이퍼센트는 우리 나라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를 위해, 네 번째 이퍼센트는 배고픈 북한 동포들을 위해, 다섯 번째 이퍼센트는 고아원과 불우청소년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퍼센트는 의약품을 사들고 캘커타에 가기 위한 자신의 비행기삯으로 쓰고 싶다고 조금은 쑥스럽게 밝힌다.

  인세로 십이퍼센트를 요구하는 것은 통상적인 출판관례상 출판사도 이퍼센트의 후원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인들이 일하고 있는 출판사여서 그런 그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모두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책 한 권이 팔리면 육백원이 저에게 돌아옵니다. 그 육백원은 인도에서 쌀 이킬로그램을 살 수 있는 돈이에요. 그게 어딘데요. 저도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 캘커타 친구들 이야기를 써서 얻는 돈은 저 혼자 독차지할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친구들에 과한 책을 펴낼 때 출판사에 인세 십이퍼센트를 요구한다는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갈 겁니다.”

  사실 그는 락카페에 즐겨 드나들기도 하는, 춤을 즐기는데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에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들으면 ‘아니, 어떻게 락카페도 가시나요.’하는 표정이 된다. 그럴 때 괜히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서서히 캘커타의 후광에만 둘러싸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란다. 이제 그 얘기를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캘커타 생활에서 깨달은 크고 작은 미덕을 사람들과 얘기 나누고 싶다. 웃음 뿐만 아니라 고통도 나누는, 그렇게 모든 것을 나누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한 한국인 관광객은 ‘프렘단’에서 사람들이 빨래일 하는 것을 보고 돌아가면 돈을 벌어서 세탁기 몇 대를 기증해야겠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 하더란다. 그러나 그곳 수녀님들은 돈이 와도 절대 세탁기는 사지 않을 거라고 조병준 씨는 확신한다. 전 세계에서 그 구호시설로 들어오는 기부금 중 대부분을 식량과 의약품 사는데 써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세탁기나 수도 펌프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몸으로 체득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몽당 싸리비와 빨래 방망이에 담긴 노동의 신성함, 일이 얼마나 사람을 신나게 하는지 그는 이제 안다. 그래서 그 곳에서의 일은 ‘자원활동’ 이라고도 말하기 뭣한, 자신 스스로를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씨 착한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소박하고 천진하게 고마움과 애정을 전하는 그곳 환자들과 마음의 교류를 하는 일도 크나큰 기쁨이다.

  그러나 그런 기쁨 못지 않게 고통도 크다. 가난이 가난을 낳는 신분제가 아직도 여전한 인도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열악한 의료환경과 무지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사람들을 그저 기본적인 처치만을 해주며 지켜봐야 하는 일은 말 그대로 고통이다. 다리가 굽은 아준, 의사들마저 포기한 그 아이를 매일 아침 마사지한 노력 끝에 끝내 혼자 앉게 했지만 결국 아준이 점차 눈마저 멀게 되자 절망해 하는 스페인친구, 계속 욕창 치료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아이를 무지한 부모가 시골로 데려가겠다고 해서 도리없이 그냥 내줬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눈물 흘리며 그 아이를 찾아나선 나이어린 자원활동자...

  체념하는 법을 이제 알게 된 경력 오랜 고참 자원활동자가 됐지만 가장 최근의 캘커타 생활에서도 여전히 그런 고통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더구나 이제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안계신 캘커타, 정들었던 친구들도 사라진 그곳에서 그는 ‘진공상태’와 같은 막막함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고마워. 네가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었어”라는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고통을 서로 나누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를 더욱 깊게 이해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올해 초 돌아와보니 한국도 마찬가지로 고통의 도가니였다. 아이엠에프 한파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정말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한국 사회는 삭막해져 있었다. 글품으로 먹고 사는 그로서도 적지 않게 타격을 받았다. 그의 글이 실리던 몇몇 잡지들이 폐간돼 그나마 월 백만원 선에서 오르내리던 수입도 뚝 떨어질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이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다소 시비조로 그에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나라에도 도울 사람 많은데 왜 인도까지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도왔느냐.” 그런 사람과 조금만 더 얘기를 나눠보면 같은 민족인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에 대해서도 “우리도 이제 배고파졌는데 그래서 우리부터 먹고 살아야 하는데 뭐하러 북한 동포를 돕느냐”는 논리로 이어지고 만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우리 나라 사람들과 같은 인종주의자들을 보지 못했다”며 다소 비분한 표정으로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제삼세계 사람들을 돕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이백만명에 육박하게 됐다는 실업자들을 위해 한 방송사는 실업기금을 모으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나라에서 구제하지 못한 실업자들을 위해 그 막막한 사정 아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나라 사람들도 나눠야 살 수 있는 삶의 원칙을 잘 알고 있는데, 때로는 조급한 마음에 너무 눈 앞만 보게도 되는 것이다.

  “분명한 건 저 이전에도 캘커타에서 자원활동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한국인들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됐는데, 약 열다섯 명쯤 돼요. 나이가 저 보다 많은 분도 있지만 기간으로 따지면 제가 그래도 제일 오래됐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서로 알게 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다들 캘커타를 그리워하죠. 그래서 한국에서도 한 번 같이 일을 해보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봤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잡히지 않았습니다만 일정한 모임을 갖고 아주 작은 사회복지시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중요한 것은 캘커타에서의 정신을 잊지 말고 살자는 것이었죠.”

  기자와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먼저 약속된 만남의 자리에 잠시 합석하게 됐다. 캘커타에 여행 겸 자원활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에게 여러 도움말을 얻고자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렇게 그는 ‘캘커타정신’의 알을 낳는 한 어미닭이 되어 있었다.

  인도에 다녀온 후 그는 의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지금에 와서 의대에 들어갈 수는 없고 수지침같은 것을 배울 생각이라고 했다. 그 지식은 그가 앞으로 세상을 여행할 때 그 자신에게 보다 다른 친구들에게 더 소용이 될 것이다. 자신의 손을 통해 친구나 주위 지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걸 봤을 때 그것이 오롯이 그의 기쁨으로 돌아올 것임은 물론이다.

  <제 친구들...> 책의 서문에서 그는 말한다.

  “고맙습니다. 제 친구들과 또 친구가 되어 주셔서요. 친구들이 손을 잡으면 뭔가 좋은 일을 세상에 할 수 있답니다...여러분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험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보면 좋은 사람들도 참 많거든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셔서 ”아,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로구나“하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귀를 읽다보면 내게 있는 좋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느라 잠시 두리번거리게도 된다. 그리고 살풋 입에 고이는 미소 한 조각. 그래, 세상은 살만한 것이지.


 

조병준 따라하기

  <나눔나눔나눔>이라는 그의 문화비평서를 보면 각 꼭지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쓴 후의 후일담이 함께 실려 있다. 갑자기 그걸 따라해보고 싶어졌다.

  두 권의 책도 읽었겠다, <나눔나눔나눔>도 대충 훑어보며 인도 이야기만이 아닌 다양한 그의 정신편력도 들여다 봤겠다, 인터뷰를 빙자해 이런 저런 얘기도 충분히 많이 나눴겠다, 글을 쓰는데 때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감동’도 받았겠다, 그러니 그 사람에 대해 주절주절 원고지 사십매 정도로 얘기를 풀어내는 건 사실,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데 적지 않게 애를 먹었다.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두서없이 튀어 나오는 걸 조정하느라 그런 것이다.

  게다가 그가 인터뷰의 달인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런 그가 자신을 인터뷰한 글을 읽고 어떻게 평가할지, 슬슬 신경도 쓰이게 됐다.

  누구만큼 인터뷰기사 잘 쓰기는 포기, 어쨌든 기자의 글에 뭔가 미진함이 느끼는 사람이거나 조금이라도 ‘필’이 온 사람은 그 사람 책 좀 사보시길, 번거롭지 않게 두루두루 덩달아 좋은 일도 하는 셈이 된다고 하니...

작성자한혜영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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