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아요. 미래가 있으니까” > 세상, 한 걸음


“두렵지 않아요. 미래가 있으니까”

광주인화학교 졸업생 김동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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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빠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로 반응한다.
어려운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데 자양분으로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팔자려니’ 생각하고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살아가는 게 그 것. <함께걸음>이 만난 김동희(19, 청각장애) 학생이야말로 고통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은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진 광주 인화학교에서, 절대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싸우며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동희 학생이야말로 격려와 칭찬을 아낌없이 받아도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몸서리치는 일, 저 앳된 얼굴의 학생이 어른들과의 싸움에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끈질기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어도 이를 은폐하려는데 급급한 선생님들, 모든 책임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며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겁이요? 무섭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여기서 지면 여태까지 무시당하고 멸시받아온 상황을 또 겪게 되잖아요.”

하지만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벌이는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 생활지도교사의 폭행과 성추행 등을 참지 못하고 3년 전, 사글세방을 구해 독립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싸울 수 있었지만, 남아있는 친구들과 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팠죠.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을 땐 조금이나마 기대했는데, 우리들을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 지치고,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학교에 남아있을 때 마무리 됐다면 좋았을 텐데... 비록 학교는 떠나지만 동문회 대책위원회에 참여해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거예요”

6살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인화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했으니 잿빛 고향과 같은 느낌일 듯싶다. 이제는 학교도 졸업하게 됐고, 자취생활을 접고 그룹 홈에 들어가 생활하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았다.

“처음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자유롭게 살고픈 마음에 그룹 홈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 자취할 때만 해도 요리를 잘 못해 라면만 끓여먹는 통에 늘 배고팠어요. 오히려 가끔 찾아오는 선배들이 요리를 해줘서 맛있게 먹곤 했으니...(웃음)

그래도 그룹 홈에는 가고 싶지 않았던 게, 몇 시에 밥 먹어야 하고, 들어와야 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우연찮은 계기로 그룹 홈에 들어온 다음 그간의 나태해진 생활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됐어요.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장 좋은 건 누군가와 같이 이야기하며 제가 더 성숙할 수 있고,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닌 누군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즐거워요”

이제는 어엿한 예비 대학생, 그간의 삶도 스스로 가꿔왔지만 이제는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가야 할 시기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지금처럼 교차할 때도 드물 텐데 지금의 심경에 대해 물었다.

“처음엔 학교 선생님이 추천해준 타 지역 대학교에 원서를 넣으려 했어요. 그런데 주위 분들이 지금의 그룹 홈에서 생활하면서 다닐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라고 권유하셔서 그룹 홈에서 같이 생활하는 언니가 다니는 호남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죠. 며칠 후 면접인데 무척 떨려요”

열심히 공부해 어른이 되면 후배 청각장애우를 위해 쓰임 받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그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 상일까 궁금해졌다.

“인화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인권위 분들을 비롯해 경찰관, 시민단체 활동가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도 넓어졌고 많은 것을 배웠어요. 열심히 공부해 저도 어른이 되면 그 분들과 같이 ‘멋있고, 똑똑하고 예쁜’ 여성이 되고 싶어요. 또 한 가지, 또래 친구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가 알아서 처리해주는데, 제 경우 그런 울타리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어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많은 후배들을 도우면서 살 수 있게요”


장애 때문에 배움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이 적어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보니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쉽게 화를 내거나 오해 잘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헤어나기 힘들다는 게 청각장애우를 바라보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 이를 깨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해 자존감 있게 살 거라는 동희 학생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른이 된다는 게 장밋빛 이 아닌 치열하게 살아가야만 작은 것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듯 한 눈치다.

끝으로 물었다.
“행복하세요?”
“안 좋은 상황 때문이었지만 좋은 인연을 쌓을 수 있게 돼 행복했고, 그 분들이 똑똑하게 일처리 한다고 칭찬해 주셔서 더 기분 좋았어요. 가장 행복한건 예전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인터뷰 당시만 하더라도 면접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던 동희 학생이 희망대로 대학교에 합격했다. 하지만 학비가 없어서 움트는 꿈을 포기해야만 할지 모르는 상황이란다.
초·중·고등학교 내내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며 배워온 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은 불합리한 출발선에서 똑같은 경쟁체제로 뛰는 것은 아닐 게다.
아무쪼록 동희 학생이 동등한 상황에서 세상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기를, 그의 꿈대로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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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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