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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2] “장애를 받아들이니까 세상이 달라졌어요”

시각장애우 연극배우 김소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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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연극의 메카인 서울 동숭동, 비가 오려는지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세찬 바람이 불고 있는 도시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을 보면서 사람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멀쩡하게 보고 느끼던 사물이 점차 눈앞에서 사라져 어느 날 깜깜한 어둠만이 남고, 이제 그 어둠만을 벗하며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면, 당사자가 느껴야 하는 절망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김소영 씨를 만나러 가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김소영. 그이는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이 주최해 오월 팔일에서 이십사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서 열렸던 ‘사랑아 사람아’라는. 여성 장애우 결혼 문제를 다룬 연극 중에서 대사를 빌려 자신이 빛을 잃었을 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세상이 어두워지면서 이게 죽음인가 싶더라.”

  그렇게 실명 상태에 이르면서 죽음을 봤다는 김소영 씨. 올해 스물아홉 살인 그이가 가지고 있는 장애는 ‘알피’라는 장애다. 눈의 망막 세포가 죽어 시야가 점점 좁아지면서 나중에는 사물을 볼 수 없게 되는 진행성 장애. 그이가 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꽃다운 나이였던 스무 살 때였다.

  당시 그이는 남들처럼 대학 진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 간 그이는 모의고사 시간에 시험지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당황해야 했다. 그때는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그게 아니었다. 시험을 본 이틀 후 책을 펼쳐들었는데 책의 활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안과에 달려간 그이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는다. “시력 교정이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을 얘기하자면 그이가 알피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은 이미 오래전인 그이 나이 일곱 살 때였다. 야맹증 때문에 찾아간 서울대병원에서 그이는 “이 아이는 알피 장애가 너무 일찍 왔다. 아마 이 애 나이 스무 살이 되면 실명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그이 부모는 이 사실을 숨겨두고 있다가 그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 얘기해 줬다. 하지만 그때는 책을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그이는 이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흘려들었었다. 그랬는데 의사 예언대로 정확하게 그이 나이 스무 살이 되자 장애가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그이는 절망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뿐 완전 실명 상태는 아니었기에 그이는 대입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이의 말을 들어보자.

  “한양예전 도자기 공예과를 다녔어요. 장애 때문에 일학년 때는 맨 앞자리에서 교수님 강의를 들었죠. 그런 내 사정도 모르고 나중에 친구들이 그랬어요. 내가 엄청 공부벌렌지 알았대요. 그래도 일학년 때는 더듬더듬 거리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 정도면 시간은 걸려도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학년이 되니까 책을 전혀 못 보게 되더군요. 내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되는 게 친구를 깊게 못 사귄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눈이 나쁘다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닥친 장애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고, 자존심은 많이 안 내세우는 편인데 부끄럽다고나 할까.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내 장애를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대할까 라는 자괴심도 있었죠.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끝내 내 장애를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그이는 스물두 살 때 사회라는 벌판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그이 말 대로 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은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이는 자신의 장애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이는 얼마 안가 취직을 포기했다. 하지만 직업을 갖겠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고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이는 용기를 냈다.

  “그래, 어렵겠지만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대신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자.”

  이렇게 굳게 마음먹은 그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희망의 문을 노크했다.

  그이가 이 무렵 가지고 있던 꿈은 하나는 성우가 되는 거였고, 또 하나는 고아원 원장이 되는 것이었다.

  먼저 그이가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그이 자신이 성우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그이 생각에 방송국 성우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고, 대사를 모두 외워서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비록 장애 때문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신도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외워서 성우로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이는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오개월여를 학원에 다녔다.

  그런 그이에게 성우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어느 날 그이는 엠비씨 라디오 단막극 제작 현장을 견학하게 됐다. 스튜디오 밖에서 하나의 극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그이에게 방송국 피디가 불쑥 “이왕 견학 왔으니까 한 번 직접 해보라”고 대본을 건네줬다.

  그 순간 그이는 긴장했다. 대본을 잘 소화하면 혹시 꿈이었던 성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긴장한 것이 아니라 과연 대본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에 애한 염려 때문에 긴장했다.

  피디가 그이에게 준 시간은 오 분이었다. 그 오 분 동안에 그이는 대본 한 페이지를 겨우 읽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이는 녹음실로 들어섰다. 녹음이 시작되자 그이는 간신히 자신이 읽은 두 줄 대사를 말로 옮겼다. 그 다음은 대사를 읽은 게 없어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 그이의 내막도 모르고 옆에 앉은 성우가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요”라면서 다음 대사를 읽어줬다. 그이는 시키는 대로 다음 대사를 말했다.

  그리고 난 뒤 또 침묵, 결국 그이는 “더 이상 못 하겠어요”라고 말한 다음 녹음실을 나와야 했다. 방송국 문을 나서면서 그이는 사람들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이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는데, 다가온 기회를 잡을 수 없다니,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이는 그 다음날부터 다니던 연기학원도 그만두고 방안에 칩거했다.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던 그이는 놀랍게도 다시 화장을 시작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이의 두 번째 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나에겐 그래도 두 번째 꿈이 있으니까.”

  이렇게 자신을 위로한 그이는 집 근처 서울 봉천동 상록보육원이라는 고아원을 찾아갔다. 이때 그이 꿈은 고아원을 차리겠다는 것이었지만 굳이 고아원 원장이 아니더라도 보육사로 평생을 고아원에서 살아도 좋다는 생각을 그이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그이이다 보니 그이는 일주일에 무려 오일을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거의 고아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아이들과 놀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들이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는 데는 난감했던 것이다. 그이는 그 때마다 “네가 읽어 봐. 선생님이 봐  줄께”라고 말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그랬는데 결정적으로 원 보육사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이는 고아원에서의 자원 활동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집에서 낱말카드를 만들어 가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지만 글씨가 전혀 보이지 않다 보니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다시 집안에 틀어박힌 그이, 이제 그이에게 남은 것은 온통 먹구름뿐인 어둠뿐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딱히 실명 때문이 아니라 그이는 삶 자체에서 어둠을 느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이는 최소한 자신이 가졌던 두 가지 꿈 중 한 가지 꿈은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 꿈들은 모두 산산히 부서졌고,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그이는 며칠을 울면서 뼈속 깊이 절망해야 했다. 실명보다도 이제 이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상실감이 그이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포기하게 했다.

  “집에 틀어박혀서 처음에는 음악만 들었어요. 클래식 세트 사다 놓은 것을 계속 들었죠. 처음에는 하루 종일 들어도 지겹지 않더니 며칠 지내다 보니 음악도 더 이상 못 듣게 되더라구요.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었죠. 혹 가다가 친구들 전화 오면 내가 나중에 전화 걸게. 그러면서 끊고....

  친구들 만나면 분명히 내가 실수할 텐데 그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지고, 나중에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 그러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엄마가 슈퍼에 가서 뭐 사오라고 하면 싫어 엄마가 갔다 와 그러면 끝이고, 그렇게 집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 박혀 지내면서 이제 어떻게 죽을까, 죽는 생각만 했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가 이제 뭘 하겠어, 죽어야해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자학 하면서 높은데서 뛰어내릴까, 아니면 약을 먹을까, 그러다가 백합이 독성이 있어서 꽃을 밀폐된 방에 많이 쌓아두고 자면 죽는다는 얘기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아름답게 죽어볼까 생각하고 수면제를 먹고 백합을 방에 쌓아 놓고 잠을 자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까지 했죠. 그랬는데, 못 죽은 건 가족이 생각나서였어요. 내가 만약 자살을 하면 부모님이 손가락질 받을 텐데, 자식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자살을 했을까, 왜 죽었대? 그러면서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 죽을 수 없었지요.“

  그이가 이렇게 죽음 같은 깊은 절망상태에서 지낸 시기는 정확하게 일년 사개월이다. 이 시기 그이에게는 해가 뜨고 지는 게 전혀 상관이 없었다. 무덤 속처럼 적막한 방안에서 그이는 실어증까지 걸린 상태에서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바뀌어 구십삼 년 삼월의 어느 하루, 지방에 살고 있던 언니가 그이 방문을 노크했다. 언니는 그이에게 “너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여기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열심히 산다. 너는 왜 그러느냐”는 핀잔과 함께 잡지 스크랩 기사를 내밀었다. 언니가 내민 잡지 기사는 ‘낮은데로 임하소서’라는 영화로 유명한 영화배우 이영호 씨를 다룬 기사였다. 기사는 이영호 씨 역시 알피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이는 처음에는 그 기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띄엄띄엄 읽어는 봤지만 자신과는 너무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며칠 후 문득 이영호 씨가 기사에서 “세상에는 알피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때까지 이 세상에서 알피라는 장애는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그이로서는 이 말이 충격이었다.

  “그래, 이영호 씨를 비롯해 알피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고 있다면 나도 그들처럼 살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그이는 언니에게 부탁해 이영호 씨를 만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그이가 영화배우로 활동했다가 실명한 후 지금은 연극 연출과 라디오 진행자로 일하고 있는, 이영호 씨를 만난 건 그이 삶에 있어서 유일한 행운이었다.

  “선생님이 저를 시각 장애우 복지관에 데려 가셨어요. 나는 그런 게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복지관에 가니까 점자도서와 녹음도서가 있었어요. 그 때부터 녹음도서를 빌려 듣고 다른 약시와 시각장애우들도 만나보고, 컴퓨터도 배우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그이의 죽음 같았던 삶은 아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바깥 외출도 자주 하게 되면서 그이는 세상의 상쾌한 공기를 맛보게 되고, 더 이상 자신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책도 비록 녹음도서지만 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이는 연극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구십삼 년 팔월 이영호 씨가 주도해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우 극단 소리가 창단됐다. 이 극단에 그이는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저는 제가 연극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도 무대에 선다는 게 두려움 보다는 너무너무 좋은데, 그 이유는 단순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죠.”

  이 해 십일월 그이는 극단 소리가 올린 ‘금관의 예수’라는 연극에서 수녀 역을 맡아 처음 무대에 선다. 그리고 나서 육개월 간격으로 그이는 꾸준히 무대에 서 오고 있다. 그 동안 그이가 출연한 연극은 ‘헬렌 빛을 잡아라’, ‘유리동물원’, ‘개같은 날의 오후’등 여섯 편이다. 이번에 공연한 ‘사랑아 사람아’가 그이가 무대에 선 일곱 번째 작품인 셈이다.

  그이 말에 따르면 그이는 일곱 편의 작품 중에서 세 번째 공연작인 ‘헬렌 빛을 잡아라’가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연극에서 그이는 설리번 선생 역을 맡았는데 작품 자체가 시각장애우 얘기를 다룬 연극이었기 때문에 그이가 애착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연극 외에도 그이는 지금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되는 이비에스 교육방송 라디오 장애우 대상 프로그램인 ‘사랑의 한가족’에 고정 출연해 나레이터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성우가 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꿈의 반은 이룬 셈이 됐다.

  꿈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이는 또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아닌 소박한 꿈. 그이는 그 꿈의 실체를 이렇게 들려준다.

  “저의 최대의 꿈은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삶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조용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 공간에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면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그러면 편해서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겠죠. 그렇게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이는 연극배우라는 말이 쑥스럽다고 말한다. 이번 작품까지 작품 일곱 편을 소화한 그이이고 보면 이제 자신을 연극배우라고 소개해도 괜찮을 텐데 그이는 겸손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묻자 그이는 “시력이 더 나빠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면 그때도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그이는 연극배우이다. 그것도 우리나라 뿐 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우 연극배우인 것이다. 그에 걸맞게 기회만 닿는다면 계속 무대에 서겠다는 것이 그이의 야무진 각오이기도 하다.

  이런 그이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이번에 ‘사랑아 사람아’를 무대에 올린 장애인문화예술진흥원에서 내년에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극단 ‘소리’의 간판 배우인 그이는 영화가 만들어지면 출연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래서 내년에는 사람들이 스크린에서 그이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성급한 기대를 해본다.

  이렇듯 그이는 장애를 가지고 난 후 팔년이라는 세월 동안 심한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장애우로, 연극배우로, 방송인으로 우리 곁에 당당하게 서 있다. 그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이 말에 따르면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자신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늘의 그이는 있다.

  “저는 세상에 나오면서 내 장애를 받아들였어요. 이젠 사람들을 만나면은 피하지 않고 제가 눈이 나쁜데 이렇게 좀 해주세요, 라고 얘기하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무것도 아닌데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인정해서 받아들이고 사는 게 무엇 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작성자이태곤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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