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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2] “사람들은 만나는게 즐거워요”

태양생명 보험대상 수상한 이현숙 씨

본문

  지체 장애가 있는 장애우들이 취업을 할 때 가장 부담을 갖는 직종 중 하나는 아마 세일즈일 것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심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우들에게 세일즈는 거의 불모지였는데 한 보험회사에서 올 한해 가장 판매실적이 좋은 사원은 다름 아닌 지체장애우였다.

  우연한 기회에 교통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에 의족을 끼고 생활하는 이현숙 씨가 IMF로 보험가입률도 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릴 수 있었는지 그 성공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교육가 집안에서 태어난 이현숙(45) 씨는 어려서부터 산수과목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 이미 주산 삼급을 따 학교대표로 교외 대회에도 여러 번 출전한 경력도 있다. 또 현숙 씨는 운동도 좋아했다. 특히 달리기를 잘하는 말괄량이였다고 하는데 그이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이학년때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부터다. 그 때 다리 한쪽 무릎아래를 절단해 의족을 착용하게 됐다.

  “세상사람들은 다 둘러봐도 나만 장애우인 것 같았어요. 그 당시엔 장애우가 드물었죠. 지금은 교통사고로 장애우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때는 곰보, 째보, 언청이등이 전부였죠.”

  그 당시 현숙 씨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 즈음이었기에 특히 달라진 자신의 외모에 더 예민해졌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기에 학교 가기도 싫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그저 죽고만 싶었다.

  “주산대회에서 받은 상장도 모두 다 찢어버리고 가족들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공동묘지에 올라가서 귀신아 나 데려가라 하고 밤새 앉아 있기도 했어요.”

  결국 그이는 다니던 중학교마저 중퇴하고 말았다.

  그 때부터 현숙 씨는 늘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전도를 해서 교회에 따라가 보고는 기도하고 찬송하는 게 그이의 낙이 돼버렸다. 그리고 장애를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인 이상 소중하고 훌륭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죽는다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성격도 다시 전처럼 쾌활해졌다.

  어느덧 이십대에 접어들면서 현숙 씨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러던 중 신문에서 구인광고를 하는 것을 보고 삼영금속을 찾아갔다. 그곳은 장애우만 채용하는 곳으로 악세사리를 만드는 공장인데 하남시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큰 회사였다. 그이는 삼영금속에 취직을 해 열심히 일해 소장님의 눈에도 들어 반장일까지 맡아 보았다. 그리고 사장님의 중매로 한 남자를 소개받아 삼년 후 결혼까지 했다.

  남편도 어려서 소에게 걷어차여 척추를 다치고 다친 부위를 잘라내 다리 한쪽이 약간 짧은 지체장애우였다. 그러나 남편은 이해심이 많고 시집 식구들도 다들 좋아 현숙 씨는 결혼생활에 만족하며 아이도 둘이나 낳고 살았다.

  그러나 남편 혼자 벌어서 먹고 살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그이도 집에서 목걸이 구슬 꿰는 일이나 단추구멍 뚫는 일 등 부업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좀 자라자 그이는 호떡장사를 시작했다. 제법 장사가 잘 됐지만 한 철 장사였기 때문에 그이는 겨울이 지날 무렵 업종을 바꿨다. 큰 자본없이 돈 벌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현숙 씨는 학교근처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하던 덤블링 장사가 눈에 띄었다.

  문제는 다른 덤블링 장사를 제치고 꼬마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현숙 씨에겐 장사꾼으로서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서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현숙 씨에게로 와 덤블링을 타다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이는 다시 한 번 직종을 바꾸었다. 당시 현숙 씨 남편은 개인사업을 하다 실패를 해 그이가 뭔가 해서 먹고 살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현숙씨는 보험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인데 이 때 그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장애우가 보험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어떻게 보험일을 할 결심을 했냐고 묻자 그이는 오히려 장애우이기 때문에 보험일하는 게 더 쉬웠다고 말한다. “보험은 저같이 교통사고 입은 사람에게 참 좋은 직업이에요. 친구나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봐라, 나처럼 언제 사고를 당해 장애우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건강할 때 보험 하나 들어둬라.”

  여유있게 웃으며 당당하게 말하는 현숙 씨에게서 신뢰감을 느낄 수 있었던 탓인지 그이를 아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보험에 가입했다. 이렇게 이현숙 씨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이용할 줄 아는 용기와 개척정신을 가졌던 것이다.

  사 년 전에 차를 구입해 이제는 그이도 당당한 오너 드라이버지만 보험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모든 방문지를 버스나 전철을 타고 걸어 다녀야만 했다. 의족을 착용한 다리로 많이 돌아 다니다 보면 땀도 나고 절단한 부위로 생채기가 나기도 하는데 그이는 한 달에 신발 한 켤레씩을 바꿔 신어야 할 정도로 걸어 다녔다. 그이가 하도 땀을 많이 흘리니까 보험회사 지소장이 그이를 위해 특별히 샤워장을 만들어 줄 정도였다.

  “제가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까 일 끝나면 바로 퇴근을 했죠. 그러다 보니 다른 사원들과 업무 마감을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소장님이 이 사실을 아시고 사무실에 샤워장을 만들어주신 거예요.”

  그리고 그이가 기반을 닦기까지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하남시장 부부가 바로 그들이다.

  그이는 하남에서 제일 큰 교회를 다니는데 한 번은 남편 회사가 어렵게 되자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혼자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뒤에서 그이가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하남시장의 부인이 그이의 기도소리를 듣고 감동을 했는지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그이의 뒤를 계속 따라와 그이가 사는 집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은 벌써 칠년째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구십오년 지방자치 선거에 출마한 시장을 위해 그이는 직접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시장 역시 십여 년 전부터 나그네교회에 매달 방문해 청소도 하고 밥도 사주며 또 못배운 사람들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다니는 모범학교에서 직접 공부도 가르치는 등 소외계층을 위해 활동한 점을 현숙 씨는 잊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워낙 현숙 씨는 하남시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보험일을 하느라 이곳 저곳 다녀 그이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결국 시장님이 당선이 됐고 시장님 내외 뿐만 아니라 그 친척들도 그이에게 보험을 들어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이는 보험일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면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사원들간의 친목이다. 특히 보험경력이 오래된 그이는 회사에서도 다른 사원들을 살피고 챙기는 일도 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친목도모 방법은 힘들게 일하고 흘린 땀과 피로를 사우나에 가서 푸는 것이다. 그런데 그이는 사원들하고 사우나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소아마비 장애우로 알고 있는 사원들에게 자신의 장애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이는 늘 사우나장까지 같이 갔다가 핑계를 대고 탕에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와야 하는 남모르는 아픔도 있었다.

  또 현숙 씨처럼 노련한 생활설계사도 사기를 당해 고스란히 자신의 돈을 채워넣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일을 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어요. 한 번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칠십만원짜리 보험을 들었어요. 그 날 저녁 그 사람이 제거 호출을 해서 전화를 했더니 급한 일이 생겼다며 수금한 거 있으며 이백만원만 빌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돈을 내일모레 준다고 해서 저는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죠.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돈을 가지고 날라 버린 거예요.”

  물론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이런 일을 당하면 보험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게다가 매일 아침 여덟 시까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시어머니 식사를 챙겨 드리고 나서 몇십 군데 되는 곳에 일납수금하러 나갔다가 수금을 마치면 아침 아홉 시 반. 사무실에 들어와 오후 시간까지 업무를 보고 밤 두 시쯤 퇴근해 또 다시 빨래며 청소, 반찬을 장만하고 새벽 한시쯤 잠이 든다. 이런 나날이 몇 년째 지속되자 그이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왔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이렇게 칼같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긴장하며 사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사람들을 고정적으로 만나고 많이 걸어야 하는데 차가 없었을 때라 절단한 다리에 너무 무리가 가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보험일을 잠시 그만 두고 식당을 차렸죠.”

  요리사와 동업을 해 식당을 차렸는데, 처음 몇 달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신경쓸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이가 빠져나간 보험회사는 해약하는 사람이 늘어나 살림이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간간이 전해 들려 왔다. 결국 회사에서도 다급해졌는지 소장이 직접 그이를 찾아와 설득을 했다. 그이 월급이 구십만원이면 십만원을 더 채워 일백만원을 주겠다고 하고 소장님 차로 직접 드라이브도 하면서 그이를 계속 설득했다. 현숙 씨도 한 육개월간 식당일을 해보니 처음에는 마음 편하고 좋았던 일도 어느새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우 몸으로 배달가는 것도 여간 힘들 일이 아니고 간혹 요리사가 나오지 않으면 식당을 운영하기도 곤란했다. 결국 현숙 씨는 그이 적성에는 보험일이 더 맞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한동안 그이는 꾸준히 일을 해 서른 두평짜리 아파트도 마련했다. 그런데 그이는 노후가 걱정이 됐다. 보험이란 게 벌 때는 좋지만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남편의 직업도 안정적이지 못한 현숙 씨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회사를 찾던 중 지금 다니는 태양생명으로 이직하게 됐다. 그 당시 퇴직금이 있는 회사는 태양생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태양생명은 그이가 전에 일하던 회사에 비하면 규모도 적고 지소도 적어 이름하나 믿고 가입하는 보험시장이라는 곳에서 큰 지장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이에게는 그 당시 안정된 직장이 무엇보다 필요했기에 과감하게 이직을 했다. 지금도 거기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이가 직장을 옮기고 한동안은 많이 힘들었다. 높은 실적을 올리던 현숙 씨가 나간 뒤 어려워진 이전 회사의 과장이 모략을 해 본의 아니게 불편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이는 ‘전에 있던 곳이 백화점이라면 이제 내가 일하는 곳은 구멍가게라 할 수 있다. 백화점은 백화점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구멍가게는 구멍가게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찬찬이 설명해서 오해를 풀어나갔다. 그런 오해가 풀리자 회사를 이전한 것이 그이에게는 더 큰 활력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그이의 경력만큼 이제 새로 시작하는 태양생명에서 뭔가 이루어보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언젠가 연도대상 시상식을 보고 나도 저기에 한 번 서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연도 대상 받는 걸 목표로 정했죠.”

  작은 보험회사에서 새로 고객을 개척하기 위해서 그이는 사람들에게 그이가 일납수금을 못가게 되면 대신 그이 돈으로 채워주겠다는 각서를 썼다. 보통 보험하는 사람들이 봉사품으로 뭘 갖다주는 일은 흔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대신 메꿔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들어보는 태양생명이름 보다는 현숙 씨의 각서를 믿고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그이는 장애로 인해 중퇴한 중등학교 동창회에도 나가 동창들을 상대로 보험판매도 했다. 어찌보면 부잣집에 시집가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보험 얘기를 꺼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험업으로 승부를 걸어보기로 마음먹은 그이로서는 “너희들 기반 잡았는데 나 좀 도와주면 안되나”는 말을 용기있게 전했고 그의 당당한 직업의식을 동창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연말에 한 해 동안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연도대상을 타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보험회사에서도 기를 쓰고 판매전략을 세우기 때문에 뭔가 그이만의 독창적인 것이 필요했다. 그 때 그이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다름 아닌 봉사정신이다.

  “좀 더 수준높은 세일즈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마음이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다니는 태양생명은 곧 저의 얼굴이기도 하기 때문에 회사 신입사원을 위해서 제가 새로 개척한 일을 신입사원에게 넘겨주기도 했죠.”

  그리고 미사리에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공동체를 찾아 과일도 사 가지고 가서 장애우들과 어울렸다. 해맑게 그이를 맞는 장애우들을 보고 앞으로는 돈이 있는 사람들도 데리고 가서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다음부터 그이가 직접 운전해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그 시설을 찾았다. 그 곳을 가고 오면서 우리도 언제 이렇게 장애를 입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후원도 하고 보험에도 가입하라고 권했다. 담배값 조금만 줄이면 가능하다고 설득해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험가입을 따낼 수 있었다.

  차츰 그이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원래 무척 급한 편이었는데 그이는 계약하는 그 절차를 겪으면서 많이 누그러지고 약속을 생명같이 지키는 좋은 습관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또 천성적으로도 그랬지만 사람들과 자신이 가진 자그마한 것들을 나누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이는 정기적으로 기도원에도 다녀오는데 그 피곤한 와중에도 정육점을 하는 집에서 급하게 배달가야 하는데 차가 없다고 하면 서울까지 가서 배달해주기도 한다. 한 번의 보험 가입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보험가입자를 이웃처럼 아끼고 도운 것이다. 자연히 회사 이름보다 이현숙이라는 이름 석자를 보고 그이의 인격을 믿고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래서 올해 이현숙 씨는 당당하게 그이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올해 그이의 연봉은 자그마치 일억원이나 된다. 힘겹게 이룬 만큼 그 기쁨도 남다를텐데 현숙 씨는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 동안 제가 이 일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의 덕분이죠. 또 건강이 허락된 것도 그렇구요. 이제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보낼 거예요. 처음부터 목표를 이룰 때까지만 봐달라고 가족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었거든요. 그 동안 일이 바빠 늘 집에 늦게 들어간 것이 가족들한테 항상 미안했어요. 특히 아이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아이들 다 잠들었을 때 들어가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죠. ‘엄마, 너 잠들기 직전에 왔다’는 거짓쪽지를 써놓기도 했는데 늦게까지 잠 안자고 기다리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는 일납을 원납으로 돌릴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붙는 보험일을 소홀히 하겠다는 얘긴가? 그건 아니다. 그이에겐 새로운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오천 평 정도 되는 전원주택을 지어서 집 안에 수영장도 짓고 대중목욕탕도 짓고 말도 타고 싶어요. 저는 몸이 불편하다보니 대중목욕탕에 잘 못가거든요.” 

  오천평짜리 전원주택에서 수영도 하고 말도 타고 싶다는 현숙 씨의 조금은 꿈같은 목표가 이상하게도 참 소박하게 들린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동화같은 이야기여서일까?

  누구나 목표를 갖고 사는 건 아니다. 목표가 있다 해도 그 목표가 현실 가능성이 없는 꿈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제 목표를 다 이루었으니 현숙 씨가 그냥 하는 얘기겠지하고 여겼는데 “일납을 월납으로 돌리는 대신 고객에게 저금통을 하나씩 사주고 매일 전화를 걸어 돈을 넣게 할 것”이라는 현숙 씨의 말에 그냥 내뱉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남은 목표는 기한을 두고서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그이가 늙어 더 이상 보험일을 못할 때까지 느긋하게 여유있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험 일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니 그리 조급하게 마음 먹지 않고 즐겁게 할 겁니다.”

  끝으로 그이에게 보험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어봤다. “안되는 일이 되게 하는 직업이죠. 보험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고스톱치고 술 마실 일도 많이 생겨요. 그 때 마다 않고 어울려야 겨우 보험하나를 들 게 할 수 있죠. 그러다보니 배우자는 하룻밤 빌려줘도 한 번 체결한 보험은 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안되는 일을 되게 하는 일, 이 한 마디에 자신의 일에 대한 이현숙 씨의 철학과 애정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이현숙 씨는 누군가가 보험일을 하는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조차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웃에게 보험 하나 들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그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베풀지 못하며 살아왔는지 한 눈에 알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신의 일에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인격까지 걸고 일하는 이현숙 씨의 모습이 참 멋있어 보인다.

작성자노윤미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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