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에 놀아나는 국제결혼, 중개방식 바로 잡아야“ > 세상, 한 걸음


"상술에 놀아나는 국제결혼, 중개방식 바로 잡아야“

아름다운재단 ‘공감’ 소라미 공익변호사

본문

‘100% 후불제’,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철저한 관리’, ‘준비된 아가씨’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들이 붙인 위와 같은 현수막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경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업체들은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순종적󰡑이며, ’종교 때문에 이혼은 생각도 못하며‘, 게다가 ’늘씬해서 2세 체질도 개선할 수‘ 있고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2세 교육에도 상당히 유리하다‘고 광고한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결혼을 알선하겠다는 것인지, 애 낳고 말도 잘 듣는 상품을 팔겠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업체들은 한술 더 떠 동남아시아 여성과 결혼하면 ’행복한 가정‘이 저절로 될 것처럼 떠벌린다.
그리고 업체들은 장애우도 ‘환영’한다며 동남아시아 여성과는 쉽게 결혼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때문에 장애가 있는 남성들 중에서 국제결혼에 막연한 호기심이 있는 이들도 많다.
결혼은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개인이 하는 선택이다. 국제결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혼 알선 업체가 상술로 이러저러한 환상을 부추긴다면 문제가 좀 다르다. 환상은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지난 7월, 여성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을 침해하는 문구를 남발하는 국제결혼알선 업체들을 규제해 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를 작성한 아름다운재단 소라미 공익변호사에게 국제결혼의 허와 실을 들어봤다.

쉽게 결혼할 수 있고, 부자 될 수 있다는 환상 부추겨

함께 : 국제결혼 알선 업체들이 하는 광고를 모니터했다고 들었다. 어떤 기준을 세워 고민하고 활동했나.
소라미 : 광고 문구중에서 무엇을 문제라고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가 국제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 과정에 상대방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은 줄여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현재 국제결혼 과정 때문에 생기는 여성들의 인권침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제결혼으로 맺은 가정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홍보물이 다 부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광고 문구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듯한 문구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제기했다.
함께 : 거부감이 들 정도로 인권침해가 심한 광고들을 무가(無價) 신문이나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광고를 규제할 방법이 없나.
소라미 : 광고물, 현수막 등을 단속하는「옥외광고물등관리법」이 있지만 실효성 없는 법이다. 지자체에서 가위를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불법적인 광고물은 도처에 널려있다.
함께 : 베트남에 직접 가서 현지 조사를 했던데, 베트남 상황은 어땠나.
소라미 : 국제결혼을 하려는 여성들 중 상당수는 가난하다. 그리고 한국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성공신화로 생각하는 여성들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이 이 환상을 더 부추긴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국제결혼을 할 여성들을 모집해 관리하는 체계가 잘 되어 있다. 모집책들은 마을 곳곳까지 돌아다니면서 여성들을 모은다. 그리고 마치 다단계처럼 윗 단계들까지 치밀하게 연결해 있다.
베트남에 간 한국 남성들은 주로 호치민시나 하노이 등 대도시서 맞선을 보고 결혼 하는데, 한 번 맞선 볼 때 1백~2백여 명을 한꺼번에 만난다. 남성들은 보통 10~20명의 여성들 중에서 한 두 명을 추려내는 방식으로 맞선을 본다. 이렇게 찍어서 마지막으로 열댓 명을 뽑는다. 그 때서야 여성들은 남성의 간략한 신상정보를 받는다. 업체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주는 시간은 겨우 한 두 시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대규모 맞선이 가능한 것은 모집책부터 맨 윗 단계까지 그물망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맨 윗 관리자는 여성을 수백 명이나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1~2백 명은 우습게 동원한다.
정해진 시간에 배우자를 골라야 하는 남성들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횟수가 거듭되면 누가 누군지 구별도 못하고 찍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이렇게 상품을 고르는 듯한 경험을 한 남성과 일방적으로 선택을 당한 여성의 경험은 결혼 후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함께 : 여성들이 맞선을 위해 몇 달씩 공동생활을 한다던데, 베트남은 어떤가.
소라미 : 맞선을 보려는 대부분 여성들이 공동생활을 한다. 보통 대도시에서 맞선을 보기 때문에 맞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골에서 왕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맞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생활하는 환경이 많이 열악했다. 현지 업체가 조사단에게 3~4평짜리 숙소를 보여줬는데, 업체는 거기서 열 명 정도가 생활한다고 전했다. 3~4평은 열 명이 눕기에도 좁은 공간인데, 방 안에는 트렁크가 20개씩 있었다. 열 명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성들이 선택 받았을 때 상대 남성이 싫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업체는 여성이 공동생활을 한 숙식비용을 남성에게 받는다. 그런데 선택되지 못하면 여성이 내야 하는 빚이 된다. 공동생활이 길어지면 그만큼 경제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여성들은 남성의 선택을 거절할 수 없다. 어찌어찌해서 1년 넘게 뽑히지 못하면 경제적인 부담을 견디지 못해 다른 여성들이 기피하는 남성에게 지원하는 여성도 있다고 한다.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온 여성을 보호할
안전망 필요해
함께 : 결혼은 현실이라고들 한다.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 때문에 결혼 후 서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어떤 피해들이 있나.
소라미 : 국제결혼해서 잘 사는 부부들도 많다. 상담소나 단체가 내게 의뢰하는 상담들은 법률 지원을 원하는 사례들이라 더 심각한 경우들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여성이 가정폭력 때문에 이혼하면 한국에서 살 수 있는지, 또는 이혼하면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를 묻는 상담이 제일 많다. 내가 받은 상담 사례를 보면 남성들이 아내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외국인 아내가 언제 도망갈지 계속 걱정하고 의심한다. 그래서 아내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심지어는 한국어 배우는 것도 꺼린다. 외부활동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본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를 끝까지 선택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에게 한국은 가족도 친구도 없는 생면부지인 곳이나 다름없다. 남편과 다정다감하게 소통하면 덜 외로울 텐데, 언어 때문에 말도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도 많이 다른데다가 하루아침에 며느리와 아내 노릇을 하라는 요구는 쏟아지고, 외부와 소통도 단절되니 얼마나 숨이 막히겠나. 상담을 하다보면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는 구조들이 첩첩산중처럼 있다.
함께 : 만약 국적 취득 전에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해야 한다면, 이 여성은 어떻게 되나?
소라미 :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남편의 잘못으로 여성들이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는 문제가 계속 생겨서 작년에 국적법을 개정했다. 개정 내용은 한국 남성이 잘못해서 하는 이혼이라는 점을 여성이 입증하면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다.
함께 : 국제결혼해서 온 여성들은 한국말도 못하고 어떤 법이 있는지도 모를 텐데, 한국 상황에 훨씬 밝은 남성의 잘못을 입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나?
소라미 : 이 여성들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고 관련한 정보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처지다. 그러니 사실상 국적을 안 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송하려면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는데, 상담할 때 만난 여성들은 빈털터리였다. 따라서 개정한 법이 실제로 효력이 있으려면 피해를 받은 외국인 여성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제결혼,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함께 : 이러한 국제결혼이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에만 있는 일인가, 다른 나라에도 있나.
소라미 : 베트남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대만이나 베트남에 사는 화교 남성과 국제결혼을 많이 해왔다. 여기에 한국이 후발주자로 나서면서 그 체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잘 발달한 거래망이 업체를 받쳐주고 있으며 그 과정에 이윤이 많이 남는다고 하니 여기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도 과거에 일본 남성과 국제결혼하려는 여성이 많은 시기가 있지 않았나. 국제결혼뿐만 아니라 가사도우미나 호스피스에 지원하는 가난한 동남아시아 여성들도 많다.
함께 : 말 그대로 생면부지인 곳에 와서 적응해야 하는 여성들을 보호해 줄 현실적인 정책은 없나.
소라미 : 국제결혼 중개업 자체를 관리 감독할 법은 없다. 국내에서 결혼중개업은 자유업이고 거기서 피해 받은 사람들이 찾는 법이 「소비자 보호법」이다. 만약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수수료를 낸 남성이 계약에 있는 서비스를 못 받았다면 이 법에라도 호소해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결혼해서 온 외국인 여성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거의 없다.
함께 : 여성가족부나 복지부도 상황을 알 텐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없나
소라미 : 정부도 문제는 알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관련법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함께 : 다른 나라에서는 국제결혼 중개를 어떻게 규제하고 있나.
소라미 : 미국에서 성행하는 국제결혼 방식 중에 ‘우편주문배달신부(Mail Order Bride)’라는 것이 있다. 우편주문배달신부는 동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의 여성을 인터넷으로 보고 선택해 결혼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폭력 전과가 있는 남성들이 이 방법을 악용해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2003년에는 우편주문배달신부로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 2명이 남편에게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수사 결과 남성들이 모두 가정폭력 전과자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성적파트너를 주기적으로 바꾸는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미국은 남성의 전과를 조회해 상대 여성에게 제공하고, 외국인 배우자의 비자 발급을 최대 3회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혼중개 관련법을 제정했다. 결혼은 사생활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는 막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함께 : 현재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들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이윤을 남기는데 급급한 것 같다. 그러니 혹시 국제결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국제결혼의 허와 실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소라미 : 동감이다. 국제결혼에는 참 많은 것들이 녹아있다. 국제결혼은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산물이기도 하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여성들을 이용해 가부장적인 것을 더 견고하게 하기도 한다. 어쨌든 현실에서 무엇부터 바꿔나갈 수 있을까, 고민 해야 한다.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국제결혼 중개 방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업체들은 여성들에게는 국제결혼하면 지금 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하고 있으며, 남성들에게는 말 잘 듣는 아내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부추겨 ‘나도 한 번 돈 모아서 해볼까’하는 잠재적인 수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수요를 차단하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제결혼이 성행하는 정부간 협력이 필요하다.

글 사진 최희정 기자


내가 받은 상담 사례를 보면 남성들이 아내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외국인 아내가 언제 도망갈지 계속 걱정하고 의심한다. 그래서 아내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심지어는 한국어 배우는 것도 꺼린다. 외부활동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본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를 끝까지 선택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작성자최희정 기자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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