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마주보는 작업 제 몸과의 화해였어요" > 세상, 한 걸음


"몸을 마주보는 작업 제 몸과의 화해였어요"

특집 Ⅱ 표지모델 김지수 씨의 촬영 소감

본문

머리로는 장애가 부끄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막상 장애가 있는 몸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편견과 낯설은 몸에 쏟아지는 시선 때문.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감춰져왔던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은 곧 이러한 편견과 시선에 맞서 싸우겠다는 전쟁 선포와 다름없는 일이다.

이번호 표지 사진 모델 김지수 씨 역시 이 때문에 이번 작업을 하기 전은 물론이고 마치고 나서도 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단다. 표지사진 촬영 후 김지수(36, 지체1급) 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표지 사진 촬영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전 이번 작업이 제 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스스로 제 몸을 마주보고 인정하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사회 통념상 아름답지 않은 몸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제겐 그동안 저를 지탱해준 고마운 몸이거든요.

허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돼 소아마비 장애가 생겼어요. 이후 성장하면서 장애가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허리도 그렇게 자라면서 조금씩 휘기 시작했죠.
어찌 보면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제 몸을 망가뜨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척추를 바로 펴는 수술을 받느라 누워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거든요.

수술까지 미루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나.

수술을 받는 대신 남들보다 늦었던 공부를, 직장을, 독립을 그리고 꿈을 선택했죠. 스물일곱살 때 가족들이 마련해준 돈 4천만원으로 수술 대신 ‘독립’을 했고, 서른두살 때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꿈을 위해 수술을 또 접었거든요.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동안 제 척추는 어깨뼈와 골반이 맞닿을 만큼 휘어버렸어요. 글을 쓰다보면 오래 앉아 있는 일이 많은데, 휘어있는 척추 때문인지 남들의 서너배는 몸이 고달픈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그렇게 휘어진 등과 허리가 안쓰럽고 미안해요.

어릴 적부터 ‘굵고 짧게 살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그건 오만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내 꿈을 위해 갈 길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굵고 짧게 살겠다’는 건, 예술가들이 꿈꾸는 ‘요절’처럼 들린다.

그런가요? (웃음). 좀 다른 게 있다면 사실 제 주변엔 나이든 장애우가 없었어요. 제가 어릴 땐 장애우를 만나는 것도 드물었지만, 제가 아는 사람들도 서른이 넘으면 시설로 들어갔거든요. 전 시설에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서른셋까지 산다고 생각했던 거죠.

극단 ‘휠’에서 활동하면서 연극도 했다. 연극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 몸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을 것 같은데.

연극에서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 즉, 목소리, 손짓은 물론 시선 하나까지 모두 계획되고 짜여진 연기예요. 무대 위에서는 장애까지도 연기인 셈이죠.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워요.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연극 속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게 연극은 ‘객관적인 나’를 보는 싸움이었어요. 연극을 하는 과정에서 내 몸짓과 표정을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게 됐거든요. 그리고 내 몸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과 극복할 수 없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게 연극의 매력이었죠.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면서 체력적인 한계도 느껴지고, 실제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글쓰는 일이어서 그런 쪽에서 참여하려고 해요.

사진 촬영을 마쳤는데 지금 심정은 어떤가.

언제나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몸 때문에 당당하지 못한 면이 있었어요. 제게도 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있거든요. 몸에서 비롯된 이런 이중적인 생각 때문에 정신적인 혼란이 심했죠. 그래서 한동안 이런 생각들을 덮어두기로 하면서 함께 제 몸도 외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몸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기회가 됐던 이번 작업은 어찌 보면 내 몸과의 화해였어요. 제 몸을 미워하진 않았지만 슬프긴 슬펐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고민은 많이 돼요. 사진 촬영 전뿐만 아니라 촬영 후에도 고민이 됐어요. 특히나 사람들의 시선과 말에 의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죠. 후회하진 않지만 잘한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작가로서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지수 씨는 현재 ‘핑크팰리스2(감독 서동일)’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핑크팰리스2’는 5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될 예정인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장애우의 성과 사랑이 주제다. 지수 씨는 5개의 이야기 중 ‘러브엠티(Love MT)’와 ‘으라차차’ 2개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 러브엠티는 벌써 촬영까지 마친 상태. 배운 것도 많지만 예산 때문에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품이란다.

이번 사진 촬영 역시 지수 씨에겐 아쉬움과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남길 것이다. 그것이 지수 씨의 기억에 어떻게 남게 될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그래서 그녀가 의도했던 것처럼 그녀의 몸에 대한 선물로 남기를 기대한다.

작성자조은영 기자  blank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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