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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예술은 나의 정신과 몸을 녹여내는 작업”

행위예술가 강성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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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 : 강성국>  
 
“그래도 오늘은 한가해요~”

지난 1월 4일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에서 무용극 ‘브라더스’를 선보인 행위예술가 강성국 씨(29, 뇌병변 1급), 공연을 끝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인터뷰 당시 1월 26일 아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모딜리아니와 잔느 서거 88주년 기념 위령제 퍼포먼스’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번 위령제에서 강성국 씨는 사람의 목을 길게 그리는 모딜리아니 그림의 특징을 살려 흰 도화지 위에 목이 긴 사람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라 했다.

1년에 평균 몇 편의 작품에 출연하냐고 물어보니 “40~50편쯤?”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인터뷰 당일에도 “오늘은 한가해요~”라고 기자를 안심시켰지만, 인터뷰 도중 걸려온 전화로 금새 공연 관련 약속이 잡혀버렸다.

인터뷰 날짜를 잡을 때 살짝 감지하긴 했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의 빡빡한 일정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행위예술가의 길, 생각보다 훨씬 더 배고팠죠”

“어렸을 적에는 행위예술보다 연극에 관심이 많았어요. 언어 장애가 있으니까 쉽게 도전해볼 생각도 못했고, 무대에 설 기회도 갖기 어려웠죠. 그러다 행위예술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말이 아닌 몸짓으로 소통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시작하게 된 거죠.”

성국 씨가 처음 행위예술을 접한 건 2003년 한국실험예술제에서 개최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예술체험 워크숍에서였다. 당시 한국재활복지대학 광고홍보과에 재학 중이던 성국 씨는 무대 위에서 말이 아닌 몸짓으로 관객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행위예술에 호기심을 느끼며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워크숍을 신청했다 한다.

그러나 호기심에 올라선 무대 위에서 성국 씨는 가슴 벅찬 희열감을 맛봤다고.
“무대 위에 올랐을 때 정말 짜릿한 쾌감을 느꼈어요. 그것 때문에 주위의 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행위예술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무대가 준 감동에 취해 성국 씨는 대학을 졸업한 2005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왜 배고픈 길에 뛰어드냐’며 성국 씨의 선택을 극심하게 반대했지만, 성국 씨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눌 길 없어 행위예술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배고픈 길이었다.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어요. 생활고 때문에 잠시 흔들려 2006년 1월에는 광고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죠. 그런데 다른 일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힘들어도 제가 가야할 길은 행위예술가의 길이라는 걸요.”

2006년 1월부터 4월까지의 흔들림은 성국 씨에게 그가 원하는 길은 행위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을 더욱 깨닫게 했다. 이후 성국 씨는 더욱 행위예술에 열렬하게 몰입하게 됐다고. 이를 증명하듯 성국 씨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인 ‘몸시(詩)’도 슬럼프 시기가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8월에 소개됐다.

처음에는 앞이 캄캄, 이제는 관객들과 함께 놀기도

‘내가 만약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너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줄 텐데/ 내가 만약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한 없이 너에게 달려갈 텐데/내가 만약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너를 데리고 먼 곳으로 도망칠 텐데/ 이렇게 아무 때도 쓸모없는 날 사랑해 달라면/ 넌 날 사랑해줄 수 있겠니?’
 - ‘내가 만약’ 강성국 作 -


2006 한국실험예술제에서 선보인 행위예술 ‘몸시’는 비장애여성과 사귀고 있는 장애남성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커피를 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몸이 불편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걸 해줄 수 없어서 슬퍼하던 남자가 연인을 위해 커피를 타주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커피를 탄 남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입으로 시를 쓰죠. 그 시가 ‘내가 만약’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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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8월에 소개된 행위예술 '몸시'의 장면들. 비장애여성을 애인으로 둔 장애남성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커피를 타주고(위) 마지막에 입으로 그녀를 위한 시를 작성한다(아래). <사진제공 : 강성국>  
 
성국 씨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했다는 ‘몸시’는 비장애여성을 사귀면서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 장애남성의 열패감을 보여준다. 사회에서 이미지화된 연애는 비장애인 선남선녀가 만나 남자는 물질적, 물리적 자원을 여자에게 선사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감정적 결핍을 충족시켜주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스로에게 ‘나에게 연애는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고 돌아보지 않는 한 이러한 틀에서 자유롭기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장애가 있다 해도 스스로 그것을 장애라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을지라도, 자신이 ‘연애’를 한다고 인지하는 순간 ‘연애’를 하는 남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 있을 것이고, 교제하는 상대가 비장애인일 경우 더욱 그러한 압박은 심해질 수 있다.

‘몸시’는 이러한 장애남성의 슬픔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진실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일 테지만 말이다.

성국 씨는 ‘몸시’ 외에도 3년 동안 1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성(性)에도 장애란 없다’(2006)와 ‘여행’(2007) 등의 단독공연을 매해 한편씩 상연해왔다. 수많은 작품을 공연해오다 보니 이젠 제법 무대 위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무대 위에 섰을 땐 아무 것도 안 보였는데, 이젠 관객들과 얘기도 나누고 함께 놀고 그래요.”

장애인예술아카데미 만드는 것이 꿈

대중 앞에 나서다보니 성격도 활발해지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다보니 건강도 더 좋아졌단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극 내용의 깊이도 점점 더해지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도 든다고.

“처음에는 관객에게 보여주기 급급한 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공연은 해나갈 수록 더욱 연구하고 노력하게 되고, 관객과 호흡하는 법도 알게 되었죠. 극에 깊이도 더해지는 것 같고요.”

문득 성국 씨가 행위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진 정신이나 가치관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죠. 관객들에게 내 행위가 어떻게 비춰질지 고민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생각을 적절히 끄집어내고 몸으로 소화해내는 게 더 우선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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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들이 공연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장애인예술아카데미를 설립해, 장애인들에게 공연예술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는 게 꿈이란다. ⓒ소연 기자  
 
성국 씨가 무대에 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정신’이 잘 베인 몸짓이 무르익어갈수록, 그를 그저 신기하게 쳐다보던 관객들도 성국 씨를 점차 한명의 행위예술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다. 성국 씨의 공연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선배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단다. “선배들한테 많이 혼나요. 하지만 지적받는 게, 강성국을 장애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작가로 봐준다는 생각에 되게 기분 좋았어요.”

성국 씨는 자신을 설명하는 행위예술가라는 단어 앞에 장애인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행위예술가 앞에 왜 ‘장애인’라는 수식어를 붙이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에 이름조차 없는 소외계층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그 계층을 드러내는 이름을 스스로 붙이는 작업은 분명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국 씨의 직업, 행위예술가 앞에 붙여진 ‘장애인’라는 수식어는 성국 씨 본인이 붙길 원한 것도,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직업 앞에 ‘장애인’가 붙이길 희망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도 아니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가 있는 사람의 직업 앞에 붙여놓은 ‘장애인’라는 수식어는 직업을 가진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저평가하게 만드는 차별적 시선을 내포한다.

성국 씨는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행위예술가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장애인이 부재하다보니 성국 씨가 무슨 실수나 잘못을 하면 공연예술에 끼를 가진 장애인들이 진출했을 때, 자신으로 인해 생겨진 선입견으로 평가받게 될까봐서다. 자신의 활동 하나하나에 장애인 전체를 들먹이는 것에 부당함을 느끼며, 자신을 그저 한명의 행위예술가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성국 씨는 그러기 위해선 많은 장애인들이 공연예술계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도모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성국 씨는 장애인예술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용을 배우고 싶어도 장애인은 어딜 가서 배울 데가 없어요. 아직 능력이 안 되지만, 언젠가 실행에 옮길 겁니다. 계속 품고 있으면,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 믿어요.”

공연예술을 접하고 싶은 장애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많은 장애인들이 공연예술계에 진출하도록 돕고자 하는 그의 꿈이 어서 현실화되길 함께 꿈꿔본다.
작성자소연 기자  cool_w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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