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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시설의 문을 열 차례다

[만난사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위원장

본문

거리에서 장애인들의 모습을 일상처럼 볼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이 대목을 정부 관계자가 대답한다면 전동휠체어의 확대 보급과, 이동이 가능하도록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했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의 행정논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덧붙이는 질문으로, 전동휠체어의 확대 보급과 이동편의시설은 정부가 자발적으로 알아서 시행한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어질 리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한 걸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관련 행정은 모든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 국가가 국민의 복지정책 차원에서 기획안을 먼저 수립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약자들의 끈질긴 요구와 항의, 거기에 몸싸움까지 진행된 이후에야 비로소 관련법안과 제도가 정비되고 시행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 아니었던가. 거리의 모든 시설들은 비장애의 관점과 행정편의중심의 눈높이로 만들어져 있다. 계단 옆에 마련된 경사로 하나만 가지고도 표본적인 증거제시가 가능하다. 혼자서 휠체어를 밀고 올라갈 수 없는 급격한 각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입만 열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만큼 장애인들의 이동권 편의가 향상된 기간도 없었다. 만족도로 따진다면 100점 만점에 20∼30점을 주기도 어려운 미비한 변화이지만, 그나마 0점에서 이 정도까지 이끌어 올렸다는 건 사실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전제조건이 있다. 정부가 먼저 시행한 건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고치라고, 만들어놓으라고, 똑바로 올바르게 설치하라고 끝없이 외치고 또 외치며, 차가운 길바닥에서 온 몸으로 절규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막혔던 언론과 정부의 귀가 뚫리고 감고 있던 눈이 열렸던 바 있다. 그 운동의 중심에 섰던 게 바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였고, 장애인의 이동권 권리확보를 맨 앞에서 실천적으로 외쳤던 이가 바로 박경석 상임집행위원장이다. 당시의 현직 대통령 바로 앞에서 펼침막을 펼쳐들고 장애인의 권익을 부르짖었던 이를 기억한다면, 그 주인공인 박경석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가 보다 더 체험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번 호 <함께걸음>은 그를 만났다.

   
▲ ⓒ채지민 객원기자

▶ 현장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데 근황은 어떠신가
이렇게 찾아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반가운 일 아니겠는가. 곁에 함께 하는 분들한테 항상 힘을 얻는다.

▶ 투쟁을 이유로 하는 재판이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다. 현재 어떤 상황에 계신 건가.
지난번에 구속됐다가 나오면서 벌금 일부는 갚았다. 그런데 나는 실형이나 벌금보다는 집행유예가 계속된다. 이번에는 실형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나왔다.

▶ 재판이 진행되는 죄목이라는 게 뭔가
언제나 그랬듯이 죄목은 전부 다 집시법 위반, 특수공무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특수건조물침입죄 같은 것들이다. 늘 똑같다. 경찰서 건물을 살짝 들어가려면 특수건조물침입죄이고, 거리 한복판을 가로막고 있던 경찰들을 조금만 밀어도 특수공무방해죄란다. 도로 위에 조금만 내려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이고, 어디에서 장애인들끼리 모여 있기만 하면 집시법 위반이라고 묶어버린다.

▶ 그럼 지금 집행유예기간이라는 건가
지금 2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그게 확정되면 집행유예기간이 시작된다. 1심이 확정되어 지금 항소한 상태이다. 기존에 있던 집행유예가 작년 10월에 끝났는데, 또 이렇게 집행유예로 얽매어놓는 거다.

▶ 그게 활동의 제약을 주는 게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제약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된다. 집행유예기간 동안 또 집시법 위반으로 걸리면, 같은 사안에 대해 집행유예기간에 다시 걸렸다고 해서 내려졌던 형량들을 모두 더한 만큼 감옥에 가 살아야 한다. 유예했다던 형량들을 모두 합해 살아야 한다는 거다.

▶ 그럼 이번 재판의 결과에 따라 민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건가
현실은 다르지 않은가. 나는 집행유예상태에서도 투쟁과 운동을 계속했다. 그것 때문인지 이번에는 판사가 아주 친절하게 지적하며 얘기했다. “이젠 일선에서 물러나시죠.” 그래서 변호사한테 그 말의 의미가 뭔지를 물어보니까, 그게 아마도 재판부가 던지는 마지막 경고인 것 같다고 하더라. 나는 집행유예를 4번 연속으로 받았다. 그만큼 재판을 많이 받았다는 건데 계속 벌금형과 집행유예였다. 일반적으로 집행유예는 두 번 연달아서 하지 않고 곧바로 실형을 내리는 게 보통의 일이다. 판사의 그 말은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 같았다.

▶ 정말 일선에서 물러나라는 내용으로 받아들이시는 건가
그동안의 내 활동이력으로 볼 때 아주 그만두라는 것보다는, 거리엔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런데 내가 제대로 일선에 섰던 적이 있었나? 활동에 있어서 일선이 어디 있고 이선이라는 게 또 어디 있나.

   
▲ ⓒ채지민 객원기자


▶ 본격적으로 이동권연대가 시작된 게 언제부터인가
이동권연대는 2001년부터 시작했다.

▶ 그때부터 거리로 나오시게 된 건가
그 훨씬 이전부터 거리에 나오긴 나왔었는데, 본격적으로 거리가 아닌 철로로 내려갔던 건 이동권연대가 발족한 이후부터다.

▶ 그 시기가 김대중 정부하고 노무현 정부와 거의 겹치게 되는데, 현 정부 들어온 이후로는 어떤 것 같나
세상이 좀 실용적으로 좋아질 줄 알았는데, 역시나 훨씬 더 암울해질 뿐이다. 우리는 투쟁할수록 세상이 많이 바뀔 줄 알았다. 물론 이동권연대 투쟁의 결과물인 버스와 철도의 경우는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그것이 좋아졌다고 해서 삶의 질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좀 더 평등하고 인권적인 방향으로 갈 줄 알았는데, 투쟁을 거듭할수록 세상은 훨씬 더 암울해지는 것 같아 솔직히 가슴이 답답하다.

▶ 이동권연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입장에서 볼 때, 지난 정부와 현 정부 들어서 뚜렷하게 대비되는 변화 같은 게 있는지 듣고 싶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점점 더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각박해지고 상막해지고, 보다 더 조급해진다고나 할까? 그런 것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내용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거리에 나서면 공권력이라는 게 더욱 더 포악해진다는 거,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 지난 정부에 비해서는 공권력의 대처방식이 정말 많이 바뀐 게 느껴진다. 현장에서 바라볼 때 더 강압적으로 바뀐 게 사실인가
예전에 비한다면 아주 야만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변한 거다. 모든 법률을 자기들 입맛에 맞춰서 이미 바꿨고 지금도 바꾸려 한다. 집회와 시위를 보호해야 하는 게 경찰의 임무 아닌가.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그들이 보호하기는커녕, 불법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모든 행위를 이끌어간다.

▶ 아주 공허한 질문이 될 텐데, 장애인들의 집회와 시위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배려해주고 봐주는, 그런 움직임 같은 게 있는가
오히려 더 교묘하게 진압을 한다. 더 약을 올리면서 반발을 유도한다. 그리고 지난 정부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욱 지능적으로 가둬놓는다. 있던 자리에만 고착하게 만든 다음, 병력으로 둘러싸고 아예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집에 가겠다고 해도, 심지어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꼼짝 못하게 마냥 가둬놓는 것이다.

▶ 그럼 거리로 나와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앞으로는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장애인들의 집회신고는 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허가를 하지만, 행진신고는 무조건 불허해버린다. 행진신고를 허가하지 않으니까, 장애인들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건 무조건 불법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장애인들이 움직이는 걸 일일이 채증해가지고 전부 다 고발해버리는 게 일상이다. 일방적으로 벌금을 때리고 소환하는 방식으로 계속 밀고나간다. 집시법이라는 게 왜 있는가. 집시법에 근거해서 집회신고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정상적인 절차의 신고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불법집회로 낙인찍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불법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게 지금 정부의 처리방식이다.

▶ 본론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거리 위에서의 투쟁과 행동을 계속해오셨는데, 그런 방식으로 운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가
그게 장애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장애인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이 사회에 알리고, 장애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현실을 말하는 방법은 제각각의 의견만큼 다양할 수 있다. 그 다양함을 가지고 나쁘다 좋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같은 장애인이라면 모두 다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문제들 아닌가. 서로의 방식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게 올바른 진행방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비난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린다는 건 일정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 언론에서 과격한 투쟁이라고 하니까 다들 우리의 거리 투쟁을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의 투쟁으로 인해 바뀐 제도와 법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간과하고 있다. 그게 비난만 하는 이들의 결정적인 맹점인 것이다.

▶ 무리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 비난만 한다는 이들의 주된 내용이 뭔지를 언급해 주실 수 있겠나
뻔한 언론의 뻔한 내용들을 떠올리시면 될 것이다. 주로 거리의 투쟁, 우리의 투쟁을 과격하다고 비판하는 방식은 약속한 듯이 정해져 있다. 우리가 장애인들을 다 욕 먹인다는 거,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거, 그러다보니까 결국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한테 미움을 받게 된다는 거, 그런 ‘짓’을 왜 하느냐에 항상 초점을 맞춰간다. 심지어 모모 언론에서는 좌파빨갱이에다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게 일상화됐다. 장애인의 인권과 이동권을 주장하던 내가, 이 땅에선 빨갱이라는 얘기까지 들어야 하는 세상이 됐다는 거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관점을 바꿔서 언급한다면, ‘일부 언론’이 그렇게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도 있을 것 같다. 그 대목에 대해선 자체평가를 해보신 게 있는가
물론이다. 아주 단순한 대목이다. 지금까지는 장애인의 문제를 아름답게 꾸며서, 감동적인 포장을 덧씌우는 사진과 영상이 보도되는 게 장애인의 현실을 덮는 주된 테마였다. 어려운 이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아름답게 인 생을 산다는 식이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 눈을 돌려보자. 실제 모습은 얼마나 척박한가. 지금도 지역에서는 기본적인 이동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게 사실인데,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도의 도움마저 받지 못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장애인의 삶 기준으로 비춰본다면, 특히 중증장애인들의 경우는 아예 야만적인 상황 속에 매몰되어 있다는 게 실제 지금 이 시간의 현실이다.

▶ 그 모든 걸 극복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 운동을 시작하신 건가
중증장애인 시설의 처참한 실태를 한번이라도 눈으로 봤던 경험이 있다면, 이런 질문과 대답마저 필요 없는 일이다. <함께걸음>은 그 모든 현실을 20년 넘게 관찰하고 고발하며 외쳐왔기 때문에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현실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결론은 단순했다. ‘이 현실을 솔직하게 표현하자.’ 그게 전부였다. 드러내야 한다. 왜냐, 화가 나는 일이 아닌가. 장애인들이 실제로 처한 생활의 모습 자체가 화가 난다는 얘기를 장애인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을 배제하고 뒤로 제쳐놓으며, 비장애 위주로 빨리만 나아가는 세상을 통째로 들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듣고 있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공감대 때문이다. 이동권연대가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던 당시의 모습이 눈앞의 영상처럼 떠오른다
우리는 외치고 싶었다. ‘왜 비장애 당신들만 앞으로 가느냐!’ ‘왜 당신들만 빠르게 세상 속을 전진해 나가느냐!’ 거기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대답은 ‘우리도 같이 가자!’였다. 그렇게 얘기하고 외치며 주장을 해야 했다. ‘같이 가자. 장애 비장애를 왜 나누는 거냐? 다 같은 인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 그래서 우리는 비장애 위주로 빠르게만 전진하는 세상을 잠시라도 멈춰야 한다고 결론 내리게 됐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주장과 확보를 위해서 파업을 하듯이, 우리도 파업을 할 수 있는 거다. 이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지 않고 버리며 간다면, 세상을 잠시라도 멈추게 만드는 파업을 우리가 실천해야 했다는 것이다.

▶ 이동권연대의 지난 10년, 더 멀게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수십 년의 과정이 그래왔기에, 그동안의 현실과 진행상황을 공감하는 건 물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 또한 객관성에 입각한 중립적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편하게 묻는다. 그 파업에 따라서 다수의 비장애인들이 반응할 부메랑은 생각해 보신 적이 없는지
우리를 드러내는 실천적 방안으로 존재하는 게, 나는 거리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 역시 전체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힘들고 가슴마저 먹먹하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장애인라는 낙인, 또한 장애를 가졌다는 게 부끄러워야하는 이 세상, 어떤 면에서는 노예보다 더 못한 삶으로 오늘 하루를 살며 견뎌야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걸 방송 언론 앞에서 아름답게 노래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장애가 없는 이들의 마음에 동정심 따위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는 행위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 그래도 장애인을 드러내는 방송과 언론의 영향이 인식개선측면에서는 일정부분 효력을 발휘한 점도 있지 않은가
그런 감동은 일시적이다. 일시적이라는 건 망각이 뒤따름을 의미한다. 장애인들이 분노한 부분에 대해선 분명하게 조직을 해야 하고, 투쟁이라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우리의 활동 이후로 바뀌기는 많이 바뀌었다. 정말 많이 변한 건 맞다. 이동권 문제와 활동보조인 서비스 문제, 더불어 교육권 문제와 같이 우리가 대표적으로 뽑을 수 있는 세 가지 측면은 분명한 해결점을 찾아낸 게 사실이다.

▶ 그럼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바뀐 게 무엇이라 생각하시는가. 이동권 문제가 최우선이라고 보면 되는가.
아이러니하면서도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한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겠다. 국가의 예산집행이라는 증거로 표현하겠다. 이동권 문제에 관한 건데, 예전에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았을 때는 국가예산을 쓸 일이 전혀 없었을 거다. 그런데 거의 1조원 가까운 비용을 투입하면서, 서울시에서 각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시설을 뒤늦게 설치했고 지금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게 없다고 비판을 하긴 한다. 하지만 2000년도에 비한다면 정말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것인데, 그 돈이 전부 다 어디서 났느냐가 이 대목의 핵심이다.

▶ 뭔가 흥미로운 대답이 있을 것 같다. 그 핵심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그 비용은 이미 있었지만, 장애인을 위해 쓰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생각해 보자. 장애인들이 무엇과 무엇을 해달라고 해도 콧방귀 한번 반응하지 않던 정부였는데, 장애인들의 의견이 사회적 복지와 권익 차원에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부분으로 인식이 변화됐다는 거다. 그런 비용을 동원하는 게 오래 전부터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싸우며 투쟁하는 과정을 눈으로 목격해야만 대안을 내세우는 과정이 반복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 ⓒ채지민 객원기자

▶ 핵심 포인트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돈은 있는데 마음은 없다’는 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렇다. 바로 그게 정답이다. 장애인들을 위해 그런 예산을 쓸 필요마저 모르던 정부한테, 이동권연대가 투쟁 끝에 얻어낸 게 바로 1조원을 투입하게 만든 사업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우리가 뜬금없는 구걸을 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투쟁의 결과로써 그 열매가 맺어진 거다. 같은 의미로 활동보조인서비스인 경우, 처음 시작했던 2006년의 시범사업 예산은 15억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인가. 중앙정부의 예산만 하더라도 1천억원이 넘는 규모가 됐다. 그 돈, 그 자금이 다 어디서 나왔다는 말인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했던 복지관련 예산이 이제야 비로소 제자리에 집행된다는 뜻이다.

▶ 예산규모로 볼 때, 정말 대단한 업적과 성과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민감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는데, 상대적으로 보면 정권 차원에서 그나마 좀 유화적인 정권이 집권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걸 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그런 점도 일정 정도 영향은 있을 거다. 정부의 철학적 측면으로 볼 때는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가 역대 정권 중에서 복지 관련 분야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게 친화적으로 다가갔다는 증거들이 있다.

▶ 그런 철학을 가진 정부였기에, 요구사항이 접수되고 통과되는 과정 또한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투쟁이라는 전제를 주체적으로 실천한 분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게 과연 이뤄졌을까 하는 점도 반문해 봐야 한다. 장애인들의 시선은 간단명료하다. 가장 차별받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 정부를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주제를 바꿔서 질문 드리고 싶다. 지금 현재의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가
최우선적으로 지역사회에서의 삶들이 바뀌어야 한다.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역사회로 이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장애인 운동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운동 차원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시설 문제는 이 사회가 더 이상 눈 감고 있어선 안 될 수준까지 왔다. 사회가 외면하고 부모마저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가족과 국민 모두가 외면했던 그들의 삶, 역설적으로 그래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수용시설이다. 그 수용시설 안에서 잊혀져가는 분들의 문제는 당장 풀어야 하는 당면과제이고, 우리가 이 사람들을 너무나 손쉽고 정말 깨끗한 방식으로 이 사회에서 배제시켜버린 게 아닌지에 대해 냉정하게 반성해야 한다.

▶ 사실 가장 심각하게 뒤엉켜 있는 문제가 바로 시설 비리와 지역사회로의 전환이다. 위원장이 생각하고 계시는 의견은 무엇인가
정말 손쉽게 배제시켜버린 그들한테 아주 가끔씩 찾아가서 자원봉사라는 걸 해준다. 그걸 카메라로 찍고 착한 일 했다며 자기들끼리 손뼉을 친다. 그런 행위가 선행이나 사회적 미덕으로 기억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최대한 이들을 지역사회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이건 엑소더스(exodus : 대이동, 대탈출)를 연상해야 할만치의 거대한 작업과 과정이 될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 시설을 더 이상 시혜와 자선과 동정에 기대어 유지시켜선 안 된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또 다른 투쟁이 겸비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는 현 시점에서 그 문제를 운동의 가장 큰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

▶ 그건 거리에 나가 해도 안 되는 게 아닌가. 굉장히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럴 것이다. 이동권 투쟁 같은 경우에는 해답이 일면 간단했다. 장애인이 이동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없었다는 거다. 저 위의 대통령부터 청와대, 모든 공무원들 역시 “나 이동하고 싶소!”라고 말하는 장애인한테, “너 이동하지 마!”하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건 일반 시민들도 다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물론 실제 현실은 집구석에 처박아놓고 있지만, “당신, 집구석에만 있어야 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 수용시설 문제는 적대세력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지역사회로의 이동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거대한 기득권세력이 있다는 거다.

▶ 핵심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그 ‘적대세력’들이 모든 변화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아닌가
이동권이나 교육권은 기득권이 거의 없는 분야이고, 보편적 권리를 확장시키는 데 모든 주안점을 두었다. 그런데 수용시설 문제는 전혀 다르다. 오랜 기간 동안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시설에 가두어놓고, 그걸 통해 갖가지 사회적 동정을 방패삼아 이들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유지되어온 권력이 있다. 기득권이라는 건 돈이 있다는 의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과 일반적인 후원금이라는 건 아주 막대한 자금이다. 중앙정부의 복지예산이라는 게 갈수록 깎여서 쥐꼬리만해졌는데, 그 쥐꼬리만한 것의 상당부분이 시설을 운영한다는 법인 기득권들한테 지급되고 있다. 문제는 그게 일반 사회단체가 꿈도 꿀 수 없을 만치의 큰돈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씩 횡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거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시설 비리가 터지면, 그 횡령액이라는 게 몇백만원이나 몇천만원 단위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그 자금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지급하게 하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비용으로 전환시키자는 요구에 집중하려 하는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가장 이상적이고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동감한다. 시설 비리의 원천은 막대한 지원금이 존재하기 때문이란 건 일반상식 같은 일이다. 이젠 그 대목을 확실하게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 됐다고 보는데
전체 사회운동도 앞으로는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할 사안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얘기하겠다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실제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그걸 어떻게 풀 수 있느냐에 대해 대안을 가지고 계시는가
대안이라는 걸 새로 찾기보다는,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던 방식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단순히 시설이나 수용시설이라고 말만 하면, 일반 국민들 가슴에 제대로 다가가지 않는다. 그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고 그 참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이 비리가 얼마나 곪아있으며 왜 하루빨리 도려내고 해결해야 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이 아니기에, 전면적인 운동을 이제는 본격화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보는 것이다.

▶ 굉장히 지난한 세월이 흘러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의 단계가 가시적으로 설정되는 게 시급할 것 같은데
그렇다. 지금까지의 세월만큼이나 또 다른 세월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면 의외로 빠른 결실을 맺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동권 투쟁이 4년 걸리지 않았나. 수십 년이 흘러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게 4년 걸렸다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구체적인 변화는 의외의 계기를 통해 전환점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본다. 서울 같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3천명 넘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살고 있는데, 한해마다 1백명이든 2백명이든 계획을 잡아서 서울시와 각 자치구청에 요구하고, 그들이 직접적으로 살 수 있는 주택도 제공해야 한다. 그 모든 걸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고, 활동보조 시간도 더 많이 늘여야 한다.

▶ 그런데 소위 ‘기득권’ 이외의 이해당사자들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 문제 또한 간과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시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의 직종이 없어지는 문제인데, 그 부분은 정말 전면적으로 사고를 달리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즉, 한 명이 여덟 시간 근무하며 대여섯 명을 담당하는 것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일대일로 전담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능률이 오르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법과 제도를 확실하게 만들어서 생존의 문제와 근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내 견해로는 후자의 방식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한달에 120만원 내외의 수입을 받는 것 같은데, 똑같은 시간의 노동을 시설 안에서 하는 것보다 지역 안에서 이룰 수 있다면 그들 역시 반대만 하지는 않을 거라 판단하고 있다. 시설의 문을 열고 지역사회로 전환하겠다는 이 과제는, 이 사회를 근본부터 변화시킬 엄청난 규모의 힘을 가지고 있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늘린다는 건 장애인들의 질적인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서비스 즉, 새로운 직종인 돌봄도우미 제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노동의 권리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현실 속에서 그 변화가 실제 이루어진다면, 참 아름다운 변혁의 과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시설의 문을 열고 지역사회로 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은 역사적인 의미를 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꼭 실행되고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분위기를 바꿀 겸 다른 질문을 드리고 싶다. 위원장의 이미지는 너무 투쟁적으로 굳어져 있는 것 같다. 이동권연대 역시 투쟁 이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게 비춰지는데,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위원장 주변에는 비장애인들밖에 없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고립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 대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런 소문이 있는가? 금시초문이다. 내 곁에는 장애인 동지들이 많이 있고, 비장애인 동지들도 많이 있다. 사실이 그런데도 내 곁에 비장애인들만 있다며 떠들고 다닌다는 건 상당히 악의적인 매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투쟁을 한다는 건 굉장히 고달프다. 막막하기도 하고 활동가들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갈등을 겪기도 한다. 오래 활동하려면 삶의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런 면들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투쟁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거다. 투쟁하면 정부 지원금을 끊어버린다 하고, 센터 지원금 같은 것도 심사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탈락시키는 행정이 지금도 공공연히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장애인 현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투쟁이 필요하면 해야 되는 게 아닌가. 그 투쟁을 이유로 해서 고립될 거라 얘기한다면, 나와 우리는 그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은 얼마나 되나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무슨 상관인가. 어용관변단체 등에 소속되고, 장애 관련 이권만 따라다니는 장애인들이 몇천 몇만이 된다 한들 그들이 중요하겠는가, 아니면 우리가 중요하겠는가. 내게는 실질적인 권익 확보를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도 동참하며 현장에서 투쟁하는 몇백의 장애인들이 그 몇천 몇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숫자는 숫자일 뿐이지 않은가. ‘우리도 버스를 타자!’는 주제로 시작했던 이동권연대 초기에는, 열 명만 나와도 많이 나왔다며 서로 기뻐했었다. 열다섯 명 정도가 나오면 정말 꽉 차는 느낌이 들만큼 뿌듯했다. 거기에 비장애인 동지들이 2백 명 정도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 차별철폐연대가 특정 사안에 대해 한데 뭉쳐 움직이는 모습은 늘 인상적이다. 이 또한 조직으로 움직이는 단체인데, 차별철폐연대 차원의 내적 고민 같은 건 없는지 질문 드려도 되나
조금 전 소문이라는 내용 속에선 내 곁에 장애인은 없고 비장애인만 남았다고 매도하던데, 실제로는 비장애인 동지들의 숫자가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비장애인 동지들이 장애운동에서 하나둘씩 떠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거다.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 그게 장애인들의 문제만을 계속 언급하고 문제화하는 데 대한 부작용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사회적 연대의 측면으로 볼 때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 역량을 함께 나누도록 조직해야 하는 문제이다. 장애 비장애로 구분 지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인권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이고, 바로 너와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서 사회적 역량을 우선하는 연대의식이 보다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좋은 말씀 잘 들었다. 마무리 차원에서 약간 다른 질문이 되겠는데, 위원장처럼 대외적으로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도 참 드문 것 같다
아, 그런가? (웃음) 그건 잘 모르겠다.

▶ 그런 점을 못 느끼셨나? 주위에서 얘기하고 평가하는 내용은 듣게 될 텐데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한데,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내가 잘하고 잘못하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지적해주시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잘못한 일이 물론 많이 있을 거고, 가슴 아픈 일들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는 마음 또한 갖고 있다. 편하게 말씀해주셔도 좋다. 언제나 좋은 지적과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리라 기대한다.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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