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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가 하늘의 목소리이다

[만난사람]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

본문

“저기 사람이 있다!”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 퍼질 2009년 연말이 되면, ‘올해의 10대 뉴스’ 형태로 등장할 여러 내용 중 하나가 분명 바로 위의 한마디 표현으로 진행될 것이다.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죽어간 이들을 테러세력으로 몰아가는 정부 앞에서, 그들을 추모하는 이들을 좌익이라 낙인찍는 국가를 향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님이 용산참사의 현장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이 아닌, 하루아침에 미망인과 유가족의 입장으로 돌변해버린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하셨다.
국가적인 ‘어르신’, 다시 말해서 국민들이 믿고 따를 만한 친근한 얼굴들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나가는 현실 앞에서, 민초들의 마음은 무겁고 불편하며 간절한 ‘무엇’을 갈망하는 게 일상의 염원이 됐다. 그런 갈증이 심해지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일까? <함께걸음>은 ‘믿고 의지할’ 어르신이 곁에 계심을 확인하고자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관을 찾았다. 그리고 김운회 주교님께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드렸다. 그 취재와 대화의 내용을 이 지면에 담는다.

   
▲ ⓒ채지민 객원기자
● ● ● 용산참사현장을 방문해서 위로를 전하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정말 많은 힘을 얻게 됐다. 항상 관심을 갖고 주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새겨들었는데 사회적 약자, 특히 장애인 입장을 특히 강조하시는 걸 보며 오래 전부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서울대교구 안에서 내가 맡은 부분이 사회사목분야이기 때문에,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장애인들의 삶과 현실에 대해서,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발언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신부님들이 다 같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

● ● ●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가 될 줄 알고 나름 긴장하며 찾아왔는데, 주교님을 뵙는 순간 옆집의 이웃 어르신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편하게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이건 주교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여쭙는 건데, 장애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으셨는지를 듣고 싶다.

●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래 전 일 몇 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인데, 내가 살던 동네에 6·25전쟁으로 얼굴 전체에 큰 화상을 입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랑 한 동네에서 같이 잘 지냈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톨릭의 신앙가정에서 자라다 보니까 욕 같은 걸 못했었다. 같은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별의별 상스러운 소리와 육두문자를 막 하곤 했다. 놀고 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화상을 입었던 그 친구랑 놀다 보니까, 그 친구가 내게 욕을 섞어가며 얘기를 하는 거다.

● ● ● 어린 시절 당시의 주교님이 할 줄 알던 욕이라는 게 있었는가.

● 집안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할 줄 아는 욕은 없고, 기껏해야 ‘바보 병신!’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놀던 와중에 나한테 여러 욕을 말하던 그 친구한테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화는 나기도 하고. 그래서 그 친구한테 내가 알던 유일한 욕을 하게 됐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했던 말이었는데, 그 표현을 들은 그 친구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자기랑 제일 친하게 놀며 지내던 친구였는데, 내가 할 줄 알던 유일한 욕 한마디가 하필 그 표현으로 전달이 된 게 아닌가.

친구가 울면서 집에 갔는데, 그날 저녁에 그 친구 어머니가 오셔서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서운해 하셨다. 그때 정말로 느꼈다.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큰 상처가 되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 아니면 5학년 때 일이었는데, 그 일 이후로는 내 입에선 아예 내가 알던 그런 한 마디 욕도 못하게 됐다.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정말 안타깝고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 된 거다.

● ● ● 어린 시절의 심정으로는 정말 안타깝고 큰 충격이었을 것 같다.

● 내겐 정말 큰 반성이 된 일이기도 하다. 이후 내가 처음 가톨릭학생회 지도를 하게 됐는데, 거기에 맹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얼마나 밝은지 놀랄 정도였다. 신촌에 있던 가톨릭회관에는 계단이 아니라 리프트 시설이 있었는데, 애들이 거기를 막 뛰어다녔다.

앞이 안 보이는 애들인데 그렇게 뛰어다니는 걸 보며, “야, 너희들 조심해!” 하며 너무 놀라서 소리를 쳤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저녁 회합 자리에 와서 나에게 “에이, 신부님도 불이 꺼지면 우리와 똑같잖아요, 뭐.” 이러는 거다.

사실 나는 장애라는 걸 특별히 별다르게 의식하진 않았다. 그 아이들하고 그렇게 어울리고 놀며 지내면서도, 굳이 ‘장애’라는 건 떠올리지 않았던 거다.

● ● ● 그렇다면 사목활동을 하시면서, 장애 문제를 직접적으로 실감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가.

● 내가 본당 신부로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한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고 했는데, 신자 집안은 아닌 가정이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담당하던 구역장이 그 집을 한 번쯤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내용을 알아보니, 집안에 장애인이 있는데도 단 한 번도 바깥에 나오지 않은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듣게 됐는데, 그 부모가 부끄럽다는 이유로 아이를 무조건 가둬놓고 지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고 싶어서 찾아갔다. 부모가 자신들의 체면치레 같은 것 때문에 애를 방 안에 가둬놓듯이 키우던데, 이 아이는 그 어려운 손놀림으로 타자를 하나씩 치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국제방송 같은 외국어방송 하나만 들으며 시를 써서 보냈다는데, 그게 외국에서 채택이 되어 발표가 된 거다.

   
▲ ⓒ채지민 객원기자
● ● ● 시기상으로는 굉장히 오래 전의 일 같은데, 그런 일화가 지금 현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 아이는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었나.

● 뇌병변장애가 아주 심했다.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그 아이한테 교리를 가르쳐야겠다 생각하고, 부모의 허락 하에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 영세 후 그 아이가 교리를 가르치던 지역 선생님과 함께 최초의 외출을 하게 됐다. 가누지도 못할 그 몸을 이끌고 나와서, 길 안내를 받으며 그 동네 골목길을 그 아이가 다니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 ● ● 그럼 아이의 외출을 위해 그 부모를 설득하셨던 건가.

● 부모는 자기 자식인 아들인데도 그걸 안 하는 거였다. 아니, 못했던 거다. 한 적이 없고 숨겨놓기만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진지하게 느꼈다. 장애라는 거, 어려운 이들한테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다는 거,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동안 그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진지하게 떠올랐던 거다.

● ● ● 교육자로서의 삶도 살아오셨다고 들었다. 학교 교장선생님 직책도 맡으셨다고 알고 있는데, 교육 현장에서 겪었던 체험담 같은 게 있으신지 궁금하다.

● 가톨릭 계열의 동성학교에 내가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떤 장애인 학생이 체육시간마다 늘 교실에 있는 거다. 체육시간에 한 번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항상 모든 게 열외인 상태에서 교실과 가방만 지키는 당번처럼 지냈던 거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체육선생이 부임했다. 이 선생은 예외 없이 모두 다 운동장에 나오게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장애 학생도 운동장으로 나왔다. 체육시간의 진행은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잘 뛰면 칭찬, 못 뛰면 얼차려. 그런데 이 선생은 장애를 가진 학생을 똑같이 운동하게 하고, 얼차려에서도 똑같이 기합을 줬다. 그날 체육수업이 끝난 뒤에 그 학생이 선생한테 찾아가서 엄청 울었다고 했다. 울었던 이유는 서러워서가 아니라 고마워서라는 것이었다. 자기를 다른 친구들하고 똑같이 대우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았던 거다.

● ● ● 비록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지금의 장애인들한테도 실감으로 전해질 내용인 것 같다.

● 그래서 나 역시 그때 그 일을 보면서, 하느님은 어떤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은 생명과 똑같은 존엄을 주셨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하느님께서 정말 아름답게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건, 모든 능력을 모든 사람들한테 전부 다 채워주신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각각의 사람들한테 어떤 특기가 있도록, 나름대로 불편함이 있을 만큼의 장점과 단점을 따로 주셨다는 거다.

그렇게 장점과 단점이 따로 주어졌다는 건, 서로가 서로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완벽하다면 혼자 살 수 있겠지만, 모두를 조금씩 다 부족하게 만든 것은 서로 돕고 서로 협조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장애인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 일정한 불편함을 가진 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 그 불편을 서로 채우라는 가르침인 거다.

● ● ● 좋은 말씀이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주교님도 장애 같은 걸 느껴 본 적이 있으신가.

● 쉬운 예로, 나도 외국인 앞에 서면 장애가 있다. 외국어를 못하면 외국인 앞에선 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들이 본다면 내가 말을 못하는 입장이라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보통 신체적인 장애만 언급하지만, 실제로 부끄러운 장애들은 따로 있다.

신체적인 장애는 외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몇 번 보면 만성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가려져 있는 장애가 사실은 더 무서운 것이다. 그건 더 깊게 숨길 수 있어서 문제가 더 커지는 게 아닌가.

● ● ● 혹시 주교님께서는 어디가 안 좋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

● 내가 요즘 관절이 아파서 병원에 치료 받으러 다녔는데, 이젠 나도 체중이 나가다 보니까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보면, 안경을 쓴 것도 다 장애가 아닌가. 나는 내 장애의 일부분을 이 안경으로 보완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그렇게 장애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특별히 대우하자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서로가 살면서 그런 부족함이 먼저 올 수도 있고 나중에 올 수도 있고, 또한 늘 갖고 지낼 수도 있다는 다양성을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 ⓒ채지민 객원기자
● ● ● 주교님께서 장애인의 날에 앞서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 우리 스스로가 차별을 하면 안 되는 거다. 똑같이 대우를 해야 된다. 누군가 불편한 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걸 모른 체하면 안 되는 거다. 불편한 건 도와줘야 하지 않나.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완벽하지 않도록, 누구에게나 어느 한 쪽을 불편하게 만드셨다. 그걸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며 채워주는 게 바로 천국인 거다.

● ● ● 참 좋은 말씀이신데도, 지금 이 사회와 현실이 그렇게 안 되고 있으니까 문제가 아닐까 싶다.

● 그게 바로 우리 교회가 할 일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제일 먼저 했던 게 바로 그것이다. 무언가 불편한 사람들한테 먼저 가서 배려하고 그 사람 편에서,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씀하셨다. 성서의 기록을 보더라도, 그 당시에도 차별을 자행하고 자기만 온전하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역시 웃기는 일이다.

요즘 그런 차별에서 개선이 된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육교가 거의 다 없어진 것이다. 사실 그 구조물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그건 건강한 사람들만을 위해 만들어놓은 거다. 건강한 사람들만 빨리 가고, 건강한 사람들만 편하게 살기 위해서 만들어놓았던 거다. 그렇게 일방적인 편의만 앞세우는 사고방식이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 ● ● 어쨌든 과거에 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배려하고 고쳐가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 그렇다. 우리 사회도 경제적인 여건이 갖춰지고 있으니까, 이제야 그런 데 신경을 쓰는 거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런 걸 신경 쓰면서 함께 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자기들끼리 빨리 달려놓고 뒤에 처진 사람들을 이제야 뒤늦게 다시 와서 데리고 가려니까, 그만큼 더 후진을 반복해야 하지 않나. 처음부터 같이 어깨동무하고 배려하면서 갔더라면, 그 힘이 몇 배로 더 강하게 됐을 텐데.

● ● ● 주교님은 우리 사회의 어른이시고 그걸 부인할 수 없는 입장이 되셨는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 우리가 모든 걸 다 가지지 못하고, 일정 부분 장애를 가진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된다. 그걸 다 같이 인정하면, 삶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의 동반자라는 의식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도 삶의 어느 한쪽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저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톱니바퀴가 굴러가는데 조그만 어느 부분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지 않은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두 다 하나가 될 때 여기서 나오는 그 하모니, 여기서 나오는 그 향기가, 여기서 나오는 그 힘이 엄청나게 커지는 거다.

그걸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는 평생 아무런 결함도 없이 사는 것처럼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결함이 더 많다. 그 결함을 숨기기 위해서 겉으로는 더 강한 척하는 사람들인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이 더 불쌍한 사람들이다. 자기의 부족한 내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확대되는 거다.

● ● ● 요즘 들어 수많은 갈등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데, 주교님이 보시기에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자기 주장만 강하다. 다른 사람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거다. 이런 마음의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들 수 있겠다. 저 사람은 필요 없고 없어도 되는 사람, 이런 식이다. 내 얘기만 하고 나만 생각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상대도 옳은 게 있다. 남의 얘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도 부족한 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 거다.

● ● ●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의 갈등 문제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주교님께선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 신문 하나만 보더라도 진보인 사람들, 또 보수인 사람들이 보는 신문이 제각각이다. 이렇게 나간다는 건 앞으로가 너무 걱정인 거다. 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신문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신문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 자기들이 아예 공개적으로 보수나 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런 지지성향을 사설이나 칼럼에는 실을 수 있지만, 일반 다른 기사는 다 똑같다. 정책적인 면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를 밝히는 거지, 우리나라처럼 신문 전체를 전부 다 보수나 진보의 목소리로 도배하진 않는다. 우리는 신문이든 사람이든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을 하면, 모든 분야에서 상대방의 얘기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선 거부부터 하고 문을 닫는다. 그건 정말 큰 문제인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 ● 이 문제는 어떻게든 풀어야 할 심각한 과제라고 판단하는데, 주교님께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지 여쭙고 싶다.

● 어느 사회든 보수와 진보가 다 같이 있어야 정상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함께 어울려야 한다. 사회라는 건 서로 다 불편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완성하고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가야 한다. 보수든 진보든 좌든 우든 간에 같이 있어야 되는 거고, 어느 한쪽으로만 몰려 있다는 게 오히려 더 문제가 있는 거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보수 쪽이다 아니면 진보 쪽이다, 이게 더 문제 있는 거 아닌가?

● ● ● 이런 자리에선 가급적 피하고 싶은 화제이지만, 이 대목에서 국회의 문제를 짚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재의 국회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다.

● 국회에선 사실 서로가 치열하게 싸워도 좋다고 치자. 그렇지만 ‘정책’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정책을 가지고 부딪치며 조화로운 결론을 내놓기 위해선, 국회 안에서 싸우는 건 상관이 없다. 농담처럼 표현하는 거지만, 거기는 알아서들 싸우라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만들어 준 자리니까, 거기에서 싸웠다고 욕할 건 아니다.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하지만, 대신 정책을 가지고 멋지게 싸워야지, 지금처럼 추잡하게 싸우기 때문에 문제인 거다.

그 안에서는 정책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거다. 최선을 다한 뒤 밖으로 나오면, 깨끗하게 악수하고 털어내야 제대로 된 게 아니겠나. 같은 신앙인일 수 있고 같은 동향이나 선후배일 수도 있는데, 그런 갈등을 이 사회 안까지 그대로 가지고 나온다는 건 사실 아주 안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 ● ● 예전에 비해 가톨릭교회가 많이 보수화됐다는 의견이 많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발언을 많이 했었는데, 최근 들어서 상대적으로 줄어든 사회적 메시지라든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 때문에 그런 여론이 형성되는 것 같은데, 군사독재시절에는 언론이 완전히 통제됐고 정말 소외된 사람들을 아무도 용기 있게 봐주지 않았다. 그때 교회가 용기 있게 나섰던 거다. 또한 굉장히 위험했던 때였지 않은가. 잡아서 가두면 끝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당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집중적으로 나섰고 사회적 이슈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몸을 던졌었는데, 이제는 그런 역할의 많은 부분을 시민단체와 일반 언론들이 가지고 가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을 우리가 모르는 체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모르는 체 해서는 안 되고, 모르는 체 한다면 그건 교회의 역할에서 볼 때는 직무유기다. 교회는 똑같은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는데, 방법적인 면에서 우리가 예전처럼 앞장서는 방식보다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거다. 예전의 방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교회가 너무 움츠려든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교회의 근본정신은 바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힘이 되어 희망을 주는 게 본질이다.

● ● ● 최근 들어 주교님께서 용산참사와 사회적 현실에 대한 발언을 자주 하셨는데,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단비와 같은 말씀을 전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 내가 유일하게 한 게 아니라, 다른 주교님들도 다 같은 말씀을 하신다. 다만 내가 사회사목을 맡고 있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부각되는 것이다. 어느 주교님도 내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맡는다면 다 똑같이, 더 열심히 하실 게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까지 된 이 사회가 너무 걱정스럽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서로 용서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된다. 너무 남의 얘기를 안 듣는다. 그래도 종교인이 얘기를 하면 조금씩이라도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용산 현장에도 신부님들이 자리를 지키며 용서와 양보와 완충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지금은 종교인으로서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게 너무 답답한 거다.

● ● ● 언론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목격했겠지만, 신부님들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 세상이 되어버린 건가.

● 우리 신부님들이 거기에 가 있는 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경계선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신부님들마저 없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다면 그 분노가 어떻게 분출이 되겠나.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발생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신부님들이 그렇게라도 보호하고 같이 미사 드리면서 함께 하니까, 피해자들이 그나마 참으며 견디고 있는 거다.

사실 국가나 공권력 차원에서는 이 신부님들의 활동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임무를 지금 신부님들이 대신 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 ● ● 신부 폭행과 관련한 주교님의 유감 발표에 이어, 경찰 측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고 들었다. 주교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나.

● 경찰서장이 사과하겠다고 왔다기에, 거기에 있는 신부님들의 역할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지적을 했다. 신부가 경찰을 밀면 얼마나 힘 있게 밀겠나. 힘 있는 공권력이 국민을 위해 유연하게 참아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유가족이나 시민들이 억울하고 분해서, 그래서 와서 때리면 공권력이 맞아줄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별다른 상처도 안 될 그런 손놀림에 공권력을 사용하면, 서민은 단번에 다치고 부러지며 죽는 것밖에 없다. 힘없는 자들의 수많은 발길질은 별 흔적도 없겠지만, 힘 있는 자의 가격 한 방은 서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는 거다.

공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왜 그런 치명상을 서민들에게 가하는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있어야 한다. 덜 불편한 사람이 더 불편한 사람한테 양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너무 심하게 잘못 생각하며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채지민 객원기자
● ● ● 결국은 소통의 부재와 소수만을 위한 정책 집행이 낳은 결과인 것 같다. 이렇게 일방적인 질주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정말로 큰 걱정이 앞선다.

●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의 의지 자체가 없다.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다. 부족한 사람의 편에 서서 대화를 하면 다 소통이 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볼까? 갓난아기들이 옹알이를 하면, 부모들은 그 내용이 뭔지 다 알아듣는다. 정확한 발음도 아니고 직접적인 몸짓마저 없는데도, 아기의 뜻과 마음을 부모는 다 이해하는 거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하면 그 아기의 입장에서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갓난아기의 예를 이 사회로 바꿔서 생각하면, 현실의 답이 그대로 나온다.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이게 아니’라고 외치는데도,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의 정책들은 정말 잘못됐다고 지적하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국민이 없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국민이 안 보이는 정부가 존재할 순 없는 건데, 그런데도 스스로 그런 길을 가고 있다.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이고 얼마나 엄청난 비극을 낳게 되는지는….

● ● ● 오늘 정말 소중한 말씀을 잘 들었다. 마무리 차원에서 한 가지만 더 여쭙겠다. 최근의 시대상황을 보면 인권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거리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경찰에 의해 헌법의 기본권마저 침해를 당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빼앗기고 길바닥에 내버려진다든지, 인권위원회가 무력화되는 이런 현실 속에 우리 국민들이 내몰리고 있는데, 주교님께서 생각하시는 인권에 대한 일침의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듣고 싶어진다.

● 인권이라는 건 특별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 대우를 받으며 산다는 게 인권이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 내가 어디가 불편하더라도 사람이니까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거, 내가 힘이 없고 돈마저 없다 해도 동등한 사람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다. 그러니까 돈에 대한 불편함, 그게 바로 일종의 장애인 셈이다. 돈이 없다는 장애, 힘이 없다는 장애, 몸이 조금 불편하다는 장애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장애를 갖고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한테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 나름의 커다란 능력이 간직되어 있다고 나는 보고 있다.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성직자들은 그런 부족한 이들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편이 되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과 의지가 되고자 노력하는 거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역할을 하셨던 분 아닌가.

끝내 이기는 건 결국 희망을 잃지 않는 민초들이다. 희망은 반드시 이뤄지니까, 믿음과 의지를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다들 너무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잊지 않으실 테니까 말이다.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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