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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는 국가의 당위성이다"

[만난 사람]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이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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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최악의 경제위기를 경고하던 2008년 가을, 유독 대한민국의 경제 담당 최고 책임자들의 입에서만 낙관론이 터져 나왔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서민들은 난데없는 한파에 죽을 지경이라 비명을 질렀는데도, 우리 경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여유가 최고 책임자들에게서 태평하게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 결론은 무엇이고 어떻게 전개됐을까?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증가세로 돌아섰고, 누적 흑자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반도체는 25%, 자동차는 19%씩이나 각각 증가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올해 말까지는 경상흑자 규모가 300억 달러 후반 대, 그러니까 400억 달러에 가까워질 거라는 뉴스 진행자의 밝은 얼굴 앞에서는 정말 만세라도 대신 불러줘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왜 서민들은 더욱 더 퍽퍽해지는 현실 앞에서 메마른 가슴을 내리쳐야 할까? 만리장성 넘기보다 더 어렵다는 취업 때문에 젊은 세대의 탄식이 넘쳐나고, 사교육비의 절대상승 앞에 좌절하던 학부모들은 빈익빈부익부의 냉정한 현실 앞에 한숨을 몰아 내쉰다. 주식과 펀드투자가 어쩌고, 누구는 부동산 투자와 재테크로 몇 억을, 누구의 2세와 3세는 수백억과 수천억을 제대로 된 세금도 없이 상속 받는다는 대한민국의 실제 현 주소는 어디인가?

총체적 왜곡으로 점철된 국가적 사회적 위기 상황 앞에서, 올바른 좌표를 제시해야 할 ‘쓴 소리’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죽비를 손에 들어야 할 면면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지금, 진정한 복지의 의미와 현 정부 복지정책의 오류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이가 있어 취재의 발걸음을 옮겼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이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이태수 교수를 만나, 2009년 대한민국의 실체를 해부해 본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교수님의 활동을 보며 큰 힘을 얻는 이들이 많다.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위기’라는 표현이 쓰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사회복지 실상이 어떤지,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먼저 지적해 주시면 좋겠다.

“한국도 이젠 복지국가가 돼야 한다는 건 당위성의 문제이다. 그 중요성에 관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정말 많은 논의를 해왔다. 물론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복지’라는 개념 자체를 불편해 한다. 복지국가는 한물 간 레퍼토리이고 세계적으로 퇴조하는 게 복지 개념이라고 주장하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들의 얘기까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국가가 정말 제대로 가려면 복지국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유함으로써 최소한의 국민 기본선이 확보돼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립적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이 내장된 복지국가를 이룩해야 한다는 건 우리 모두의 공감대일 것이다. 그걸 전제로 할 때,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서의 복지국가 논리는 상당히 저급한 복지국가, 그러니까 미국식의 복지국가라 해야 할 일이다.”

“나는 그것을 ‘식코형(Sicko型) 복지국가’라고 얘기한다. 지금의 추세로 본다면 그런 쪽으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건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재정 부분에 있어서의 제약, 또 하나는 전달체계에 있어서의 민영화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가 미국형 복지국가 즉, ‘식코형 복지국가’의 전형이고 현 정부의 본질적 핵심이다.”

- 국민 앞에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복지체계의 근간을 뒤집는 그 작업을 지금 현재 진행하고 있다는 게 사실 아닌가. 현 정부 안에서 그 기조가 실제 마련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며 듣게 된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나 김대중 정부 때도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물론 많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복지에 대해서 그렇게 큰 제약적 상황이 있지 않았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의 핵심은 결국 감세를 통해서 재원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표했듯이, 재임 5년 동안 96조의 감세가 진행된다. 매년 20조씩 덜 걷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복지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겠는가. 또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해도, 벌써부터 주요 아이템은 잘 아시다시피 4대강 사업 같은 데 22조씩 투입하는 걸로 잡혀져 있다. 복지를 운영할 재정적 여력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게다가 갖가지 이유로 인해 복지에 써야 할 자금이 다른 사업에 의해 다시 또 줄어드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투자 재원, 계속 줄어가 ‘위기’

- 독자들의 쉽고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언급하는 복지정책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교수님 판단에 따라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가급적 재원과 자원을 적게 들여서, 빈곤한 계층에 대해서만 효과적으로 지지해주면 된다는 것, 이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간단한 프레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까 재정은 어차피 복지에 많이 쏟아 부을 생각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하려다 보니까 시장이나 경쟁의 메커니즘을 통해 운영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 마인드로 진행하려다 보니까 이 복지 영역에도 영리화와 산업화 같은 걸 꾀할 필요성을 떠올리게 됐고,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구매계약제’ 이런 것이다. 시장화를 의미하는 거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그렇게 서비스만 알아서 해준다면 굳이 법인일 필요도 없게 된다. 그래서 비영리든 누구든 와서 구매자로부터 선택만 받으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의 비용을 정부가 주겠다는 게 구매계약제인데, 한마디로 민간의 영리를 활용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정책이다.”

- 복지 영역의 시장화를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들이 실제 구매자인 빈곤층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가.

“단기적으로 볼 때, 빈곤층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일시적으로 넓어지는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사회복지사들이 와서 주는 것만 그냥 받고, 해야 될 일들만 하면 됐었다. 그런데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면 이 사람이 와서 이런 걸 할 수가 있고, 저 사람도 와서 저런 걸 할 수 있는 식으로 선택권이 주어지는 상황이 된다.”

“그런 변화에 대해서 외견상으로는 발전된 방식이란 생각을 가질 순 있는데, 사회복지서비스의 핵심은 공공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건 단순히 물건 하나 사고팔듯이, 돈이 있으면 사고 돈이 없으면 안 사는 그런 게 아니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복지시스템은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그 분들의 삶이 치명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 극히 중요한 영역인 것이다.”

- 선택권이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제대로 된 선택이 과연 가능하게 될지 의문이다.

“바로 그 점이다. 빈곤층이기에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많은 분들이, 자기 판단을 하기 어려운 분들 위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정신장애를 가지신 분들이거나 치매노인들, 또한 판단을 한다 해도 사실은 그렇게 다양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현실이 이런데 이런 분들에게 선택권을 빙자해서 영리업자들이 들어온다는 얘기는, 결국엔 영리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무언가 소비자에게 건네질 질적 양적 혜택을 선점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복지영역의 시장화, 빈곤계층 치명적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

- 지금 말씀하신 사회복지서비스 중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가 있는가? 활동보조서비스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노인장기요양제도가 대표적인 예가 된다. 노인장기요양제도 같은 경우를 보면, 지금 현재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그들이 커다란 이익을 남기고 있다. 50명 정도의 노인만 확보하면 연간 매출액이 1억 정도가 되고, 그 안에서 일정 부분의 이익을 자신들의 몫으로 챙기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은가.”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에 이 제도를 공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 우리가 끌어안는다면 업자들의 이익이라는 것, 그들이 누린 이득만큼 더 넓은 수혜자들을 찾아서 환원하는 게 가능해진다. 결국 효율화 내지는 서비스의 질을 재고한다는 명목으로, 영리업자들에게 문을 열어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가는 이익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수혜자들의 선택의 폭을 그만큼 좁히는 결과만 남는다. 또한 그 서비스의 질이라는 것도, 그게 과연 경쟁효과가 완전히 발현되는 그런 품질일까?”

“장기요양제도와 바우처 같은 데서도 비슷한 부작용이 발생하지만, 공급업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교통편이 불편하거나 서비스를 하는 데 좀 까다로운 점이 많은 소비자가 있다면, 이런 소비자들은 서비스 공급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사회복지서비스를 결국 영리업자의 취사선택에 맡긴다는 건, 우리가 학교 급식 문제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학교별로 양질의 급식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면 간단한데, 공급업체를 통한 대량 유통과 공급으로 인해 질 낮은 음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만약에 사회복지서비스를 업자들의 영역으로 넘긴다면, 수요자에게 종목과 수량만 맞추는 질 낮은 서비스가 만연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서비스의 전체적인 질에 있어서나 수요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공공성을 담보하는 기관이 아닌 자신들의 이득을 쫓아서 움직이는 이들한테 제대로 된 서비스를 기대할 순 없게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결국엔 혜택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원하는 선택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되거나, 시장화 논리에 전적으로 단련된 사람들의 건조함이 그대로 수요자에게 흘러들어가는 역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 교수님도 지적하셨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 아닌가. 절대적인 예산이 줄어들면, 그만큼 그 안에서 움직이기 힘든 부분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위기감은 결국 어떤 형식으로 드러날 거라 생각하시는가.

“지금 4대강과 관련해서 22조원의 돈이 쏟아 부어지고 있고, 매년 20조 정도씩 감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들을 역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걸 만약에 복지 쪽으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그런 정책으로 진행한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편적 복지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면, 그것은 6조 정도가 들어가는 국가적 사업이 된다. 5세 미만의 아동에게 전액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거기에는 장애인도 포함이 된다. 그러한 사업이 6조원으로 해결된다는 뜻이다. 또한 지금 차상위계층과 비수급빈곤층이라고 해서 410만명 정도의 사각지대 빈곤계층이 있는 걸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 410만명에게 부분적으로 급여를 줘서 그들의 생활을 지탱하는 정책을 쓴다면, 9조원 정도의 자금으로 고른 혜택을 나눌 수가 있다. 다른 경우로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하는 경우에도, 10조원의 공적자금이면 충분하다고 우리는 판단하고 있다.”

-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의 22조와 부자감세인 20조가, 결국 일반 서민들이 누려야 할 폭넓은 복지를 그만큼 줄이고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게 아닌가.

“수당제 역시 7,8조 정도만 있으면 일단 의미 있게 시작해 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사회 복지의 보편주의적 시각에 입각해서 숙원사업으로 기획하며 진행해 왔던 내용들이다. 그게 결국은 우리나라를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로 끌고 올라가는, 그래서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아동이든 다 같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로 가는 핵심적인 사업 아이템들인데, 그런 복지사업을 추진하는 데 들어갈 만한 막대한 자금을 지금 강이나 감세로 그냥 부자들과 대기업의 호주머니에 잔존시키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이걸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굉장히 참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장애계 입장을 잘 아시겠지만, 장애연금을 도입한다면서 결국 1만원 올려 주는 걸로 말잔치는 끝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원인도, 결국 축소해버린 복지 관련 재원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닌가. 장애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수급자로 살고 있는데, 현행 수급비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적정선으로는 사실 너무 낮은 수준이다.

“최저생계비 자체가 진정으로 합리적인 적정선을 찾아서 결정되어진다고는 보기 어렵다. ‘최저생계비는 관리되어진다’ -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낫겠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라는 데서 민주적 절차를 거치며 합의해서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정부의 재정적인 고려를 염두에 두고 ‘아, 어느 정도 올리면 몇 명 정도가 수급권자가 되겠다’는 계산을 미리 해놓은 다음, 거기에 맞춰서 최저생계비가 결정되어지는 시스템인 것이다.”

- 현실적인 실제 생활과 상관없이, 정해진 계산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는 의미인가.

“상관이 없다고까지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원칙에 따라 조율되는 형태로 원론적인 의미에 맞게 결정되어지는 건 아니다. 지난 99년에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그 최저생계비는 우리나라의 중위소득에 맞춰 40%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0년이 흐른 지금은 31%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최저생계비가 경제 여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올랐다는 뜻이다. 심지어 내년의 최저생계비는 2.75%밖에 안 올렸다.”

“지금 같은 경제위기 하에서 서민 물가가 마구 뛰고 있는데도 최저생계비를 그 정도 올렸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최저생계비용을 원론에 맞게 측정해서 책정한 거라고는 그 누구도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저생계비가 적으니까 전체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준과 수준 또한 작아질 수밖에 없다. 누누이 강조하듯이 장애인이나 노인, 한부모 가족 등의 가구 특성별 고려를 현재는 전혀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장애인의 경우 장애 때문에 오는 추가비용 같은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장애인에 대한 고려 없는 사회로 진화 중?

- 그럼 우울한 얘기인데, 희망도 없이 이 상태로 계속 이렇게만 가야 한다는 것인가? 일자리 문제라든지 실업자는 계속 양산이 되는데, 갈수록 나아질 희망이 없는 상태라는 건 정말 답답하고 암울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경제 부분에 너무나 과도하게 무게중심이 실렸고, 그럼에도 사실은 본질적 의미에서 성공하지 못한 거다. 계속해서 외환위기를 맞고 금융위기에 매번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지 않은가. 실업자를 양산하고, 중소기업들을 도산시키고, 자영업자들을 몰락시켰다. 이렇게 됐을 정도로 경제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체질적으로는 경제에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가 경제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란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 국가들이 보여줬듯이, 경제와 복지가 잘 어우러져야만 경제가 복지가 되는 것이고 복지가 경제가 되면서, 국민과 국민 경제 자체도 안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성공적인 사회의 안정성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더불어 충족시키게 된다.”

“수십 년 동안 경제에 모든 걸 걸다가, 이전의 두 정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복지에 대한 시도가 시작된 바 있다. 그런데 현 정부에 와서는 복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제대로 된 대응 자체를 하기 어려운 속성과 실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여지를 찾기가 힘들어지게 된 셈이다.”

-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현 정부에게 정확한 실상을 알리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권장할 만한 방법은 없다는 건가.

“이런 상황으로 그냥 끝없는 비관만 하고 있을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진정성 여부를 떠나, 현 정부도 탈이념 같은 실험과 친서민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정권의 속성과 상관없이 당장의 국민적 현실을 본다면,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자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결국 실패하는 정부가 되지 말고, 진정한 친서민과 친복지적인 정책을 펴게 되리라고 우리가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주장하는 건, 그것을 위해서는 이 정부가 감세를 추진하는 데 대한 기본 원칙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그냥 놓아두고 친서민을 위해 뭔가를 해보겠다 했을 때, 그건 이번 2010년 예산안 꼴이 되고 만다. 2010년 예산안이 복지 분야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며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27.8%의 예산 비중을 복지에 뒀고 역대 최고의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재정적자를 전제하면서 이렇게 한 게 아닌가. 올해 50조, 내년에 32조라는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이런 정책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 복지 예산을 크게 보이기 위해, 무리한 방식으로 부풀린 통계와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던가. 그것 때문에 사회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아주 높다는 걸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이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2년 또는 3년 뒤, 아니면 다음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어떤 정책도 펼 수가 없는 엄청난 재정적 제약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거대 규모의 재정적자는 당연히 답이 아니다. 또한 현 정부가 2010년 복지 예산에서 뭔가 신경을 썼다고 강조하는 대목도 가만히 살펴보면, 보금자리주택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친서민을 위해 보금자리주택을 추진한다는데, 진짜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3억짜리 4억짜리 아파트 건설을 복지비로 계산한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게다가 법률적으로 이미 할 수밖에 없는 것들, 그래서 자연증가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예산까지도 다 집어넣어서 예산의 증가를 부풀렸다는 건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무늬만 보면 복지 예산이 뭔가 증가된 것 같은데, 그 안을 들여다볼 것 같으면 내실화되고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이 별로 없다. 그런 가운데서 생색내기뿐인 화려한 구호만 자꾸 나열하는 거,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결국 감세의 부작용을 감추기 위한 앞가림이 시급했다는 증거가 된다.”

- 매년 20조를 감세한다는 게 법인세와 같은, 이런 세금을 말씀하시는 건가.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가 다 포함된다. 부자들의 호주머니를 지켜주기 위한 그 감세만 하지 않았더라면, 사실 그 자금이 복지 분야에 우선 적용됐을 게 아닌가. 그런데 감세는 중앙정부의 문제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지방정부에도 직격탄을 날려서, 지방정부도 전체적으로 보면 교부금 등 10조 정도의 예산이 깎인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전체적인 복지재정의 근본적 제약은 결국 감세에서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 복지 문제를 지방정부로 이양시키지 않았나. 그때 전제가 됐던 게 분권교부세였는데, 그게 크게 줄어들면서 지역에서 지금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제도 운영마저 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지역마다 돈이 없다는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는데, 결국 그것 또한 감세정책이 제일 큰 문제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 같다.

“분권교부세도 내국세의 0.94%를 곱하는 것이기에, 결국 내국세의 전체 규모가 감세로 인해 줄어들면서 이것 또한 줄어들게 된 것이다.”

- 그런데 일본의 경우를 봐도, 복지를 늘일 수밖에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동안 복지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보수정권이 정권교체가 되면서 정책적 분위기가 아주 많이 바뀌게 됐다는데, 우리나라도 결국 이렇게 되지 않겠는가. 교수님이 보시기엔 어떤가. 결국 한계에 이르면 끝까지 외면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일본도 수십 년 동안 복지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이 횡행하다가, 이번에 복지를 강화하자는 쪽의 캐치프레이즈가 나오면서 정권이 바뀌게 됐다. 물론 우리에 비하면 일본의 복지 수준이 훨씬 높지만,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일본도 낮은 복지 수준과 격차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게 현실이다. 서민들의 고통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이런 것들이 극적 전환을 통해 나온 것인데, 과연 우리나라도 국민들의 고통을 극대화시키고 한계까지 몰고 간 상황에서 반전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져야 할까? 그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현 정부에게 복지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며 권고하는 것이다. 민생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핵심이 복지정책임을 자각하면서, 감세와 작은 정부론(論)에 대한 일정한 철회를 통해 의미 있고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실행하도록 해야 할 일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그렇다면 국가와 정부를 바라보며 분노와 냉가슴을 앓아야 하는 국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인 모든 이들은 어떤 마음자세로 이 현실을 대처해야 하는지, 평소 생각하고 계시는 의견이 있다면 듣고 싶다.

“그 무엇보다도 요즘 들어 ‘깨어 있는 양심’, 이런 표현들이 다시 강조가 되고 있다. 결국 국민 내부 그리고 서민들 속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복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복지에 대한 담론’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가. 그리고 ‘복지의 발전주체’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그런 복지의 담론을 확산시키고 복지주체를 우리 사회 안에서 만들어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구사회도 역시 복지선진국가로 오는 과정에서 뚜렷한 복지주체라는 게 존재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때로는 진보 성향의 정당이 됐기도 했었고, 때로는 어떤 시민단체가 되기도 했고, 아니면 특정 이익단체가 되기도 했다. 더불어 상당히 깨어 있는 정치인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되기도 했다.”

- 아쉬운 대목이자 일면 섭섭한 마음도 있는 사항인데,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복지를 전달하며 실천하는 이들 이외엔 사실 복지 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복지라는 의미가 사회 일부에서 진행되는 행위 정도로만 인식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은 것 같은데, 이런 현상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듣고 싶다.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데 동감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노동계나 정치인들이나, 사실은 복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우선순위를 높게 두지 않고 있다. 복지가 이런 식으로 퇴행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퇴행만큼은 되지 않도록 관심을 쏟아주는 게 중요하다. 또한 현 정부가 복지에 대해서 제대로 좀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복지에 대한 건전한 목소리를 강도 있게 낼 수 있는 건전한 세력들이 폭넓게 만들어져야 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화두가 된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복지를 이해하고, 그 필요성에 의해서 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 수혜대상자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당장 복지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옳은 건지 조언해 주시면 좋겠다.

“장애를 가진 대다수 분들이 현재의 이런 현상적인 급여수준에 대해 1차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가지실 수밖에 없겠지만, 더 나아가서는 장애 문제뿐만 아니라 노인 정책이라든지 아동 정책이라든지 아니면 고용에 관한 정책이라든지 교육에 관한 정책이라든지, 이런 전체적인 우리나라 사회정책 전반이 성숙된 단계로 나아가는 길에 동참하는 게 바로 장애 문제가 함께 풀려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굳이 말씀드린다면, 장애인의 문제를 장애인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 시스템 전반이 보다 더 성숙하게 되는 문제로 폭넓게 주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장애인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는 만큼이나 다른 문제에도 연대해서 같이 움직여 주시기를 기대한다. 또 다른 문제, 예를 들어 아동문제에 대해 움직이는 분들도 장애인 문제에 대해 연대하시고, 장애인 여러분 역시 사회 각계의 문제에 함께 연대하시기를 부탁드리는 것이다. 각자의 문제를 각자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복지국가의 큰 틀에 대해 우리가 공감하는 만큼,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는 함께 제 분야의 문제를 연대해서 풀어나간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참 좋은 의견을 말씀해주신 것 같다. 개별적 역량을 한데 모은다면,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지 않겠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그게 아니다. 장애인 여러분들은 장애인의 문제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며 외롭게 투쟁하시고, 노인의 문제는 또 노인분들만 모여서 하시고, 아동의 문제는 사실 눈에 띄게 대변하는 이들도 없지만 아동의 문제로만 보고 거기에 관계되시는 분들만 목소리를 높일 테고, 이렇게 돼서는 그게 분할관리 대상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관료들이 하기 좋아하는 발언이 있지 않은가. ‘다른 데도 줘야 되는데, 우리가 여기에만 줄 수 없다’, ‘장애 문제,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을 이만큼밖에 배정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복지도 중요하긴 한데, 복지만 중요한 게 아니고 환경도 중요하고 다른 산업발전도 중요하니까, 지금 그런 상황이라서 복지 예산은 이것밖에 줄 수 없다’ 늘 이런 식 아닌가. 결국은 분할관리 내지 각개격파가 되고 마는 그 원인을 곰곰이 살펴보면, 그 원인 제공의 많은 부분을 우리 스스로가 하고 있다는 점으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조금 더 커다란 틀에서 연대를 하고, 각각의 문제를 안정되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거시적인 차원까지도 내다보면서 함께 고민을 해주시면 좋겠다.”

    ▲ ⓒ채지민 객원기자 성장우선론, 이미 선진국서 실패한 모델

-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 싶다. 사회적으로 복지와 관련되는 의견만 등장하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파이’라는 게 ‘복지를 신경 쓰기 위해선 국가경제부터 우선 성장해야 하고, 그 다음에 가서 복지를 거론해 보자’는 식의 뜻에서 기득권층 위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그 주장에 대해서 사회복지를 연구하시는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 현실적으로 볼 때, 그것 때문에 일정 부분 장애인들이 위축되는 경향도 사실 없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게 바로 일종의 ‘파이론(論)’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건데, 귀가 따갑도록 지난 몇십 년 동안 들어왔던 낡은 레퍼토리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파이가 커진 만큼 그 혜택이 나눠지지 않는 구조적인 부정적 한계가 이미 노골화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바로 소득의 재분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니계수를 세금을 떼기 전의 소득에서 구하고, 세금을 뗀 후에 구한 다음 서로를 비교해 보자. 그 차이라는 건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얘기하는데, 우리나라는 세전소득과 세후소득의 진위계수 변화율이 약 6%에서 7%밖에 안 된다. 별반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선진국의 경우, 특히 스웨덴 같은 나라는 45%에서 50%를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성장을 해도 다 같이 나누어 갖는, 그런 사회가 이미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 성장을 통한 소득재분배는 선진국가의 기본조건으로, 이미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지 오래가 됐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왜 그 공감대를 자의적으로 왜곡하며, 기득권층의 방어막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가.

“성장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파이를 키운다고 해서 파이가 커지는 건 절대 아니다. 그건 우리가 이미 지난 4,50년 동안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 모든 걸 다 걸었지만, 결국은 극히 취약한 경제구조로 인해 양극화만 불러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확인이 된다. 전체 국민의 구매력 같은 수요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인적자원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경시된 채 방치되어왔다는 게 큰 문제점이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는, 그런 상태에서 물질적 파이만 키우겠다는 건 이 사회의 괴리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 정규직 회사원 A씨가 직장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평생 동안 모아 100% 모두 다 저축했을 때, 최고의 대기업 회장 B씨의 재산만큼 모으려면 50만년이 걸린다는, 웃지도 못할 이런 얘기가 인터넷상에 구체적인 수치계산과 함께 떠돌고 있다. 그게 우리나라의 자화상인 것 같아 정말 씁쓸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파이’라는 논리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진짜 성장은 성장의 대가가 배분을 통해서 사람에게 되돌아가도록 진행돼야 맞는 것이다. 장애인도, 노인도, 아동도, 실업자도, 모두 다 인간답고 무언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생산적 일에 종사할 수 있는, 그런 기능까지도 가질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경쟁력이 있도록 만들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장이 분배로 이뤄지지 않고, 분배를 통해 다시 성장으로 가는 선순환 구도가 깨져 있는 사회이다.”

“성장의 대가는 일부한테만 가고 나머지한테는 어떻게 보면 패자부활전마저 할 수가 없다는, 다시 말해서 한 번 장애인이 되면, 한 번 빈곤하게 되면, 한 번 실업자가 되고 나면 그 뒤로부터는 그 수렁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패자부활이 안 되는 그런 대한민국 사회가 이미 된 게 아닌가. 그렇다 보니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자살하고 희망이 없어지게 되는데, 더군다나 그게 대물림이 되며 장애인 역시 결국 연이은 빈곤화가 진행되면서 다시 또 후세를 빈곤하게 만들어 노동시키게 만들고, 실업자 역시 자기 자식에게 실업의 결과인 빈곤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갈수록 강화되는 것이다.”

- 그러니까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가진 자’들의 논리는 허구에 찬 자기방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지 오래가 아닌가. 속칭 ‘가진 자’들은 누구나 그 이데올로기를 똑같이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거나, 이론적인 진리라고 판명된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방적으로 4,50년 동안 거기에 지배되어 왔고, 과거 10년간의 정부에서 그런 논리의 부당함을 정책적으로 풀며 진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싹을 틔울 수 있게끔 만들었던 모든 진행이 모두 다 원위치로 되돌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화가 퇴행되고 있다는 것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고 있지만, 복지에 대한 보다 더 성숙한 담론과 사람이 정말 가장 중요하다는, 이렇게 중요한 담론의 싹마저도 다시 꺾이고 있다는 점도 민주화의 퇴행만큼이나 굉장히 아픈 부분이 아닐까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잊을 필요는 없겠다. 우리는 항상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놓지 않았던가. 우리 스스로가 먼저 복지의 신념을 갖는 ‘복지의 발전주체’로 재정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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