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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위한 사회 인프라 구축 시급하다"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오길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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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장애 관련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돌아온 지인에게 직접 들었던 내용을 먼저 소개한다. 미국에서는 어떤 장애인든 간에 그 장애를 갖기 이전의 생활로 가장 근접할 때까지, 재활 훈련과 그 비용 투자를 국가가 직접 담당한다고 한다. 그 비용이 전동휠체어 1대 사용하라는 차원이 아닌, 사회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있을 수준까지 지원을 계속한다는 의미이다.

   
▲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센터 제공
A라는 일을 하던 사람이 사고 등을 당해 장애를 가졌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사람이 A를 다시 하게끔 최선의 치료를 다한다는 것이다. A가 안 된다면, 그 사람이 희망하며 선택하는 B라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사고방식이라면, 기초생활이니 수급권자니 뭐니 하는 최소한의 금액만 지불하는 선에서 끝났을 일이다. 그런데 복지선진국의 정책은 기본부터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가진 사람을 하루빨리 본래의 현장에 복귀시켜서 그 사람이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게 만들고, 그 사람이 생산적 수익을 얻으며 살게 된다면 그 수익에 대한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국가적 투자비용을 회수한다는 것. 그 수익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환원하는 액수가, 그 사람에게 지불됐던 기존의 투자비용을 오히려 능가한다는 것. - 국가운영과 복지체계의 본질적 차이점은 바로 이런 대목에서 드러난다.

‘장애인의 재활에 관심이 없는 나라’, 그래서 ‘장애인의 빈곤을 대물림으로 방치하는 나라’, 그 나라는 어디인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민감한 대목을 굳이 언급해야 하는 이런 현실 앞에서 국가적, 국민적 무관심에 일침을 던져 줄 분을 만났다.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교수이자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이사장인 오길승 교수를 만나 이론과 실제가 마주치며 혼재되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다.

   
▲ 한신대학교 오길승 교수 ⓒ채지민 객원기자
- 우리나라에 재활공학서비스를 도입한 1세대로서, 장애인의 편의증진을 위한 큰 역할을 담당해 주신 데 먼저 감사드린다. 직업재활법을 만드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다. 그 과정부터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내가 직업재활이 전공이기에 현장을 살피는 사업을 많이 했고, 정책을 만드는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다. 이성재 변호사 등과 함께 장애인의 고용촉진과 직업재활을 위한 법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상처만 남긴 법이 되어버렸다. 본래 추진했던 소정의 성과 즉, 법률로써의 효과성이 훨씬 떨어지는 법 내용으로 마무리가 된 거다.”

“그 입법과정이 어땠는지는 여러 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원래 직업재활법으로 올렸던 내용이 반 토막 났고, 통과시키지 않으려던 노동부가 몇몇 단체를 직간접적인 매개체로 활용해 반대하면서 최초의 취지가 많이 사라지게 되고 말았다.”

- 원래 명칭이 장애인직업재활법 아니었나

“지금은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명칭도 원래는 ‘직업재활법’으로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자 의욕적으로 추진했었다. 그런데 반대가 워낙 심해서, 본래 의도했던 내용의 절반 정도밖에 수용되지 않은 일종의 타협안이 되어버린 거다. 솔직히 말한다면 너무나 속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을 위해 최선의 정책을 법제화하려 했는데도, 몇몇 장애 관련 단체에서 정부 입김에 맞춰가며 무리한 수정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제대로 된 상을 차려놨는데, 장애인 스스로 발로 걷어찬 격이 되고 만 셈이다. 물론 일부 단체가 그랬지만, 실제 내용의 절반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은 끝내 아쉬운 대목이다.”

- 법의 명칭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재활’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재활이라는 용어가 적절한 표현인지 의문이 드는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내가 볼 때는 필요이상으로 단어나 용어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것보다 더 깊숙한 개념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지금도 일부에서는 ‘재활’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항의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는 그런 행동들이 너무나 피상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재활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개념을 갖고 어떤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하는가가 더 큰 화두인데 패러다임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또한 패러다임의 변화도 없이 용어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 재활이라는 단어를 전문가 위주로, 전문가들의 관점으로 사용하는 용어라고 보기 때문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개념화시켜서 타깃으로 잡으면 모든 게 문제가 된다. 일종의 분리와 분열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전문성 없이 일을 꾀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일례로 자립생활운동이 미국 같은 나라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가 없이 무조건 당사자들만으로 하겠다는 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 반향과 호응은 좋게 보인다. 하지만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당사자 중심의 양분법은 무리한 면이 많이 있다.”

- 당사자주의는 장애계에서도 한 축을 담당하는 화두가 된 지 오래됐는데, 무엇이 위험하다는 건가

“장애인만이, 전문성도 필요 없이 장애인들 스스로 다 해나간다는 거, 사실은 보조공학의 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전문성이 어느 정도 존재해야 긍정적 발전이 이뤄진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과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공학 같은 테크놀로지가 전문성 없이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지나친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그런 걸 배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장애 배척이 아닌 전문성과의 결합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당사자주의도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은 장애와 비장애 구별 없이, 그 사람들이 해야 할 영역을 주면서 함께 가야 하는 게 올바른 일이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땅이다, 이건 너희들이 배제돼야 한다’는 식으로 가면, 지나친 양분법의 폐해가 결국 당사자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된다.”

- 교수님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이면서 재활학을 전공하고 계신데, 개인적으로 ‘재활’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신가. 그 단어가 ‘못 쓰게 된 것을 다시 활용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거부감은 일면 합당한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건 원래 중도장애인한테 적합한 용어이다. 그런데 그 개념을 장애인들이 자활하고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됐는데, 너무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조정이 어려운 면도 있다. 보조공학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된다. ‘공학’이라는 의미가 잘 맞지 않는다. 공학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모든 게 공학적으로 다 해결된다는 뉘앙스를 남긴다. 사실은 이게 서비스 차원에서 발전해야 되는 것이다. 새로운 기구를 개발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기구들이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서는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나게 만들어낸들 뭘 하겠는가. 실제 장애인들은 그런 보조공학장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공학만 강조하면 개발하는 쪽으로만 중요성을 찾게 된다.”

- 맞는 말씀이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기구들은 모든 장애에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만큼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건 사실인데, 그런 개발이 상용화됐다는 걸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공학적인 측면에서도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장애인들의 삶에는 다가오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재활공학센터’가 아니라,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보다 나은 신제품이 개발돼야 하고, 이 제품들이 저렴하게 보급돼야 하며, 시장의 개척도 이뤄져야 한다. 그런 유기적인 연결이 있어야 하는데, 방송 화면에서 뭐가 개발됐다고 아무리 떠들어댄들 그걸 실제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대부분이라면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말들을 하지만, 지금과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훨씬 많은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비근한 예를 든다면 지금 서울과 경기도에서 각각 센터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우리가 다 갖춘 듯이 자평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전국 16개 시도에 적어도 1개 센터씩 운영되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전국 각지의 장애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필요로 한다는, 그래서 어떤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는 게 바람직한지 정도는 관계기관에서 확실한 인프라를 이룩해놓아야 하는 것이다.”

- 경기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가 생긴 이후로, 새로운 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은 듣지 못한 것 같다. 왜 이렇게 정체되고 있는 건가.

“한두 개 만들어놓은 것으로 다 한 것처럼 생각하는 관료들이 있다는 게 문제이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전국 16개 시도에 모두 일정규모 이상의 센터를 건립해야 한다. 책임자로서 센터를 직접 운영해 보니까, 여러 면에서 미국의 경우를 자주 관찰하게 된다. 미국의 장애인들은 도시든 시골이든 간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보조기구를 모두 다 사용하고 있다. 이건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또한 연구 개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밑으로 그물망 같은 전달체계가 완전하게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나라 면적보다 넓은 주가 50개 이상 있는데, 워싱턴에서만 그런 서비스가 이뤄진다면 그 광활한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전혀 실감을 못할 게 아닌가. 조금 전에도 언급했듯이, 각종 언론매체에서 무엇이 어떻게 개발됐다고 아무리 떠들어댄들, 실제 필요한 사람이 ‘그것이 어떻게 내 것이 되냐?’는 의문을 갖는다면 그건 잘못된 시스템이다. 재활공학의 연구와 서비스가 열 단계로 이뤄져 있다면, 우리는 현재 1단계를 막 걷기 시작한 수준이다. 앞으로 9단계를 다 갖춰야만 장애인들이 실제로 실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완성될 것이다.”

- 그렇다면 이제야 도입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 되는가

“그렇다. 도입단계에서도 초입이라고 보면 된다. 여러 선진국들의 인프라 현황을 살펴볼 때, 보조공학에 대한 투자와 전달체계 완비 등을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첫 단계를 막 시작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 확인된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교수님은 우리나라에 전문적인 보조공학을 도입한 1세대이신데,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신 건가.

“그 질문에 답변을 하려면, 장애인 당사자로서 살아왔던 개인적인 지난 생 이야기가 잠시 언급되어야 할 것 같다. 소아마비의 당사자로 살아오면서, 실생활에서 보조공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며 지내왔다. 절실한 욕구와 필요성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만 한정한다면, 당장의 문제는 어떻게 통학을 하느냐는 점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매일 택시를 탈 수도 없고,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목발을 짚고선 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집에 차도 없는 형편이었고,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했던 게 오토바이였다.”

- 다리가 불편하신데 오토바이에 오르고 내리는 걸 어떻게 하셨다는 말인가

“고민과 궁리를 반복해서 낸 아이디어가 자전거 뒷바퀴에 작은 보조바퀴 두 개가 달려 있는 것처럼, 오토바이에도 그런 장치를 설치해보자는 것이었다. 대신 크지 않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나처럼 목발을 짚는 장애인들한테는 공통적인 심정이 있다. 가급적 남의 눈에 안 띄고 싶다는 거다. 장애 때문에 놀림을 당하며 살아온 세대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처럼 보조공학서비스센터라도 있었다면 방법론에 관한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당시는 머릿속으로만 모든 고민과 궁리를 반복하는 게 전부였다.”

“결국 오토바이 매장에 가서 갖은 시행착오를 다 겪은 뒤에, 오토바이 뒤쪽에 보조바퀴를 장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바퀴였다. 회전반경과 안전성 등을 고려하다 보니까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지금이라면 불법개조라는 딱지가 붙겠지만, 당시의 내게는 정말 절실한 이동수단의 확보 과정이었다.”

- 자신에게 꼭 필요한 보조공학장치를 직접 개발하신 셈인데, 그 과정이 남모르는 절박함으로 진행됐다는 게 마음에 남는다. 그런데 재활공학 중에서도 직업재활에 중점을 두며 연구 활동하시는데, 거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

“원래 나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든 아니든 간에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의사가 돼서 나처럼 소아마비 같은 장애를 안 생기게 해야겠다고 말이다.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의대를 희망하며 고교를 이과로 다녔다. 고등학교 시설이 좋은 편이라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많이 다녔다.”

“장애를 가진 선배들 중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 선배들이 전부 다 재수를 한다는 게 의아했다. 알고 보니까 의과대학의 학업 과정은 목발을 한쪽만 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나처럼 양 목발을 짚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내게는 너무나 큰 치명적인 상처가 됐다. 실제로 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어려서부터 키워왔던 꿈마저 장애 때문에 펼 수가 없게 됐다는 것 아닌가.”

- 대학 전공이 심리학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전공을 새로 선택하신 건가.

“그런 셈이다. 현실이 그렇다는 걸 알게 되고 선배들이 연이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사춘기를 겪으며 가슴속에 응어리로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의 정신 건강이 좋지 않다고 판단될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대학 2학년 때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었다. 내가 과연 사회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안 된다는데, 내가 앞으로 어떻게 벌이를 할 것이며 직업이라는 건 어떻게 가질 수 있단 말인가 - 그런 갈등이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왔다.”

- 장애인한테 직업은 절대적인 필요성이면서도, 언제나 좌절을 안겨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도 그러한데, 교수님의 젊은 시절이었다면 그 정도가 훨씬 심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직업재활에 많이 전념하는 데도 그런 까닭이 있다. 직업이라는 문제, 내가 소망하는 건 이랬다. 내가 아주 특별하게 잘난 사람으로 살고 싶진 않은데, 보편적으로 살려고 한다면 적어도 돈은 벌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야 어떤 여자한테 결혼하자고도 얘기할 수 있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건데, 그런 모든 게 직업을 갖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출발부터 모든 미래가 불가능해진다는 거다. 내가 76학번이고 80년에 졸업을 했는데, 그 당시의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과 사회 분위기를 봤을 때 나 역시 장애를 가지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기만 했다. 내가 대학을 나와도 사회가 나를 안 받아줄 거라는 현실 말이다.”

- 그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장 유학을 가신 건가

“아니다. 좋은 기회를 만나게 돼서, 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 심리평가를 담당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서 7년 동안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거다.”

- 사회생활의 첫 직장이 서울장애인복지관이었다면, 교수님한테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복지관에서의 7년은 나에게 굉장한 변화를 맞이하게 만들었다. 인생의 나아갈 길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너무 심하게 방황하고, 사실 공부를 해도 과연 내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점을 항상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7년의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걸 보고 경험하게 됐다. 내 담당 분야가 심리검사였기에, 제일 많이 접촉한 사람들은 정신지체나 지적기능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계속 만나고 그 가족들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는 내가 너무나 잘못된 생각 속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다. 신으로부터 나만큼 저주받은 사람이 있을까 하며, 나만 제일 불쌍하다고 스스로를 봤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던 거다.”

- 복지관의 심리상담이라면, 어떤 면에서는 이 땅의 장애인계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목격하는 위치일 수도 있겠다. 다양한 증상의 장애인들과 상담하면서 얻게 된 건 무엇인가.

“지적기능에 문제가 있는 장애인들, 다른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계속 상담하다 보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내 장애는 장애도 아니었다. 흔한 표현으로 ‘명함도 못 내민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만난 장애인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걸 호소할 방법조차 모르는 아주 심한 중증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있으면서 장애 이외의 현실적인 부분도 많이 접하게 됐는데, 정말 어려웠던 점은 경제적인 문제와 엇물리게 되면 그 장애 자체가 정말 수습할 수도 없게 어려워진다는…, 가정이 파탄으로 무너지는 그런 사례가 연이어 목격됐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면서 ‘아, 내가 이런 의식 속에 살면 안 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세상을 정말로 모르고 있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그래서 뭔가 이 사람들을 대변하고, 실제 그럴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가 할 수 있게 되길 갈망하기 시작했던 거다.”

- 미국 유학이 다음 단계로 등장하는 것 같다. 언제 가셨는지, 가서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얻으셨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미국 장애계의 실상을 어떻게 관찰하셨는지도 듣고 싶다

“복지관의 일선 현장에서 일을 해보니까, 그 당시는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이러이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내가 아무리 외쳐 봐도 메아리마저 없는 상황만 연이어졌다. 그래서 목소리를 좀 키워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목소리를 키워 대변해야겠고, 공부를 더해서 직접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며 7년 만에 유학을 결정하게 된 거다. 그래서 당시 나름대로 판단하던 걸 기준으로 전공을 정하게 됐다. 장애 분야가 쉬운 건 분명 아닌데, 장애 종류도 너무 많고 그 단계도 세분화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제일 어려운 장애가 무엇인가. 당시 판단으로는 지적장애가 가장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 지을 건 아니었지만, 지적장애문제를 내 전공으로 파헤치기로 결정하게 됐다. 또한 교육도 중요하고 의료적인 재활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지만, 내가 그 이전까지 진짜 몸살을 앓았던 건 직업의 문제였기 때문에 직업 문제의 해결에 도전하기로 했다. 즉, 미국에서의 내 공부 주제는 지적장애인들의 직업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는 걸로 결론이 난 것이다.”

-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지금부터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체험하셨는가.

“나도 미국에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준비하면서 가는 길 내내 상상을 해봤다. 도대체 우리나라하고 뭐가 다를까. 거기는 재활의학도 발달하고 특수교육도 발달했으니까, 장애인들의 치료가 아주 잘 되어 있을 테고 우리보다 경증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보편적으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의료적인 패러다임이었다는 거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은 그렇게 자문자답하며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가 박사학위 연구를 계속하면서 학문적으로 들여다보니까 그게 맞았고, 나 역시도 그런 생각에 파묻혀 있었다는 뜻이 된다. 장애라는 문제를 치료하고 경감하고 교육한다는 거, 그런 식으로 장애를 줄여갈 수 있다는 데 근시안적인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는 의미로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 얼마만큼 우리 현실과 달랐다는 것인가.

“미국에 가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할 때부터 가장 의아했던 건, 주위에서 진짜 중증장애인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당연한 상식적 내 논리로 볼 때,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이 훨씬 적어야 하는데 훨씬 더 많이, 오히려 장애인들만 눈에 보일 만큼 모든 거리 여기저기에 장애인들이 가득했다는 사실이다.”

“왜 여기가 더 많다는 건가. 정말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한, 정말 심하고 심각한 장애인들마저 거리에 오가는 걸 목격하게 됐다. 나도 7년 동안의 복지관 근무를 하면서, 이 땅의 다양한 장애인들과 함께 마주치며 지내왔지 않았던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 정도의 장애라면 집에서 쉬는 게 낫겠다고 절실히 떠올릴 만큼의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세세한 증상과 부분까지 맞춰가며 전부 다 제공하고 있다는 점 또한 충격이었다.”

- 우리가 지금까지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인데, 미국에서는 그 당시에도 이미 보편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게 듣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모습을 일상처럼 목격하다 보니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중증장애인들이 눈에 안 보일까?’ 하는 진지한 의문이 생겼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의학이 발달해서 치료를 잘하고 있고, 특수교육이 발달해서 알아서 교육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안 보이나? 그게 아니었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다 집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보조공학이 이미 선진화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 환경적인 측면들, 다시 말해 도로나 일반적인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서 장애인들의 이동이 가능한 사회적 인프라가 만족스럽게 갖춰져 있었다. 나올 수 있게 만들어놓았으니까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외출을 하고, 학교에 와서 원하는 강의를 듣는 게 아닌가. 이런 게 바로 복지정책의 선진국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다. 장애를 갖고 삼십 몇 년을 살았던 입장에서, 장애를 조금이라도 낫고 경감하는 게 우선이라 믿었던 그 당시까지의 사고방식은 완전한 착오였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 직접 경험하신 입장에서 본질적인 차이점은 무엇이라 보시는가.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박사과정을 밟던 관점이기에, 그 누구보다 당사자 입장의 해답이 보였을 거라 판단이 된다.

“장애라는 건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장애 자체를 고치거나 경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수교육을 중심으로 반론을 제기하곤 하는데, 특수교육도 물론 일부의 방향인 건 맞다. 하지만 내가 그걸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특수교육 역시 장애인을 교육해서 그 당사자를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방식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이건 굉장히 잘못된 판단이다. 장애라는 건 그렇게 변화되는 게 아니다. 이건 나 스스로 뼈저리게 경험하고 목격하며 느꼈던 사항이기에 확신으로 주장할 수 있다. 그렇게 다 해결된다면 장애인은 없게 되는 게 아닌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장애는 아무리 치료를 하고 훈련을 해도 완치되는 게 아니다. 장애는 끝까지 남는다는 점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장애는 끝까지 남는다’는 말씀은 굉장한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 그게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의미라면, 보조공학 내지는 재활공학 차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대안이 될 것 같은가.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경우가 이미 그런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장애인을 없애거나 줄이거나, 또한 장애 정도를 경감시키거나 하는 모든 정책들이 힘들다는 점을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하며 실질적인 대안을 실행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갖고도, 그걸 인정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환경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그 대목에서 핵심으로 등장해야 할 내용이 바로 보조공학이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적인 마인드 역시 치료 중심이었다. 그런 치료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썼었는데, 치료 중심을 사회적 인프라 구축으로 전환한 것은 1960년대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을 겪으면서 커다란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 그 커다란 흐름이라는 게 무엇인지, 또한 이 땅의 장애인들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함께 질문 드리고 싶다.

“미국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장애와 재활이 시급한 자국민들에게 무한대에 가까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나라가 맞다. 그런데 1960년대에 투철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일부 지체장애인들이 정부를 향해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정말 쇼킹한 일로 지금껏 기록되고 있다. 자신들한테 필요한 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아니라는 것, 치료 중심으로, 훈련 중심으로,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혜택을 받는 이들로 자리매김하는 걸 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치료 중심의 패러다임보다는,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라는 게 그들의 주된 주장이었던 것이다. 이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현실에도 거의 대부분 부합되는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답은 크게 보자는 거다. 장애인이 길에 나올 수 있도록, 그런 환경적 시스템부터 뜯어 고치라는 의미가 된다. 미국의 예는 미국의 경우일 뿐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정치경제, 사회문화적인 현실이다. 제대로 된 반면교사로 삼으며, 우리 현실과 실정에 맞는 최상의 대안을 찾아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보조공학서비스는 이제야 첫 계단에 발을 올려놓은 수준이라 강조하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국가차원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인프라 구축 없이는 모든 정책 집행이 결국 원점에서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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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7,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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