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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자기 길을 걸어가세요

[사람사는 이야기] 신춘문예 등단 아동문학가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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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돌고 돈다. 30년 가까이 뛰어갔는데도 다시 원점이 된다. 다시 또 30년이라는 시간을 미친 듯이 달려 나갔는데, 가만히 뒤돌아보니까 최초의 원점에 다시 돌아와 있다는 것이다.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앞만 보며, 인생이라는 이름 하나로 달음질쳤는데도 결론은 똑같단다. 원점과 같은 언행을 30년 주기로 반복해야 한다는 것, 도대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와 만화주제가를 거의 다 망각할 무렵, 사람들은 자신의 2세나 조카들로 인해 그런 노래들을 다시 외우고 불러야 한다. 물론 의무적인 게 아닌 자발적인 되새김질이다. 그런데 인생은 커다란 한 바퀴를 한 번 더 돌고 돌아야 한다. 2세의 2세나 조카들의 2세가 탄생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 동요와 만화주제가를 다시 또 되살려야 하는 삶이 전개된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에는 동요 따위를 빨리 잊어버리고 어른들의 노래를 따라 불러야 우쭐대기 편했는데, 아이들 노래를 다시 외워야만 가족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는 거, 이건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나’를 닮은 아이한테 동화책을 다시 읽어줘야 한다. ‘우리’를 닮은 아이한테 기초적인 예절과 세상사는 법을 다시 가르쳐야 한다. 결론은 무엇일까? 태어나서 떠날 때까지, 유년시절의 기억과 그 의미는 평생 반복해야 할 가치를 지닌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자 진리라는 점이다.

    ▲ 신춘문예 등단 아동문학가 이나영씨 ⓒ채지민 객원기자 동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동화’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느낌은 무엇일까? 기성세대의 눈으로 본다면 ‘아이들, 아기, 유년시절, 적당한 유치함, 추억이 서린 공간, 이미 잊어버린 거, 화려한 그림, 커다란 글씨, 엄마들이 주로 찾는 책’ 등이 아닐까? 그런데 세상이 바뀐 요즘은 이런 식의 평가가 따라붙을지도 모르겠다. ‘학업에 방해가 되는, 논술과 관계가 없는, 차라리 수입서 원문을 읽게 하는 게 낫겠다는, 굳이 읽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식의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게 요즘의 현실일 것 같다. 세상이 그만큼 급변하고 뒤바뀐 점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분명한 건 유년시절을 잊어버린 사람은 자기 영혼의 고향을 찾지 못하고 영원히 헤맨다는 사실이다. 유년기의 꿈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 개인적인 체험과 독서이고, 그 중 독서의 영향력이라는 건 지구를 몇 바퀴나 휘감을 만치의 힘을 간직하는 법이다. 첨단의 인터넷 시대인데 독서가 중요하다고? 답은 단순하다. ‘정말, 진짜로, 아주 중요하다.’는 거 - 그게 전부인 것이다.

동화를 읽는 건 아이들이지만 쓰는 건 어른들이다. 동화를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고된 작업이다. ‘아이들 수준에 맞게 적당히 유치한 글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덤비면 큰코다친다. 실제 그런 마음으로 동화 작업에 덤비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 결과물은 항상 ‘상당히 유치한’ 활자공해로 막을 내린다. 아이들 ‘수준’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야 진정한 동화의 길에 다가선다는 점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를 유지한다는 것, 동화작가라는 직업과 그 인생의 작업이 고된 길이라는 건 바로 그 눈높이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조건 때문이다.

그 고된 여정에 인생의 발걸음을 올려놓은 이가 새로 탄생했다.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을 통해 이 땅의 동화작가로 등장한 그를 만나기 위해, ‘사람사는 이야기’는 서울 지하철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고 한참 내려갔다. 새로 등단했다는 작가를 왜 만나러 갔냐고? 당연한 질문과 당연한 대답은 이럴 때 오고 간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자 이나영 씨가 이번 호의 주인공이다. 소녀 같은 동안(童顔)으로 첫 인상부터 동화적 느낌을 강하게 남긴 이나영 씨는 이 땅의 문단 역사에 새로운 흔적 하나를 남기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뇌병변장애 1급의 동화작가가 신춘문예를 통해 탄생했다는 것!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어서 오세요!”
미리 알려준 설명 그대로 따라가니까 목적지가 바로 나왔다. 초인종이 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이나영 씨의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다. 언론을 통해 봤던 얼굴보다 훨씬 소녀 같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마침 가족들이 다 외출해서 혼자 있다는 그의 설명과 안내에 따라, 거실 한쪽의 낮은 탁자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주 깔끔한 집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자리에 마주앉아 서로 앞의 빈 찻잔부터 채웠다. 뭐라고 할까. 이 실내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참으로 차분하다고 할까? 깔끔한 내부와 차분한 느낌이라는 건, 이나영 씨와 가족의 삶을 아늑하게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반사경과 같았다.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한마디씩 또박또박 얘기하는 나영 씨는 올해 서른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 서른은 육체적 나이일 뿐일 테고, 웃을 때는 유치원에 갓 들어간 꼬마아이의 티 없는 얼굴과 똑같았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별똥별 떨어지면 스마일’에서, 희동 오빠 앞에서 방긋 웃는 주인공 수연이가 저렇게 생긴 아이가 아닐까 싶은 맑은 웃음이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태어날 때는 건강하게 태어났는데요.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는데, 그런데 엄마 아버지 저 그렇게 세 식구가…, 제가 맏이거든요. 동생은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죠.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제가 백일 조금 지나서 방에 연탄가스가 들어와서요. 그래서 제가 크게 울었대요. 그래서 저의 엄마가 아버지하고 깨어나셔서 바깥으로 나왔는데, 엄마는 연탄가스가 너무 세서 엄마는 기절하셨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게 됐대요. 엄마하고 저하고.”

단어 하나마다 정확한 발음을 찾으며 얘기하던 나영 씨는, 오래된 생각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듯 보다 빨라진 음성으로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괜찮은 줄 알고 얼마 동안은 그냥 지냈다는데, 저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까 자라나는 발육이 좀 늦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엄마 아빠 보시기에 아기가 아픈 것 같아서 병원에 다시 갔대요. 그때 의사선생님 말씀이 저의 뇌에 약간 그을진 것 같은, 그런 흔적이 되어 있다고 했대요. 다시 촬영해 보니까 뇌병변인 것 같다고….”

백일 직후에 당한 사고로 인해 가족 모두가 힘겨웠는데, 첫돌이 지날 무렵 병원을 찾아가 얻게 된 대답이 장애판정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 아이가 말을 하고 다양한 표현을 하게 된 건 언제인가 물으니까, 그것도 늦었고 처음 걷는 것도 여섯 살이 돼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학교는 고등학교를 특수학교로 옮길 때까지는 일반적인 보통 학교를 계속 다녔다는 대답이 새로웠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아주 어릴 때 장애를 갖게 되면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현실적 상황을 잘 모를 수가 있는데, 초등학교에선 어떤 반응이 나왔고 그 반응을 새삼스레 맞이해야 했던 심정은 어땠는지가 궁금해졌다.

“아이들이 저의 모습에 너무 놀라고요. 또 저의 외형적 증상이 좀 일반화되지 않은 모습이니까, 그래서 더 많이 제 모습에 당황하며 놀랐던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은 지도를 잘 해주셨냐고 물으니까 “그럼요. 참 잘 해주셨어요.”라는 대답이 곧장 이어졌다. 지금은 통합교육 같은 게 있어서 괜찮지만, 그 당시에는 장애를 가지고 일반학교에 간다는 게 드문 경우였는데, 그 결정이 부모님의 뜻이었는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원했던 건지가 궁금했다. 원래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특수학교를 다녔었단다. 그런데 선생님들께서 ‘나영이는 일반학교를 가는 게 좋겠다. 가서 뭘 해도 잘 적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며 권유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보셨단다. 가도 되는지,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까, 나영 씨 역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됐다고 한다.

   
▲ ⓒ채지민 객원기자
“그때는 어디에 사셨나요?”
“그때도 이 근방에서 살았어요. 태어나서 계속 이쪽에서 살았어요.”
“특수학교를 먼저 다녔다면 장애와 익숙한 환경에 있었을 텐데, 비장애와 같은 교실에 있게 됐을 때 본인의 마음은 어땠나요? 어린 마음이지만 생각했던 게 있었을 텐데.”
“저는 솔직히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갔어요.”
“그 어린 마음에도 그런 각오를 하고 간 거예요?”
“네, 제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단계였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일반학교에 오니까 저 같은 뇌병변장애를 처음 본 아이들은 크게 놀라더라고요.”
“그럼 교실에서 공부할 때 어머니가 같이 계셨나요?”
“아니오. 등교만 해주시고, 학교엔 저 혼자 있었어요.”
“그럼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를 하는 건….”
“아니오. 제가 혼자 다 했어요.”

뇌병변장애를 갖게 된 이후로 그 증상이 점점 완화되는 추세인지, 아니면 보다 안 좋아지는 과정인지를 물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초등학교 당시에는 조금씩 좋아지는 편이었단다. 스스로도 좋아진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친한 친구, 그러니까 그 시절에 정말 고마웠다고 떠오르는 친구가 있나요?”
“제가 중학교 때 만났던 친구가 있어요.”
“어떤 친구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정말 좋았던 추억이 많이 있었죠. 그 친구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하고, 저한테는 없어선 안 될 평생의 친구가 됐어요.”


좋은 친구가 있었던 반면에 상처를 준 이들 또한 있었을 게 아닌가. 그때 그 친구가 왜 나한테 그랬을까 하며 마음에 남는 친구가 있는지를 물었다. 나영 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런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굳이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말줄임표가 잠시 이어지기에 그 지점에서 말문을 막았다.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은 대목이라면 아예 언급을 안 하는 게 나은 법 아닌가. 잠시 어두워지던 나영 씨의 표정이 다시 편안하게 밝아졌다.

‘사춘기 소녀’ 시절은 어땠는지 묻는 걸로 대화가 연결됐다. 사춘기는 16살 때 왔단다. 변화가 찾아들었다는 게 그렇게 구체적인 시점으로 느껴졌다는 뜻인지 물으니까 그렇다고 한다. 아주 심하게 왔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그때까지는 제가 잘 적응하고 있다 믿으며 살아왔는데, 제가 중3에 올라가면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그 이유는… 제가 학구열이 좀 높았거든요.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입시의 열기가 매우 강했어요. 학교 차원에서도 열기가 뜨거웠죠. 저 역시도 좋은 학교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지만 저의 실력이 좀 모자랐어요. 그렇지만 저도 제가 원하는 그런 학교가 있잖아요. 그걸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시작부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수업시간에 공부가 끝나면 매번 간단하게 쪽지시험을 보곤 했는데, 나영 씨의 고민과 갈등은 그 작은 부분에서 증폭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자신이 다 아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답을 다 못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에 부딪칠 때마다 너무 많은 고민이 떠오르며 생각만 더 깊어졌단다. ‘어떡해야 되나.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고 가야 할까.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글쓰기

지금처럼 시험 볼 때 옆에서 도우미가 함께 하는 시스템이 전혀 없던 시절, 똑같이 앉아 똑같은 조건에서 불리함과 부당함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 점점 자신의 마음속에서 ‘내가 노력을 해도 안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현실의 벽을 느끼며, 굉장한 회의에 빠지며 좌절하는 일이 반복됐단다. 결국 3학년 때 거의 1년 동안 학교도 가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부모님을 많이 속상하게 해드렸다는 점이 지금도 마음의 짐으로 남겨진다고 한다. 사춘기가 이성(異性) 같은 부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감과 자아상실 같은 화두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냐 물으니까 자신의 경우는 그랬단다. 그래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수학교로 다시 가게 된 이유가 그런 것과 연결되는 건가요?”
“네, 똑같은 레벨에서 똑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불편한 몸이라 해도, 친구들끼리 편한 마음으로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다시 특수학교로 돌아갔을 때 마음이 편해지셨나요. 아니면 거기서 또 하나의 갈등이 시작됐나요?” “또 시작됐죠.”


그 대답과 함께 나영 씨는 큰 웃음을 지었다. 힘들고 불편한 상황을 얘기하는 와중에 터져 나온 이런 웃음은 오히려 반가운 반응으로 반기게 된다. 이런 대화의 분위기를 받아들인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편하면 누구든 얼굴에 그 불편함이 묻어나기 마련인데, 나영 씨는 새로운 갈등이 시작됐다는 점을 웃으며 얘기했다. 이런 대화의 자리가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다는 것, 그런 속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얼굴 표정이 반가웠다.

“일단 적응이 쉬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어려웠고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안에서…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예를 들면 일반학교에서는 제가 혼자 있으면 아이들이 오히려 다가오고 같이 어울릴 수가 있었고 그랬는데, 그 상황이 이젠 거꾸로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했는데… 제가 좀 그랬어요. 그래서 처음엔 적응하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럼 ‘글’이라는 걸 처음 자기 인생 안으로 받아들인 게 언제였는지를 물었다. 받아들였기보다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권해주셨단다. 글짓기를 잘하니까 잘 써보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셔서,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쓰기 시작했다 한다.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주된 글쓰기는 독후감이었고, 각종 백일장엔 꼬박꼬박 참가했단다. 그래서 상을 많이 받았냐고 물으니까 “좀 받았어요.” 하며 한참 동안 환한 얼굴로 웃었다.

“어느 언론 인터뷰를 보니까 소설을 먼저 쓰고 싶었다고 말씀하신 게 나와 있던데, 소설이라는 걸 언제 어떻게 하나의 자기 장르로 선택하시게 된 건가요?”
“중학교 때였어요. 글은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써왔으니까.”
“책을 ‘무진장’ 많이 읽었다고 나와 있던데 얼마나 읽으셨어요?”
“그건 아니에요. 별로 안 읽었는데….”
“그럼 그 일간지 기자가 거짓말을 한 거예요?”
“아니, 그게… 그건 아닌데… 걱정이 되네요.”


나영 씨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편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절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저런 웃음을 짓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한 표정이 이어졌다. 책을 읽다 보니까 운문보다는 산문이 좀 더 끌리게 됐고, 글을 쓰며 습작을 하는 과정이 점점 더 산문으로 진행되게 됐단다. 책 역시 소설책에 손이 먼저 가게 됐고, 헤르만 헤세의 ‘나비’라는 작품을 읽으며 새로운 인생길을 만나는 실감을 얻게 됐다고 한다. 아동문학 계열의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을 읽고 굉장한 감동을 얻으면서 내가 만약에 작가가 된다면 이런 걸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게 됐단다.

국내 작가든 외국 작가든 간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가 생기기 나름인데, 그 당시에 주로 읽었던 장르나 작가는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소설을 주로 읽었는데 당시엔 국내소설은 별로 안 읽었던 것 같고, 외국소설 중심으로 거의 ‘닥치는 대로’ 읽었단다. 명작을 읽으려고 노력은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세상에서 주목받고 있는 화제작을 주로 구해 읽었던 것 같단다.

그 대목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글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여러 인생길이 있었을 텐데, 글을 만나기 이전의 인생길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얘기해 달라고 했다.

“당시 사춘기를 그렇게 보내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게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길을 가야 내가 내 삶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죠. 그러는 과정 속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글인 것 같다. 나는 노력을 해서 이쪽으로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굳히게 된 거죠.”
“그럼 좀 다른 얘기를 하겠는데, 본인의 성격이 어떤 것 같아요?”
“양면성이에요.”


만남의 시간을 통틀어서 가장 큰 웃음소리가 그 대답과 함께 터져 나왔다. 자신의 발언이 자기 생각에도 너무 쉽게 뜻밖의 언어로 튀어나왔는지, 나영 씨의 웃음이 수습(?)될 때까지는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하하, 호호호!

“무척 밝고 명랑하고 그럴 때가 물론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굉장히 예민해지면서, 안 해도 되는 비관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요. 가까운 분들은 저를 굉장히 밝게 보시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이 있어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려보고 싶다

대화의 틀을 대학생활로 옮겼다. 대학 전공은 문창과, 학번은 00학번이란다. 이런 대목에서 ‘사람사는 이야기’가 단도직입적으로 던질 만한 질문이 존재한다. 입학할 때 혹시라도 기분 나쁜 대우를 받았다거나, 일정한 제약 같은 게 있었는지를 솔직히 얘기해 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나영 씨는 “아…, 이거 사실을 다 말하게 되네요.” 하며 ‘공개 반 비공개 반’의 지난 과정을 털어놓았다. 내용의 특성상 짧게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고3 때 문학특기자가 되어 상위권 모 대학에 지원했는데 석연치 않게 합격이 안 됐고, 다른 대학의 문창과에 입학한 다음 다시 한 번 더 편입을 해서 대학 과정을 마치게 됐다는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그때가 정말 처음 성인의 입장으로 세상에 나오는 시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스스로를 발전시키려고 했었는데, 정말 그랬었는데, 그런데 제 스스로의 불화가 심했어요. 그래서 내면에서 굉장히 많은 싸움을 했었어요. 사춘기 당시와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다른 건 어릴 때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 같은 거였는데, 대학에 와서는 세상과 나 자신과의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굉장히 갈등이 많았어요. 제가 여기를 다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이 정말 많았거든요.”
“대학 전공과 같은 학과적인 갈등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문화시스템 전체 안에 내가 존재해야 하는가, 그런 갈등이었다는 의미인가요?”
“네. 단적인 예로 저는 공부를 하러 간 건데, 너무 도와준다는 차원으로 그렇게 다가오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그냥 일대일로 만나고 편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필요 이상 수혜적인 느낌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편하게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물론 그분들은 저한테 좋은 마음으로 오셨겠죠. 그건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지만, 어떨 때는 거리감을 두고 싶은 그럴 때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을 본 분들은 저한테 너무 차갑다 혹은 너무 자존심이 세다는 말을 자주 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이 드는 게,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은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저의 엄마가 저를 그렇게 교육시키셨고요. 저는 일반학교에서도 그랬어요. 혼자 식사를 하든지 화장실을 가든지, 그게 좀 어려워도 저는 마음은 편하게 혼자 할 수 있었는데, 그런 점들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리 준비했던 질문들 중에서 가장 무겁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그 시점에서 꺼냈다. 올해 서른의 나이가 되셨는데, 만약에 청소년 시절 당시에 글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글을 적지 않았고 지금 현재의 자신한테 글이라는 게 없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하며 존재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혹시 해보셨는지 물었다. “제 인생에 글이 없었다는 게 전제인가요?” 그렇다고 하니까 “글쎄요. 참으로 심각한 얘기가 되네요.” 하며 잠시 동안 시선을 여기저기로 천천히 옮겼다.

“사실 저는 사춘기를 심각하게 겪던 그 시기에 신앙을 가졌어요. 그래서 그 힘으로 많이 극복하게 됐고, 그런 가운데서 글을 찾게 됐거든요. 신앙 안에서 찾았기 때문에, 글이 인생의 이름으로 제게 다가왔다고 생각하며 믿게 된 거예요. 신앙이 선택한 저의 직업이고, 그렇게 인생의 부름을 받게 됐다고 저는 느끼며 간직하고 있어요.”

질문하기가 가장 주저되면서도, 이런 질문이 빠지면 대화의 큰 주제 하나가 빠진 것 같은 게 한 가지 있다. 나이 서른이라면, 미혼의 성인이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듣게 될 결혼과 가정 계획 등의 질문을 던졌다. 나영 씨는 그런 질문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생각은 안 할 순 없죠.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런 쪽으로는 욕심 같은 게 없어요. 안 좋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개인적으로는 저의 인생이 여자인 인생보다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한 인간의 모습 속에 한 여자의 모습이 된다면 저도 결혼 같은 걸 생각하며 마음이 좋겠지만, 제가 굳이 ‘여자이기 때문에’ 라는 점이 앞선다면 그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아주 중요한 화두가 등장한 셈이다. 단순한 생각이나 고민의 차원으로 정리된 언어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인생의 무게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건 듣는 순간에도 즉시 전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영 씨의 속마음을 더 들여다볼 심정으로, 작가로서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이미 문학지를 통해 등단(아동문학세상, 제57회 신인문학상 당선)했고 이번에 신춘문예로 다시 한 번 큰 도약을 이뤄냈는데,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포부가 무엇인지를 전해달라고 했다.

“저한테 너무 큰 영광을 주셨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먼저 쓰는 게 우선 급한 것 같고요. 솔직한 계획을 말씀드린다면, 저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동화를 쓰고 싶어요. 그리고 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캐릭터로 삼아서 동화를 만들고 싶어요. 제 인생의 이름으로 쓰고 싶은 아주 큰 목표 중 하나가 되겠죠.”

뇌병변장애 1급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린다는 게 거창한 일로 다뤄지는 이 땅의 통념이 몹시 아쉽기도 하다.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고 얼마든지 그 문호가 개방되어 있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세계 역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하는 물음표를 던져보게 만든다. 어쨌든 그 장벽 아닌 장벽을 통쾌하게 허문 이가 우리 곁에 등장했다는 건 진정 반가운 일이다.

그의 당선소감의 한 대목처럼 ‘이제 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맹렬하게 달려보고 싶습니다.’는 그의 세상이 어서 빨리 활짝 열리기를 기대하며 응원하는 일만 남았다.

선배로서 한마디를 부탁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손사래가 이어졌다. 그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젠 그런 말씀을 할 입장이 되셨다고. 지망생이나 응모자가 아니라, 이젠 당당한 문인으로 수많은 후배들을 이끌어야 할 입장으로 그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은데 선뜻 활자로 옮기지 못하는 분들, 적기는 했지만 정리를 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 또한 발표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는 소중한 길라잡이의 언어로 간직될 게 확실한 일이다. 진지한 얼굴로 곰곰이 생각하던 나영 씨의 입이 한참 만에 열렸다.

“저는 그래요. 정말 열심히, 자기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겠죠. 가만히 있는다 해서 누가 찾아주지 않잖아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돼요. 물론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셔서 제가 지금 여기까지 왔지만요. 제가 볼 때는 글을 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있다면 다독(多讀)이고, 그 다음이 습작이고 거기에 많은 생각을 더해야 돼요. 그런데요. 이런 말까지는 누구나 다 조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잖아요. 제 경험과 생각을 여기서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정해놓고 그 길을 바라보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든다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싶으면 백일장에 나가야 되고, 그냥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고 용기 있게 나가야만 되는 거예요. 거기서 답은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밑거름은 분명히 얻게 되거든요. 저는 그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애’가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분야가 어떤 면에서는 문학일 거라고 답을 내리곤 한다. 내면에서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오히려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한 동력을 지니고 있기에, 글쓰기의 환경만 갖춰진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만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시작하지 못한다. 글쓰기는 가장 단순한 데서 출발해야 편하다. 생각나는 대로 쓰고, 느껴지는 대로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작품이 되느냐 아니냐는 그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나영 씨가 훌륭한 작품을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 이 땅의 큰 문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문단의 각종 모임과 행사에서도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아주 길게 이어지면 좋겠다. 세상의 일은 단순한 면이 있다. 시작하기까지가 너무 어려운데, 시작점에 서고 나면 갈 길이 훨씬 더 너무 멀다는 생각부터 앞선다는 것. 하지만 멀다는 이유로 첫 걸음을 주저하면 안 되는 일이다.

걷다 보면 도착한다. 가다 보면 새로운 길도 보인다. 벤치도 있고 시원한 바람도 기다린다. 그렇다. 꾸준히 걷다 보면, 그렇게 나가다 보면 만날 이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만나게 될 그 주인공인 것이다.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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