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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계 패배주의 극복하는 게 당면 과제다

[인터뷰] 민주당 박은수 의원이 말하는 장애계 현안

본문

편집자 주: 민주당 박은수 의원과의 인터뷰가 3월 중순에 이뤄져 장애인연금안 등 장애인계 최대현안에 대한 내용이 지금의 상황과 다소 틀릴 수 있습니다. 이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봄이 왔지만 장애계가 체감하는 기온은 여전히 추운 겨울 날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월부터 시행되기로 한 기초장애연금법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제도 시행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고, 또 하나의 현안인 장애인 장기요양제도 또한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현재까지 재원 마련이나 제도 원형을 만드는 것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 장애인계가 당면하고 있는 두 가지 현안과 관련해서 국회에서는 지금 어떤 논의가 오가고 있는 걸까.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인 민주당 박은수 의원을 만나 장애인계 현안을 짚어봤다.

     
▲ ⓒ김라현 기자

연금 제도 4월 법 통과 안 되면 7월 시행 물 건너가

-우선 장애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있는 사항인 기초장애연금법에 대해 묻겠다. 이 법 지금 어디까지 와 있나
"처음에 내가 장애인연금법을 발의했을 때는 소득이 하위 70%인 모든 장애인에게 중증 25만원, 경증 12만5천원을 지급하는 총 2조3천억 원 규모의 연금액을 지급하는 안을 내놓았는데, 결국 이 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사실상 이름뿐인 정부의 연금법안이 보건복지 상임위를 통과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비롯해 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끝까지 싸워 겨우 얻어낸 것이 ‘중증장애인연금법’이 아닌 ‘기초장애연금법’이라는 명칭이다. 나는 앞으로는 보편적 복지시대로 가야 하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에게 한정해 연금을 도입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의 대상이 노인의 70%까지이므로, 장애인연금법도 중증에 한정하지 말고 전체 장애인의 70%가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이런 내 주장의 요지는 지금 당장은 안 되더라도 앞으로 대상자가 중증뿐만 아니라 경증장애인까지 확대될 수 있는 희망이라도 달라는 것이었다."

"또 연금액수와 관련해서 기초노령연금과 비교해보면 기초노령연금법은 2028년까지는 연금액을 인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기초장애연금법도 역시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액수를 늘릴 수 있도록 부칙에 담았다."

"그런데 대폭 양보하고, 굴욕감까지 느끼면서 만든 초라한 이 법안조차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의 반대로 인해 현재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기재부가 문제 삼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지켜낸 명칭을 ‘기초장애연금법’에서 ‘중증장애인연금법’으로 고칠 것, 대상은 ‘3급 이하’가 아닌 ‘3급 일부’로 한정할 것, 기초급여를 2028년까지 10%로 인상하도록 한 부칙조항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너무나 부당하고 장애인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정리하면 연금을 받는 장애인 수가 확대되고 연금 액수를 올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 기재부가 반대하는 이유인가
"그렇다. 장애인에게 희망마저 주지 말자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쪽에서 이미 너무 많은 부분을 양보했는데 기재부는 여기서 더 양보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양보라는 표현보다는 장애인계에서 정부에 굴복했다고 볼 수 있다. 기재부의 태도가 너무 완강하니까 복지부조차 기재부가 너무 한다며 흥분하고 있다고 들었다. 도대체 이 정부가 복지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것인지 참담한 심정이다."

-장애계에서는 이런 수준으로 연금제도가 도입되느니 차라리 도입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정부의 속성이 그러니까 우리가 이 정부에 대해 이상적인 제도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지금보다는 향후를 위해서 법을 도입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장애인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내용이니까, 우선 법이라도 만들어서 출발을 시켜 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가장 궁금한 사항이 향후 전망이다. 이 법 어떻게 되는 건가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정부가 17대 국회 결의를 무시하고 있고,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한 총선공약을 어기고 있다. 대통령도 자신이 라디오 연설 등에서 여러 번에 걸쳐 약속한 것을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삼권 분립도 무시되고 있다. 정부 일개 부처가 입법부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국회에서 결정한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가 이렇게 법의 모든 일반원칙을 무시하고 횡포를 부리는 것에 대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런 기재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과연 연금법이 7월 1일부터 제대로 시행이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7월에 제도가 시행되려면 마지노선은 언제까지인가
"이미 마지노선은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남은 가능성은 4월에 열릴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가 돼야 한다. 4월 국회에서 통과만 된다면 밤을 새가면서 준비해야 하는 무리는 따르겠지만 제도 시행이 가능한 거고, 4월 국회 때 통과되지 못하면 제도 시행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기재부 요구안을 수렴해 법 내용을 바꿔 통과시킬 계획은 없나
"그럴 수는 없다. 우선 복지위에서 수용하지 않을 거다. 법사위에서 자구 수정은 가능하겠지만, 법의 기본 내용은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는데 일개 정부 부처가 태클을 건다고 해서 이에 흔들리고 따라간다면 국회의 권위가 훼손되는 거다. 기재부에 요청하는데 4월 국회에서 이성을 찾기 바란다."

   
▲ ⓒ김라현 기자

장기요양제도 시행 복지부 아무 대책 세우지 않아 걱정

-또 하나 장애계 현안인 장애인장기요양제도에 대해서 묻겠다. 우리가 취재를 통해 확인했는데, 시행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의 관련 예산 확보 계획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제도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더욱 이 정부가 장애인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장기요양제도 또한 기초장애연금법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17대 국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스스로 내건 공약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장기요양제도에 대해서는 제도 도입을 포함한 장애인복지정책 계획을 국회에 6월말까지 제출하도록 한 결의가 있고, 아직 날짜가 남아 있으니까 일단은 지켜보는 중이다."

-취재하면서 염려가 됐던 점은, 연금법이 사실상 장애수당에서 연금으로 명칭만 바뀐 것처럼 장애인장기요양제도 또한 활동보조지원서비스가 명칭만 바뀌어 시행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거다
"나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걸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예감했다. 그래서 2008년 5월에 등원한 후 복지부를 상대로 장기요양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길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2011년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2010년 6월까지 시범사업 결과 보고서를 내려면 2009년에 시범사업을 실시해야 하는데, 복지부 예산 편성에서 시범사업 예산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강력하게 요구해서 복지부 예산안에 넣었는데 예결위 심의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최종 예산에서 빠지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추경예산을 편성할 때 내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해서 겨우 예산을 얻어내어 그 예산으로 작년에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취재하면서 들은 바로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 지원 대상이 6만 명이라고 들었다. 그만큼의 인원에게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려면 2천억 원 가까운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 정도 예산은 2011년 예산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과장의 말로는 수백 억원 이상은 배정 받기 힘들 거라고 한다."

-단 몇 백억으로는 6만 명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예산 중장기계획에 따라 각 부처에서 5년에 한 번씩 재정을 보고하게 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2013년까지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있다. 그런데 이미 써버린 예산이 너무 많고 건강보험료 적자 문제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봤을 때 정부가 장애인장기요양제도에 아무리 후하게 예산을 배정한다고 해도 몇 백억원 이상은 배정하지 않을 거라고 봐야 한다. 차선책으로 복지부는 지금 1천400억원 정도 되는 활동보조인 지원 예산이 내년에 1천700억 정도로 늘어날 텐데, 이 활동보조 지원 예산을 줄이든지 동결하고 나머지 예산을 장기요양제도 예산으로 돌린다든가, 아니면 지적해준 것처럼 아예 활동보조서비스에서 장기요양제도로 이름만 바꿔서 시행하는 편법을 쓸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장애인장기요양제도 도입과 관련해서 지금 복지부 입장은 뭔가
"복지부는 그냥 입만 다물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가 뭔가 준비를 하고 있다면 우리한테도 느낌이 올 텐데 그러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나만 더 물어보겠다. 장애인장기요양제도의 재원을 국비로만 할 수 없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보험료 납부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할 계획은 없는가. 건강보험료의 6%가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쓰인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1~2%를 더 얹어 장애인장기요양제도에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힘들다. 국민들이 아직까진 그런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의 경우에는 반드시 국비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장기요양제도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일반적인 건강보험제도 또한 보험료에만 의지해서 꾸려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회 취약 계층의 의료보장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지 건강보험료에만 의존하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그럴수록 보장성이 약화되는 문제가 생긴다. 장애인 정책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가가 책임지던 차상위계층의 의료보장 문제를 건강보험공단에 넘겼는데, 이런 식으로 건보공단에 떠넘긴 다음 국민들에게 점점 더 많은 보험료를 걷는 건 옳은 정책이 아니다."

-그래도 일부만이라도 보험료 방식으로 돈을 걷어 재원을 마련해야 장애인장기요양제도가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을 거라는 지적이 있다
"사실 국민들이 동의해준다면 보험료 방식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노인은 모든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편입되지만, 장애인은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17대 국회에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준비하라고 올해 6월까지 시간을 준 건데, 그간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아쉽다."

-정리하면 장기요양제도는 아직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볼 수 있나
"일단 걱정은 되지만 6월말까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정부에 시간을 주면서 계속 압박해야 한다. 장애계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정부가 제대로 된 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하고, 한나라당에게도 제도 시행과 관련해서 책임 있는 여당의 자세를 요구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는 바람직한 장기요양제도의 모델은 어떤 건가
"선진국을 예로 들자면, 장기요양제도도 연금법과 마찬가지로 노인보다 장애인에게 우선 보장하고, 그 다음 노인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됐다. 장기요양이라는 명칭 자체도 기존의 노인장기요양제도와 비슷하게 정해서 그쪽에 포함되는 것처럼 밀고 가는데, 장애인의 경우는 장기요양이라고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마치 장애인들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요양보호를 받기만 하는 치매노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제도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가려면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장애인의 특성과 장애인복지의 철학에 맞는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기본으로, 여기에 장애인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활동보조나 주거지원, 이동권 확보 등의 실질적인 자립지원 서비스를 포함시켜야 한다."

패배주의에 물들어가고 있는 현실 안타깝다

   
▲ ⓒ김라현 기자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민주당이 선거 쟁점을 복지로 선정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의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에서는 후보들이 전부 개발공약만을 내세웠고, 그 개발공약 때문에 복지를 중요시하는 다른 후보들이 안타깝게 낙선했다. 그러나 2년이란 시간이 흐른 이번 지방선거에선 우리 시민들도 성숙해서 토건공약에 속지 않고 복지 공약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연하면 이번 선거에서 장애인들이 심판을 해야 한다. 복지에 대한 자신들의 공약을 지키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식으로 장애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해도 계속 표를 주더라’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면 장애인 복지는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노의 목소리를 꼭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중요한 것은 선거를 통해 중앙정부가 하지 못한 복지를 지자체에 강제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만약 서울시장 선거에서만이라도 복지를 중요시 하는 후보가 제대로 선출된다면 서울시 안에서는 장애인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영향이 다른 지방에도 미칠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청와대나 여당이 복지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것도 큰 문제지만, 지금 우리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장애인들이 점점 패배주의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노력하고 싸워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이제는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건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것, 이게 무엇보다 중요한 당면과제라고 말하고 싶다."

작성자김라현 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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