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생각이고, 긍정적 의지를 갖는 일" > 함께 하는 세상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생각이고, 긍정적 의지를 갖는 일"

[사람사는 이야기] 성교육 강사 구자윤씨

본문

한글로는 ‘성’, 한자로는 ‘性’, 영어로는 ‘sex’라고 한다. 최초의 인류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진 건, 수많은 전쟁과 환란의 역경 속에서도 자손을 잉태하고 양육하려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모든 가정들이 존재했기에 이룩된 결과이다. ‘성’ 또는 ‘性’ 또한 ‘sex’라는 단어를 포르노 같은 음란물과 에로틱의 영상으로만 떠올릴 필요가 없는 건, 바로 ‘생명’ 자체를 탄생시키는 고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정말 불필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겠다. ‘성(性)’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은 손을 들어달라고 하면, 과연 몇 분이나 손을 번쩍 들어주실까? 물론 정말로 관심이 없는 분들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함을 알고 있다. 그건 개인적인 특성 내지 성격이기에, 관심이 안 가는 걸 ‘왜?’라는 질문으로 되물을 필요는 없는 일이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대답 아닌가.

대신 ‘본능’이라는 대목으로 물꼬를 돌린다면, 20년 넘는 지금까지 기억하는 혼자만의 에피소드 하나를 끄집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젊은 혈기에 좌충우돌하던 시절에 존경했던, 사회적으로도 주요인사로 분류되던 어느 신부님께 당돌한 질문 하나를 던진 적이 있었다. “신부님은 남자로서의 본능적인 욕구를 어떻게 참으세요? 무슨 비법 같은 게 있으세요?” 그 질문에 대한 신부님의 느긋한 대답이 20년 넘는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비법이 뭐가 있어? 그냥 참는 거지, 뭐.” 이후 껄껄 웃던 신부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만약 그 자리에서 종교가 어쩌고 윤리가 어쩌고 하는 설교를 들었더라면, 그 이후로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진짜로 인간적인 느낌 가득했던 ‘껄껄웃음’의 대답이, 그 신부님을 넉넉한 마음으로 간직하게 만든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얼마 전 마주쳤을 때,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짓궂게 다시 질문을 드린 바 있었다.

“그런데 신부님, 아직도 참고 계세요?” 그랬더니 신부님의 대답은 권투에서 말하는 카운터펀치(맞는 순간 동시에 똑같은 주먹을 내지르기)의 전형이었다. 그럼 그렇지, 대인(大人)은 역시 뒷마무리가 깔끔하다. “뭘 참아? 이놈아, 이젠 그러그러한 생각도 안 나. 시끄러! 하하하!”

    ▲ ⓒ채지민 객원기자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78년생 남자 구자윤. 성교육 강사라고 했다. 뇌병변장애 1급이고 태어날 때부터 장애였는데, 부모님은 첫돌이 훨씬 지난 후에 비로소 인지를 하게 되셨단다. 한참 지나도 걷지 못하는 아이가 왜 이런지 진단을 받아 보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뇌병변장애 같다는 것. 당시 서울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경기도 하남에서 산다는 남자.

질문으로 던진 내용마다 즉각 대답이 되돌아온다. 당당한 사람을 만나면, 그 질문 또한 당당하게 진행해야 멋진 답변을 얻게 되는 법! 두서없이 여러 질문을 던질 테니까 편하게 대답해 달라고 했다. 이어진 대답이 카운터펀치였다. “제가 원래 두서가 없거든요. 아무런 순서 없이 질문하셔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주고받은 명함에는 ‘사단법인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건 다 연상이 되는데, 가운데 포함된 ‘제나’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 궁금해졌다. “아, 그건 ‘제 것으로 온전한 나’라는 순 우리말을 줄인 거예요. ‘제나’, 이젠 아시겠죠?” 순 우리말? 명함을 받은 이후로 혼자 궁금하던 십여 초 동안의 입장이 머쓱해졌다. Jena? Gena? J.E.N.A? G.E.N.A? 도대체 뭘까? 머릿속에선 이 영어가 무슨 단어인지, 아니면 무슨 말의 약자인지를 나름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다음 인생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열심히 주고받던 메신저를 통해, 한 생활시설에 근무한다는 근무자 분을 우연하게 알게 됐어요. 그 분의 고민은 그 생활시설에 있던 생활인 한 분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내용이었죠. 근무자는 여성이었고 생활인은 남성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등을 심하게 하시더라고요. 잘못 얘기하면 그 생활인이 상처 받을 것 같아서 고민이라고…. 그래서 답을 전해줬죠. 그건 어차피 당사자의 몫이고, 상처를 받든 안 받든 간에 생활인과 지켜야 할 선만 정확히 명심하며 편안하게 대해라. 그렇게 얘기를 해줬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경우가 떠오른단다. 아이 서너 명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던 미혼의 여성 얘기 등 여러 경우의 고민과 해결의 과정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그때가 활동가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냐고 물으니까 그 이전의 일이란다. 그럼 그들이 왜 구자윤 씨에게 그런 고민과 속 얘기를 털어놓았냐고 다시 물으니까, 아마도 장애를 가진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언을 해주다 보니까 그런 역할을 맡게 됐던 것 같다고 한다.

장애인의 올바른 성 문화를 위해 활동하는 장애인푸른아우성을 알게 된 계기도 그 무렵, 정말 우연치 않게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까 인연이 연결됐단다. 장애인이 비장애를 좋아한다는 데 인식이 별로 좋지 않고 장애인은 당연히 장애인을 좋아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지금도 별반 달라진 건 없지만 당시 구자윤 씨는 그런 의견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이 혼자만의 생각인지를 고민하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게 바로 아우성의 존재였고, 회원으로 1년 정도 활동하다가 2005년 12월부터 정식 활동가로 함께 하게 됐단다.

장애인푸른아우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딱 1년 전 <함께걸음>의 표지와 ‘사람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났던 조윤경 씨가 바로 아우성의 대표 아닌가. 인터뷰의 대화를 잠시 접고, 조윤경 씨의 근황과 아우성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잠시 나누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녹음한 내용 그대로를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다.

“세상 참 좁아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잖아요.”
“맞아요. 일 나가 보면 더 좁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해요.”
“그럼요!”
그 뒤에 이어진 소리는 ‘깔깔깔’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잘못된 인식과 지식부터 바로 잡아야

성교육을 담당하면서 진짜 보람 있었다고 느꼈던 긍정적인 일 하나와, 정말 회의가 든다고 받아들였던 일 한 가지씩 얘기해 달라고 했다. 구자윤 씨는 2년 동안의 강사교육과정을 마치고, 올해 2월에 정식으로 강사 위촉을 받았단다. 그리고 4월에 강릉에서 교육의뢰가 들어와서,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현지를 방문하고 강의를 했다고 한다. 강의 주제는 요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섹스 자원봉사와 성매매 합법화’였는데, 장애인들 앞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권리로써 강조해야 할 얘기들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던 모양이다.

“제가 현장에서 모으고 겪은 사례들을 가지고 장애인들의 현주소를 얘기하고, 그 다음에 섹스 자원봉사와 성매매 합법화에 대한 찬반론을 함께 토론했어요. ‘섹스 블론티어’라는 영화 아시죠? 그 영화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강의를 진행했죠. 그런데 사실 아무리 성교육이라 해도, 실제 사례 같은 그런 건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거든요. 장애인들이 성 때문에 어떻게 힘들어하고 있고, 어떤 고통을 가지고 있고, 대체 다들 성욕을 어떻게 풀고 있는지는 절반쯤 덮어두고 눈을 감는 실정입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의 반응이 참 좋았어요. 보람이라면 이런 반응을 얻을 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회의적인 심정은 언제 느끼게 됐을까? 이것도 최근의 일이라는데, 성교육 강사가 됐다고 어느 장애 관련 카페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어떤 회원이 성교육 강사는 어떻게 되고 어떤 자격 조건이 있느냐, 그런 질문을 올렸다고 한다. 그 정도의 질문이야 당연히 할 수 있는 건데, 이어지는 그 회원의 생각이 문제였단다. 성교육이라는 걸 실제 성행위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강의 도중의 실습이라는 게 강사가 강단에서 대상자를 놓고 직접 성행위를 하며 보여주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 애기를 접했을 땐 그냥 넘겼어요. 웃어넘겼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게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때 들었던 생각이 ‘아, 이거 내가 5년 동안 현장에서 활동가 생활을 했는데, 내가 그동안 뭘 했던 건가.’ 거기에 덧붙여서 ‘내가 과연 앞으로 어느 부분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가.’ 이런 고민이 확 떠올랐죠. 제가 중점을 두고 있었던 건 성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론이었어요. 장애 유형에 맞춘 자위기구라든가 가상현실을 이용한 섹스라든가, 이런 걸 구현하고 싶다는 목표가 사실 가장 컸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경우를 당하고 나니까 ‘아, 내가 과연 우선순위를 어느 것에 맞춰야 하고,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장애인들한테 성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단정 짓기에도 어딘가가 부족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됐다고 한다. 아무리 우리나라 성 문화가 좋지 않은 면들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과연 비장애 입장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할까? 5년 동안 활동가로 지내면서 장애나 비장애나 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 특별하게 다른 건 없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난 뒤부터는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됐단다. 성교육 강사로서 이런 부분의 바른 인식과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일이 급선무임을, 무엇보다 시급한 게 잘못된 생각과 지식을 바로 잡는 일임을 직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내적인 조건, 더불어 외적인 조건

성교육 강사들을 떠올리다 보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왜 여성이 많을까? 구자윤 씨의 견해로는 여성이 섬세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면이 유리함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 강사의 유리한 점은 무엇인지, 또한 여성 청중을 앞에 두고 강의할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궁금해졌다. 구자윤 씨는 아직 여성들만 놓고 강의를 해본 적은 없단다. 대신 남성 강사의 유리한 점은 많이 있다는데, 대표적인 예가 자위에 대한 설명과 지도를 할 경우 같은 거란다.

“장애인 성교육에 있어서 여성 강사분들이 까다로워하시는 게 자위에 대한, 그 구체적인 지도방법을 언급하시는 데는 적잖이 껄끄러워하세요. 그런데 저는 그런 부분을 더 편하게 얘기할 수가 있는 거죠. 남성으로서 약한 부분은 임신과 출산 같은 주제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좀 안다 해도, 실제로는 결혼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여성 강사분들에게 강점이 있겠죠.”

그렇다면 장애가 유형별로 다 다르고 거기에 따르는 성(性)의 접근과 방법론 또한 다 다를 텐데, 일반 청중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 ⓒ채지민 객원기자
“제가 교육하는 대상이 주로 성인들, 성인 중에서도 지체장애와 뇌병변 분야가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성인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건 어떻게 하면 이성 친구를 만날 수 있느냐, 어디를 가면 성매매를 할 수 있느냐, 그 다음에 성인용품은 가격이 어떻고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성인들이고 미혼이기 때문에 교육 중에 가장 많은 궁금증을 표출하는 게 그 대목입니다.”

그럼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해주시는가? 물론 답을 한단다. 대신 성매매 업소가 어디에 있고, 이용 방법 같은 건 본인도 모르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설명한단다. 그런데 사실 강사 이전에 장애 당사자 입장에서 본다면, 적지 않게 답답한 측면들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이성 친구를 만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요약된단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항상 나아가라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게 물론 필수조건이긴 하지만…, 어떻게 말을 하든지 그건 이상적인 답일 수밖에 없는 한계성이 있는 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 내적인 조건들이라는 거예요. 장애 비장애 관계없이, 누구나 사람을 만나 사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내적인 조건이라는 거죠. 물론 그런 내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못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해요. 많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장애’라는 외적인 조건이잖아요. 그 조건은 장애 당사자가 아무리 노력하려고 해도 어떻게 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다. 내적인 조건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항이지만, 장애인들한테 가장 큰 올가미로 작용하는 건 결국 장애라는 외적인 조건이 아니었던가. 얘기가 나온 김에, 개인적으로 진짜 궁금하게 생각하던 대목을 꺼냈다. 성교육 강사를 만난 자리니까, 질문을 던질 적임자와 마주앉은 셈 아닌가. 질문의 핵심은 ‘섹스 자원봉사’ 문제였다.

섹스 자원봉사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의견과 조건부 찬성, 또는 절대반대 등으로 의견이 분분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문제를 성교육 강사인 구자윤 씨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그의 입에선 ‘절대반대’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흘러나왔다.

섹스 자원봉사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성매매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특히 여성을 위한, 그러니까 남성 자원봉사자들은 매우 많을 게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들과 성 심리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이 여성들은 관계를 가지려면 마음이 많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 하는데, 과연 자원봉사를 통한 욕구의 해결을 원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있기는 있겠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될지, 공급이 100이라면 수요가 몇이나 될 것인지가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적 난제라는 것.

“반대의 경우로 남성 이용자의 수요는 압도적으로 많을 텐데,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지도 따져봐야 하죠.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벌어지고, 그 미래는 불가피하게 성매매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매매 형태로 진행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장애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성매매 역시 여성장애인들, 그 중에서도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집중적인 인권유린의 피해를 입고 있잖아요. 지금의 현실도 그런 상황인데, 섹스 자원봉사의 문이 열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겁니다. 게다가 장애인들을 성으로 대상화한다는 부작용의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겠죠.”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의 생각이다

열띤 대화는 물론 좋았지만, 분위기가 ‘사람사는 이야기’가 아닌 토론이나 대담 수준으로 향하는 것 같아서, 5분만 쉬자는 핑계와 함께 자리를 잠시 정리했다. 그리고 질문의 방향을 확 돌렸다. ‘성교육 강사’ 구자윤 씨가 아닌, ‘인간’ 구자윤 씨와 마주앉아야 할 시간이 아니었던가. 어린 시절의 생활은 어땠는지를 물었다. “어린 시절이요?” 되묻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고, 나름 똑똑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며 약간 멋쩍은 듯 웃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특수학교에 다녔는데, 정말 다행히도 뇌병변장애 중에서는 인지도와 사고력이나 판단력에는 장애가 없었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 하려 했단다.

그럼 청소년 시절에 꿈꾸던 미래는 무엇이었냐고 물으니까, 사회복지 분야의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대학 전공은 방송정보학과였단다. 예전의 명칭으로는 신문방송학과를 생각하시면 될 거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그럼 친구 관계는 어땠을까.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부 다 정도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장애의 정도나 집안 환경이나, 이런 것에 따라서 진로가 다 달라지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인지 장애가 조금 가벼운 친구들은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갔죠. 97년에 제가 고3이었는데, 그때 막 특례입학제도가 시행되면서 장애학생들에게 일정한 혜택이 부여됐었거든요. 저의 장애가 좀 심한 편이잖아요. 친구들은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가는데, 저 역시 특례입학을 원했지만 장애가 심하다고 해서 입학을 거부당했었습니다.”

입학 거부? 평소에도 정말 듣기 싫은 표현 중 하나였는데, 그 말이 갑자기 등장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게 어느 학교였냐고 물었다. 이젠 지나간 일이니까 다 말해도 된다며, 구자윤 씨는 서울의 K대를 언급했다. 그가 한국방송대학교를 나온 게 K대의 입학 거부가 원인이었다니…. 당시에 대학을 간 학교 친구들이 많았냐고 물으니까 그건 아니란다.

특수학교 시절은 사실 암담했단다. 위의 선배들이 졸업을 하면 시설에 가거나 직업훈련에 가거나 집에 가거나, 그 이외에 특별한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늘 ‘저 선배들처럼 나도 똑같이 가겠지? 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어떡해야 하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할까?’ 이런 생각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그럼 만약에 대학에 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냐고 물으니, 아마도 집에 있거나 생활시설에 입소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단다.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의 생각 같아요. 일단 의지를 가져야 돼요.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계기가 마련된다는 걸 저는 경험했어요. 저도 사실 이런 활동가 생활을 하면서도, 그만둘까 접을까 하는 갈등을 몇 차례나 했었거든요. 그때마다 의지가 없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멈춰 서 있었겠죠. 더 이상 발전도 없고 의욕도 없는 상태로 말입니다. 항상 의지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저 또한 그걸 간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채지민 객원기자
대화를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햇살이 비추는 야외로 나갔다. 이 만남을 가졌던 날은 장마가 끝난 뒤에도 매일처럼 비가 내리던 때였다. 적당한 공간을 찾아 사진을 찍고, 취재가 아닌 사담(私談)을 편하게 나누었다. 구자윤 씨의 의견에 공감할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의지가 없다면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거, 끊임없이 움직이고 준비해야 한다는 거, 그것이 자칫 머무름이 되어 정체될 수도 있었을 자신의 인생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게 아닌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면서, 오늘 내내 묻고 싶었던 대목 한 가지를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성교육 강사라는 직함의 그에게 던진 공격(?)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구자윤 씨는 공격(?)을 받고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물론 환하게 웃는 분위기 속에 나눴던 대화였음은 물론이다.

“남들은 다 연애를 시켜놓고, 정작 본인은 결혼을 왜 안 하세요?”
“아하하하! 제가 요즘 매일 공격당하는 게 사실 그건데….”
“공격당하실 만하네요, 뭐.”
“아하, 그게 사실은, 그게… 좀… 연애가 좀… 그게 힘드네요. 아하하하하!”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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