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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비상구가 없다. 문을 만들어 달라

[사람사는 이야기] 모두가 장애를 가진 가족의 아버지 김 승 로

본문

‘결국… 내일이라는 또 다른 날이 있어요.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끝나는 대목에 등장하는, 그 영화의 ‘명대사’라며 항상 언급되는 게 바로 위의 한마디이기도 하다. 1939년 미국에서 제작된 비비안 리, 클라크 케이블 주연의 영화라고 하면, 느낌만으로도 상당히 오래 전 작품임이 확인된다. 더군다나 4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은 사실 그 영화를 편하게 감상하게끔 만들지는 않는다. 한 편의 영화가 명화인지 아닌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따라야 하겠지만, 그 한문장이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적 명언으로 자리를 잡았음은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또 다른 세상일까?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내일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까? 기대를 간직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정말 내일의 태양이 새롭게 떠오른다는 게 맞을까? 꿈을 꾸면 해결이 될까? ‘꿈은 이루어진다!’던 그 말이 일반 서민들에게도 해당되는 진리일까?

대안도 없는 현실 앞에서 빈 가슴 내리쳐야 하는 그늘진 곳곳의 장애인들한테도, ‘꿈은 이루어진다’고 여유롭게 덕담을 던질 수 있는 일일까? 내일은 정말 오늘과 전혀 다른 새로운 내일로 펼쳐진다는 게 진정 사실일까…?

    ▲ ⓒ채지민 객원기자 지도에도 설명이 없는 동네

이번 호 ‘사람사는 이야기’는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진행하기로 했다. 극에 다다른 상황에서 오늘 하루의 생존에 힘겨워하는, 우리 곁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장애인 가정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미리 주어진 정보는 두어 가지가 전부였다. 만나게 될 주인공은 장애 당사자인 37세의 남자이고 두 따님의 아버지인데, 딸 둘 역시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의 힘겨움 때문에 극도의 좌절감 속에 빠져 있다는 것 - 한정된 내용이지만, 그래도 그런 정보나마 미리 알고 출발한다는 건 나름 중요한 일이다. 취재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번 어느 지면을 통해 언급했듯이, 내비게이션이라는 장비 없이 지도책 하나로 운전하는 평소 버릇에 따라 지도상의 위치부터 확인해 보았다. 주소만 보며 대략의 위치가 이 지점 아닐까 싶어, 주변에 있을 건물이나 매장들을 살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인물이 살 거라 짐작되는 동네 전체에는 교회 이름 하나 이외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모든 지역에서 흔하게 보이던 아파트 단지나 빌딩이나 전문음식점이나 주유소 이름마저도 없는 동네라는 것, 이런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례가 될지 모를 언급이 되겠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 지역임이 분명한 일 같았다. 지도상에도 별다른 설명이 없는 곳은 십중팔구 달동네이거나, 재개발이 임박한 지역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경인고속국도를 지나 해당지역으로 향했다. 길 건너편에 주차를 하고, 종이에 그려놓았던 약도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예상했던 내용이 그대로 맞았다는 게 오히려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갈수록 좁아지는 골목 안 풍경과,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방치’했음이 분명한 낮고 낡은 건물들의 모습, 그건 이 지역이 ‘사회적 약자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임을 의미했다.

집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빈손으로 들어서기가 뭐해서, 골목 안쪽에 있던 작은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를 구입했다. 그리고 주인아저씨한테 혹시 이런 분을 아시냐고 넌지시 물었다. 대답은 그 즉시 해답으로 돌아왔다.

“바로 이 골목 앞집이야. 딸 둘의 그 아빠 얘기하는 거 맞지?” 친절한 주인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좁은 골목길에서 갈라지는 더 좁은 골목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그 녹슨 출입문을 통해 마주하게 됐다. 하나의 집인데도 여러 가구가 살면서 공동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집, 그 내부 한쪽의 좁은 문을 통해 그의 집이라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사실 개인적인 취재 습성에 따른다면, 만나야 할 인물과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그 주변 환경을 아주 짧게 둘러보곤 했다. 그러고 나면 해당 기사와 사진 촬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의 밑그림이 매번 큰 틀에서 떠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랬던 취재 형태가 완전히 정지되어버렸다. 여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 하나인 집 내부로 들어서려는데, 휴대했던 가방 하나마저 내려놓을 자리가 부족했다. 아니, 아버지와 딸 둘이 함께 사는 집이라 했는데,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씻고 생활하며 모든 걸 다 해결한다고?

원인도 모르는 두 딸의 중복장애

김승로 씨. 본인도 장애가 있다 했지만, 따님 둘도 장애가 있다고 했다. 비좁은 방바닥에 자리를 잡고 대화를 시작하려 했지만, 그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모든 대화가 단답식이었고, 그 대답을 듣는 과정에도 중간마다 일정한 시간이 필요로 했다. 말줄임표의 연속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허심탄회한 대화가 곧 이어지긴 했지만, 첫 부분에 나눴던 짧은 문답 안에 본질적인 메시지가 다 담겨 있는 것 같기에, 일단 그 내용을 당시 대화 그대로 옮겨 본다.

   
▲ ⓒ채지민 객원기자
어떤 장애를 가지고 계시는지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지체장애 4급이요. 저의 경우는 다리 쪽이에요. 양쪽이 다.”
언제부터 장애를 가지신 건가요?
“이게… 2000년도에….”
아, 그럼 선천성이 아니라 중도에 사고가 있으셨나요?
“네, 제가 주유소 사무국장 일을 했었는데, 기름을 받다가 유조차에서 떨어져가지고…, 그 뒤로 다리를 못 쓰다가….”
그럼 지금도 같은 증세로 고생하시는 건가요?
“아직 치료된 건 아니고, 지금도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럼 따님들은…?
“지체장애 4급이에요.”
어떤 장애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요?
“어릴 때 근육위축증이 발생하면서 척추측만증까지 같이 와서 그렇게 됐어요.”
선천적인 건가요?
“아니오. 초등학교 1학년 때… 먼저 근육위축증이 오는 바람에 척추측만증이,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근육이 축소되는 증세인 거죠.”
큰 따님의 경우인가요?
“아니에요. 둘 다. 큰애 작은애 똑같이.”
그 원인이 뭐라고 하던가요?
“아직 원인은 못 찾았어요. 솔직히 국내의 큰 병원 여러 곳을 다 다녔는데, 서울대병원까지 가서 조직도 떼어보고 다 해봤는데… 원인을 못 찾잖아요.”
자매한테 거의 동시에 그런 중복장애증상이 발생했다는 건가요?
“네,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것에 대한 발표된 사례가 없대요. 그리고 그런 논문도 나와 있는 게 없다고 해서…, 뭐에 대해서 뭐가 잘못됐는지, 그 원인도 못 찾고 있어요.”

대화의 시작부터 안타까움이 밀려들면, 그 다음 대화에 객관적 관점을 추스르기가 어려워지는 법이다. 한마디 대답과 말줄임표 한 번, 한숨 두세 번 뒤에야 그 다음 대답이 이어지는 김승로 씨의 모습에선 그 어떤 희망이나 기대치 같은 걸 찾기 어려웠다.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눠야 할까? 막지 못할 한숨의 이어짐 앞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역시나 이럴 때의 해결책은 더 깊은 곳으로 함께 빠져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일단 병 치료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다들 의료비가 지원된다고 생각하시는데, 실제 병원에 가보면 안 되는 게 더 많아요. 진료비는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싸기는 싸요. 1만 원 나올 게 7천5백 원 정도 나오지만, 약값은 내야 하는 거고… 그것 외에 엑스레이로 찍어서 못 나타내는 건 MRI나 CT로 중요한 걸 확인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같은 수급자들은 수급비 외에는 돈이 없을 때가 더 많아요. 그러면 촬영을 못해요. 저도 여러 가지 정밀촬영을 했어야 했는데 연기한 상태예요. 돈이 없으니까… 돈 없으면 못 찍잖아요.”

나지막이 대답하던 김승로 씨는 답답함이 분출하기 시작한 듯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 톤은 일정했지만, 목소리의 강도와 빠르기가 일순간 변하는 게 느껴졌다. 의료비 지원을 받으려고 일부러 수급자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다지만, 그 지원이라는 게 제때 바로 이뤄지는 건 아니란다. 진단서 떼어 와라, 뭐 떼어 와라. 그래서 떼어다 주면 분류코드가 안 맞아서 안 된다, 뭐가 해당되지 않아 지원이 안 된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병명마다 고유번호가 있대요. 그런데 저의 경우가 그 기준에 안 맞는다는데요. 그것에 안 맞는다는 건… 공무원들의 법과 원칙만으로 따진다면 안 맞는 게 맞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요. 이런 상황에서 의료비 지원마저 받을 수 없다는 게….”

한 달 수급비는 90만 원, 유일한 수입인 그 90에서 생활비와 최소한의 교육비를 제하면 잔고는 순식간에 바닥이다. 학교생활에 필요한 준비물들은 천만다행으로 학교의 지도수녀님께서 그 비용을 안 내도 된다 하셔서 도움을 받고 있단다. 알고 보니 그 수녀님이 자비로 해결해 주시는 모양이란다. 바닥이 난 잔고에서 병원비를 챙겨야 하는 생활, 김승로 씨 가족의 한 달은 그 악순환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마음에 박힌 대못 하나

“영구임대주택의 순서가 됐지만, 보증금 때문에 포기하게 됐어요. 말이 임대주택이지 들어갈 때 자기가 내야 할 비용, 쉽게 말해서 계약금 같은 게 없으면 못 들어가죠. 5천만 원짜리인데 주택공사에서 3천인가를 지원해준대요. 그럼 나머지 2천을 저희가 내야 하잖아요. 저희처럼 수급비로만 사는 사람들이 2천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저희가 일수를 가지고 쓸 거예요, 아니면 사채를 쓸 거예요. 못 쓰잖아요. 사채를 쓴다 해도 보증이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한테 보증이 들어갈 게 뭐가 있나요.”

제3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떠올리게 될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또 다른 수입원을 가질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가뜩이나 어두웠던 그의 표정이 더 어둡게 굳어졌다.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이란다. 하지만 그는 직업을 가져도 일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30분이 한계, 서 있는 것도 30분이 한계라는 것이다. 허리와 다리의 통증 때문에, 병원과 약국에서 구하는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란다.

외견상 상대적으로 젊게 보이는 얼굴과 단번에 눈에 띄지 않는 장애, 그것 때문에 제3자들이 던지던 무심한 한마디 한마디가 그에겐 깊은 상처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결론이 돼야 할 내용부터 물었다. 해결대안이라는 게 있는지, 이 사회에 요구할 대안과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대안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일단 제대로 살 수 있는 방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생활뿐 아니라 치료에 필요한 비용, 아이들한테 들어가야 할 최소한의 비용, 그것들이 가장 절실하다고 한다.

그렇게 절박한 그의 귀에 들려오는 건, 그 지역이 곧 재개발될 거라는 막막한 소문뿐이다. 세입자들한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리 없다는 걸,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재개발 현장을 통해 낱낱이 목격하지 않았던가. 기껏 손에 쥐어줄 건 돈 1백만 원 정도의 이사비용이 전부일 텐데, 세상 어디에 가서 1백만 원짜리 공간을 마련하라는 건지… 좌절과 절망은 분노와 함께 뒤섞이기만 한다.

“큰애는 허리가 거의 반, 그러니까 노인하고 똑같이 굽어져 있어서 걷는 것도 힘들어해요. 좀 오래 걸으면 넘어지고, 계단 같은 게 나타나면 서너 칸마다 쉬어야 해요. 그래도 학교에는 두 아이가 함께 걸어서 다니게 하고 있어요. 원래는 데리고 갔다 데리고 오면서 부축을 해야 하는데 제가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일부러 강하게 키우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저한테 만약 무슨 일이 있어서 죽기라도 한다면 애 둘만 남잖아요. 그러면 그나마 아빠의 빈자리도 못 채울 테니까, 등하교는 둘이 함께 하게 하고 있어요.”

해서는 안 될 생각이고 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김승로 씨의 머릿속에는 자살충동이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도 했고, 바다에 몸을 던진 일도 있었단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자책을 하다가 아이들 생각에 후회를 하기도 했고, 그래도 현실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방법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혼란의 연속…. 게다가 그의 마음속에는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 10년이라는 기간을 시설에 맡겨야 했던 과거가 원죄처럼 그를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10년이라는 기간의 상실감은 두 딸의 가슴에도 마찬가지 상처로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큰애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때 두 애를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저하고 말문을 트기 시작했죠.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안아주려 하면 저기 구석으로 가 쪼그려 앉아 벌벌 떨고, 무슨 얘기만 하려 해도 울기만 하고…. 그래서 진지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아빠가 이제 다시는 너희들을 고아원에 보낼 것도 아니고, 아빠가 죽든 살든 너희를 끌어안고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젠 아빠랑 얘기 좀 하자. 그랬더니 두 애가 저한테 딱 던진 한마디가 ‘근데 아빠가 우리 어릴 때 버렸잖아. 그러고 나서부터 안 찾고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해줬잖아!’ 그게 정말 제 마음에 대못으로 박히더라고요.”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그의 애타는 설명은 수도 없이 계속 이어졌단다. 그때는 아빠가 엄마랑 헤어지고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아빠가 너희를 버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너희들을 데리고 오자니 셋 다 굶어죽을 것 같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너희를 맡겨놓았던 거라고, 그 기간 동안 아빠도 마음이 너무 아파 술로만 살았다고…. 그랬더니 큰 아이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고 딱 한마디를 했단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찾으러 왔어? 그냥 놔두지.”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와서는 아빠처럼 친구처럼 지내게 됐지만, 서로 간 마음의 상처를 덜어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거기까지 얘기를 나눴던 그 대목에서, 우리의 대화는 잠시 멈춰버렸다. 서로가 뭐라 꺼낼 말을 찾지 못한 까닭이었다. 녹음기의 기록으로 확인해 보니, 1분 정도의 침묵 가운데 서로의 한숨만 녹음되어 있었다.

    ▲ ⓒ채지민 객원기자 비상구는 어디인가. 왜 없는가

그렇다면 당장 시급한 도움이 필요할 경우, 그는 어디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할까? 관청에 연락해선 이뤄지는 게 없단다. 병원에서도 싸늘한 반응뿐이고, 거주지 인근의 일반 복지관 같은 데는 아예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싶어서 그 부분을 다시 물었다. 처음엔 다급한 심정에 도움을 부탁했었지만, 못해주겠다는 답변만 내려왔지 도와주겠다는 말은 아예 없었단다.

“규정상 안 된대요. 그 사람들 법대로 한다면 맞겠죠. 1,2,3급은 도와줄 수 있으되 4급은 안 된다는 거. 게다가 자녀가 있으면 안 된대요. 아이 둘이 다 심각한 장애가 있는데도, 규정이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처음 도움을 신청할 때 가져오라는 게 참 많았어요. 수급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월세 같은 경우는 월세계약서, 통장 사본, 진단서, 거기에 뭐와 뭐를 더 첨부해야 한다고…. 네, 일단 가져오라니까 가져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절실한 사람한테 MRI 찍은 거, CT 촬영한 필름 같은 걸 모두 제출하라는 건 도대체 뭡니까? 그런 것까지 왜 필요한가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그따위 규정과 법이 왜 있는 겁니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장애가 아닌 겁니까? 당장 생존할 방법이 없는데도, 법타령 규정타령이 전부입니까?”

더군다나 그가 사는 지역에는 지방자치 차원의 구립복지관도 아직 없었다. 이제야 만들 준비를 한다는데, 어렵게 연결된 다른 구(區)의 복지관을 통해 금전적 아닌 물품 차원의 도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받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란다.

그 동네에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지 않은가 물으니까,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4,5,6급인 분들은 많은 것 같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도 없고, 뭔가를 해결하려는 공적인 움직임도 없으니, 그 동네는 광역시 구역 안 어딘가에 존재하는 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그 섬 안에 김승로 씨 역시 또 하나의 섬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섬 안의 섬’, 그건 생존 자체가 유배지이고 창살 없는 감옥임을 의미할 뿐이었다. 미래는 떠올릴 방법이나 여력조차 없는….

“산재처리요?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일했던 주유소가 재벌인 대기업 계열에 소속된 회사였는데…, 그러니까 저로서는 참 불행한 인간이 된 거죠. 제 사고가 나자마자 사장이 그냥 문을 닫아버리고, 고의부도를 내서 도주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받았어요. 산재처리나 보상은커녕, 일했던 월급마저 받지 못했어요. 정말 아무것도 못 받았어요. 그 덕분에… 제 바로 위의 형님이 집을 가지고 있다가 지금 전세를 사세요. 제 수술비와 모든 비용을 다 대신 처리하시는 바람에…. 형님도 자녀가 넷이나 되는데, 지금 조그맣게 18평 전세로 살고 계세요.”

그의 독백 아닌 독백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게 후천적이라는 거, 다시 말해서 그가 처한 모든 상황에 선천적인 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의 신체장애는 성인이 된 이후, 직장근무 도중에 당한 부상 때문이었다.

건강했던 두 딸에게 난데없는 근육위축증과 척추측만증이 닥친 건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었고, 부인과의 이혼도 그 뒤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이 과거엔 존재했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멀쩡했던 한 집안이 단번에 ‘풍비박산(風飛雹散)’난다는 건, 바로 이런 현실을 가리키는 표현이어야 할 일이다.

“행복했죠. 세상이 행복했고, 그 행복으로 결혼했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태어났었고…. 제가 결혼할 당시에 계획하고 꿈꾸었던 건 좋은 집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생각이었고, 저는 마당이 있는 데서 개를 키우고 싶었어요. 저는 회사 다니고 아내는 살림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그런 꿈을 간직하며 행복했었던 것 같은데…, 한순간에 이렇게 와르르 무너진 겁니다. 그냥 무너지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수습 자체가 안 되는 방향으로만…. 그걸로 인해서 저는 거의 노숙을 하다시피 했어요. 완전한 자포자기에 빠지게 된 거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두 따님의 장애가 점점 더 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항생제로 버티면서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진행되도록 애는 쓰고 있지만, 근육이 수축되면서 다리의 힘이 언제까지 지탱될지는 의사들마저 장담을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두 따님은 이제 청소년기를 거치며, 한 단계씩 성인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

민감한 사항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하며 피할 순 없는 건, 여성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입장에 양면적인 역할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보다 더 섬세한 배려와 더 큰 관심이 필요하고 뒤따라야 한다는 것!

처음 집을 방문했을 때는 김승로 씨와 두 따님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누고, 그 모습 역시 사진으로 담아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그 생각을 접는 게 현명하고 올바른 결론이 되리라고 정리하게 됐다. 촬영은 안 하는 게 낫고, 본인들도 원치 않을 게 확실했다. 더불어 외부인의 모습이 자신들의 공간에 머무는 장면도 보이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마침 두 따님이 귀가할 시간이라는 오후 4시가 됐기에, 대화는 그 시점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선 김승로 씨는 바로 옆에 있던 컴퓨터를 가리키며, 아래의 한마디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이 안에서 나가지 못하니까 말씀드릴게요. 저의 유일한 낙은 이 컴퓨터예요. 잠깐이라도 인터넷을 보는 거, 그렇게나마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고 그렇게 의지가 된다는 거…, 정말 저한테는 그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연체가 많이 돼서 전기가 곧 끊길 거래요….”

   
▲ ⓒ채지민 객원기자
덕담을 나누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잊었다. 사방이 막혀 있는데 그 어디에도 단 하나의 탈출구마저 없는, 어떻게든 눈에 보여야 할 출구가 정말로 없다는, 그렇다고 119에 신고하듯 곧 해결책이 등장할 거라는 말 한마디조차 꺼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심각한 건 김승로 씨 스스로가 의욕 자체를 ‘완전히’ 상실했고, 그 의욕을 되살릴 방안도 보이지 않으며, 그의 가족을 지켜줄 공적인 시스템 비슷한 것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동네의 윗집 아랫집, 왼쪽 오른쪽 출입문, 열 번째 스무 번째 골목 안에는 얼마나 더 많은 제2의, 제3의 김승로 씨 가족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일 없는 오늘에 절망하며 신음하고 있을까.

입만 열면 ‘서민! 서민!’ 운운하며 속빈 강정의 서민타령에 들떠 있는, 저 높은 곳 산성 속 벙커에 머무시는 분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이런 국민의 현실을 아는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숙명으로 감수하라는 건가? ‘지금은 곤란하니 나중에 얘기’하란 말인가? 그렇게 된 건 자업자득이니까, ‘국민이 반성해야 한다’는 궤변의 논리를 내세울 것인가? 현실이 이렇게 나락으로 내몰려 있는데도, 동결하고 삭감하며 폐지시킨 복지예산은 다 어디의 누구한테로 스며들고 있는가!

‘서민을 위한’, ‘서민을 위해’, ‘서민 중심’ 따위의 사탕발림은 더 이상 듣기 싫어진다. 당장 집어치우자. 분명한 건 ‘결국… 내일이라는 또 다른 날이 있어요.’가 아닌, ‘결국… 내일이라는 또 다른 날은 절대 없다!’는 절규만 이 땅에 울려 퍼진다는, 그 기막힌 현실 안에 2010년 가을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짧은 덕담의 인사마저 남기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는, 그 무거운 마음이 이 순간에도 덜어지지 않고 무게감만 더해가고 있음을…

김승로 씨한테 전하는 양해의 인사로 이 지면에 대신 남겨야 할 것 같다.
작성자대담 김라현 기자 정리 채지민 객원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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