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을 위한 토론에는 반드시 발달장애인이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 > 함께 하는 세상


발달장애인을 위한 토론에는 반드시 발달장애인이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

[만난 사람] 국제발달장애우협회 대표 전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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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예산이 외면된 예산안 날치기를 목격하게 된 대한민국 장애계의 현실은 참담하다. 이른바 ‘형님예산’과 ‘마나님예산’보다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 복지예산은 ‘실용(實用)’을 내세우며 출범했던 현 정부가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어떤 가치로, 어떤 대상으로 취급하는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증거가 됐다. 또한 우리 모두는 확실히 깨닫게 됐다. 허울뿐인 ‘실용’이 이젠 되돌릴 방법조차 상실한 ‘실용(失冗)’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말이다.

민심마저 짓밟은 그들만의 기득권놀이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이 땅의 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 일인가. 한숨만 내쉬어야 할까? 하소연만 내뱉어야 할까? 아니다. 등산의 마무리는 하산이고, 보름달은 그믐달을 향해 다시 기울기 마련이다. 악몽 같은 시간도 1초씩, 24시간씩, 한 계절씩 정확히 흘러간다. 이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 스스로의 역량과 힘을 지금 당장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은 힘을 키워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직접 확보하기 위해선, 더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실제 현실과 처지가 어떤지, 무엇을 바꿔야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외부의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이번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국제발달장애우협회(International Friends for the Developmentally Disabled : IFDD) 전현일 대표를 만나, 한국과 미국의 장애계 현황과 각각의 개선책은 무엇인지를 함께 들어보기로 한다.




   
▲ ⓒ채지민 객원기자
- 대표님이 모처럼 한국에 나오시니까, 꼭 만나 뵙고 대표님의 말씀을 장애계 전반에 널리 알려달라는 추천이 각계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신 와중에 모시게 됐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영광이다. 귀국한 이후로 여러 곳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성년후견제 같은 분야에 관심이 대단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현장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대표님께 소중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다. 그래서 <함께걸음>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도 대표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먼저 현재 대표로 계시는 국재발달장애우협회가 어떤 일을 하는 어떤 단체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내가 발달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2년이고, 협회로 출범한 건 2003년이다. 여기처럼 법인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비영리단체로 인가를 받았다. 내 딸에게 발달장애가 있다. 그래서 딸을 키우다 보니까 관심을 갖게 됐고, 여러 장애 중에서 발달장애를 집중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 장애아의 부모로서 자연스럽게 발달장애를 살펴보시게 됐다는 건가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 한국에 있을 때는 발달장애라는 말도 몰랐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항상 뒤로 밀리는 아이들, 항상 따돌림 당하는 애들이 있다는 정도, 그런 수준의 생각이 전부였다. 내 딸은 상당한 학습장애가 있고 자폐성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다. 그래서 키우다 보니 오래 전 한국에서 경험했던, 항상 따돌림을 당하던 애들의 모습이 떠오르게 됐다. 그래서 미국에선 어떻게 지내고,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나 연구를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미국에 와서 직접 보시면 ‘아, 한국에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적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아이디어가 생기실 것 같아, 한국의 활동가 분들의 연수를 주선하게 됐다.


- 그래서 대표님께 소중한 도움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과 활동가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발달장애와 미국의 발달장애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다. 맞는 얘기인가

발달장애의 개념 자체는 같다. 하지만 내가 볼 때 한국에선 발달장애가 잘 안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여기엔 장애인단체가 많지 않은가. 왜 그런지 살펴봤더니, 부모회도 많은데 발달장애부모회는 없다. ‘발달장애’라는 명칭이 들어가 있는 단체 이름이 없다는 거다. 그 대신 ‘지적장애’라는 말을 주로 하던데, 지적장애라는 것은 발달장애의 한 증세이다. 그러니까 발달장애가 있으면 지적장애가 있는데, 지적장애가 있다고 해서 발달장애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 개념이 서로 다르다는 건가

다르다. 발달장애인은 물론 지적장애인인데 지적장애는 발달장애의 한 증세일 뿐이다. 자폐 역시 마찬가지다. 자폐도 발달장애 중의 한 형태이다. 미국에선 발달장애 안에 자폐가 있고 뇌성마비도 있고 간질도 있으며, 여러 가지 증세를 다 포괄하며 분류한다. 학습장애 또한 그 안에 속한다. 그 모든 게 발달장애 안에 들어가는 하나하나의 유형들이라는 거다.


- 그럼 발달장애가 상위개념이라고 용어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가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으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미국에선 예전에는 ‘retard’라는 말을 썼었다. 우리말로는 ‘정신지체’라고 번역되는데, 그 말이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놀리는 비어로 사용되었다. 바보나 지진아 같은 놀림의 뜻으로 사용되다 보니까, 당사자들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그 단어가 사용되는 걸 싫어하게 됐다. 그래서 ‘retard’라는 말을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도 발달장애인들의 부모협회가 있다. ‘ARC’라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Association For Retarded Citizen’이다. 허나 발달장애우 당사자들이 그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걸 싫어하다 보니, 이제는 그냥 ARC를 발음 그대로 ‘아크’라고 부르곤 한다. 다른 예로는 ‘AAMR’이라는 학술협회가 있는데 ‘American Association for Mental Retardation’, 다시 말해서 거기에도 retard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여기 한국에서도 지적장애인협회를 예전엔 ‘KAMR’이라고 쓰지 않았나. 그래서 retard 대신 ‘AAIDD’ 즉, ‘American Association on Intellectual and Developmental Disabilities(미국 지적 및 발달장애학회)’라고 바꿔 사용하고 있다.


- 우리나라는 복지법 같은 관련 법규에 발달장애라고 하지 않고, 전부 지적장애라고 표시하는 걸로 기억된다. 그게 잘못됐다는 말씀인가

물론이다. 게다가 발달장애라는 말을 거의 안 쓰다 보니까, 일반적으로도 발달장애가 뭔지 그마저 잘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그래서 발달장애라는 말을 왜 안 쓰냐고 부모님들한테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게 좀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 말이 생소하고, 예전의 저능아 이런 식의 우리말 인식이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그럼 누굴 위해서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가. 부모들을 위해서 안 쓰는 거지,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안 쓰는 건 아니지 않은가.


- 용어의 교체 필요성은 인정된다 해도, 실제 그 인식을 바꾼다는 데는 많은 시일이 걸릴 부분이라 생각된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라고 정확히 이 사회에 인식이 되어야 할 일이다. 그래야 법이 만들어지고 정책도 수립이 될 텐데, 우리나라는 발달장애라는 말이 알려지지 않아서 직접적인 개선책을 찾고 요구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장애인’ 하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생각하는데, 발달장애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부모회라 하면 신체장애를 가진 이들의 부모회라고 알지, 발달장애의 부모회는 아닐 거라고 지나쳐 버린다. 사람들이 모른다는 거다. 그런 장애가 있는지 그조차도 잘 모르고, 부모들마저도 정확히 모르지 않나. 이건 중요한 대목이다. 그런 명칭과 정의, 이런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실제 움직임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지적장애라고 하지 않고, 발달장애라고 분류를 시작하는가

그렇다. 모든 정부 시스템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제일 위에 있는 건 대통령자문위원회이다. 그런데 그 명칭이 ‘발달장애를 위한 대통령자문위원회’로, 그 이름이 정확하게 발달장애라고 되어 있다. 장애인이라 하면 신체장애만 떠올리는 게 아니라, 시각장애를 포함한 모든 건 신체장애로 분류가 되고, 두뇌와 관련된 모든 건 발달장애로 명시되어 있다.


   
▲ ⓒ채지민 객원기자
-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발달장애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당연하다. 그래서 연방정부엔 발달장애국이 따로 있고, 복지부 산하에도 발달장애국이 따로 있다. 주정부에도 똑같이 발달장애국이 있다. 이 발달장애의 비율을 복지부 실태조사를 통해 살펴본다면, 발달장애인들의 실제 비율은 사실상 적은 편이다. 전체 장애우 중에서 25% 내외인데, 복지부 예산의 50% 이상이 발달장애를 위해 사용된다는 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 이유는 발달장애의 특성상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우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주거시설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대형시설 위주가 아닌,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지원비가 다른 신체장애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주간보호와 같은 관련 서비스를 해야 될 게 굉장히 많다는 거다. 그렇기에 국가 차원에서 발달장애를 위한 예산이 훨씬 많이 쓰일 수밖에 없고, 그게 정책적으로 완비되어 갖춰져 있는 게 미국의 복지정책이기도 하다.


- 25%의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쓴다는 건,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판단해야 할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간단하다. ‘발달장애’를 부모님들이 강조하라는 것이다. 장애인부모회만 해도 90% 이상이 발달장애 부모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적으로도 중증장애우 개념 속의 대부분 역시 발달장애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를 내세우지 않으면,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건 발달장애인은 자기가 자기 권리의 주장을 펼칠 수 없게 된다는 뜻이 된다. 누가 해주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부모들이 그 용어를 쓰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어떡하겠는가. 발달장애가 앞에 나와야 된다. 그 이름을, 그 명칭을 강조해서 부르고 사용한다는 건 참 중요한 일이다.


- 명칭의 문제 때문에 중요한 본질이 뒤로 밀린다면, 안타까운 과정이 길어질 수도 있겠다

미국의 장애운동사(史)에서 중요한 용어로 거론되는 말이기도 한데, ‘피플 퍼스트(People First)’라는 게 있다. 영어와 우리말의 어순이 달라서 정확한 의미전달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장애인을 ‘a (physically) handicapped person’ 또는 ‘development disable people(person)’이라고 불렀다. 그 표현 자체가 장애를 제일 먼저 앞세우고, 그 다음에 사람이 등장하는 순서로 나열된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장애우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인간인데, 왜 장애로 먼저 정의가 된 다음에 사람이 나오느냐?’ ‘사람인 나를 먼저 불러라.’ 그러니까 장애우 당사자를 표현하고 묘사하는 용어 자체에서도, ‘사람’이라는 단어가 먼저 등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운동이었다. 그걸 우리말 형태로 의역한다면 ‘장애’를 앞에 쓴 다음에 사람을 붙이지 말고, 사람이라는 점을 먼저 밝힌 다음에 장애가 있음을 뒤에 덧붙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 ‘피플 퍼스트’ 운동은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냈고, 결국 지금 미국의 어느 학술 논문지 또는 법률을 봐도 전부 다 ‘사람이 먼저’라는 방식으로 표기를 하게 됐다.


- 그것 하나만으로도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의식개혁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화두인 것 같다

그렇게 표현을 바꿔 쓰다 보니까, 사람들의 인식 또한 재정립이 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람의 인격이라든가 존중이라든가 인간성이라는 건 하나도 없고, 장애와 사람이 동등해지거나 오히려 장애가 더 앞서는 결과를 낳았던 게 아닌가. 그런데 그 ‘피플 퍼스트’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게 바로 발달장애인들이었다. 그래서 장애계 전반에 이 인식개선이 널리 퍼지며 실천이 됐고, 지금은 예전 식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며 지양하게 됐다. 이런 게 바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미국의 국가적 사고방식인 셈이다.


- 대표님께 가장 듣고 싶었던 내용을 질문 드려야겠다. 대표님을 아는 분들이 항상 언급하는 게, 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을 대표님이 강하게 주장하신다는 점이다. 그게 왜 중요한지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선 아직도 발달장애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고, 자기방어권이 없으니까 옆에서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만 판단하고 있다. 발달장애우들의 자기결정권 문제에 대한 대표님의 진솔한 의견을 듣고 싶다

민감한 내용이라서 어휘선택이 정확한지 염려되기도 한데…, 자기결정권에 관련된 개념들은 여럿 있다. 복지선진국들의 그 개념을 우리나라에 도입할 때, 그 용어의 뜻과 표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해 비슷한 잘못된 이해로 흘러가는 경향이 많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행동치료 음악치료 언어치료와 같이, ‘치료’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치료의 의미가 뭔가. 치료하면 ‘낫는다’는 말 아닌가. 이게 하나의 병이고 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이상 나을 수 있다는 건데, 그래서 우리의 젊은 부모님들이 굉장히 애를 쓰며 많은 비용을 투입하면서까지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신데… 사실 그건 치료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치료’라는 용어 사용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씀이신가

발달장애는 병이 아니다. 짧게 요약한다면, 두뇌 상태가 발달되는 과정에서 고장이 생긴 걸 발달장애라고 한다. 그리고 그건 평생 가는 장애증상이다. 그런데 ‘치료’라는 말을 쓰다 보니까, 젊은 부모님들이 거기에 열성을 가지고 모든 걸 투입하신다고 들었다. 이건 사실상 ‘치료’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 번역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외국에선 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가 무슨 병이라는 개념 같은 것도 없다. 더욱이 발달장애인이 정신과 의사한테 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과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사람 아닌가. 발달장애와 정신과 치료 사이엔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중복장애가 있어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엔 정신과에 가겠지만, 발달장애는 정신과 소관이 아니라 치료가 될 수 없는 장애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중요한 사항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치료’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던 내용들을, 여러 복지선진국에선 어떻게 해결하고 있다는 건가

꼭 맞는 번역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선진적 복지를 실행하는 나라들의 정책을 ‘원외(院外)치료’라고 일단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발달장애가 있는 어떤 사람이 일정한 행동에 문제가 있을 때, 예를 들어 막 소리를 지른다거나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해서 어쩔 줄 모를 때는 이 사람들을 데리고 원외치료실이라는 데를 간다. 거기엔 꽃이 있고 풀이 있는 공간인데, 꽃을 만진다든가 냄새를 맡는다든가 물을 주거나 하다 보면 문제가 됐던 그 행동이 저절로 없어진다.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자기결정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번역된 ‘자기결정권’이 법적인 권리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비장애가 누리는 모든 걸 발달장애인에게 똑같이 해주지 않으면 기본권을 무시하는 거라는 식으로 이해되며 번역되는 것 같은데, 발달장애인들의 권리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 버스를 타든 전철을 타든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권리인데, 그 선택과 결정의 권리가 발달장애인에게는 유예될 수 있다는 말씀인가

예를 들어 어떤 발달장애인이 1만원의 현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가 그 1만원으로 사탕만 다량 구입해서, 매일 그것만 먹으며 지내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탕만 먹으며 살겠다는 그의 결정을 옹호하는 게 자기결정권인가? 그건 아니라는 거다. 사탕으로 예를 든 이 비유가 바로 자기결정권 논란의 중요한 화두인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당사자가 옳은 결정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 그게 바로 발달장애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역설적인 모순이 등장한다. 그 장애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거, 그런데 그 당사자의 결정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 그건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미국의 발달장애지원법엔 이런 조항이 담겨 있다. 자기결정이라는 거, 그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걸 마음대로 하게 놓아두라는 게 아니라,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게끔 주위 분위기를 만들고 옹호해 주면서 그 과정을 지원하라는 것이다. 그게 자기결정권이라는 거다.


- 그렇다면 장애우들의 개별적인 개인 의견을 정책에 충분히 반영한다는 건가

발달장애인과 주정부 기관이 일대일로 상의한다. 당신이 뭘 하고 싶은지, 무슨 서비스를 받고 싶은지를 토론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 차원의 전문가 판단으로 볼 때, 이 사람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가를 평가한 뒤 예산을 설정한다. ‘A’라는 사람한테는 이러이러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당사자와 공무원이 동시에 측정한다는 의미이다.


- 그런데 의문점이 드는 게,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국가를 상대로 얘기할 수 있다는 건가. 우리의 경우라면 그런 시도 자체가 무산될 게 분명할 텐데 말이다

모든 장애인들은 자기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다.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발달장애의 경우 70% 이상이 스스로의 의사 결정을 하는 게 가능하다. 의견 표현 방식을 언어로 한정짓는다는 게 큰 잘못이다. 발달장애인들은 일반적인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의견을 분명히 밝힌다. 예를 들어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면 운다거나, 뭔가를 두드린다거나 하며 다른 방식의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다. 대화가 반드시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는 것 자체가 편협한 사고라는 의미이다. 미국에선 무슨 정책을 논하든 간에 불문율이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토론이 진행된다면, 그 자리에 반드시 발달장애인이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포함되지 않은 자리에선 내 얘기를 하지 마라’ ‘내가 가담되지 않은 모임에선 나를 언급하지 마라’ - 이런 전제조건이 사회적 합의로 마련되어 있다. 당사자 스스로가 동참한 자리에서 모든 의견이 제시되어야지, 당사자를 빼놓은 자리에서 그 사람을 위한 무슨 토론이 건설적으로 진행되겠나.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인 개개인의 입장과 욕구를 먼저 문의하고 살펴야 한다. 장애 관련 모든 단체들도 장애인 당사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요구하고, 또한 단합된 일치단결의 힘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모든 정책의 성취는 당사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작성자대담 이태곤 기자, 정리 채지민 객원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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