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체벌 아닌 사랑과 믿음의 자율적 민주교육을 확립하겠다" > 세상, 한 걸음


곽노현, "체벌 아닌 사랑과 믿음의 자율적 민주교육을 확립하겠다"

[만난사람]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곽노현

본문

  우리 모두의 자녀이자 조카 또는 손자인 학생들이, 비용 부담 없이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는 건 좌파의 논리라 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한테 학습과 관련된 모든 준비물들을 공짜로 전달하고 전반적인 학습여건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 국가의 책임이라는데, 교육 받을 여건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 당연하고 밥을 먹게 하는 건 좌파의 논리라는…, 이 비틀어진 자기당착의 논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며 판단해야 할까? 국민 과반수 이상이 환영하며 찬성하는 무상급식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이 논란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자충수로 가득 차 있는지, 그 진실을 이번 ‘만난사람’ 안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가 만난 주인공은 바로 서울시교육청 곽노현 교육감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어려운 만남 신청을 받아주셔서 먼저 감사드린다. 정말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다

  <함께걸음>은 정말 오랜 기간 애독자로 지내왔다. 그런데 교육감이 되고 나서 제대로 볼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참 미안한 마음일 뿐이다. 이 자리를 통해 많은 독자님들께 안부의 인사를 대신 전해드리고 싶다.


  미리 준비해 왔던 질문부터 드려야 하는데, 직접 마주 대하고 나니 많이 피곤하신 모습이라는 점부터 눈에 띈다

  교육감으로 수행해야 할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정말 바쁘다. 지난주에는 1박2일로 정해진 지역방문이 세 차례나 연속으로 잡혀 있어서, 강원도 두 차례 등 세 번이나 지방 왕복을 강행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에 힘겨움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지금 내 얼굴에도 난데없이 뾰루지 같은 게 세 개나 생겼다. 이건 어떻게 사진 편집상으로 지우는 게 가능할지 그 여부를 부탁드리고 싶은데…. (웃음)


  더욱이 안경알이 깨진 안경을 지금 쓰고 계신데,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      

  계속 일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어느 날 안경이 밑으로 툭 떨어지며 안경알 일부가 깨져버렸다. 이걸 바꾸려면 일단 안경점에 가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갈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연휴와 같은 시간이 생기면 렌즈와 테를 바꿔야겠다며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자기 지역의 교육감이 누군지는 잘 모르며 지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임명직으로 지명되던 시절엔 더욱 몰랐다는 게 모두의 생각일 것 같다
 
  나도 잘 몰랐다. 우리가 몰랐던 거다. 교육계 전반의 가족인 분들은 물론 다 알고 계셨겠지만, 일반시민 입장에서는 제대로 모르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교육계 바깥쪽에 있다면, 현직 교육감이 누군지 여부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게 일반적인 흐름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이번 곽 교육감님은 기존의 틀과 다르게 이 사회에 던져진 이미지랄까? 그래서 대중적으로 확실하게 인지가 되고, 그것 때문에 정치적 이미지마저 갖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평가가 상존하는 것 같다

  본래 정치인의 가장 명확한 정의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데 교육감 역시 시민의 직접투표로 선출되긴 하지만, 정당에 당적을 못 갖게 하니까 정치인은 아닌 건 맞다. 교육행정가라는 게 정확한 명칭이 되겠다. 기본적으로는 교육행정가가 맞지만, 직접투표로 당선이 되고 교육에 관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와 요구가 모이는 자리가 바로 교육감의 위치이기도 하다. 당연히 상충되는 기대와 요구를 조절하고 조정해야 하는 기능, 그래서 그 과정이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점에서는 정치적 측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채지민 객원기자
  지금 몇몇 지자체의 교육감이 누구냐 하고 물으면, 많은 국민이 당연한 듯 그 이름을 언급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런 분위기 반전이 가능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무상급식과 인권조례 같은 공약의 파급력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무상급식이란 공약 실천이 ‘공짜’라는 논란을 낳으며 보수진영의 공격이 연이어지고, 인권조례의 경우는 교육현장의 현실을 너무도 모른다는 반박이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매를 들지 않고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느냐?’라는 반격이기도 한데, 체벌금지의 공약을 실천하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어떻게 판단하시는가

  무상급식과 관련해서 먼저 말씀드리겠다. 우리는 그 용어가 아닌 ‘친환경 의무급식’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선 아주 간단한 내용정리로 말씀드리는 게 낫겠다. ‘학교, 아이, 밥’이라는,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모두가 경험한 바 있다. 모두가 소중하게 여기고, 모두가 이 영역에서만큼은 평등과 정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 부분인 것이다. 학교와 아이들과 밥이라는 이 영역만큼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그 시기를 겪었던 모든 사람들이 즉각적이자 직감적으로 합의한다는 것이다. 그 세 가지가 한데 모인 게 바로 친환경 의무급식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 내용이 딱 맞는데, 공격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매섭지 않은가. 어떻게 부자인 아이들한테도 공짜로 급식을 제공하느냐고, 그게 바로 세금낭비가 아니냐고 거친 공세가 계속되는데, 이 대목은 어떻게 판단하며 대처하시는지 알고 싶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의식을 만들어낸다. 선별적 복지는 선별적 의식, 그건 차별과 시혜로 가는 것이고 낙인과 상처로 결론이 나는 길이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친환경 의무급식에 대한 공격은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보편적 의식을 좀먹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보편적 의식이라는 건 인간성의 연대를 의미한다. 인간성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연대의식이 넓어질 수 있을 건가, 이것이 핵심적인 논쟁의 단초이자 본질적인 사안 아닌가. 일단 학교교육에서 인간성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밥으로 상처를 주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점과, 우리가 벌어서 낸 세금으로 아이들에게 밥만큼은 건강식을 제공하자는 데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건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면, 모두가 다 인정하게 될 현실적인 대목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공격한다는 건 보편적인 의식이나 연대의식이 아닌, 계급의식과 계층의식을 새롭게 부추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맞는 말씀이다. 기성세대 모두가 어린 시절의 생생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충분히 이해될 만한 보편성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보편적 복지론과 의무급식에 대한 현 정부와 보수진영의 반대논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른바 ‘부자급식론’이다. 이 주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속삭이는 거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봐라, 부잣집 애들한테까지 밥을 줘서 너희들한테 돌아갈 몫이 줄어들었다. 그러니 궐기해라’ 이런 뜻이 된다. 이건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선동이고, 그 의도가 너무나 뻔히 드러나는 궤변일 뿐이다.


  그 자체가 바로 포퓰리즘 아닌가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의 계급이익에 영합하려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포퓰리즘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계급이익을 일깨우고 거기에 따른 행동을 하라고, 네 몫을 네가 지키라고 하는 점에서 이것은 아주 위험한 망국적 포퓰리즘인 것이다. 이것과 대비되는 또 한 가지의 논리가 뭔가 하면 이른바 ‘세금급식론’이다. 이것은 부자들에게 속삭이는 거다. 조금 전 ‘부자급식론’은 가난한 약자들에게 속삭이는 건데, 세금으로 급식을 충당한다는 이 논리는 ‘의무급식이 결국 세금급식이고, 너희들의 세금만 늘어난다’며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보편적이 아닌, 부자들의 계급이익에 영합하는 주장이자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경계심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단적으로 말해서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는 고비용’이라는 이유를 강조하면서, 반복적으로 위험한 선동을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계급선동이다. 부자급식론과 세금급식론 모두 아주 위험한 계급선동이자 포퓰리즘이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하나의 보편의식의 틀 안에 넣는 게 보편적 복지 아닌가. 그런데 그것 자체를 가로막으려 끊임없이 계급의식을 불어넣고, 보편의식과 보편연대가 작동 못하게 만드는 이것이야말로 망국적인 포퓰리즘이고 정말 위험한 선동인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그렇게 직접 정리해 주시니까 아주 쉽게 이해가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점심식사를 제공하겠다는 기본상식마저 볼모로 삼으며, 국민들에게 분절(分節)적 대응을 집요하게 부추기는 보수언론의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확인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동안 우리가 최소한의 기본의무마저 실천하지 못했고, 보편적 복지 자체가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교권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하향됐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그런 와중에서 암묵적으로 일상화되어 있던 체벌을 전면 금지시켰다는 게 이번 인권조례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엔 큰 딜레마가 존재하는데, 자기 아이가 교사에게 맞고 오면 기분 상하지만, 자식의 학교생활을 방치하는 건 또 못 참는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누구나 떠올리게 될 듯하다. 이 문제는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가

  모든 시민이, 자식을 기르는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반듯한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똑같이 바란다. 그럼 반듯한 인성이 뭐고 반듯한 인성이라는 건 어떻게 키워질 것이냐,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믿는 반듯하고 따뜻한 인간성이라는 건 오직 사랑과 자율, 믿음을 줄 때만 길러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줄 때, 아이들은 반듯하고 따뜻한 인간성을 가진 바른 인성의 사람으로 커가게 된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 상식 차원에서 열매를 얻어왔던 믿음이다. 이 믿음에 따라 행동하면 열매를 받기 때문에 이 믿음은 경험측상 아주 강력한 증거가 되는, 오래 전부터 확인됐고 입증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우리가 강제와 폭력으로 반듯한 인성을 키울 수 없다는 것도 똑같은 강력한 믿음이 된다.


  이론적으로도 그렇다. 강제적인 폭력으로 좋은 행동을 강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당연히 없는 일이다. 강제와 폭력은 위선과 공포를 길러준다. 그런데 위선과 불안에서는 어떤 선한 결실도 맺을 수가 없다. 직접체벌은 폭력이다. 간접체벌은 강제가 되는데, 간접체벌은 간접흡연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교과부에서 그나마 직접체벌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한 것은 아주 큰 변화이고 발전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체벌을 전면금지한 데 따라서 얻은 절반의 성과가 됐다.


  그런데 교과부는 체벌방식을 간접체벌로 수정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교과부의 그 조치는 직접흡연은 금지하되 간접흡연은 허용하겠다는 것과 같다. 간접체벌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 내용이 체벌이어야 한다. 신체적 고통을 가해야 한다는 거다. 체벌의 정의는 처벌 목적을 거두기 위해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게 아닌가. 처벌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우리가 정말 훈육의 목적에 충실하려면 상담과 치유, 사랑과 인내가 절대적으로 중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그런 데 익숙하지 못한 게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나. 우리 교육의 역사는 대부분 체벌을 기본으로 이뤄졌다는 의미가 될 텐데

  나는 2009년 하반기를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의 선생님과 학생들과 학부모와 교장선생님들을 1천 명 정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내가 확인한 게 있다. 확신이 들었던 게 뭐냐면, 중요한 것은 체벌로 유지되는 교권이라면 너무나 부실한 교권이고 허약한 교권이라는 거, 그런데 그나마 체벌을 해도 교권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더라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체벌이 금지된 상황이 아니었지만 교권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서, 교실에선 엎드려 자는 애들이 태반이었고 선생님이 들어와도 떠들고 움직이는 애들의 행동은 계속됐다.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걸 이미 경험적으로 증명한 사례인 것 같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육시스템이 무지무지하게 잘못됐구나, 우리가 인성교육을 안 시키는구나, 민주시민교육 자체를 안 하는구나 하는 암담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엄연한 현실이 있는데도, 체벌로 어느 정도 학교규율이 유지되는 것 같으니까 실상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증명도 못했던 거다. 그런데 체벌의 장막을 딱 걷어내고 나니까 학교에 상담치유기능이 없다는 거, 진학상담이 아닌 학생들의 실제 고민을 상담할 전문상담가가 아예 없다는 게 드러났다. 현실이 이런데도 체벌을 금지하느냐고, 체벌금지 이후엔 어떡하자는 거냐고 반문하는데 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첫째로 심신이 아프고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상담해서, 가슴을 확 열고 스스로 시인하며 교정하게 만들자는 거다. 담임교사가 아닌 전문적인 상담 및 치유기능을 학교 안에 확실하게 제공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학교가 아이들에게 자치자율영역을 길러줘야 한다. 학급회의를 통해 학생생활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하게 해야 한다. 토론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학급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공동선이 무엇이고 공익이 무엇인지,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와 규율이 무엇인지, 또한 이런 질서와 규율에 어긋나는 문제 행동에 대해선 어떤 제재와 불이익을 가해야 하는지를 아이들끼리 토론해서 합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훈련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아이들에게 자치와 자율영향을 학급회의 등을 통해 훈련시킨다는 것은 바로 학급을 민주적으로 조직해 준다는 의미가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인데, 우리의 교육현장은 그런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역량마저 학생들한테 제공하지 않은 채 방임했다는 공동의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학급을 민주적으로 조직해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개별적인 존재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면 자기보다 힘이 세고 완력이 센 사람한테 하나도 못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 안의 엄석대 (註 :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힘으로 교실을 지배하는 인물)가 우리 교실의 주인이 되는 거다. 선생님이 떠난 교실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와 학급이 민주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면, 민주적으로 조직된 공동체 안에서는 당연히 공동선과 공익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고 실천이 뛰어난 아이들이 득세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 아이들이 다수를 이루게 되면 그 애들이 엄석대를, 우리 안의 일그러진 영웅을 제압할 수가 있게 된다. 또래끼리 중재를 할 수 있고 자치법정을 열 수도 있으면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핵심으로 자리 잡는 것인데, 우리는 그동안 학교교육에서 국영수 교육에만 매달리면서 이런 걸 하지 않았다. 아예 길러주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체벌의 장막을 싹 걷어낸 이후로는, 현재 학교의 실제 몰골이 드러나는 데서 오는 고통스러운 소리들이 막 들려오고 있는 중이다. 학교문화의 성숙을 향해 가야 하는 전환기의 진통인데, 우리는 이걸 반드시 극복해서 한 단계 높고 폭력과 강제가 없는 학교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 과제를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좋은 말씀 새겨듣겠다. 교육감님이 공약을 통해서, 또한 취임 이후 공약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다는 점은 익히 듣고 있고 눈으로도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 주제를 바꿔 장애아동의 학습권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말씀을 듣고 싶다. 지난 94년부터 장애학생들의 의무교육이 시행됨에 따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계 학교에도 장애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일반학교로 간 아이들이 왕따의 대표적인 사례로 몰리게 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론적으로는 통합교육의 당위성을 인정하지만, 젊은 부모들은 왕따의 대상으로 시달리는 아이들을 견디지 못해 다시 특수학교로 되돌아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법으로는 장애학생들의 교육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지만, 현실은 너무나 다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직 교육감님 임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 많은 장애아부모들이 궁금해 하며 애를 태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말씀드리고 싶다

  좋은 지적을 하셨다. 취임한 이후 특수학교와 일반 통합교실을 몇 군데 방문해 봤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 장애아동들이 통합교육을 받으면서도, 아주 손쉬운 왕따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얘기이다. 이건 우리 교육이 근본적으로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굉장한 실패를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학교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느냐 아니면 쉽게 놀려대며 배척하는 대상으로 할 것인가, 안아주고 함께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것이냐 여부는 사실 교육의 힘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학교 공교육의 성공여부를 재는 사활적인 척도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약한 사람을 부축해주지 못하고 놀려대며 쫓아내는 학교라면, 그건 존재의미를 잃은 게 아닌가. 오히려 아무런 개념 없이 지내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이로 바뀌었더라는 얘기가 들려야 정상인데, 그동안의 교육은 이걸 방치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그런 차별과 배척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이런 학교장을 포함한 그 학교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모든 교육적 노력을 집중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장애학생들이 왕따와 차별과 배척을 경험하는지 여부를 교장평가의 중요한 지표로 삼으려 한다.


  아주 중요한 대목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만족도 조사를 의미하시는 건가

  그렇다. 이제 3월 초에 공표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걸 평가항목에 넣는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교육이 새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힌다는 선언과 같다. 그러면 대부분의 교장선생님들은 평가지표에 들어가 있고 강조하는 가치와 방향에 따라서, 그 가치와 원칙을 학교 현장에서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할 게 아닌가. 평가지표의 항목으로 명시하겠다는 건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 평가지표의 항목들을 최종 정리하고 있다. 3월 초에 공표하면 금년 교장평가의 중요 사항이 장애학생들의 인권과 학습 환경 보장임을 분명히 규정하는 전기가 될 것이다.


  굉장히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좋은 정책을 추진하신다는 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을 포함한 모든 교육이 궁극적으로는 교육을 통한 자기 직업의 선택일 텐데, 장애학생들 중 특히 지적장애의 경우엔 장기간 연속되는 교육에만 파묻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직업교육을 받고 또 중간에 적응훈련을 받고, 이런 식으로 훈련과 교육만 진행되지 실제 취업과는 동떨어진 상황에 처해 있는 게 대부분이다. 자기가 돈을 벌어 자기 뜻대로 쓸 수 있다는 거, 가장으로서 부양가족을 책임지는 입장이 된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직업을 가짐으로써 앞으로의 새로운 계획도 설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장애학생들의 교육 환경이 과연 실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느냐 하는,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중요한 점을 말씀하셨다. 나 역시도 중요한 사항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장애인고용공단하고 아주 심층적인 정책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문제의식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 산하에 1천3백개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서 중증장애우를 고용하면 월 50만원씩 고용지원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5년 동안 월 50만원씩이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경증장애우를 고용하면 월 30만원씩 지원금이 지급된다. 예를 들어서 식당이나 조리실에서 일할 보조인력이라면, 지적장애를 가졌다고 해도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충분히 좋은 직장이 될 수가 있는데, 그동안 학교에선 그런 사람들을 우선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 교육청 예산으로 이미 확보했기에 전체 학교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은데도, 교육감님의 연이어지는 일정 때문에 시간이 한정됨이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장애우 교육과 관련해서 교육감님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신 사항이 무엇인지 들려주시면 좋겠다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은 바로 장애우와 같은 소외계층을 향한 사랑과 책무성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러 법이 만들어져 있다지만 그 법의 정신이 법령 안에만 머물러 있을 뿐, 실제의 삶에서는 외면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내 임기 내에 관련 법령에 제시된 사항들을 충실히 준수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예산을 확보하며, 교육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기본에 충실한 장애우 교육 지원에 특히 노력할 것이고, 학교뿐만 아니라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장애우교육지원체제를 내실 있게 구축하고자 한다. 장애학생들의 학습권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 또한 학부모님들의 열정에 감사와 감동을 늘 느낀다. 교육현장을 더 많이 보고, 보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작성자대담 김정열 함께걸음 편집주간 l 정리·사진 채지민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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