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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에겐 적극적인 기회 제공과 기대가 필요하다

[만난 사람]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용득

본문

대화 및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의 내용이 단순명료하게 간결하면서도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는 ‘누군가’를 만나면, 항상 깔끔한 뒷마무리가 상쾌한 느낌을 남기게 된다.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깔끔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던 게, 이번 호 ‘만난 사람’의 주인공에게 결례가 되는 표현이 아니기를 기대하고 싶다. 긍정으로 가득 찬 의미에 담아 적는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복지학회 회장’ 등의 직함은 여럿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대학교 교수 이름으로 소개해 달라고 했다. ‘쿨(cool)’한 인물이 맞는 것 같다.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를 만났다. 그 대학 캠퍼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만큼이나 ‘깔끔한 논리’를 명쾌하게 들었다. 이제 그의 의견과 조언 안에 함께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Q _ 교수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넓고 의미 깊은 연구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신다. 여러 세미나와 토론회에서 교수님 말씀을 매번 듣고 동감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또한 교수님의 여러 저서에서 큰 도움을 얻었기에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 드렸고 진행하게 됐다

좋게 받아들이셨다니까 저 또한 마음이 편하다. 가급적이면 어떤 현장에서도 독자들이 자기방식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해야겠다는 취지로 책을 정리했다. 기자님께 도움이 됐다고 하니 저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웃음)

Q _ 발달장애인의 권익보호와 옹호에 대한 말씀을 먼저 듣고 싶다. 장애인 인권옹호 및 권익옹호의 영역에서, 발달장애인은 조금 뒤로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다. 발달장애인법 제정도 계류 중이고, 그 법의 제정 논의 과정 안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이 전무했다는 점 또한 논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이 발달장애인법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권익보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개념조차 확실하지 않고, 장애인 인권을 위해 일하는 단체와 활동가들도 발달장애인법에 대해서는 아주 많이 어려워하고 있다. 이런 실제 현실을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지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발달장애인의 권익과 자기결정 그리고 존중을 언급하기 전에, 전반적인 이 문제를 하나의 ‘문화’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분위기’이자 사람들의 저변에 깔린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법 제정에 있어서 발달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배제되어 있다는 건, 법 제정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서나 서비스에 있어서 발달장애인은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너무 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그들의 개인적 결정의 가능성마저 눌러왔다는 거다.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는 자기결정이 어렵다고 하는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와 문화 같은 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발달장애인 개인은 여기에 저항하는 게 대단히 어렵다고 단정을 지어왔다. 또한 이 사회가 시행하는 서비스는 사실 무의식적으로 발달장애를 둘러싼 모든 걸 공식화 된 과정이자 문화로 받아들였고, 이 모순에 대해서 도전하거나 공격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이런 경향은 세계적으로 다 마찬가지였지만, 점점 더 그 문제에 대한 각성이 보편적으로 생겨나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Q _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인가

저는 교수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물을 살펴보는 게 주를 이룬다. 최근의 예를 말씀드리겠다. 유럽의 국가들에서 발표된 장애와 관련된 논문들의 주제별 범주를 보면, 7,8년 전부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과 권리, 의사소통과 같은 주제가 전체 논문 중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이 됐다. 장애 전체 영역에서 주된 화두가 발달장애로 옮겨졌다는 뜻이다. 1980년대와 90년대엔 신체적 장애 중심으로 자기결정권 문제가 논의됐다면, 그래서 그 화두가 사회 안에 깊숙이 침투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면, 이제는 자기결정권의 보편적 가치를 발달장애인들도 관철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아주 중요하게 자리매김이 됐다는 것이다.  
 
Q _ 중요하게 자리매김이 됐다 해도 그걸 실질적인 정책에 반영하느냐, 아니면 의욕만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는 엄청나지 않은가. 복지의 욕구를 실제 구현하고 있는 선진국의 예와, 복지를 구호로만 외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맞다. 제가 연구하는 논문들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발달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연구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대략 이런 구도가 형성됨을 알 수가 있다. 즉, ‘발달장애인이 자기결정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가정(假定)은 검증된 적이 없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발달장애인은 자기결정을 할 수 없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자기결정을 할 수 없다고 믿는 근거는, 당사자들이 자기를 표현하지 못한다고 했다는 거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사람도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의사를 표현한다. 눈빛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고 분노하는 그런 감정도 표현할 수 있으며 누구든 감정과 자기의 주장을 표현하는데, 다만 우리가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등 발달장애에 대해서는 그 감정을 읽어내려고 하지 않았고, 또 읽어내려고 했다 해도 그 감정을 읽을 줄을 몰랐다.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반성하는 기류가 주를 이룬다. 

   
 

Q _ 그것이 바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복지를 실제 행정과 정책에 반영하는 원동력이 됐던 게 아닌가. 우리는 똑같은 논의의 결과가 늘 피상적인 결론으로 머무른다는 게, 복지선진국과의 차이점을 확연히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발달장애인들도 늘 자기의사를 표현한다. 누구든 뭔가의 메시지를 준다. 그 메시지가 바로 자기결정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구체적으로 자기결정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는가.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주는 게 더 좋은 것인가. 또 자기결정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 또한 훈련을 시키고 기회를 많이 만들면서,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폭넓은 환경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과 연구가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Q _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인식에는 상당한 벽이 쌓여 있다. 그건 비장애인들이 문을 닫고 쌓아놓았다고 해야 할 텐데, 사회적 규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부모 중심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형식이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사실 이 문제는 설정 자체가 참 중요하다고 본다. 부모와 발달장애인의 관계, 이건 과보호 아니면 방치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 발달장애인과의 관계는 결국 사회적 조건이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불안하고 불안정하고 서비스도 없다 하면, 부모로서는 자녀를 이런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고 누구의 공격으로부터도 방어해야 한다. 과보호가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에게 적절한 지원을 해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부모 혼자서 이 지원을 다 감당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과보호 또는 방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Q _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형성 과정을 보면, 국가적 차원의 능동적 제도 마련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투쟁으로 이끌어낸 예가 적지 않다. 투쟁이라는 과정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는 전제가 항상 앞서 왔고, 그 결과로 지체장애인 위주의 장애인 복지정책이 먼저 마련되는 결과를 낳았다. 발달장애인의 권익옹호라는 화두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가 앞에 나서지 않으면 권익옹호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의견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금까지는 부모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지만 이 틀을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기는 힘들다고 보는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질문 드리고 싶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문제는, 현재 발달장애인이 딛고 있는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을 것 같다. 이게 악순환의 연속인데, 발달장애 성인의 영역은 장애의 전체 영역을 다 비교한다 해도 가장 서비스가 열악한 지점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주간보호시설이나 그룹홈 같은 게, 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게 아닌가, 다른 장애 유형보다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게 아니냐.’ 하는 의견들도 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은 그 장애의 특성상 100% 모두가 국가와 접촉이 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제가 연구하고 조사했던 자료로 말씀드린다면, 전국적으로 18세 이상의 발달장애인 중에서 국가 서비스와 연계되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25% 내외밖에 안 된다.

Q _ 국가 서비스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는 건가

주간보호, 직업재활시설, 활동지원,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접촉되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25%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내용 안에 있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20대는 약 40%가 국가 서비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30대로 넘어가면 전체의 20%로 그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게 40대가 되면 10% 이하, 50대가 되면 1%에서 2%대로 확 낮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국가와의 관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큰 문제가 있다. 자녀가 일정한 나이 이상이 되면 고립될 것이라고 하는 가정
(假定)을 미리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를 주장하기 어렵게 된다. 주장하는 것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동기부여도 안 되어 있다. 이런 서비스의 이용패턴을 도시와 농촌으로 비교하면, 농촌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데이터만 보더라도, 발달장애에 관한 한 그 서비스의 수혜나 배제의 심각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Q _ 국가 서비스와의 연계 내지 연결을 맺지 않는다는 건, 자기옹호의 권리 자체를 스스로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것 같다. 시급한 해결책이나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대목 같다

   
 
국가 서비스에서 배제된다는 것, 그건 사실 자기를 주장한다는 건 고사하고 아주 기본적인 요구조건의 수준도 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관점은 이들의 삶 자체를 완전히 차별적으로 설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모이고 나서고 뭉쳐야 한다. 지체장애인의 자립생활에서는 의사결정기구의 51%를 장애인 본인으로 한다는 슬로건이 있다. 외국에서는 당사자가 직접 발달장애인 총회의 성원으로 참석한다든지, 이사회의 멤버가 되는 식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 토대가 먼저 있어야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해지는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반은 그 자체가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에 이 토대의 기본을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발달장애인법의 제정에 있어서도, 이 기반 마련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아주 기초적이고 현실적인 수단들을 그 안에 갖춰야만 한다.

Q _  외국의 사례를 언급하셨는데,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조직이나 단체 안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실제 예를 말씀해 주실 수 있는가

영국의 맨캡(MENCAP)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우리의 지적장애인협회와 같이 발달장애인 부모들에 의해 설립된, 영국에서 가장 큰 지적장애인 단체이다. 이 단체의 총회 정관은 이렇게 되어 있다. ‘총회 구성원의 일정 수 이상은 발달장애인 본인이어야 한다. 부모를 포함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 본인이어야 하고, 이사회의 일정비율 이상은 발달장애인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이렇게 명시된 정관을 가지고 있다. 제도와 법적 장치를 통해서, 그런 참여와 활동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도록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대등한 참여라고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면이겠지만, 그건 어떻게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놓고 본인이 노력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면, 더 나은 환경 조성과 더 노력하는 상승작용은 당연히 뒤따를 게 아닌가. 발달장애와 관련된 주요 단체에 갔을 때, 제가 가장 의미 있게 봤던 것 중 하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 : 발표)을 한다는 점이었다. 발표자가 4명일 경우 2명은 장애당사자가 발표를 했다. 물론 개별적으로 더 많은 연습과 노력이 있었겠지만, 자신들의 일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이들한테는 자신들이 직접 설명한다는 원칙이 갖춰져 있었다. 이건 오랜 경험을 통해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상당히 진일보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Q _ 교수님의 저서에서 큰 관심을 갖고 읽었던 대목이 ‘역량강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역량강화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데, 우리의 현실 안에서 역량강화가 실천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 보시는지 교수님 견해를 듣고 싶다

결론적으로 역량강화의 핵심은 ‘기회’이고 ‘반복’이라고 본다. 국어나 수학을 공부시키는 건 개인의 학습을 준비시키는 거지만, 이런 학습이 잘 되었다고 해서 자기 일을 잘 표현하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여러 경우를 연구하며 살펴본 결과로는, 자기를 잘 표현하고 자기를 잘 설명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설명하고 주장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기간이 길고 경험이 많을수록 거기에 익숙하고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역량강화는 결국 이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할 기회가 많으며,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 주는 모든 게 역량강화의 과정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자존집단과 같은 셀프헬프(self-help)그룹도 만들어질 수 있고, 서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발전이 진행되는 것이다.

   
 

Q _ 취재를 다니면서 발달장애를 가진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느끼게 되는 가장 큰 특징은 오감(五感)을 이용한 경험의 기억들은 아주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현장학습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얘기하면서 지난 과거에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건 굉장히 잘 기억하는데, 아쉬운 점은 그 경험의 폭이 매우 작고 좁다는 사실이었다. 시설 내의 경험과 부모와의 제한적인 생활영역에서의 활동이 경험의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발달장애인의 학습 과정 자체를 장애특성에 맞게 경험 위주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렇다. 교육의 방법과 서비스의 방법론 차원에서, 발달장애인에게는 보다 더 친화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들에게 뭔가 주도성이 생기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볼 때 결국은 ‘낮은 기대’가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는데, ‘발달장애인의 일은 볼트와 너트를 끼우는 거다.’ ‘발달장애인의 일은 조금 더 나아지면 커피를 만드는 거다.’ 이런 식으로 도식화시킨 기대를 앞세우는 게 대부분이다. 아주 기초적인 일밖에 못한다는 가정을 기본적으로 가진 채 주변을 바라보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삶이 특수학교를 졸업한 후 30대 40대를 거쳐 가는 동안, 보다 더 적극적일 수 있고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기대를 유지시키면, 그들은 그 기대에 맞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일례로 지난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개발원에서 주는 상을 받은 세 분 중에 20대 후반의 자폐성장애인이 계셨다. 우연한 기회로 그 분과 두 시간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저는 그 분한테서 저의 의견을 확신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완전히 ‘기회의 문제’이고 ‘기대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분은 현직 디자이너인데, 자폐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 있게 조성된 환경 안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일체의 제약이 없었다. 직장의 문화 안에서 자폐라는 조건을 장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편안한 의사소통의 환경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의 개별적인 성공을 일궈낸 실제 사례가 됐다는 것이다.

Q _ 발달장애인 전체의 능력을 미리 재단해버리는 통념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해결의 첫 단추가 아닐까 싶다. 개인의 장점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과, 적절한 역할기대를 지속적으로 보내주는 게 핵심인 것 같다

아주 정확하게 지적하셨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발달장애인들의 역할기대를 낮게 하면, 그들이 사는 공간과 환경의 수준도 낮게 만들어진다. 가장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선 어떤 서비스 환경이든 돈을 적게 들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간보호시설 같은 공간이다. 낮은 기대를 설명하는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낮 시간 동안 그냥 그 공간에 있는 걸로 모든 게 끝나는 행정뿐이다. 이걸 정상적인 기대로 전환시키려면, 그 명칭부터 주간보호가 아니라 ‘낮 활동’내지는 ‘낮의 기회’ 등으로 바꿔야 한다. 영어로는 ‘데이 서비스(day service)’라고 하는데, 낮에 하는 활동이라는 건 누군가에겐 직장의 일을 낮에 하는 거고,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을 낮에 하는 것이며, 다른 어떤 사람들은 체육활동을 낮에 하는 식으로, 생산적인 활동 위주로 그 공간과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건 낮은 기대가 아니라 높은 기대가 되는 것이며, 그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자기 설계를 하게 만드는 기반과 정책적 기대가 뒤따른다면, 지금과는 가능성과 토대 자체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직접지불제도와 개인예산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도 결국 서비스의 방향을 낮은 기대가 아닌, 동등한 기대와 적극적인 기대로 바꾸는 긍정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에 더 많이 노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과 생활의 틀을 바꾸는 게,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만드는 지름길이자 핵심 포인트라고 판단한다.

 

작성자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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