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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민주주의자였다

고문피해자 치유사업에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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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소비녀회 내 성덕재단 1층에 자리한 인권의학연구소 (사진: 인권의학연구소 제공)

인권의학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성북구 정릉에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성가소비녀회 내에 자리하고 있다. 종교기관 내에 자리 잡아 그런지 들어서는 것만으로 세속의 고단함이 씻기는 듯하다. 실제로 연구소에는 위로가 필요한 국가폭력피해자(이하 피해자)들이 많이 찾는다. 피해자들은 수십년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가슴이 녹아 내려야 했다. 그들에게 씌워진 간첩이나 빨갱이라는 사회의 낙인이 자신의 가족들까지 찍어낼까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연구소는 그들에게 당신 탓이 아니라고, 이제는 다 내려놓고 좀 쉬어도 된다고 안심시키고 마음 한 켠 내어주는 곳이다.

눈 뜨고 꾸어야 했던 악몽들

“후배들 맞는 소리를 막 들려줘요. 때리는 소리가 퍽퍽 나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너무 무능력한 인간이 된 것 같았어요. 내가 당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어요”라며 50대 여성 고문피해자 A씨는 당시 자신이 느낀 무력감을 토로했다.

“치과치료를 받을 때 물고문이 떠올라요. 얼굴에 천을 씌우면 물고문 같고, 물리치료 받으면 전기고문 같고요. 숨이 막혀요”라며 50대 남성 피해자 D씨는 몸이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고문 당할 때의 환경과 비슷해지는 것이 괴로워서 커튼도 못치고 어두우면 잠을 못자는 피해자 C씨, 언제든 깨면 도망갈 수 있는 자세로 자야 잠이 온다는 D씨도 있다.

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2011년 시행한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 일부다. 실태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극심한 신체적 고통 속에 살아왔음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에게는 허리, 무릎 등의 손상인 근골격계질환이 많았다. 나라마다 고문 유형이 다른데 우리나라 보안사나 경찰에서 고문하던 방법이 각목을 무릎 뒤에 넣고 꿇어 앉히고는 무릎을 밟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무릎에서 빠직 소리가 나면서 인대가 확 늘어난다고 한다. 그걸 당하고 무릎이 성할 리가 없다. 그 당시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치료를 못하고 방치해 그대로 굳어버린 경우도 있고 군화발에 맞아서 갈비뼈가 툭 튀어나온 상태로 굳어버린 후 40~50년이 지나버린 경우도 있다. 고문이 신체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 것이다.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상처

고문 피해자에게서 가장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심리적 후유증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다. 고문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는 수 십 년이 지나도록 고문 당시의 경험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악몽을 꾸며 고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은 교통사고나 재난 등에서 기인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신체적인 손상과 함께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심리·정서적인 상처, 즉 트라우마가 동반된다. 201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피해자의 약 75%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수치는 보통 성폭력 피해자들이나 참전 군인들의 트라우마 수치보다 높다. 임채도 사무국장은 “내가 지키고자 했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진실들이 강제로 해체된 것”이라며 “여성 성폭력 피해자나 참전 군인들보다 심하다고 단순 수치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그 정도의 참혹한 경험”이라고 고문의 잔혹함을 전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고문 피해가 30~40년이 지났음에도 피해자들이 여전하다고 느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피해자들의 높은 알콜 의존율과 일반인에 비해 수십배 되는 자살 시도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사회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인권의학

연구소의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활동을 하던 내과전문의인 이화영 소장은 미국에서 911테러를 목격하면서 분쟁과 그로인한 난민의 실상, 국가폭력 피해를 목도하게 된다. 이후 이 소장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인권의학에 대한 국제 사회의 흐름을 국내에 소개했다.

인권의학은 국내에선 생소했던 개념으로 진단, 치료, 예방과 같은 질병 중심의 건강 모델에만 고정되어 있던 의학계의 시선을 사회로 돌리는 것이다.

환자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빈곤, 사회적 편견, 폭력, 차별과 같은 인간 고통의 사회적 원인들에서 치료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즉 인권의학은 사회적 질병을 치료한다.

고문 같은 경우, 국가 범죄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회적 질병이기도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인권의학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과거의 국가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사업은 사회를 치료하는 것이다.

인권의학연구소의 피해자 치유사업

2009년 시작된 연구소는 2011년도에 이 소장이 용산피해자 치유작업에 참여하면서 함세웅 신부를 이사장으로 하는 사단법인으로 확대되었다. 이듬해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고문사건을 주로 조사했던 임채도 사무국장이 합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연구소는 연구조사 사업 외에 직접적인 치유프로그램으로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인들을 고용해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예산상의 문제부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소장이 본업인 의사 일을 접고 상근하면서 의료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실질적으로 필요한 의료적 지원은 후원을 하는 의사회원들이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시간에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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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프로그램 중 집단 상담 모습 (사진: 인권의학연구소 제공)

개인상담은 지방에 있거나 상태가 심각해서 약물치료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집단상담은 1주일에 한번씩 다섯에서 여섯 명의 피해자들에게 치료가 진행된다. 치료는 내과전문의, 심리학전문의, 활동가들, 신체적인 이완요법 전문가들이 참여하며 최근에는 수녀원에서도 돕고 있다.

연구소가 성가소비녀회 내에 자리한 건 2년전이다. 원래는 마포에 사무실이 있어서 교통상 편리하긴 했으나 피해자들에게 좀 더 치유적인 환경이 필요했다. 공간을 계속 알아보던 중 함세웅 신부가 지금의 자리를 소개했고 성가소비녀회 측이 흔쾌히 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의 2주년

2015년 6월 25일 연구소 내에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하 ‘숨’)개소 2주년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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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치유센터 '숨' 개소 2주년 행사 모습(사진: 인권의학연구소 제공)

2011년 12월 30일 오랫동안 고문후유증을 앓던 김근태 씨의 영면으로 김근태 재단이 설립되었다. 고문피해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유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연구소는 고문피해자 치유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 마라톤 대회 등의 행사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김근태 재단의 설립 후 함세웅 신부가 고리 역할을 하면서 고 김근태 씨의 부인이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이사이기도 한 인재근 의원과 함께 이 사업을 알리기로 했다. ‘숨’은 2년전 그렇게 설립되었다.

2주년 행사에서 인재근 의원은 “고문은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이쯤 되면 용서할 때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고문이 모두 치유된 세상을 위해 ‘숨’이 역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숨기고 싶은 국가범죄, 고문

고문은 국가범죄다. 과거사 관련 국가기구를 통해 고문 사실이 드러나 국가가 인정한 피해자만 30만이 넘는다. 그러나 드러난 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본인이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드러내기를 힘들어 하며 숨어 살고 있다.

피해자에 대해 ‘이상한 사람이겠지, 뭔가 있으니까 고문을 당했겠지’하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심지어 부인과 자식한테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무려 30년 전의 사건인데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 노인이 재심을 청구하면서 처음으로 부인에게 고문피해 사실을 얘기한 경우가 있었다. 부인도 그 당시 어림짐작은 했으나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남편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짜증을 내고 가끔씩 술을 먹으면 폭발하곤 했는데 짐작만으론 이해가 힘들었다. 고문 피해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두 부부는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이렇듯 피해자 당사자만 치유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고문피해는 교통사고처럼 당대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국가 차원의 사과와 적절한 구제체계가 필요하다.

연구소는 고문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지난 2012년 12월에 국회에 제출했으나 국회 법사위 창고에 쌓여 있을 뿐 아무런 답변도, 진행사항도 전해듣지 못했다. 법안을 제출할 당시 이미 국가가 국가 범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고문 피해자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도 말이다.

국가의 성의있고 진지한 사과가 선행될 때에야 피해자들이 마음을 풀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임 국장은 “고문은 국가라는 강력하고 압도적인 무력이 힘없는 개인을 상대로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라며 “국가가 이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들의 삶을 회복, 또는 복원해 주는 성의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 과거에 그러한 고문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문제이다. 더 이상 변방의 소문처럼 떠도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문제에서처럼 우리 사회가 고문피해자라는 사회 한 켠을 인정”해야 한다며 “장애인 문제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숨기고 있고 숨기고 싶은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피해자 분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겨움을 겪고 있으니까 장애인 단체와 같이 많은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함세웅 이사장은 ‘숨’의 2주년 행사에서 “우리는 모두 고 김근태를 비롯, 모든 민주주의자에게 빚을 졌다”며 “거리에서, 공장에서, 학원에서, 후미진 뒷골목에서, 저 지하고문실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숨’의 건립취지를 밝혔다.

‘숨’이라는 이름처럼 숨죽여 살아왔던 고문피해자들의 숨이 이제는 한숨이 아닌 안도의 숨으로 바뀌길 기원해본다. 애초에 그들이 품어왔던 신념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옳았음을 이제는 국가가 인정해야 한다. 이제 ‘그들은 민주주의자였다’는 새로운 명함을 받을 때가 되었다.

 

작성자박윤경 기자  gypsy7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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