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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웃] 자립으로 달리는 지하철 신문판매원

지하철 신문판매원 -현은영씨

본문

 

 

                                "자립"으로 달리는 지하철 신문판매원

오늘도 복잡한 지하철 속을 비집고 다니며 "신문"을 외치고 다니는 우리의 젊은 이웃 신문판매원. 새벽 4시 졸음에 잠긴 눈을 비비면서 한아름 무거운 신문뭉치를 들고 오늘도 "자립"을 향해 역을 치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신문판매원의 "땅 속 일지"를 들어본다.

<현은영씨의 자립생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혹시 신문판매원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을 들고 있는 사람과 다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지? 이를 보는 지하철 손님의 반응을 살펴보면 자기가 지이다. 어떤 사람은 "야, 신문 판매원들은 깡패다. 왜 모금원 나가라고 소리 치냐"고 옆 친구와 수군거리도 하고 "그래,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지하철 신문판매원들은 모금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다고 한다. 소년 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서, 혹은 야학 활동을 돕기 위해서라고 모금자들은 정중히 인사하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것이 알량한(?) 명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신문뭉치를 들고 10칸짜리 지하철을 한바퀴 돌며 "신문사라"고 소리를 질러대지만 신문 1장 팔리지 않을 때도 있는데 온 몸이 멀쩡한 젊은 사람들이 편하게 돈을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한심해서 신문사라고 소리칠 기분도 나지 않아요. 다른 판매원들도 그것을 보면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해요. 자기가 땀흘려 돈을 벌어 남을 도울 수도 있을 텐데 거저 달라고 해요."

현은영씨

 92년 11월부터 지하철 2호선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현은영씨(20·가명)는 오늘도 청주에서 올라와 대전 엑스포 꿈돌이 인형을 팔며 야학기금을 모으고 있는 대학생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우울했다. 그동안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살고 있는 자신과 비교해서 너무 쉽게 돈을 벌려는 그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해서 연세대 불문과를 지원했지만 시험에는 떨어져 다시 재수를 하든지 직장을 다녀야 했던 91년. 처음에는 신설동 24시 편의점인 "미니스톱"에서 3개월, 시간당 1만1천원으로 8시간 꼬박 일을 했는데 주인은 깐깐한 성격에다 혹독하게 일을 시켰다. 그 후 집에서 마련해준 타일가게 경리 일을 한달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었다.
 다음에는 구인잡지를 보고 구로공단에 있는 삼립식품에 들어갔다. 월급은 53만원이었지만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밤과 낮이 바뀌는 2교대 작업에다 아이스크림 공장이라 몹시 추웠다. 그래도 기숙사에 살면서 시간을 내서 미술학원에 다녔다.
 현은영씨가 자꾸 직장을 옮긴 것은 소중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은 가정형편이었지만 평소 자신의 대학진학에 별 관심이 없던 부모님에게 "대학은 네가 벌어서 다녀라"는 말을 늘 들어왔고 대학시험에 떨어진 이후에 부모님과 더 큰 갈등을 느낀 현씨는 집에 있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집에서 정해 주는 직장에는 다니기 싫고 고생을 하더라도 남의 간섭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현씨는 부모로부터의 "자립"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삼립식품을 그만둔 후 홍익대 전철역 신문가판대에 붙여진 모집광고를 보고 여자 기숙사가 있는 줄 알고 찾아왔어요. 여자가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게 자격증이 있으면 몰라도 남자보다 어렵고 액수도 적지만 여기는 신문을 파는 만큼 남자들과 똑같이 번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여자 기숙사가 없기 때문에 근처에 잠자는 방을 구하고 밥은 청소년회관에서 먹고 있어요."
 신문판매원들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개인마다 다르다. 대부분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던 경험이 있고 경제적으로 가정이 어렵거나 한쪽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같은 또래의 청소년에 비해 자립심이 강하고 삶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은영씨 역시 "영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다.
 "영화는 그림, 음악, 등 모든 예술이 합쳐진 거잖아요.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우선 공부를 많이 해야될 것 같아 대학진학을 목표로 삼았어요. 지금은 시간도 없고 몸이 아파서 공부를 못해여. 앞으로 돈이 모아지면 하숙하면서 공부만 할 생각이에요. 토요일, 일요일마다 나와서 신문을 팔면 생활비를 벌며 하숙할 수 있을 거예요."
 현씨는 부모님께 의존하는 같은 또래의 다른 청소년보다는 정신적으로 앞서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생활기반을 잡으려는 맹렬파>
 2호선의 다른 남자 신문판매원들은 합정동에 있는 서울근로청소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침 찾아간 때가 아침식사를 끝낸 직후라 회관이 떠들썩했다.
 신문판매원을 이곳에서는 "회원"이라 부르는데 60여명쯤 된다. 아침 5시 30분부터 낮 12시까지 일하는 조간 팀은 항공학원, 컴퓨터학원, 대입학원,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며 남들보다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오후 1시부터 지하철 막차 시간까지 밤늦게 일하는 석간 팀은 공부보다 목돈을 마련해서 하루빨리 생활기반을 잡으려는 맹렬파들이 많다.
 이춘배씨(28)가 그런 사람이다. 91년 7월에 이곳에 들어왔는데 야간공업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신문을 팔고 있는 지금까지 단 이틀 쉬어봤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군대가기 전에 하루 쉬고 제대해서 하루 쉬었는데 일하는 게 천성인가 봐요. 오후 1∼2시부터 밤 11시30분까지 일하는데 2호선 한 바퀴 돌면 1시간 반 걸려요. 하루에 6번은 돌거예요. 4백부에서 5백부 정도 팔면 1부에 1백원씩 남으니 하루 평균 4만5천원 법니다. 하루 4만원씩 저금해요. 여기 와서 2천3백만원 정도 모았습니다. 여가생활이 전혀 없고 하루종일 걸어다니느라 다리가 아프지만 힘들 때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내년 봄쯤엔 고향 이리에 내려가서 가게라도 하나 내려구요. 대학생들이야 앞으로 발전성이 있겠죠. 하지만 나도 열심히 일해서 가게를 내면 지금처럼 고생하진 않겠죠. 그들이 부럽진 않아요."
 석간 팀이 일을 하러 충정으로 역안에 있는 어린이재단 신문보급소로 모두들 몰려 나간 오후 3시경, 서울근로청소년회관 2층 휴게실에는 아침에 신문을 돌리고 온 조간 팀 몇 명이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석간 팀에 비해 시간적 여유도 있고 거의 학원생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비판하는 말이 쏟아진다.
 "손님이 많아 우리가 뚫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차를 "개구리차"라고 해요. 반대로 손님이 없는 차를 "황차"라고 하는데 둘 다 그냥 보내요. 개구리차 바로 뒤에 들어오는 차를 "총알차"라고 하는데 손님이 적당히 있으면 그때는 잘 팔라는 거예요. 그 차를 잡으려면 머리를 잘 써서 어떤 차는 그냥 보내기도 해야 합니다. 또 신문파는 게 원래는 출퇴근 시간에 금지되었는데도 판매부수를 돌리려고 손님 비집고 다니며 파는 거예요."
 "1주일 동안 1번은 우리도 쉬어야 하는데 솔직히 ㅎ일보 때문에 못 쉬는 거예요(웃음). 여기서 숙식이 무료라 좋지만 퇴직금도 주고 문화시설도 있으면 좋겠어요."
 "스포츠신문도 신문입니까? 야한 만화는 없어져야 해요. 근데 스포츠신문이 제일 많이 나가요. 시민들 수준이 그 정도라니까요. ㅈ일보는 사는 사람은 야, 신문 줘! 하고 반말도 해요. 이렇게 반말하는 사람들은 신문 안 팔고 한 대 때려주고 싶어요. 진짜 화나면 신문 팔지 않고 그냥 가요. 어느 정도 팔다보면 손님들 얼굴만 봐도 무슨 신문 볼지 열에 여덟은 알고 먼저 내줘요.
 "정치기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열차전복이다, 탈영병 사건 등 좋지 않은 사건이 터지면 신문이 많이 팔려요. 비 오는 날은 쫄딱 망하는 날이고 모금함이 지나가도 신문이 안 팔려요. 동전이 없으니까."
 이들 조간 팀의 한달 월급은 4∼5십만원 정도, 적게는 70만원부터 많게는 1백만원이 넘는 석간 팀에 비해 월급이 적은 만큼 돈을 벌기보다 공부하는 분위기다.
 2층에 조그맣게 마련된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도서관 파는 한길우씨(21)를 포함한 10명 정도인데 한씨는 지금 대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에서 뚝섬역 구간을 오가며 하루 150부 가량을 팔고 회관으로 곧장 돌아와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여기 있으면 신문 팔고 안 팔고가 주된 생각이므로 생각의 폭이 좁아져야. 청소년기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데 모든 교육기관이 무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일만 하다보면 문화행사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정부에서 청소년 복지에 많은 투자를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서 문제가 많다고 청소년을 보는 것도 옳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시각이 청소년에게 전염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근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압구정동의 청소년들은 죽을 때까지 별 어려움 없이 잘 살겠죠. 그런 모습을 보니 그들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문제겠지요."

<신문판매와 청소년 복지>
 이들 지하철 신문판매원을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뒤에 "혹시 폭력조직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하고 불쌍하다는 동정적 눈길을 주기도 한다. 신문판매원 당사자가 들으면 힘 빠질 얘기이다. 서울근로청소년회관의 나상희(33) 과장은 81년에 처음 지하철 신문판매를 할 때와 크게 달라진 상황을 들려주었다.
 "당시만 해도 역 주변에 농촌에서 무조건 상경하거나 집을 뛰쳐나온 청소년, 문제 청소년 시설에서 퇴소한 아동들이 갈 데 없이 배회하고 있었고 이때쯤 지하철이 완성됐지요. 청소년 복지사업의 필요성과 지하철 공사의 신문판매라는 계획이 서로 맞아떨어져 어린이 재단에서 지하철 2호선을 맡아 신문판매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아이들이 맨날 싸우고 말썽을 말썽을 피워 경찰에서도 많이 갔어요. 문제청소년들이 많았지요. 신문판매의 목적은 이렇게 18살이 넘어 시설을 나온 아동이나 빈곤가정의 청소년의 진로를 개척하고 일정한 시간 돈도 벌면서 자립할 기반과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서울근로청소년회관에서는 이들 회원의 자립을 돕기 위해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조간 팀은 하루 3천원, 석간 팀은 7천원의 최저 액수를 정해 의무적으로 저금을 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전국에는 YMCA나 홍사단과 같은 청소년단체가 32개나 있지만 그 대상이 일반가정의 청소년에 집중되어 있고 사업내용도 교양, 인격형성이 주된 목적이라 서울근로청소년회관과 같은 기관이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많은 불우청소년들이 있지만 이들에 서비스가 거의 없어요. 장애인 청소년도 있겠고 우리같이 부모가 계시지만 자기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청소년이 얼마나 많겠어요. 이들이 캠프다 해양단이다 하는 여가를 즐길 수 없잖아요. 우리 청소년 회관 사업도 자립이라고는 하지만 평생 직종도 아니고 자기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 다리에 해당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 과정도 개개인에게 자신감을 줄 수도 있고 사회에 적응하는 계기는 될 것입니다."

<시금한 근로청소년 복지정책>
 지금 서울근로청소년회관에 있는 회원들은 과거와는 달리 시설퇴소 회원들은 과거와는 달리 시설퇴소 아동이나 문제청소년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공부하거나 자립하려는 청소년이다. 그러나 청소년회관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자립이 쉽지만은 않다. 피곤한 몸을 이기고 공부를 하면서 학원비와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 도저히 양쪽을 다할 수가 없어서 공부만을 하겠다고 청소년회관을 떠나서 친구들의 도움을 구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 근로청소년 앞에 놓인 현실인 것이다.
 서울근로청소년회관의 신문판매사업에서 나온 수익금도 전부 청소년복지에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보다 더 어려운 육아시설의 아이들을 돕는데 쓰여지는 현실이다.
 아무리 몸이 아파 쉬고 싶어도, 무례한 지하철 손님을 대하기 싫어도 새벽 4시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야 하고 10여분만에 후다닥 점심을 먹고 노곤한 몸을 가누며 신문뭉치를 들고 "자립"을 향해 오늘도 지하철을 타는 이들 신문판매원.
 근로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청소년 복지시책이 성실히 실행되어서 이들의 소중한 꿈이 열매맺기를 고대해본다.

글/오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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