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노동권은 그들의 생존권이다 > 함께 사는 세상


청소년의 노동권은 그들의 생존권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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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

이 한마디는 2016년 5월 17일 새벽에 발생한 서울 강남역 인근의 ‘묻지마 살인사건’과, 연이어진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을 떠올리는 상징으로 기억된다. 당시 19세였던 ‘김군’은 고3 때부터 현장실습을 나가야 했고, 고교 졸업 몇 달 만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김군 혼자뿐이었을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잊혀 간 또 다른 ‘김군’과 ‘이양’, ‘박군’과 ‘최양’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는 떠올린 적 있었을까? 성인기에 진입하기도 전에 이미 세상의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인권과 권리를 유린당하는 청소년들의 현주소가 어느 정도인지를 함께 들여다보기로 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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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공론 아닌 현장을 직접 마주한다

청소년기 노동과 인권의 현주소를 파헤치기 위해, 누구보다 뚜렷한 성과를 남기며 활동을 펼쳐가고 있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 그런데 구성원들이 스스럼없이 밝히듯이, 이 네트워크는 다른 단체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운영을 하고 있다. 일단 사무실과 상근자가 없다. 사단법인 형태도 아니고, 전문단체로 등록돼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모임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청소년’과 ‘노동’과 ‘인권’이라는 세 가지 축을 한데 모아 고민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4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실업교육위원회 활동을 모태로 시작된 네트워크는 해당 분야 전문가뿐 아니라, 청소년노동인권에 관심도가 높은 일반 개개인들이 한데 모여 주제토론을 이어간다. 추상적이거나 모법답안 같은 대화가 아닌, 실제 현실을 펼쳐놓고 실천을 동반할 대안부터 찾아나간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서울 영등포의 한 카페 자리에서도, 그들의 열띤 주제토론은 이미 본론을 향해 진행되고 있었다. 전교조 시절부터 네트워크의 ‘산증인’이 된 하인호 씨 그리고 최민 씨, 이수정 씨, 이나래 씨, 림보(활동명) 씨가 취재에 함께했다. 한 활동가가 모든 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발언의 중간마다 옆에서 보충설명을 첨부하는 색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개별 발언자를 구분하기보다는 <함께걸음>과 네트워크 간의 대화로 정리를 하는 게 더 정확한 내용 전달이 될 것 같다.

“2004년에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와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몇몇 단위들이 청소년들한테 교육할 수 있는 노동인권교재를 함께 개발하자고 해서, 1년 반 정도의 작업을 통해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 작업 과정 속에서 교재 발간에 그칠 게 아니라, 더 나아가 강사진 양성과 노동인권교육 및 워크숍을 계속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죠. 특성화고교 현장실습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던 시점이기도 해서, 직접 현장실습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보도자료를 만들며 발표회도 가졌습니다. 그 모든 성과의 결과에 따라 현장학습 정상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처음엔 일하는 청소년들이 바로 지금 이 시점에 당하고 있는 인권침해상황에 직접 대응하기 위해 출발했지만, 사실 인권침해라는 게 어느 사업장 한두 군데를 바꾼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당사자가 힘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목표 아래, 무엇보다 먼저 교육에 굉장히 공을 들이며 교재 발간을 추진했던 거고요. 그 과정에서 절실하게 깨달았던 건, 일하는 청소년들이 어디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존재하는지를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매년 실태조사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거기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법제도 정책제안에 힘을 쏟았던 거죠.”

“이런 활동들이 저희 네트워크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다 보니까,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각 지역에서 반응이 일어났어요. 저희들의 활동을 보면서 각 지역에서도 청소년의 노동, 청소년의 인권을 살피고 파악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지역마다 자발적인 네트워크들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 됐던 거예요.”

“청소년노동인권에 관한 실태조사는 1년 또는 2년마다 하나씩의 중점주제를 정해서, 심도 깊게 실제 현장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2005년에는 간접고용 현장실습이 실태조사 주제였고, 08년에는 최저임금, 09년에는 건강권 실태, 11년에는 배달노동, 14년에는 다시 현장실습과 밑바닥 실태조사, 이런 식으로 청소년 노동자들이 현실 안에서 실제 신음하고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살피고 파헤쳐 왔죠. 수동적이고 관료적으로만 반응하며 움직이던 정부 각 부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자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대학생이나 청년층의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형태의 노동은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청소년’이라는 대상에 ‘노동’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이면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청소년들이 일을 해? 어디서?”라는 반응이 먼저 나오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실제 일을 하는 노동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이 곧장 이어질 줄 알았는데, 네트워크의 반응은 달랐다.

“사실 그런 질문을 받는 게 제일 곤란한데요. 어디에나 있거든요. 그런데도 우리는 일하는 청소년들을 금방 알아채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실제로 이 카페 안에도 있을 수 있잖아요. 어디나 다 있는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게, 그동안 우리가 청소년노동자들을 바라봤던 일정한 시각하고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일을 해?’라는 질문이 그런 것이죠. ‘나는 청소년들이 일하는 거 반대하는데? 그 애들이 왜 일을 해야 돼?’라는 반문이 대부분인 것도, 우리가 청소년노동자들을 관찰의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관찰의 대상에서 제외’,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배달대행 전문업체라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각 매장마다 직접고용 형태의 배달이 이루어졌는데,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이라고 해서 직접고용한 사람 없이 노동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도 그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공론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문제가 제기되고 그 다음 단계로 제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직접고용에서 밀려나 더 열악한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형태로 전락한다는 점이에요. 저희가 열심히 운동을 전개할수록 청소년들이 더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거, 법제도가 취약한 지점으로 내몰리는 게 결국 청소년노동자들이라는 상황에 대해 저희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이 네트워크의 ‘산증인’이라고 동시에 지목했던 하인호 씨는 2년 전에 정년퇴임한 현직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활동을 통해 네트워크 탄생의 산파역을 담당했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실제 교육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저희는 특성화고등학교의 교육과 현장실습을 최우선적으로 살펴봤죠. 우리 사회의 모순과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가장 집약돼 나타나는 곳이 바로 특성화고입니다. 학교교육과 현장실습에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죠. 교사들은 어쨌든 자신의 학생들을 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교사들 스스로가 노동현장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궁금증만 가지고 지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노동3권을 가르쳐야 하는지,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알려줘야 하는지 여부부터 엄두가 나지 않는 거예요. 저도 교사로서 지내는 동안, 그런 교육이나 연수를 받아봤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청소년과 노동과 인권을 공론화시키는 시도를 계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세 가지 이슈가 모두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주제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소년’이라는 연령대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 같은 대상이잖아요. 게다가 ‘노동’과 ‘인권’이라는 용어를 제기하면 사회의 주류와 기득권층에서 즉각 거부반응부터 나오던 시기였는데, 그 세 가지를 한데 묶어 ‘청소년노동인권’을 주장했으니 어땠겠어요. 학교 안에서 그 교육을 시작했는데, 당시 안기부와 교육청 장학관까지 교실로 달려왔습니다. 그게 저희 네트워크 초창기의 활동상이 되는 거죠. 모든 게 벽에 부딪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으니까요. 그 토대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이젠 전국적으로 청소년의 노동과 인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나름의 보람이랄까? 미련과 보람이 섞인 그런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노동권과 인권은 결국 생명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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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현실이 그렇고 환경은 변하는 게 없는데,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스크린도어 앞의 ‘김군’들이 존재했던 걸까? 특성화고교의 현장실습과 관련돼 사망까지 이르게 된 사고사례 몇 가지만 살펴봐도, 사망과 가까운 지점까지 다가섰다가 가까스로 벗어난 이들이 얼마나 더 많았을까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헤아리게 된다. 울산의 한 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은 야간에 일을 하다가, 밤에 폭설이 내려쌓인 공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사망했다고 한다. 현장실습은 야간노동이 금지돼 있다.

“마이스터교에 다니던 학생의 전공은 미디어 분야였는데, 그래서 미디어 활동사업이 활발한 특정 기업을 선택했는데, 그 기업의 계열회사로 배정돼서 식품 포장 업무를 하다가 자살을 했어요. 정말 전공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그건 현장실습이 아니잖아요. 해본 적 없는 분야라서 일이 서툴 수밖에 없는데, 전형적인 일터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결론을 내린 거죠. 유명 레스토랑에서 조리를 담당했던 한 학생도, 왕따와 성적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어요. 같은 달에 구의역의 ‘김군’도 희생이 됐죠. 분명한 불합리함을 제기하거나 항의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이 시스템을 현장실습 학생들이 견디지 못했던 거예요.”

당연한 지적이겠지만, 지금도 견디지 못할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절규하고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대화의 내용을 묵묵히 듣던 한 활동가는 네트워크 차원의 걱정 한 가지가 있다며 입을 열었다. 활동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는 빈 지점이 너무나 많아지는데, 그걸 지적하고 시급히 바꿔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게 진정 안타깝다고 했다. 같이 참석한 모두가 ‘맞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작년인 2017년에 ‘현장실습대책회의’라고, 전국의 137개 단체가 함께하는 연대체가 만들어졌어요. 작년 3월 13일에 엘지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실습하던 학생이 자살하게 되면서 전북지역에 대책위가 생겼고, 이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기 위해 전국단위의 단체들이 대책회의를 만들면서 1년 가까이 문제제기와 함께 열심히 활동을 했죠. 그런데 대책위가 마무리될 즈음에, 제주도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가 죽음에 이르는 사건으로 대책회의의 1년을 마무리하게 됐어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모두가 작년 연말과 올해를 맞이하게 됐던 거죠.”

작년 5월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인권교육’을 국정운영 100대 과제 안에 포함시켰다. 분명하게 환영해야 할 과제 선정이 맞고, 그 추진을 적극 지지해야 함 또한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 과제선정에 발 맞춰서 노동인권교육이 마치 황금알을 낳는 블루오션인 양, 청소년과 노동과 인권을 전담하겠다는 전국 각지의 단체와 조직들이 순식간에 불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황금알의 동의어는 국가지원금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단체등록을 하지 않고 활동하는 주된 이유라고 받아들여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지원금을 받는다는 건, 기존의 운동성을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니까요. 저희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사회의 아메바와 같은 존재로, 가장 단순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운동의 순수성을 끝까지 간직할 테니까, 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참여로 함께해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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