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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제가 사는 방인데, 들어와서 보실래요?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 자립홈 지원 현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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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수용시설의 문제점이 불거질 때마다, 가장 먼저 대안으로 제시되는건 ‘탈시설’이다. 하지만 탈시설이라는 명분으로 적은 인원을 따로 거주시키면서, 오히려 인원만 줄인 형태의 또 다른 장애인수용시설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는 어떻게든 존재하기에, 진정한 모범사례는 어떤 형태인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의 체계적인 지원운영 시스템과, 실제 현장의 생활을 직접 들여다봤다. 보이지 않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발견한 심정이라 할까? 자기 자신의 집에 산다는 여유로운 미소를 확인하게 된 그 보금자리의 모습을 여기에 옮긴다.

 

시설이 아닌 나만의 세상에 산다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는 장애인의 자립적인 생활을 위한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의 장기적인 발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자문과 지원을 지속함으로써, 장애당사자 및 가족들에게 운영법인의 방향을 제시하고 사업 전반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울시 소재의 그룹홈이 약 180개소 있습니다. 시나 센터 차원에서 직영하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자격기준을 갖춘 운영주체들이 독립된 가구 형태로 운영을 하고 있죠.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는 모든 그룹홈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관찰하며, 운영 과정에 따른 데이터를 작성하고 있어요. 세부적인 내용들로 작성되는 다양한 현장 기록들은 앞으로의 운영에 있어서 더 큰 방향의 설정과 세세한 미비점들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센터 지윤경 팀장의 설명처럼, 각 그룹홈은 개별적인 자립을 최고의 가치로 지향한다. 거주자 모두 자기 방을 갖고 각자 직장생활을 하며, 독립적인 개별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사회재활교사’라는 전문 관리자들이 일정한 도움과 상담, 일반사회의 적응을 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맡으며 생활인들의 지역사회 안착을 책임지고 있다.

입주자격은 만 18세 이상의 등록장애인 중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우선 배려하고, 재가장애인 가운데 저소득층에 속한 이들의 지원도 가능하다. 또한 ① 시설입소자 및 재가장애인으로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것이 재활 및 자립에 더 효과적이라고 인정되는 자 ② 낮 시간 동안 직장생활, 고용훈련, 교육 및 재활훈련 등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일정한 소득이 있는 자 ③ 사회재활교사의 도움을 받아 공동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자 ④ 무연고 장애인의 경우 후견인 또는 후견인 역할이 가능한 인물이 있는 자 등이 해당된다. 여러 기준이 제시되고 있지만, 자립을 지향하며 노동 관련 활동을 직접 하고 있는 모든 이들한테 문호가 개방돼 있다고 보면 된다.

“그룹홈 중에서 저희가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14개소가 있어요. ‘자립형 그룹홈’이라는 명칭으로 서울시에 공식 등록이 돼 있는데, 당사자들의 독립된 일반 가정생활에 목표를 두고 있죠. 1인 1실을 기본으로 하고, 사회재활교사가 상주하지 않는 대신 일주일에 2, 3회 지정된 시간에 순회방문을 해요.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순회방문 때 해결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관리자가 없는 상태에서 당사자들끼리 동거인의 형태로, 각자의 방에서는 독립된 1인 가구의 삶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자립형 그룹홈(이하 자립홈)의 운영방침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입주기간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6개월에서 1년 또는 2년 기간으로 한정된 일반 그룹홈의 규정이 거주자의 불안정 요인이었던 데 반해, 자립홈의 이 시스템은 자립생활능력이 인정된 대상자들의 자율권을 최대한 폭넓게 보장한다. 거주기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교사의 순회방문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한 자립형과 다르게, 직장생활로 집이 비어 있는 낮 시간이 아닌 야간에 한해 교사가 같이 상주하는 ‘거주형 그룹홈’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무상거주는 아니다. 자립이 당면 목표이기 때문에 모두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고, 주식과 부식 및 공공요금 같은 최소한의 소요비용은 ‘생계비 분담’을 원칙으로 공동 부담한다. 물가상황과 각 자립홈의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개별적으로 월평균 20만원 내외의 생활비가 공동 거주비용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운영에 관한 이론적 소개만 풀어놓는 것보다는, 실제 삶의 현장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훨씬 분명한 답을 얻게 될것 같아 직접 찾아가 봤다.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 김수진 소장이 남긴 인사말의 실제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자립홈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과 선택의 욕구를 최대한 존중하고,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훈련의 기능을 넘어 내 집으로의 거주개념이기에 그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자립홈을 통해 거주인의 주거안정과 사회통합에 더욱 많은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자립홈의 제도적인 보장과 다양한 여가활동 지원으로, 자립홈에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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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집에서 살아요.”

사전에 방문을 약속한 곳은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자립홈이었다. 서울의 유명 재래시장 중하나인 후암시장을 지나, 건너편 길을 따라 올라가 한 빌라 건물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환대를 받으며 들어섰다. 첫인상은 일반 가정집과 똑같았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별도의 안전장치 같은 게 설치된 곳이 아니라면, 어떤 그룹홈을 가더라도 집 내부는 일반 가정집 모습 그 자체로 평화로웠다. 사람 사는 느낌은 어디나 똑같은 것이다.

“저는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순회방문을 해서, 거주자들의 생활을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일을 처리해요. 기본적인 의식주는 거주자들끼리 다 알아서 하니까, 저의 일은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들에 한정됩니다. 방문 시간은 오후 6시부터 10시로 정해져 있지만, 필요할 때는 낮에 만나 지원할 때도 있어요.”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에서 자립홈 순회방문을 맡고 있는 이순희 씨는 외부인이 아닌, 그 집안 사람의 모습으로 편하게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 자립홈은 3명의 여성 당사자들이 각각의 방에 살고, 모두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일반 그룹홈과 자립홈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입주기간의 제한이 없다는 자립홈만의 특징이 거주자들에겐 상당한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일반 그룹홈에선 사회복지사 같은 관리자가 방 하나를 쓰고, 거주인들이 두 명씩 방을 같이 쓰는 경우가 많잖아요. 기간의 제한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선 혼자 지낼 수 있는 자기 방이 있어요. 일정기간 있다가 나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서, 이 생활 자체가 자립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가서 혼자 독립해서 살아도 되겠네’라고들 하지만, 혼자 지낸다는 외로움이 뭔지 다들 체험으로 잘 알거든요. 그래서 개별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같이 사는 이들이 있다는 아주 커다란 장점을 모두가 느끼고 있어요. 자립홈 이전에 살았던 일반 그룹홈 시절 경험했던 문제점들을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더 잘 기억하고 있거든요.”

순환방문 시스템으로 필요한 지원만 한다고 했는데, 거주자들한테 필요한 구체적인 지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단다. 도움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취업 알선이 급한 이들처럼 각자 필요한 부분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 지원들은 당사자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서, 부모님이 계신 경우는 부모님과 센터의 소장까지 함께하는 회의를 통해서 결론을 내고 해결에 나선다.

“자립홈이 십 년을 넘기다 보니까, 최근 들어 심각성을 공유하게 된 게 건강관리예요. 체중관리가 안 된다는 거죠. 정해진 식단이 아니라 거주자들끼리, 아니면 각자 알아서 해결하다 보니까 부작용이 조금씩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최근에는 같이 운동하는 프로그램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만들고 있어요. 지원의 구체적인 사례라고 한다면, 월급통장의 잔액과 상관없이 소비와 지출을 계속 하는 분들이 계시죠. 그 분들한테는 재정 관리에 관한 대화를 나눠요. 매달 용돈은 얼마를 쓰고 얼마를 저축한다는 틀을 함께 만드는 거죠.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면 병원에 동행하고, 은행에서 적금 재계약 같은 걸 해야 할 때도 함께 가서 당사자들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서류상의 문제를 같이 해결합니다.”

외적인 업무만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자체에 도움을 전해야 할 일들도 적지 않단다. 대표적인 게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거주자가 있을 때인데, 그들한테는 순회방문을 할 때마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요리법을 가르쳐 주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업무에 포함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일대일 맞춤형 개별지원이 거의 모든 거주자들한테 진행되는 셈이다.

“자립홈을 시작하면서 저희가 만들었던 슬로건이 ‘이제는 내 집에서 살아요’이었어요. 쉼터나 그룹홈에서 자립훈련을 한 뒤 혼자 독립해서 나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독립 이후가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정말 위험한 건 쉼터나 그룹홈을 나가는 순간부터인 거죠. 자립홈은 그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거주자들이 스스로 말하는 장점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혼자 살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거, 그건 차별과 외로움에 힘들어했던 이들이기에 누구나 공감하는 아주 중요한 대목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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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취재에 모두들 민감하게 반응했다 했지만, 인터뷰에 흔쾌히 응하겠다 했던 한 여성 거주자가 취재시간에 맞춰 일찍 퇴근하고 귀가했다. 밝은 미소로 인사를 전하고, 머그잔에 음료수를 담아 다가오는 모습이 정겨웠다. 월간지 지면에 본명을 밝혀도 되겠느냐 묻자 당연히 괜찮다고 한 조선영 씨는 자립홈 생활 11년차라고 했다. 자립홈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이 되는 셈이다.

자립홈 이전에는 교회에서 운영하던 다른 그룹홈에 있었단다. 그룹홈과 자립홈의 차이점에 대해서, 선영 씨는 그룹홈에 살 때는 같이 지내던 선생님이 있었다는 점을 몇 차례나 반복하며 언급했다. 생활의 동거인이 아닌, 일상을 통제하는 감시자 역할이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자립홈이 좋은 점을 말할 때는 밝던 그의 얼굴이 더욱 더 환해졌다.

“제 공간에서 제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좋고요. 제 물건들을 꾸미는 게 좋고, 혼자 잠을 자는 것도 좋아요. 자유가 있는 거잖아요.”

아침에 출근해서 명동에 있는 직장에서 근무한 뒤 퇴근한단다.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거고 저금하며 용돈으로도 쓴다고 했다. 부모님 생신 때마다 용돈을 드리고, 커가는 조카들의 생일선물도 꼬박꼬박 챙긴단다. 개인적인 취미생활이 있는지 물으니까, 방으로 가서 몇 권의 공책을 들고 나오더니 직접 펼쳐보였다.

“저는 이렇게 적고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하루에 있었던 일을 다 적거든요. 일기장이기도 하고, 생활의 기록이기도 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소설 같은 걸 쓰고 싶어서, 지금도 계속 적는 걸 좋아해요.”

장애인수용시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한테 ‘탈시설’의 중요성을 말로만 강조하기보다는, 이러한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으로 전파되리라는 나름의 확신이 들었다. 그의 말 그대로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이웃을 만난 듯 자신의 일상을 진솔하게 얘기하던 선영 씨는, 무언가 자랑하고 싶은 게 있다는 상기된 얼굴 표정으로 한마디 제안을 불쑥 던졌다. 너무 기분이 좋다는 마음까지 느끼게 만든 그 표정은 그의 제안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함께 전하고 있었다.

“여기가 제가 사는 방인데요. 한번 들어와서 보실래요?”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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