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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사람은 있는데 장애여성은 없어요

그녀의 시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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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으로 산다는 건 남성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으로서 겪는 차별과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 중첩된다. 차별의 경험은 단순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장애유형도, 계급적 위치가 다르다. 중첩된 정체성, 교차된 억압의 지점에 장애 여성의 삶이 있다. 그럼에도 장애여성의 삶이 지워진 채 장애인으로만 소환되거나 여성으로만 호명된다. 이런 사회에서 장애여성 당사자의 경험을 전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건 레몬으로 쓴 비밀편지에 촛불을 들이대는 일인지도 모른다.

“저는 20대 때 굉장히 까칠했어요, 지금은 많이 유연한데. 그때는 사람들이 옆에 오는 것도 안 좋아했어요. 일부러 그랬죠.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서 제가 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저한테 보호막이 없었어요. 스물일곱에 대학로에서 처음 혼자 살기 시작 했을 때 얼마나 위험했겠어요. 어떨 때는 술 취한 사람들이 휠체어를 뒤에서 잡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잡는 힘에 휠체어가 넘어가요. 어떨 때는 제가 소리 지르면 그 사람이 놀라서 손을 놓아요. 그 사람이 뒤돌아서 도망가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가면 술 취해서 못 쫓아오기도 해요. 그래도 곧장 집으로 못 가요. 집을 알까봐. 동네를 빙빙 돌다가 들어가요. 휠체어장애인들이 주로 1층에 살잖아요. 1층 집은 바로 노출되니 무섭지요. 그래서 늘 집에 갈 때는 뒤에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들어가요. 별일이 없어도 밤늦게 집에 갈 때는 딴 데로 돌아갔다가 들어가곤 해요.”

김지수 씨를 카페에서 만나 장애여성의 삶에 대해 묻자 나온 대답이다. 비장애인 젊은 여성들도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성별권력 관계에서 차별받는 위치에 있는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밤이면 더 힘을 발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는 신체적 물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으니 비장애인 남성들이 종종 그녀를 위협하곤 했다.

그녀는 소아마비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바이러스에 뇌나 척추에 감염돼서 생기는 건데, 그녀는 2차 접종을 하기 전인 1차 접종 후에 감염이 됐다. 척추에 감염이 돼 척추가 휘어 전신이 변형돼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똑바로 앉거나 걸을 수가 없고 내장기관도 뒤틀려 있다.

김지수 씨는 장애인극단 ‘애인’ 대표다. 그는 극본을 쓰고 연출을 겸하고 있다. 여성이 극단 대표인 경우는 비장애인 극단에도 흔치 않은 일이다. 극단 애인은 장애인극단으로 현재 장애인 배우 및 스텝 8명과 비장애인 연출가 1명이 있다. 그녀는 창단멤버로 연극을 한지는 15년 됐다. 그녀는 요즘 극단이 12년 만에 사무실을 얻기로 해 바쁘다. 사무실을 얻으러 다니면서 부동산이나 인테리어 업자에게 받은 차별들이 생생하다. 혼자 사무실을 구하러 부동산에 들어가면 ‘장애여성인 네가 사무실이 뭐 하러 필요한데’라는 얕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말투의 질문, 태도들. 비장애인연출가와 같이 가면 비장애인연출가를 보고 묻고 답한다. 비장애인연출가가 대표님의 의견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하면 마지못해 귀를 기울이는 정도다. 대표라는 지위도 장애인의 딱지가 붙으면 힘이 떨어진다. 평생 겪어온 장애인 차별은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여성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요”

장애여성은 유령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녀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장애인이자 여성이지만 여성으로서 사람들이 대우해준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자신을 여성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태도는 주로 가족에게 느꼈다. 18세까지 집에만 있었으니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심하게 늑막염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딸만 일곱 있는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집안 사정으로 언니들이 주로 돌봤다. 18세에 중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졸업할 무렵 수동휠체어를 너무 열심히 밀어서인지 늑막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언니가 했던 말이 충격적이어서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데 약이 독해서 뭘 못 먹고 계속 토했어요. 언니들이 교대로 돌보는데 언니가 나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언니한테 전화를 했어요. 옷 갈아입어야 하니 와달라고. 그런데 언니가 ‘형부 있잖아’ 그러는 거예요. 제 나이가 스물한 살인 데…. 병원에 입원하면 속옷도 안 입고 환자복만 입고 있는데 어떻게 형부한테 갈아입혀 달래요. 언니한테 너무 화가 났어요. 아무도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간호사한테 갈아입혀 달라고 했지요. 마음의 상처가 정말 컸어요. 여성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구나….”

그 후부터 그녀는 가족들에게 병원에 입원하면 간병인 쓸 거라고, 무슨 일 있어도 내가 형부 딸도 아니니 형부한테 맡기지 말라고 했다. “가족 안에서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처음 생리를 했을 때도 가족들은 걱정하는 이야기만 했다. 생리해서 배가 아프다고 해도 공감하기보다는 불편해했다. 이 사회에서 생리하는 장애여성은 불편한 존재가 된다.

여성을 몸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항상 특정 틀에 맞아야만 했다. 늘씬하고 풍만한 몸, 그 이상적 몸에서 장애여성의 신체는 이미 배제됐다. 직립보행의 여성이 기준인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 장애여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역설적이게도 여성으로서 느껴질 때는 앞서 말한 ‘폭력의 위험’에 처할 때 정도다. 얼마 전에도 길에서 생판 모르는 남성이 목을 껴안고 웃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자궁적출술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스물여섯부터 생존을 위해, 글을 쓰기 위해, 평생 노동을 했던 그녀는 몇 년 전 몹시 아팠다. 홈쇼핑 전화상담 및 주문을 하는 일이었는데 시간이 불규칙하고 업무량이 많았다. 몸이 혹사당했던 것이다. 재택근무에 전화상담이라 다른 직업에 비해 돈을 벌기 괜찮아서 시작했던 일이지만 4년 만에 탈이 났다. 결국 자궁까지 들어내야 했다. 신체조건상 수술은 매우 위험했다. 척추가 휘어 다른 사람과 달리 자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복강경 수술이 가능하지 않았다. 개복해서 수술을 해야 하니 목숨이 위태위태했다. 정말 생명을 건 수술이었다.

그런데 수술 후 사람들은 ‘여성으로서의 상실감’을 묻는 게 아닌가. 습관적인 질문들은 그녀가 해야 했던 수술의 위험도를 몰라서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장애여성으로서 김지수 씨가 지내온 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든 생각은 여성으로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자궁적출술을 받았는데 여성으로서 괜찮냐고 물어요. 전 결혼을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상실감보다는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었는데 말이죠. 어차피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도 없는데 사람들은 자궁적출술에 대한 상실감을 강요하지? 생명의 위험이 더 컸는데 실제로 깊지 않은 상실감을 느껴야 하나? 사실 저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장애를 갖게 되면서 여성적인 것의 절반을 잃은 셈이고, 자궁적출술을 하면서 여성성의 반 정도가 없어져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 계속 여성성을 잃어가는 것이면서 사람이 되는 거죠. 되게 복잡했어요.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어도 희한하게 ‘괜찮아, 어차피 결혼도 하지 않을 건데’ 그런 얘기도 듣기 싫어요. 하나로 말하긴 어려워요.”

그녀는 “자궁적출술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라며 뜻 모를 웃음을 지었다. 약간은 씁쓸하면서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듯한 엷은 미소였다. 끝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극작가이자 연출인으로서 든 고민을 꺼냈다. 장애인 연극인의 롤 모델이 별로 없다고 했다. “장애를 갖고 산다는 게 그래요. 사회적 차별은 다 같은데 그 안에서 겪는 건 개별적이라서 다 다르잖아요. 예술도 다르거든요.”

좋은 극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녀의 말에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 무게감이 초월적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은 그녀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연극은 ‘고된 장애인의 삶’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저는 충분히 재밌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장애를 갖고 산다는 건 힘든 거 같아요. 정말 고돼요, 삶이 고돼요. 그래서 그 고된 삶 안에서 즐겁게 살려고 해요.”

작성자글.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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