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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위해서’가 아닌, ‘사람을 위한’ 연구와 개발입니다

이원코리아 (eon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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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보이는, 거의 안 보이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들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 중 하나는, 안 보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입고 꾸미며 지내도 무방하리라는 제3자들의 짧은 생각이다. 장애당사자들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그 장애 이외의 모든 감각이 그 누구보다 훨씬 뛰어나게 발달돼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청각 이외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가장 가까운 예가 된다. 그렇기에 시각에 불편함이 있는 이들 또한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은 누구보다도 높은 지점에서 활용되고 있다. 시각장애당사자들 중에서 멋쟁이가 넘쳐나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그들을 위한’이 아닌, ‘그들도 함께’라는 새로운 제품을 선보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들을 만났다. 일반적인 기업인과 직장인이 아닌, 높은 장애감수성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는 그들의 열린 가슴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제작 생산하는 이원코리아를 소개한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영구전시 되는 시계

이원코리아의 시작점을 확인하기 위해, 창업자인 김형수 대표가 MIT 경영대학원 과정 당시를 회고했던 자료내용을 먼저 요약해서 옮겨본다.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시각장애인 친구가 지금 몇 시냐고 시간을 물었다. 그의 손목에는 투박한 시계가 있었는데도, 지루한 강의가 이어지자 그는 몇 차례나 내게 시간을 물었다. 자신의 시계가 있는데도 묻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그의 시계는 음성으로 시간을 안내하는 토킹워치였고, 강의 중에 자신이 시간을 확인하는 소음을 내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친구를 통해 하나의 의문점을 갖게 됐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제품은 왜 하나같이 못 생기고, 쉽게 고장 나며 볼품이 없는 모양인지를.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시계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유학 시절 한 장애당사자 친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그 기획은 전문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 수많은 장애당사자들의 의견과 검토를 거쳐 세상에 없던 새로운 모양새의 시계를 탄생시켰다. 장애당사자 전용을 비장애인들도 쓴다는 개념이 아닌, 비장애인 전용 시계인데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도 쓸 수 있다는 것도 아닌,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자체를 배제한 전혀 다른 발상의 기획으로 제품개발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가서다 보니, 복잡한 기능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단순한 성능이 우선시됐다. 또한 일시적인 유행에 따르는 감각적인 디자인보다는, 시대와 인종과 지역 모두에게 호감을 얻는 클래식한 외형이 만들어졌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의 자리에는 작은 쇠구슬이 위치한다. 눈으로 볼 수 있으면 한눈에 몇 시 몇 분인지가 확인이 되고, 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손끝으로 만져 쇠구슬의 위치를 확인하면 된다. 뚜껑을 열어 시침과 분침을 직접 손으로 만져야 하는 촉각시계는 고장률이 너무 높다. 음성으로 지원하는 시계 역시 시끄러운 주변 환경에선 단번에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 제품은 손끝으로 만지기만 하면 된다. 봐도 되고 만져도 된다. 결국 장애와 비장애라는 구분이 사라진, 모두를 위한 독특한 시계의 개발로 자리매김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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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코리아 임동준 대표이사

“저희가 가장 자부심을 갖는 건, 저희 제품인 브래들리 타임피스가 영국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시계 컬렉션으로 초대돼서 영구전시를 하게 됐다는 거예요. 십이 세기 시계부터 전시되고 있으니까, 인류의 시계 역사에 브래들리 타임피스가 당당하게 포함된 거죠.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영국 런던 디자인 박물관이 선정한 ‘올해의 디자인(2014)’과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독일 ‘Red Dot Design Award(2016)’와 ‘iF Design Award(2016)’을 비롯한 다수의 유니버설 디자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 2016년 6월까지 독일 에센 지역에 위치한 레드 닷 박물관에서 전시되기도 했죠. 그렇기 때문에 ‘상을 받았다’는 건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저희의 제품 하나하나에 최선의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법인을 운영 중인 창업자 김형수 대표 대신, 한국의 본사는 임동준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고 있다. 이원코리아의 ‘이원’은 ‘Everyone’을 줄인 ‘eone’으로 표기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일반적으로 최상의 형태와 기능을 갖춘 제품을 좋은 디자인이라고 언급하지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산된 대부분의 제품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차별한다. 장애가 구입과 사용, 선택의 구분점이 돼선 안 된다. 누구나 동등하게 사회적인 시스템에 접근해야 하며, 세련되고 아름다운 제품의 사용과 양질의 서비스를 보장받아야 한다. ‘누군가’만을 위한 제품이어선 안 된다. 말 그대로 ‘에브리원(everyone)’이어야 동일한 권리의 삶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 또한 소비자의 한 명이잖아요. 그 관점으로 봐도 이런 제품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우열을 가릴 대상이 없고, 가치를 중요시하는 소비자들한테는 꼭 하나 갖고 싶은 시계로 받아들여진다고 저는 늘 판단합니다. 유니크(unique), 그러니까 유일무이하고 독특하며 훌륭한 제품이 바로 브래들리 타임피스입니다. 생산 공장도 한국에 있으니까 ‘Made in Korea’, 그러니까 품질 역시 확답을 드릴 수 있다는 거죠.”

 

시계의 이름에 담긴 이야기, 그 정신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을 홍보하고 좋게 소개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원코리아의 구성원들은 두드러질 만큼 제품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부러 과장하며 부풀리는 것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긍심은 한눈에도 판별이 가능한 법이다. 이런 자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바로 장애에 대한 진솔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그들만의 남다른 배경이자 출발점이라고 확인된다.

“저는 2016년에 본격적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내용은 김형수 대표를 통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점자시계를 만들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시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를 했는데, 현장의 반응이 너무 안 좋았대요. 실제 점자를 읽는 분들이 극소수였다는 거죠. 시각장애가 없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듯이 일반화시키잖아요.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한테는 점자가 필수이고, 누구나 점자로 정보 확인이 가능할 거라고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게다가 당사자들이 제품의 색상과 디자인을 계속 문의하는 게 의아했대요. ‘안 보이는데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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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 표면에 있는 쇠구슬이 분침이고, 테두리면에 있는 게 시침의 역할을 한다. 자석의 힘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구슬이 빠질 염려가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결정적인 답은 시각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의 요구사항에서 드러났단다. ‘우리는 시각장애인 전용 시계를 원치 않는다’, ‘특수한 형태가 아닌, 그냥 시계다.’ 이런 의견들은 아주 커다란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제품의 첫 기획부터 ‘시각장애인용’, ‘시각장애인을 위한’이란 전제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는 제품의 형태를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제로 절감하게 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렇다면 시계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시계(Watch)가 맞지만, 시침과 분침의 아날로그 방식이나 숫자 중심의 디지털 방식이 아닌 쇠구슬을 이용하기 때문에, 타임피스(Timepiece)라는 별도의 표현을 사용한다. 브래들리는 한 실존인물의 이름에서 들여왔다. 미국 해군장교였던 브래들리 스나이더(Bradley Snyder)는 지난 201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폭탄 제거작업 도중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런데 부상에서 회복한 후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주변 환경과 마주치게 되면서, 그는 목소리 높여 발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애를 장애 자체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사회적인 불평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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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코리아의 정신을 상징하는 브래들리 스나이더가 직접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착용하고, 패럴림픽에서 받은 수영 금메달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이원코리아

실명(失明)에 굴하지 않고 도전한 그는 2012년과 2016년 패럴림픽 수영선수로 연속 출전해서, 세계신기록 수립을 포함한 여러 개의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이원코리아는 자신들의 시계에 담긴 가치를 대변하기에, 브래들리 스나이더가 가장 완벽한 인물이라고 판단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현지에서 김형수 대표가 직접 그를 만나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이원코리아의 제품은 ‘브래들리 타임피스’라는 공식명칭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도 매달 1회 이상 만나며 교류를 이어간다는 김 대표는, 브래들리 스나이더가 말하는 정신을 제품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한다고 밝혀놓았다.

“나는 내가 장애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어둠 속에 둘러싸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 브래들리 스나이더”

 

장애 비장애, 왜 굳이 구분하는가?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티타늄,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등의 외부 재질로 제작되고 지름 40mm의 크기로 통일돼 있다. 왜 모든 제품이 같은 크기일까? 남성용과 여성용이 따로 없단다. 말 그대로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성 중립)이다. 디자인과 색상도 원색의 화려함 보다는, 중후한 품격을 지향하듯 고전적인 형태에 집중한다. 조금 작은 지름의 제품이 현재 준비되고 있고, 별도의 기획으로 탁상시계도 개발되고 있단다. 가장 기대가 되는 건 기업의 다음 목표로 제시된 내용이다. 브래들리 타임피스가 시각장애의 편견을 깨는 게 목표였다면, 다음에는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깰 수 있는 제품과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할 시점이 아니라고 한다.

“제품을 만들고 생산하고 기획하면서, 저희는 꾸준히 장애 비장애가 함께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우게 돼요. 몰랐기에 안 보였던, 몰라서 이해하는 게 힘들었던 모든 게, 함께하면서 풀리고 해결되고 받아들여졌거든요. 물론 아직은 힘든 부분이 훨씬 더 많고 더 열심히 노력하며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해를 하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함께해야 한다는 거죠. 자주 만나고 자주 소통해야 합니다. 직접 만나면 알게 됩니다. 장애 비장애라는 구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 함께하는 것 이상의 정답이 없다는 것, 그걸 독자 여러분도 분명히 깨닫게 되실 겁니다.”

고객들 중에는 브래들리 타임피스에 ‘장애’라는 주제가 담기는 자체가 불편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시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시계 디자인만 잘 만들어 판매하면 되지, 왜 장애 운운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느냐며 편치않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임동준 대표이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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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객님들의 말씀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죠. 그런데 할 수 있잖아요. 제 생각은 사실 그렇거든요. 못할 건 또 뭐가 있죠? 그렇게 불편해하는 정서들이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런 정서들을 아주 서서히 녹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한국뿐 아니라, 저희가 수출하는 모든 나라에서도 보편적인 인식으로 저희들의 정신과 이야기들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요.”

처음 브래들리 타임피스가 개발됐을 때, 가장 먼저 구매의사를 밝힌 건 미국의 시각장애인 전문용품점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지 하나의 장애에 국한된 기획이 아니었기에, 2013년 미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전격 공개했단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철학 그리고 디자인에 열광하는 젊은 층에게 직접 선보인 결과, 목표금액 4만 달러를 6시간 만에 달성하고 60만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을 성공적으로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65개국으로부터 4,400건에 해당되는 선주문을 받으며, 브래들리 타임피스의 보편적 디자인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는 결정적인 순간이 됐다는 의미가 된다.

2018년부터 보조공학기기 사업을 통한 보급도 이루어졌기에, 다소 고가(高價)로 느껴지는 이 제품 구입이 정부지원을 통하는 방법으로도 가능해졌다고 한다. 일상의 거리에서 자신의 제품을 손목에 착용한 이들을 만날 때가 가장 반갑고 고맙다는 임 대표이사, 그는 마무리 인사까지도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의견으로 정리했다.

하나의 시계 생산업체를 만난 게 아니라, 장애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가하고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이원코리아는 ‘사람 사는 세상’을 지향하고 있었다. 대담 이전엔 예상하지 못했던 반가운 만남이었음이 분명한 일이다.

“은근한 사회적 경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의식하지 못하면 의식을 못하는 거고, 의식을 하면 비로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죠. 제 경험으로는 장애와 비장애 서로가 서로의 눈에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더 많은 기회와 자리를 통해서 만나야 합니다. 정말 최고의 방법은 자주 만나고 더 많이 공감하면서, 그 많은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경험을 모두가 직접 해야 한다는 거예요.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통한 이야기들이 그런 만남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소중한 만남으로 모든 인연을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또한 동참하기 위해 저희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작성자채지민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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