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서울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 100일의 기록
본문
2000년대 들어서 본격화된 장애인권운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전국 각지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Independent Living Center, IL센터)가 풀뿌리 민주주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각자 고립된 채 지내야 했던 장애당사자들이 소통의 통로를 갖게 됐고 무엇이 인권인지, 어떤 게 권리인지를 몸소 체득하는 소중한 매개체로써 자립생활센터는 일상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센터가 없는 지역이 적지 않고, 있다 해도 너무 넓은 범위를 관장하다보니 피부에 와 닿는 연계가 부족하다는 현실이 노출되기도 한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만들어지는 의미와 그 시작점의 시행착오를 살펴보기로 했다. 새로운 센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이들에게는 생생한 반면교사이자 생존의 분투기가 될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서울의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그 100일의 성취와 한숨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본다
중심 중에서도 중심, 그러나 너무 열악한
같은 지역 안에 산다 해도, 이웃한 행정구역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직접 확인하게 될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그냥 ‘OO군, OO구, OO시’라는 명칭으로 대강의 규모와 위치를 헤아리곤 하기 때문이다. 이번 취재를 위해 먼저 서울특별시 중구를 검색해 봤다. ‘서울 한가운데’라는 게 그동안 했던 생각의 전부였던 모양이다. 의외로 행정 범위가 넓었다. 소공동·회현동·명동·필동·을지로동 정도의 크기로만 떠올렸었는데, 왼쪽으로는 5호선 애오개역과 가까운 중림동까지, 오른쪽으로는 약수동·청구동·신당동까지 포함된다.
15개 동을 품은 중구 자체의 지리적 환경도 남다르다. 사방이 서울 시내 다른 구와 맞닿아 있다. 12시 방향부터 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용산구·서대문구와 직접 연결돼 있고, 지하철 한두 정거장 거리로 마포구와 성북구도 인접해 있다.
중구의 위상을 달리 표현한다면, 조선 시대의 수도 ‘한양’이 바로 중구와 일치한다. 말 그대로 ‘사대문 안(內)’인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훨씬 이전부터 가장 먼저 발전했고 가장 크게 번성했던 지역이 한양인 중구 지역이다. 한강 이남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던 시절도 그리 먼 얘기는 아니다. 한강 위쪽만 서울이었던 당시까지만 해도 사대문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하지만 중구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수십 년 전 그때 그 건물들이 그대로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 이건 이동권의 문제와 직접 부딪친다. 높은 빌딩만으로 보면 가장 번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불편한 구조물의 환경으로 가득하다는 의미가 된다.
서울시청 인근 한 은행의 입구 모습
이라나 “처음 이 공간을 마련해 빈 사무실의 크기를 측정하고, 파티션(칸막이) 설치를 위해 공사를 담당한 분들과 작업을 했던 날이 있었어요. 작년 9월이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까 점심시간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분위기도 살필 겸 맛집도 찾아볼 겸해서, 식사를 위해 가까운 명동으로 건너갔죠. 저희 센터가 맡게 된 관할 구역 중에선 가장 화려한 곳이잖아요. 대한민국 첫째라는 관광특구이기도 하니, 볼 것과 먹을 것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그게 엄청난 오판이었다는 건, 한 시간 넘게 헤맨 뒤에야 깨닫게 됐어요.”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중구센터)를 책임지게 된 이라나 소장과 김용우 사무국장은 그날의 ‘그 한 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사방에 먹을거리가 가득한데도, 먹고 싶은 메뉴가 줄지어 등장하는데도, 정작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매장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둘러본 골목에서야 출입 가능한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식사를 해결한 뒤, 두 사람은 앞으로 맡게 될 지역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를 절감하게 됐다고 한다. 이동권이라는 인권의 권리 해결이 최우선의 급선무가 돼버린 것이다.
김용우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그럴 때는 차라리 주변에 여럿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전문식당가(푸드코트)를 가는 게 빠르고 실패할 확률도 낮아지더라고요. 명동은 관광특구잖아요. 서울 강북의 최고 번화가이기도 한데, 그런데도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 제약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데에 저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라나 “전문매장인 푸드코트를 찾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는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을 때인 거고, 먹고 싶은 걸 언제든지 길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도 중요하잖아요.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이 올라가거나 지하로 내려가는 과정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남들처럼 원하는 선택을 거리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중구라는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 중구센터의 크나큰 과제가 무엇인지, 그걸 개소식도 하기 전에 절감하게 됐던 것 같아요.”
중구센터 주변 상가들의 입구 모습.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계단과 턱으로 막혀 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그래도 답은 있다
중구센터는 2020년 9월 회현동에 자리를 잡고, 11월 19일 개소식과 함께 정식 출범했다. 여느 개소식과 마찬가지로 축하 손님들로 북적북적했던 그 날, 가장 인상 깊게 남겨졌던 장면은 손수 만들었다는 떡을 들고 찾아온 인근 동자동 쪽방촌 어르신들의 방문이었다. 그들의 방문과 개소식 환영은 중구센터의 활동 범위가 ‘장애’에 국한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동자동이 어디인지, 어느 선까지가 중구이고 어디부터 용산구나 서대문구 영역이라는 구분 자체가 불필요할 만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은 연대의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소속 활동가 모두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이라나 “서울 중구는 ‘서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랜드마크(한 지역을 대표하거나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지형이나 시설물)가 가장 많다는 걸 잘 아실 거예요. 서울시청이 있고 남대문, 남대문시장, 명동, 남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까지 중구에 속해 있죠. 지금은 이전한 데가 많지만, 여전히 언론사와 기업 본사와 주요 관공서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해요. 그런데 중구는 지역 자체가 거주보다는, 업무와 상권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래서 실제 거주하는 지역 내 장애당사자분들과의 관계도, 다른 지역센터들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김용우 “중구 내 거주하는 장애당사자는 5천7백 명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고령장애인 인구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게 다른 점이에요. 외부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경증장애를 가진 분들 중심이라서, 쪽방촌과 같은 사각지대에 고립된 중증장애의 당사자분들이 얼마나 많이 계신지를 확인하는 게 시급한 과제입니다. 또한 서울역 중심으로 노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도 알코올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장애와 개별적인 장애를 가진 분들도 적지 않을 거라고 예상되기에, 저희들의 활동 방향성 설정에도 보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센터 활동 경험이 아무리 오래됐다고 해도, 자체적으로 움직이던 센터와 신생 센터의 생리가 똑같을 순 없다. 한 센터의 대표가 다른 센터를 다시 맡는 게 아니라면, 활동가 출신으로 독립하는 과정은 남다른 시행착오의 연속일 게 분명하다. 이 글에 관심을 가질 독자들이 확인하고 싶은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일 테니까 말이다.
이라나 “운영에 대한 고민이죠. 가장 기본적인 비용의 문제일 텐데, 센터 설립의 시점을 잘못 택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커요. 후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운영비의 지원은 사실상 지자체의 예산이잖아요.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 조직이라는 걸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너무 애매한 시점에 센터 운영이 시작됐어요. 9월은 이미 지자체의 다음 연도 본예산이 거의 다 편성되고 확정돼 있는 시기니까요.”
김용우 “현실적인 어려움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것들이고,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등장하는 난관 앞에선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긍정적인 면을 계속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반복합니다. 장애인권운동계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끼리 공유하는 보편적인 표현이 있죠. 그냥 하나의 활동가로 일할 때는 자신이 맡은 업무만 잘하면 되는데, 그게 일정 기간이 지나다 보면 일하는 기계로 전락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럴 상황에서 장애계를 떠나는 이들도 생겨나게 되니, 일하는 기계라는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입장을 바꿔야 할 계기가 필요하기도 해요. 아직 제대로 익숙해지진 않았지만, 저한테는 관리자의 역할에서 장애인권운동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상황의 변화가 하나의 도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자가 됐다는 건 같은 일, 같은 활동의 연속일 수가 없다. 뚫어야 할 대상부터 달라진다.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외치는 건 다른 상황과 장소에서의 일이다. 해당 시장과 시청을 향해, 해당 구청장을 향해, 해당 구청 담당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회 안의 국회의원들도 대상이 되겠지만, 우선 시의원과 구의원들과 대화의 채널을 갖춰야 한다.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대안을 제시하고 될 때까지 계속 연계해야 한다. 불끈 쥔 주먹으로 구호부터 외치던 마음만으론 해결될 게 없다. 자존심 또한 절반 정도는 접어놓아야 한다. 그게 바뀐 명함과 직함의 무게감이 되는 것이다.
김용우 “저희가 직접 겪었던 상황이니까, 새로운 자립생활센터를 설계하는 전국 각지의 활동가분들이 계신다면 이 말씀은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확실한 선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선배라는 게 기존의 센터 소장일 수도 있고, 지역 단위에서 투쟁력을 인정받는 어느 인물일 수도 있겠죠. 앞서서 운동을 했던 그 선배들의 전략과 노하우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초반부터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지원을 끌어냈는지, 어떻게 사업 제안을 했는지, 그게 막혔을 때는 어떻게 새로 해야 했는지, 어떤 공문을 어떻게 넣고 어떻게 실무회담을 진행해야 하는지, 최소한 어디까지는 관철시켜야 하는지를 아는 건 먼저 이 길을 헤쳐 왔던 선배들입니다. 전국의 선배님들한테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후배들을 이끌어주세요. 그것이 선배님들이 자신의 인생을 내걸었던 이 인권운동의 결실을 맺게 만드는 마무리가 되는 겁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자!
가만히 있으면 할 일이 잘 안 보이는데, 직접 움직이다 보면 모든 게 해야 할 일들이 된다. 더욱이 한 지역을 책임지겠다는 자립생활센터라면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다. 7곳이든 14곳이든 구역 내의 모든 주민센터와의 접촉과 소통은 한 달 내내 이어져야 한다. 직접 방문과 전화 통화, 함께 움직이며 확인하는 현장 방문도 하루하루 일과 안에 포함돼 있어야 한다.
이라나 “개소식 때 축하의 발언을 해주신 어느 분께서, 중구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데가 거의 없다는 개인 경험을 말씀해 주셨어요. 새로 단장한 매장에 들어간다 해도, 주문은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로 해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는 위쪽에 있는 메뉴조차 누를(고를)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거죠. 그 분의 지적처럼 이 세상이 훨씬 더 편리하게 변해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모든 건 철저하게 비장애의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저희는 이 눈높이부터 바꾸고 싶어요. 최소한 중구센터가 활동하고 난 다음부터는, 뭔가가 실제 변하고 있다는 실감과 공감대를 거리에서부터 확인시켜 드리고 싶다는 거예요.”
김용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구 안에는 주요 기관들이 많은데 대부분 다 공공기관이잖아요. 모두 편의증진법의 법적 구속을 강하게 받는 곳들이니까, 저희는 이동권의 편의 중심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개선의 요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가장 필요한 곳이 이 지역이에요. 매장 입구의 경사로 설치를 휠체어 이용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실제로 이십여 년 동안 지속해 온 이동권 투쟁으로 거의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는데, 그 이용자의 대부분은 어르신들이나 짐이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장애인만을’ 위한 게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이동에 편의가 필요한 모든 이들이 그 혜택을 나눠 갖는다는 거, 거기에 ‘장애인 먼저’라는 인식개선이 분명하게 더해져야 할 일입니다.”
중구센터의 활동이 실제 결실을 보게 된다면, 이런 소식이 센터로 전해지지 않을까? “집 앞길 건너편에 30년 전통의 맛집으로 유명한 중화요리집이 있는데, 여기에 살게 된 지 24년 만에 그 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중구센터 덕분에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던 여러 맛집들을 전부 다 들어갈 수 있게 됐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가장 큰 감동은 엄청난 규모의 지각변동이 아닌, 똑같은 틀에 갇혀 있던 일상의 소소한 변화에서 찾아드는 법이다. 30년 전통의 중화요리집, 3대째 이어진다는 어느 한식집, 동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인근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 그 모든 곳에 ‘나 자신’도 손님이 될 수 있다는 일상의 큰 변화만큼 살맛나는 일이 또 몇 가지가 더 있을까?
이라나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느꼈던 답답하던 부분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끊임없이 경계했던 지점들을 절대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고 싶어요. 한 조직의 대표가 된다는 결정이 난 이후, 제가 첫 번째로 다짐했던 게 ‘소통을 참 잘해야겠다’였어요. 뭔가 큰 사업을 잘하는 대표도 많이 있겠지만, 저는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모든 활동가들과 소통이 가능한 책임자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앞세우게 돼요. 그건 생각만 해선 절대 실천이 안 되는 영역이기도 하잖아요. 계속 노력해야 돼요. 매번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지금 이 순간에도 되새기고 있습니다.”
김용우 “운동의 전략, 그 기본은 ‘새로움의 추구와 실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오랜 이동권 투쟁 같은 지난한 투쟁의 결과들, 그건 자립생활센터의 보편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의 정착이 됐잖아요. 이젠 또 다른 새로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걸 세상 차원이 아닌, 이 지역을 책임지겠다는 이 작은 센터 내부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봐요. 저희는 운동조직이잖아요. 일반회사나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단체가 아니라 운동의 참다운 실천을 위한 조직인데, 어느 순간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냥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조직 안에 매몰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봐 왔던 것 같아요. 조직을 살리기 위해 조직 중심으로만 굴러가는 건 ‘그 조직이 왜 있는가?’를 망각하는 순간부터 붕괴되는, 스스로도 언제부터 붕괴됐는지도 모를 함정이 존재한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건 자기들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으니까요. 저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 바로 그 지점임을 끝까지 명심하겠습니다.”
이라나 “전적으로 동감 되는 말씀이에요. 운동성을 잃어버리면 ‘조직을 위한 조직’이 돼버려요. 이미 우리는 숱하게 봐 왔잖아요. 그런데 그 조직 내부에서만 그 ‘붕괴의 이유’를 모른다는 거죠.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만들어지면, 그건 곧장 권위체계의 등장으로 이어져요. 위에 있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모든 걸 만들려 하고, 그 결과 구태의연한 소통의 부재와 수직적인 위계질서만 남겨지게 되죠. 불필요한 서류결재만 늘어나서, 활동가들의 활동성을 의욕저하로 제약시킵니다. 강제하는 거죠. 결국 실제 현장과 현장성은 사라지고, 비효율뿐인 사무실 같은 행정절차만 남겨지게 된다는 거예요. 저는 그 불합리성을 가장 크게 경계합니다.”
중구센터가 문을 열던 날, 축하의 마음으로 찾아든 이들은 사무실 벽 한쪽에 세워져 있던 작은 액자의 문구에 모두 감탄했다. 너무 멋진 말이고 아주 큰 의미를 담고 있다며,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그 문구의 내용을 주고받았다. 그 한마디가 중구센터의 가치와 지향점을 무언중에 규정지어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머무름 없는 도전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기를, 그런 과정에서도 센터 설립의 초심은 절대 잃지 않기를 바라며 그 문구 한마디를 마지막 다짐으로, 격려로 새겨놓는다. 5년 뒤, 10년 뒤에도 그 한마디를 잃지 않았다는 센터활동가들의 내부 평가와 환호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라나 소장(왼쪽)과 김용우 사무국장
작성자채지민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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