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 함께 사는 세상


갈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갈등문제연구소

본문

 
 
 
갈등은 칡 갈(葛) 자와 등나무 등(藤) 자로 이루어진 한자어다.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는 칡과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는 등나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얽힌 두 덩굴이 바로 ‘갈등’이다. 두 덩굴 이 조화를 이루면 견고함이 되지만, 그 질서가 흐트러지는 순간 문제가 된다. 이념·지역·계층·집단·세대·젠더 등 갈등의 양상이 더 다양하고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국가공인 갈등관리 연구기관인 <갈등문제연구소> 박철곤 소장을 만나 갈등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평생을 공직에 종사하며 보좌한 국무총리만 25명. 그의 일은 국가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일이었다. 한국사회로 편입된 외국인 근로자가 사람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데 힘쓰고,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정책의 근간인 ‘제2차 장애인복지 발전 5개년계획’을 주도적으로 꾸렸다. 사회적 문제를 제도화하고 여러 부처 간, 당사자 간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일. 일종의 ‘갈등관리’인 셈이다.
 
박철곤 “총리실에서 주로 했던 일이 갈등조정이에요. 공공문제와 관련한 사회갈등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남북 갈등, 정치적 이념갈등, 지역갈등…. 나열할 수도 없는 갈등이 혼재되고 뒤섞여 있죠. 하지만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지나친 갈등은 해가 되지만, 갈등을 조율하며 각자에게 더 이득이 되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공직 생활을 마치고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교내 맨파워(인력)를 활용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갈등의 폐단을 줄이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방안이 없겠느냐”는 학교 측의 제의를 받고 갈등문제연구 소를 설립했다. 갈등문제연구소는 갈등해결을 조직화하고 전문화한 기관이다. 갈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물론 갈등현장에서 갈등해결을 조력하며 실천적 활동을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박 소장은 그중에서도 연구소의 주력 사업인 ‘갈등관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박철곤 “우리 사회에 갈등이 빈번해지고 심화되고 있는 것에 반해 갈등해결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갈등해결은 자기 ‘성의껏’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하죠. 갈등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진 전문가가 이 사회에 많아질수록 사회적 갈등이 적어질 수 있어요.”
 
그는 갈등을 ‘사람 사이 관계에 생긴 병’이라 정의한다. 몸에 병이 나면 의사한테 가서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듯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갈등전문가가 그 문제를 진단하고 조력할 때 갈등은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다. 연구소가 교육에 주안점을 두는 이유도 그만큼 우리 사회에 갈등관리에 대한 전문 역량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철곤 “예전에 TV 예능 중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가족 사이 대화가 단절된 것을 표현한 것인데, 현대사회의 갈등은 대화 부족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말은 예전보다 훨씬 많이 오고 가죠. ‘대화’가 아닌 그냥 ‘말’만 많이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대화능력의 부재’, ‘대화방법의 착오’가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겁니다.”
 
박 소장은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테이블 위에 숫자 ‘6’이 적힌 종이가 있다. 내가 볼 땐 이 숫자는 ‘6’이 분명하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에겐 그것이 ‘9’로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6’이든 ‘9’든 둘 다 정답이 될 수 있는데, 서로의 다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 갈등은 시작된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라는 수단에 갇혀 뜻하지 않은 갈등상황에 놓일 수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에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자리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다. 멀리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낸다. “여기 자리 있어요?” “예.” 앉아야 할까? 앉지 말아야 할까? 갈등은 이렇게 시작된다. 상대방의 ‘예(이미 다른 사람의 자리예요.)’와 내가 받아들인 ‘예(당신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피할 수 없으면 직면해보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갈등을 즐길 것까지야 없지만 갈등문제연구소와 함께 갈등을 직면해보기로 했다. 박 소장에게 몇 가지 갈등사례를 상담해봤다.
 
[ 사례 1 ]
기자가 직접 겪었던 지하철 내 승객 간 소란
지하철 안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넘쳤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두가 몸을 부대끼며 가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던 남성에게 발달장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비좁은 환경이 그에게 자극이 되었을까? 엄마와의 통화를 끝낸 그는 느닷없이 옆에 있던 승객의 어깨를 두 번이나 가격했다. ‘퍽퍽’ 큰 소리가 났고 모두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가장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승객은 상황 파악이 되자 이내 표정을 일그러트렸고 이번엔 그 승객이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 XXXX가". 한 정거장을 이동하는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박철곤  “우리 사회가 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복지제도의 발전보다도 그 인식이 못 따라가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급작스럽게 피해를 입은 그 승객에게 ‘이 분이 장애인이니 무조건 참으세요’라고 할 것 까진 없죠. 장애인들도 그런 특별대우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용기’는 조금 가져야 될 부분입니다. 아마 주변 모두가 같은 갈등을 품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못했을 거예요.
 
[ 사례 2 ]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해 12월부터 평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권리예산 확보를 위한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휠체어 바퀴를 넣거나 반복적으로 타고 내리는 방법으로 열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지하철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출근길 시민들, 그리고 장애인 단체 사이에서도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있다.
 
박철곤 “아무리 그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수용되기 어려운 방식이라면 뜻하는 바가 잘 전달되지 않는 부작용이 생겨요. 장애인들 역시 내 주장은 하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내 주장의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선에서 방법을 채택해야 해요. 싸울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인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가 필요한 거죠.”
 
‘6과 9’의 이야기처럼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주장해야 완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다수는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우리 사회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장애인들도 출근길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갈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박 소장은 결국 ‘사회적 성숙도’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복지정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사회 문제를 성숙한 시민의식이 사회적 보호장치가 되어 그 틈을 촘촘히 메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갈등을 다루는 시민의 인식이 한 단계 성숙해질 때 똑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갈등해결 전문가인 그는 자신의 갈등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 갈등문제연구소 박철곤 소장
 
 
 
박철곤 “제가 갈등을 몇 가지 가지고 있을 것 같으세요? 갈등은 매일 있죠. 저도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갈등이 있어요. 핵심은 갈등의 유무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에 있습니다.”
 
박 소장은 그 비책에 대해 ‘What’이 아닌 ‘Why’에 집중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겉으로 말하는 바와 속으로 바라는바’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난 괜찮아’이다. 활용형으로 ‘아 괜찮습니다. 배가 불러서요.’가 자매품으로 노인의 ‘빨리 죽고 싶다’와 장사꾼의 ‘밑지고 판다’가 있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What)인지에 집중하기보다 왜(Why) 저런 말을 하는지에 더 집중하면 오해가 생길 일도 없다. 갈등관리의 핵심은 ‘너나 나나’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이기는 것이 아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절충안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틀리다
박철곤 “개시개비(皆是皆非)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각자 생각하는 것은 다 옳을 수 있어도 전체를 생각하면 그것이 꼭 정답 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죠.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이에요. 선택에는 늘 갈등이 따르죠. 그렇기에 우리 모두 가 갈등을 어떻게 다루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를 알아 야합니다.”
 
서로 다른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개인 간, 집단 간 갈등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 삶에 등장한다. 삶의 양태가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도 다변화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갈등 속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갈등이 내 삶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갈등을 이해하고 다뤄가는 힘이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순간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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