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희망을 피워내는 사람들 이야기 > 함께 사는 세상


꽃으로 희망을 피워내는 사람들 이야기

크멋자이언트플라워

본문

 
 
 <함께걸음> 1, 2월호는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특집으로 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민주주의의 ‘꽃’을 선거라고 하죠. ‘어떤 것의 꽃이다’라는 표현은 무엇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거나 중요한 것을 의미하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 ‘크고 멋진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농인들이 함께 모여 에바폼(방수복)소재의 친환경적인 공간 장식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예비사회적기업 ‘크멋자이언트플라워’입니다. 그들이 이 사회에 피워내고 있는 꽃은 무엇일까요? <함께걸음>이 만나봤습니다.
 
‘아! 저기구나.’ 평범한 골목길 사이 건물 외벽에 장식된 대형 꽃들이 시선을 끈다. 한눈에 봐도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꽃장식이 존재감을 뽐내는 이곳은 이번 인터뷰가 진행될 ‘크멋자이언트플라워’ 사무실이다. 이곳은 홈데코, 파티, 행사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실내외 고급장식품을 제작하는 업체다.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이하 코다) 송지은 대표와 6명의 농인 최소영, 박경은, 이재숙, 최민석, 김주연, 김민영이 함께 키워가고 있는 신생 기업이기도 하다. 어떤 계기로 그들은 이곳에 모이게 되었을까? 대표와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눠봤다.
 
“저에게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온다면, 장애인을 위해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크멋자이언트플라워(이하 크멋) 송지은 대표는 김남주, 지진희 등 유명 연예인들의 돌잔치를 맡아서 진행할 만큼 잘나가던 이벤트 회사를 운영한 이력이 있다. 그러던 그녀가 왜 다시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어떻게 농인 직원들과 함께 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송지은 “이 회사를 창업하기 전에는 제가 이벤트 회사를 운영했었어요. 그때는 1등 기업을 목표로 돈을 쫓아 열심히 일했죠(웃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경단(경력단절)녀가 된 거죠. 조산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 일로 재활센터에 자주 다녔는데, 그곳에 계신 부모님들이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도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공감이 되었죠.”
 
송 대표의 아버지는 목공예 기술자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향나무로 만든 독수리 조각품의 눈, 발톱의 섬세함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송지은 “아버지도 창업했었는데, 빨리 접었죠. 수입이 없어서. 아버지하고 같이 다니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물건 파는 것을 통역하고 다녔어요. 지금 보면 이런 것들이 다 훈련이었나 싶어요(웃음). 농인들이 어떤 기술을 배울 때 옆에서 누군가 조금만 이야기하고 가르쳐주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이 늘 아쉬웠어요. 내가 가진 기술을 장애인들에게, 특히 농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미국에 사는 친언니가 한국에 와서 페이퍼 플라워를 가르쳐 주고 갔어요. 시기적으로 잘 맞물려 지금의 회사가 나오게 된 것 같아요.”
 
크멋은 대표 혼자 이끌어 가는 기업이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직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김주연 “대표님과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 동생 사이예요. 이 회사가 개업할 때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죠. 장애인 일자리 창출 기업이라는 점에서 너무 좋았어요. 농인들은 재능이 많은데, 살면서 자신도 어떤 재능이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다른 농인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죠.”
 
박경은 “1년 전 김주연 선생님 소개로 와서 일하게 되었어요. 예전에 생화를 배웠던 적이 있는데, 그 기술을 버리기 아까워 이곳에 왔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는 다른 공장에서 일도 해봤어요. 농인이라는 이유로 단순 노동만 해야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 와서 지금의 나이에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고, 평생에 한 번이라도 전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뻐요.”
 
김민영 “밤에 동네 산책을 하다가 길에서 꽃 조형물을 봤어요. ‘너무 이쁘다’라고 생각했고 처음에는 농인들이 만든 꽃인지도 몰랐어요. 시간이 흘러 우연히 꽃 박람회에 갔다가 어떤 부스에서 저번에 길에서 봤던 꽃이 있는 걸 봤어요. ‘그 꽃인가?’ 호기심이 들어 부스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대표님과 처음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야기하던 중 자이언트 플라워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단어가 약해서 글을 읽고 쓰는 시험은 치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그동안 포기도 많이 했고 실망도 많았어요. 그런데, 수어를 통해서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해서 도전하게 되었죠. 처음 딴 자격증이라 너무 기뻤어요. 제가 우울증이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자존감도 많이 높아지고 우울증도 좋아지고 있어요. 같은 농인끼리 만나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더라고요.”
 
 
일을 시작할 때 걱정되거나 망설여졌던 부분은 없었나?
이재숙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안 해 봤어요. 난 무조건 YES. 농인은 창업이 쉽지 않은데, 대표님이 코다로서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보기 좋았어요. 농인들은 사회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직원들이 다 같은 장애가 있다 보니 서로 도우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물론 제작하면서 어려운 점은 많았지만, 또 만들고 계속 연습하면서 용기가 더 생겼어요. 혼자 하기엔 어렵지만 다 같이 상의하면서 함께 하니까 버틸 수 있었고 그 단계를 이겨낼 수 있었어요.”
 
최근 크멋에 좋은 소식이 생겼다. 2021년 12월 15일자로 대구시 예비사회적기업에 선정된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것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아이템으로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승인받기 어렵다는 충고 아닌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여러 심사를 거치면서 장애인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방향성이 명확하다는 평을 들었다.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뒤로 전화가 많이 와요.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물론 어렵지만, 마음이 진실하면 잘될 수 있어요.” 송지은 대표는 크멋을 통해 농인들이 이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전해줄 수 있어서 더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전했다.
 
회사 내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꽃 제작은 전적으로 직원들이 담당한다. 대표는 밖에서 홍보하고 서류 작업하고 설치 등과 관련된 일을 한다. 최소영, 박경은, 이재숙은 꽃 디자인 개발 및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세 사람은 모두 50을 넘긴 나이다. 최민석, 김주연, 김민영은 유튜브 영상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에 막내로 입사한 최민석 군은 편집과 관련된 컴퓨터를 잘 다루는 인재다. 농인에게는 어떤 것을 교육하는 영상이 전무하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사업 초창기 때부터 수어로 꽃 만드는 법과 꽃 공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을 제작해 올렸다. “업무를 나눠서 다 같이 일했기 때문에 1년 반 만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내가 만약 꽃만 같이 만들고 있었더라면 계속 힘들었을 것 같아요.”라고 송지은 대표는 전했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들은 비장애인을 위한 창업 지원이나 교육은 많지만, 농인을 위한 사업 설명이나 수어로 된 안내에 대한 부재를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창업에 대한 지원, 안내, 관련 서류 등 모든 것이 문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인도 글은 볼 수 있으므로 문서를 통한 내용 전달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인들은 수어를 주 언어로 쓰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문해력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창업과 관련된 전문적이고 딱딱한 서류들을 비장애인이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른다.
 
송지은 “비장애인들도 창업하는 데 한계가 많죠. 저 역시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할 때마다 ‘도대체 장애인은 어떻게 창업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평생 다른 사람 밑에서 단순 노동만 하면서 고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농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장애 때문에 꿈만 꾸다가 쉽게 포기하곤 해요. 그냥 단순한 일, 단순한 노동만 하다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뭘 잘하는지도 모른다는 점이 참 안타까워요.”
 
김주연 “관공서 업무를 볼 때도 수어통역사가 없어서 곤란한 적이 많아요. 잠깐 볼일을 보기 위해서 통역사를 부르기도 참 난감하죠. 센터마다 수어통역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권리임에도 오랫동안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미나처럼 관련 교육을 배우고 싶은데, 소통할 방법이 없어요. 비장애인은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이 많은데 농인을 위한 교육은 없죠. 이와 같은 일이 전국에서 반복되고 있어요. ‘한 사람을 위해서 수어 통역사를 불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농인 당사자가 나서서 부끄럽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감 있게 교육받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인식개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크멋은 체험 수업을 위한 출장 업무도 간다. 직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업무이기도 하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은 ‘장애인은 항상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회적 편견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이다. 송 대표는 기업이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고 찾아주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김민영 “장애인을 처음 봤을 땐 낯설 수 있어요.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한테 자이언트 플라워 만들기를 가르쳐주고 있죠. 처음에는 아이들도 낯설어하고 눈치를 봤었어요. 함께 꽃을 만들면서 저희와 손으로 이야기도 나누고 자연스럽게 스킨십도 하게 되니까 이제는 눈빛으로도 대화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농인들과 소통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아가게 되더라고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비장애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소통하는 것을 보면서 ‘할 수 있네?’라는 생각이 생긴다면,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장애인을 만났을 때 먼저 용기 있게 다가가서 함께 할 수 있겠죠. 그 계기를 저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기를
송지은 “창업은 혼자서도 하고 같이도 할 수 있지만, 크멋이 샘플링되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멋진 기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꼭 여기에 같이 있는다고 성장하는 게 아니에요. 직원들이 모두 이곳을 발판 삼아서 좋은 방법으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과연 장애인은 고용되어야만 하는 사람일까요? 손재주만 있다면 장애인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이 이곳에서 많이 배워서 사장이 되고 또 다른 장애인을 고용해서 스스로 돈을 벌고 그러는 것이 우리 기업의 최종 지향점이에요.”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는 장애인과의 ‘동반성장’
장애인은 돕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동반성장’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을 코다 및 후세대와의 ‘동반성장’
 
크멋을 통해 그들은 농인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피워내고 있었다.
작성자이은지 기자  lonely_lo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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