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이 수용될 수 있는 모두의 공간 > 함께 사는 세상


‘나’다움이 수용될 수 있는 모두의 공간

시끄러운 도서관

본문

 
독서와 학습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식 전달이라는 권위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일까? 책 속의 세상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지만, 아이들이 책을 읽는 공간은 대개 그렇지 않다. 많은 공공장소 중에서도 유독 도서관은 정숙과 침묵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몹시도 예민하다. 도서관이라는 공적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적 영역을 만든다. 때때로 타인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 몹시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한, 그러한 예민함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오히려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생각해보면 도서관도 여느 공공장소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공장소라는 특성상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서로에 대한 불평과 불만보다는 이해와 배려가 우선되어야 할 공간이다. 이상하게도 도서관이란 공간에서만큼은 그것이 참 어렵다. 이러한 점은 발달장애인에게 ‘도서관은 이용하기 어려운 공간이다’라는 벽을 세우게 만든다. 편견이 없는 책 속의 세상과 달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왜 도서관은 조용해야만 하는 공간일까?’라는 의문에 ‘시끄러운 도서관’이 답했다. 2015년에 제정된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발달장애인이 영화, 전시, 박물관 및 국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최하는 각종 행사를 관람하고 참여하며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서울시는 발달장애인과 경계성 지능으로 인해 도서관 이용과 기존의 자료로는 정보 접근에 곤란을 느끼는 느린 학습자를 위해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을 추진했다. 찾아가는 도서관 서비스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에게 ‘나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긴 것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소리를 내서 책을 읽어도 괜찮다.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아동도 자신들에게 더 편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반가운 손님은 어느새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실제 현실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습은 어떨까?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시끄러운 도서관 수행 도서관은 마포구(마포중앙도서관, 마포구립서강도서관, 마포푸르메어린이도서관), 송파구(송파글마루도서관), 은평구(은평구립도서관, 구립증산정보도서관, 구립은평뉴타운도서관)에 있으며, 이 외에도 피치마켓 시끄러운 도서관, 구로구 시끄러운 도서관이 있다. 현재 도서관 대부분이 코로나19로 인해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을 잠정 중단한 상태이다. 구로구, 은평구, 피치마켓에서 운영하는 시끄러운 도서관을 제외하고 다른 도서관들은 별도의 물리적 공간을 따로 마련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도서관 시설 내에서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을 협조적으로 진행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도서관 내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환경 마련, 참여 프로그램, 자료협의체 구성 등 발달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환경 분위기 조성을 위한 캠페인식 사업이었다. 별도의 시설이 마련된 피치마켓, 은평구립도서관은 현재 시설확장 공사로 인해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재개관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현재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구로구에서 운영하는 시끄러운 도서관이 유일하다.
 
 
구로구 시끄러운 도서관 방문기
 
구로구 시끄러운 도서관을 취재하러 가던 중 우연히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비장애인 어린이와 동행하게 되었다. 대화 속에서 비장애인 아동에게도 시끄러운 도서관은 ‘가보고 싶은 곳, 궁금한 곳’이라는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첫 생각은 ‘생각보다 적막한데?’ 였다. 도서관 한편에서는 이미 이곳이 익숙한 듯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가 선생님과 함께 실뜨기 책을 보며 실뜨기를 배우고 있었다. 아마 정숙을 유지해야 하는 일반 도서관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놀이다. 조용한 도서관 환경에 익숙해진 나조차도 낯선 공간에 처음 오니 쭈뼛쭈뼛 눈치를 보게 되었다. 오늘 이곳을 처음 방문한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도서관 관장님이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곳은 시끄러워도 되는 도서관이니 마음껏 책도 보고 편하게 있으라는 말을 전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책을 가져와 읽기만 하더니 이내 뛰어다니기도 하고 장난감을 만지며 놀기도 했다. 넓어진 행동반경만큼이나 아이의 얼굴엔 편안함과 미소가 가득했다. 도서관 내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소음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도서관 어디에도 발달장애인 아동을 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홍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는 도서관이 위치한 복지관에서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공사 당시부터 알고 있었어요. 장애에 대한 편견은 없었고 오히려 저희 아이의 방문으로 인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해질까 봐 걱정되는 건 있었어요.”
 
비장애아동과 함께 온 학부모들을 즉석에서 인터뷰해봤다. 비장애아동에게도 시끄러운 도서관은 필요한 공간이었다. 일정 나이대가 지나면 읽지 않는 감각 동화책을 집에 따로 갖추지 않고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학부모가 생각하는 장점이었다. 해당 학부모의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다. 일반 도서관에서 고학년 형들에게 시끄럽다고 몇 번 혼이 난 적 있는데 그 이후로 일반 도서관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도서관이 실내 놀이터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린이 도서관만큼은 다소 소란스럽더라도 놀이터를 닮은 활기찬 공간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아이들의 돌발행동이나 울고 웃는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있는 그대로 수용될 수 있는 공간이 장애 여부를 떠나 모든 아이에게 필요해 보였다.
 
 
왜 장애아동을 찾아볼 수 없었을까?
 
발달장애아동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시끄러운 도서관은 개관 전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천국을 본 듯한’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러나 그러한 천국에 왜 우리 아이들은 있을 수 없었을까? 발달장애아동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이자 시끄러운 도서관 이용 경험이 있는 이용자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방문 이유는 궁금함이 제일 컸죠. 아이가 글씨를 읽는 것이 아직 익숙지 않아서 책을 읽어주는데, 일반 도서관에서는 그러지 못하니까 주로 책을 빌려와서 집에서 읽어줬어요. 시끄러운 도서관은 그 자리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집 앞이었으면 자주 갔을 것 같아요. 취지 자체가 좋은 만큼 일반 도서관에도 그런 분위기가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어요. 꼭 장애아동이 아니더라도 비장애아동도 그런 공간을 좋아하니까.”
 
그녀는 도서관의 취지나 시설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끄러운 도서관 방문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났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공간마저도 우리 아이의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학임에도 장애아동은 많지 않았고 비장애아이들은 아직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편한 공간에 방해꾼이 와서 시끄럽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마’, ‘안돼’, ‘시끄러워’ 이런 소리가 자꾸 들리니까 ‘이런 부딪힘을 계속 겪으려고 이러한 공간을 만들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것을 중재하거나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교육이나 매뉴얼도 없었고 부모끼리 얼굴을 붉히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았어요.”
 
발달장애인의 공공도서관 이용 요구는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서비스 이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장애인 이용자를 위한 도서관 홍보 서비스도 거의 없을뿐더러 장애인 이용자의 요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시선은 공공장소의 이용에 심리적 위축과 부담을 많이 느끼게 한다. 장애인 이용객이 더 이상 도서관의 ‘변수’가 아닌 또 다른 이용객으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그곳을 방문하는 모두의 인식이 변화될 필요가 있다. 내 공간과 타인의 공간이 만나는 장소가 바로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단지 소리가 나오는 책이 갖춰져 있다고 해서 그곳이 시끄러운 도서관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간의 공간 침범이 자연스러운, 침범당해도 ‘괜찮은’ 도서관이 될 수 있어야 진짜 시끄러운 도서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시끄러운 도서관이 책을 매개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함께 소통해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그러한 공간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이용자들이 시끄러운 도서관에 바라는 점
 
도서관 내 장애인식개선 관련 수업
교육 연계를 통한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의 자연스러운 만남
발달장애아동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별도의 공간 마련
연령대에 맞는 도서 및 프로그램 활동
도서관 방문자를 대상으로 이용 안내 책자 제공
아이들 사이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직원 교육
장애아동을 위한 도서관 견학
장애아동의 장기적인 도서관 이용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마련
창의적인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의 장난감
주변 특수학교와의 체험 연계를 통한 장애아동의 이용률 증가
 
 
작성자이은지 기자  lonely_lo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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