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무대 위로, '힘빼고컴퍼니'
함께 사는 세상
본문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이 배우로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소재라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배우들의 도전적인 연기로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적지 않아. ‘저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하지…,’하는 무력감이 들기도 하고, ‘아니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장애를 저렇게 다루나’ 싶은 장면에 화가 치밀 때도 있다.
‘과연 지금의 문화예술들은 진짜 당사자의 삶을 담고 있는 걸까?’
시각장애인 예술창작단체 ‘힘빼고컴퍼니’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했다. 장애를 미화하거나 한계 짓고, 때로는 대상화하는 기존 예술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그 이름처럼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하자’는 목표 아래 2년 전 설립되었다.
중도로 시각장애가 생긴 두 사람
미래의 안마사가 될 이들에게 영향 주고파
힘빼고컴퍼니는 시각장애 예술가 이성수 씨와 장근영 씨가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이 대표는 군대 시절 녹내장으로, 장 대표는 망막색소변성증(RP)으로 시력을 잃었다. 둘은 시력을 잃고 새로운 길을 찾고자 30대 초반 맹학교에 입학해 안마를 배웠다.
안마사는 의료법상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유보 직종이다. 지금도 장근영 대표는 기업의 헬스키퍼로 근무하며 낮에는 안마사, 밤에는 예술가로 살아간다. 이성수 대표도 안마사로서 일을 하다, 3년 전 힘빼고컴퍼니의 일에 집중하고자 그만두었다.
힘빼고컴퍼니의 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연극’이다. 2025년에는 저시력자의 삶을 다룬 <컨셔스 연극 ‘ㅈ’>을 선보였고, 2024년에는 <도깨비 안마사>, <국가공인 안마사> 등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힘빼고컴퍼니의 연극에는 ‘안마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많다. <도깨비 안마사>는 전생에 안마의 고수였던 도깨비가 지상 세계의 게으른 안마사들을 혼내주는 스토리이고, <국가공인 안마사>에서는 저시력 안마사 세 명이 주변의 비장애인들과 부딪히며 겪는 갈등과 관계를 그렸다. <안마의 세계>는 시각장애인 안마의 역사를 연극으로 풀어냈다.
힘빼고컴퍼니가 연극의 소재로 안마사를 택한 건 단순히 자신들이 그 일을 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시각장애 당사자조차 안마 일을 천시하고, ‘마지막 수단’으로 여기는 현실을 마주했어요. 실제로 고등학교 졸업 후 안마사가 된 친구들 중에 자긍심 없이 등 떠밀리듯이 일하고 우울증을 겪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기도 했고요.”라고 설명했다.
△ 인터뷰하고 있는 이성수 대표
그러면서 그는 “‘그렇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멋있는 이미지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모였어요. 아이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자고요.”라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당신의 직업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예술을 전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두 사람은 ‘안마사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고 있다.
연극에만 활동 범위 가두지 않고자 ‘컴퍼니’
지난해 발간한 책, 당사자의 이야기 있어 반응 뜨거워
힘빼고컴퍼니의 활동은 연극에 머물지 않았다. 단체 이름에 ‘극단’이 아닌 ‘컴퍼니’를 붙인 이유는 연극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성수 대표의 설명이다.
두 사람은 장애 인식 개선 강의를 ‘연극’과 ‘만담’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성수와 근영이의 오픈/웃픈 마이크>를 무대에 올렸다. 기존의 일방적인 강의와 달리 유머와 대화로 풀어내자 관객 반응은 한결 가벼워졌다. “재밌다!”는 한마디로 요약될 만큼,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 <성수와 근영이의 오픈/웃픈 마이크> 포스터
이들은 지난해 책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를 펴내기도 했다. 당시 ‘접근성’을 주제로 한 책들이 잇따라 나왔지만, 장애 당사자의 시선에서 쓴 책은 찾아보기 어려워 그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고 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주경야필(晝耕夜筆)’ 끝에 어렵게 완성한 책이지만, 처음에는 ‘이걸 누가 읽어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래서 전자책 형태로만 발간하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배포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책을 접한 독립출판사에서 정식 출간을 제안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출판사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종이책이 세상에 나왔고,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출간을 위한 온라인 모금은 목표의 200%를 넘어섰고, 여러 독서 모임에서도 책이 다뤄졌다. 광주의 한 서점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부터 5위까지가 전부 한강 작가 책이었는데, 그 사이에 저희 책이 있더라고요. 정말 놀랐죠.”라며 이 대표는 웃었다.
그는 책이 독자에게 닿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우리 책을 읽었다며 SNS로 태그해 주실 때마다 정말 감사해요. 북토크에 오시는 분들이 밑줄 그은 페이지를 들고 와 이야기해 주실 때도 있고요. 서툴게 썼지만, 진심이 닿은 것 같아 얼떨떨하면서도 기쁘죠.”

△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이성수·장근영 지음, 1도씨와온도들 펴냄
소신을 지키며 일하는 것
너무나 어렵지만, 꺾이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공감을 얻는 순간들이 늘어갈수록 오히려 더 큰 고민이 찾아왔다. ‘우리는 이 길을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예술의 방향과 현실의 타협 사이에서, 그들은 다시 초심을 떠올렸다.
“여전히 장애인이 등장하는 예술에서는 장애인을 동정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표현하곤 해요. ‘장애인이라면 이럴 것이다’라거나, 성공한 장애인의 모습만 보여주는 식이죠. 저희는 그런 것들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왜곡도, 과장도, 판타지도 없이 현실의 결을 담아내려는 예술. 그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힘빼고컴퍼니는 오늘도 치열하게 싸워내고 있다.
“왜곡된 시선을 가진 기관이나 자본과 함께 일해야 할 때가 있어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수없이 부딪혀 온 시간을 떠올리는 듯했다.
△ 힘빼고컴퍼니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그래도 결국 우리가 세운 기준은 하나예요. ‘소신대로 가자.’ 우리 스스로를 속이면서 일하지는 말자, 그렇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공간, 행정 등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우리와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연락주세요”
실제로 힘빼고컴퍼니가 활동을 지속하며 마주하게 된 벽은 ‘예술 그 자체’가 아닌 ‘예술 밖의 행정’이었다. 시각장애 당사자로서 행정 절차에 부딪히는 어려움은 더욱 컸다. 자금 규모가 크지 않은 예술창작단체로서 각 기관의 지원 사업에 의존해야 하지만, 그때마다 쏟아지는 서류 작업은 이들에게 큰 부담이다.
각 기관의 지원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표와 칸으로 빽빽한 양식은 스크린리더로 인식되지 않거나, 화면을 극도로 확대해야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비장애인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제출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예술가로서의 역량보다 ‘행정 접근성’이 지속력을 결정하는 구조인 셈이다.
장애인문화예술진흥원 등 일부 기관이 대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창작 단계의 협업이 아닌 ‘완성 후 입력 대행’ 수준에 머문다. 이 대표는 “기술적인 대필만으로는 창작 의도를 함께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 예술가의 창작 환경이 여전히 제도의 바깥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 <성수와 근영이의 오픈/웃픈 마이크> 공연 (사진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 대표는 예술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행정을 감당할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희 같은 단체에 제일 필요한 건 행정을 전담할 동료예요. 많은 예술가들이 행정은 예술가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술이 지속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죠.”
그에게 ‘동료’는 예술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의 언어를 행정의 언어로 옮겨줄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은 언젠가 예술과 행정을 함께 꾸려갈 동료를 만나길 바라고 있다. “기획과 행정을 함께할 수 있는 분이 계시면 참 좋겠어요. 기사 보시는 분들 중에 ‘내가 그 일에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꼭 연락 좀 주세요.” 이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