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함께하는 설리번, 바로 당신이 필요합니다 > 사람 사는 이야기


우리에겐 함께하는 설리번, 바로 당신이 필요합니다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한 ‘손잡다’ 대표 조원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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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사용하는 용어도 바뀌는 법이다. ‘중복장애’의 ‘중복’이란 표현이 잘못됐음을 강하게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졌다는 건 각각의 장애가 공존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 놓이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생활의 가장 기본이라고 언급하는 ‘보고 듣고 말하기’, 그 기능에 모두 장애를 가진 이들의 권익을 위해 직접 앞장서는 젊은이를 소개한다. 시청각장애당사자인 ‘손잡다’의 대표 조원석 씨를 만났다.

 

덧셈이 아니다, 곱셈이다

“중복장애라는 표현은 장애당사자들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행정편의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시각과 청각에 동시에 장애가 생긴다는 건,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두 가지 색이 섞이면 제3의 색이 생기잖아요. 그것처럼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시청각중복장애’라고 표현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단순하게 ‘시각과 청각의 덧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덧셈이 아니라 곱셈입니다. 그렇기에 ‘중복’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말자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형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조원석 씨는 초면이 아닌 구면이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은 채, 구면이라는 심증 하나만 굳어져 갔다. 이 심증은 평소에 그가 폭넓은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저기서 마주치게 되는 일상을 그 또한 보내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시청각장애는 잔존시력과 잔존청력의 정도에 따라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죠. 시력과 청력을 둘 다 완전히 잃은 경우, 하나는 잃었는데 다른 하나는 최소한의 기능이 남아 있는 경우, 그리고 둘 다 기능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중증장애로 분류돼야 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시력을 전혀 사용할 수 없고 왼쪽 귀만 소리 정도의 개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전맹난청의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왼쪽 귀만 들을 수 있다는데, 어느 정도까지 듣는 게 가능한 걸까? 앞에서 누군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 내용까지 알아들을 순 없단다. 하지만 정말 조용한 곳에서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면, 억양과 목소리의 음색이 익숙한 상대라면 음성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하며 또박또박 조금 크게 물으니까, 그는 그 정도면 알아들을 수 있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일곱 살 때 심한 감기에다가 고열로 인해 뇌수막염에 걸렸는데, 뇌수막염이 주된 원인은 아니라고 했어요. 병원에 있다가 원인불명으로 실명하고 동시에 실청(失聽)을 하게 된 거죠. 게다가 당시엔 운동장애까지 있었어요. 운동장애는 재활과정을 통해 모두 없어졌는데, 시각과 청각은 그때부터 잃게 됐죠. 어느 하나가 먼저 생긴 게 아니라, 저는 동시에 발생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나의 장애를 갖게 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큰 부담일 텐데,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잃게 됐다는 건 그에게 어떤 심정을 남겼을까?

“저보다는 저의 가족들이 더 힘들어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당시 어떤 좌절이라든지 그런 기억은 딱히 없었거든요. 장애수용과정 이런 것도 전혀 없었는데, 가족들이 제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더 어려워했던 건 기억이 나요. 막상 장애가 생겼을 때보다는, 그 이후 성장하면서 사회의 벽과 마주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을 때마다 제 장애를 느끼게 되곤 했었죠.”

일곱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면, 그때까지 세상을 봤던 기억은 어느 정도 남아 있지 않을까? 그렇단다. 그는 지금까지도 색깔 개념을 다 이해하고 있고, 눈으로 봤던 모습들은 대부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제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정말 사람 사는 느낌이 강하게 나던 곳이었거든요.”

당시를 회상하던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눈으로 봤던 그 장면들이 현재의 영상으로 되살아난다는 의미 같았다. 3,4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는 당시의 개구쟁이 친구들과 신나게 내달렸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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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꿈을 실현하려 한다

조원석 씨는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했다. 대학시절 자신을 포함한 장애학생들의 학습지원을 보장받기 위해 싸웠던 일부터 직업창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일, 덧붙여서 음악활동도 적극적으로 임했다며 밴드 활동 경력을 언급했다. 밴드? 처음부터 그가 초면이 아닌 구면이라 확신했던 실마리가 풀렸다. 지하 연습실의 드럼 앞에 앉아, 양손에 쥔 스틱을 휘두르던 한 드럼 연주자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 밴드의 이름은 ‘절대음감’이고, 2016년 4월호 <함께걸음>에 그들의 활동이 소개된 바 있었다. 그 드러머가 바로 조원석 씨였다.

“어떤 면에서는 장애가 제 활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경험이 많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장애를 갖기 전까지는, 사실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장애인이 되고 나서 가끔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 혈액형이 A형인데 장애를 갖고 나서 O형으로 바뀐 게 아니냐는 말을 듣곤 했어요. 그만큼 삶의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는 거죠.”

초중고 과정 모두를 맹학교에서 보내고, 그는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맹학교라는 일정한 범주 안에서만 지내다가, 대학이라는 세상의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순탄했을까?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소통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시청각장애인이다 보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도, 누군가 통역의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기본적인 문답도 진행하기 힘들었거든요. 저의 장애특성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하지 않는 학생들과는 대화 자체가 어려웠어요. 대학의 환경이 아무리 열린 마음이라 알려졌다 해도, 모든 게 비장애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대학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한 임의단체 ‘손잡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단체의 구성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소개해 달라고 했다. 시청각장애당사자들이 기본 구성원이지만, 다른 단체와 구별되는 특별한 활동가들이 아주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호칭은 ‘설리번 회원’이고, 시청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통역활동지원인을 의미한단다. 설리번 회원들의 많은 수가 대학시절부터 친구관계였던 이들이라며, 그는 끈끈한 우정과 인연을 맺게 됐던 고마운 이들을 잠시 언급했다. 그 내용 중에는 ‘일본의 헬렌 켈러’라고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시 도쿄대 교수와의 인연도 포함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드럼을 배웠기 때문에, 음악을 인생의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 때도 있었어요. 한의사가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한때는 기자나 피디(PD)도 꿈을 꿨었죠. 그랬던 제가 청소년 시절에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어린 시절에도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혼자 가지고 있었는데, 그 교수님과의 만남이 제 꿈에 불씨를 놓은 계기가 됐던 거죠. 일본의 전국시청각장애인협회의 모태가 됐던 모임이자 조직이 있었는데, 그 모임의 활동이 저의 롤모델이 돼서 작년에 ‘손잡다’를 결성하게 됐던 거예요.”

조원석 씨는 시청각장애인들이 한데 모여 교류를 갖는 모임을 아주 오래 전부터 설계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한테는 국가 차원의 어떤 지원도 없었고, 당사자들이 직접 움직일 만한 여건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음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했단다. 더욱 심각했던 건 외출마저 삼가던 당사자들 스스로가 본인에 대한 어떠한 정보든, 자기 장애의 특성이든, 타인에 대한 이해든 뭐든 간에, 기초적인 정보의 공개마저 꺼리는 상황뿐이었기 때문에, 모임을 추진하던 모든 시도가 장벽일 뿐이었다는 부연설명이 얼마간 이어졌다.

“그런 세상의 장벽을 하나씩 깨내면서, 든든한 지원인력으로 자리매김한 게 바로 설리번 회원들이예요. 그들이 없었다면 ‘손잡다’가 생겨날 수 없었을 테고, 어떻게든 생겨났다 해도 미래를 향한 설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머물러 있었을 거라 판단됩니다. 제 곁에 참 고마운 분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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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안 보인다? 못 나온다!

조원석 씨는 음성으로 말하는 발음이 정확한 편이다. 처음 취재 섭외를 할 때 왼쪽 귀에만 약간의 청력이 남아 있다 했기에 대화의 방법론을 잠시 고민했었는데, 해답은 그가 먼저 꺼내놓았다. 시각장애인에게 친화적인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취재의 불편함은 없을 거라는 답변이었다. ‘한소네’라는, 영문명으로는 ‘BrailleSense Polaris’라는 최신 제품이었다. 옆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으로 질문을 입력하면 그 내용이 실시간 그대로 점자로 전환되며 전달되는 방식이었는데, 이전에 봤던 여러 제품들보다는 훨씬 기능이 향상된 모양새였다. 현재 서울시 중증장애인 인턴사업 활동으로 시청각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고용공단에서 근로지원으로 제공받은 최신 제품이라 했다.

“이 한소네 제품을 처음 사용했던 건 초등학교 때였어요. 정말 어려웠죠. 다른 친구들은 이미 맹학교 유치원부터 점자를 다 익히고 들어왔는데, 저는 일곱 살 때 시력을 잃고 아홉 살에 입학하게 됐으니까 훨씬 늦게 점자를 익혀야 했었거든요.”

진지함이 우선된 대화가 진행될수록, 조원석 씨의 모든 발언과 의지는 시청각장애인들의 권익에 집중되고 있었다. 임의단체라고 했던 ‘손잡다’가 단순한 동호회 수준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시청각장애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조차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며, 그는 잠시 말문을 닫은 채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 전 통계에서 봤는데, ‘시청각장애인은 0.02%의 출현율을 보이고 있다’는 데이터가 있었어요. 대략 1만 명 중 한두 명 꼴로 존재한다는 거죠. 이것마저도 누구는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라 하고, 누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 관련 내용이라고 해요. 정확한 출처는 저도 지금까지 확인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엔 오천 명보다 좀 더 많은 수준으로 그 수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 하고요.”

미국은 이미 1970년대에 헬렌켈러국립센터를 설립했고, 시청각장애인 관련기관과 단체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91년 전국맹농인협회를 설립한 뒤,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전문통역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2013년에는 시청각장애인의 실태조사까지 실시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물음표 하나가 찍혀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저는 정부에서 시청각장애인 지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지원체계에 대한 일정한 역량이 모자라고 부족할 거예요. 정부 차원의 문제도 있겠지만, 역량을 갖추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당사자들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는 판단하거든요. 시청각장애당사자들이 숨어 있다는 거예요. 당사자들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 지점에 중요한 핵심이 존재합니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를 정부가 간과하고 있어요.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없다는 걸, 정부는 ‘당사자가 안 보인다’는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까요.”

‘조원석 씨’라는 호칭이 아닌, ‘손잡다 조원석 대표’라는 설명으로 기술해야 할 내용들이 심층적으로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숨어 있다’ 내지는 ‘숨어 지낸다’는 표현의 의미가 뭔지를 물었다.

그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실을 집중적으로 토로했다.

“갈 곳이 없다 보니 집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고, 가족들마저도 어떤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악순환이 계속 지속되다 보니 가족에 속하지 못하면서 집 내부에서는 분리된 존재로 머물러야 하는, 말 그대로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실제 현실을 정부가 알 리도 없고 알게 될 방법도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 긴 시간의 방관과 묵인이 일순간에 풀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손잡다’의 대표한테는 일정한 선을 긋는 대안이 존재하리라 믿어졌다.

“중복장애라는 단순용어 차원에 머물지 말고, 시청각장애 자체에 대한 진솔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찾아봐도 확인이 되는 건 극소수밖에 없겠죠. 숨어 지내니까요. 그래도 찾아내고 밖으로 불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명 또 한 명, 그렇게 드러나고 모이게 만들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이 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손잡다’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국민 권익을 최우선 살펴야 하는 정부부처에서 시급히 앞장서기를 진심으로 촉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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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세요, 세상 한가운데로

“사실 숨어 있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고립되어 있는 분들도 많으시거든요. 정말 순수하게 자기 의도에 의해 숨고 싶어 혼자 지내는 분들한테는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젠 숨을 필요가 없다고, 우리 당당하게 살자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자고 말입니다. 왜냐, 우리의 권리는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거든요. 우리 스스로가 쟁취하고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같이 활동하면서 ‘손잡다’의 명칭 그대로 우리끼리 손을 잡아야 합니다. 스스로 고립된 채 지내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가족분들한테 꼭 당부 드리고 싶어요. 더 이상 이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립된 가족이자 당사자를 활동시켜야 한다고 말예요.”

‘손잡다’의 대표 입장에서, 이 기회를 통해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께 남기고 싶은 의견을 새겨놓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독자뿐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의견이 있다고 했다.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제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연구한 바에 의한다면, 시청각장애인의 복지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건 정말 저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첫째로 헬렌 켈러의 꿈이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설리번들의 손이 필요하고, 세 번째는 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가 모였을 때 한 나라의 시청각장애인 복지가 자리 잡고 마련될 수 있는 거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예요. 19개월 때 심한 병에 걸려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가 지금 우리가 아는 헬렌 켈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첫 번째로 본인의 꿈이 있었고, 둘째로 그녀를 꾸준히 지원해 준 설리번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두 가지만 있었다면 미완이거나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가장 중요한 세 번째로 당시 미국 사회의 큰 관심이 함께했다는 점을 빼놓을 순 없습니다. 미국정부에서 지원을 하지 않고 방관했더라면 지금의 헬렌 켈러는 없었을 거라는, 저의 그 확신만큼은 이 지면을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결론은 결국 국가 차원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재삼 강조하는 데 모아진다. 그가 세 가지로 방점을 찍은 내용을 지금 우리의 현실로 풀이한다면, 첫 번째는 시청각장애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나서는 일이다. 두 번째는 우리 곁에 수많은 설리번들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국가의 역할을 분명하게 규정짓는 일이다. 하나 둘 셋의 방법론과 순서는 명확해 보이지만, 문제는 이 땅의 현실이 그 세 가지 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황무지 같은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조원석 씨는 그 대목에서 ‘손잡다’의 가치를 부여했다.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이 센터를 단순히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 받는 기관으로 규정짓지 말고, 완전히 열려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안 드렸던 거죠. 어디 가고 싶은데도 갈 데가 없어서, 또 갈 수가 없어서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소장님께서 흔쾌히 받아들이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센터가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손잡다’의 중심지 역할을 겸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뭔가를 배우거나 일정한 필요에 의한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청각장애인들의 놀이터와 같은 쉼터로 만들고 싶어요. 아무런 목적 없이도 사람 냄새 한번 맡고 싶다면, 커피 한잔 마시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면,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찾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저와 설리번 회원들은 언제든지 환영할 겁니다.”

조원석 씨의 목표는 분명하게 설정돼 있다. 지금은 아주 작은 임의단체로 존재하지만, 한명 또 한 명의 당사자들을 모으고 활동의 폭을 넓혀가면서, 언젠가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나 한국청각장애인협회와 같은 차원으로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막연하게만 생각하면 뜬구름 잡기에 머물겠지만, 지향점이 확실하다면 언젠가는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창립총회 개최’와 같은 언론기사를 멀지 않은 날에 마주하게 될 일이다.

“시각과 청각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죠. 시각장애가 있으면 청각에 의존하고, 청각장애가 있으면 시각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런데 시청각장애인들은 그 두 가지 대신 촉각 하나가 세상을 접하는 수단이 되죠. 지금 매주 진행하고 있는 자조모임이 더욱 활성화되면, 시청각장애인만을 위한 의사소통 방식이 꾸준히 개발될 겁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문호를 우리가 직접 개방하는 것이죠. 그 문을 함께 열어갈 더 많은 설리번 회원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나오세요. 두세 번이라도 나오시면, 숨어 있던 누군가에게 ‘당신도 나오세요’라고 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같이 사는 환경이 하루빨리 만들어지도록, 저희들의 연대에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진심으로 당부 드리겠습니다.”

작성자대담. 정혜란 기자, 정리와 사진. 채지민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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