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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드러내세요. 세상이 다가옵니다

365일 사람냄새 나는 유튜버 하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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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밝은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그건 당연한 얘기인데도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무표정했는지, 그늘진 얼굴이었는지,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관계 속에 살아왔는지를 그는 첫인상 하나로 일깨워 주는 듯했다. “저는 그런 거 안 가려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도 편하게 말씀드릴게요.” 대화를 나눌 때는 잘 몰랐는데, 돌아와서 녹취를 정리하다 보니 대화 시간의 절반이 웃음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긍정의 기운을 그대로 여기에 담아야 할 것 같다. ‘사람냄새’라는 표현을 특히 좋아한다는,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하개월 씨가 이번엔 지면으로 인사를 전한다.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산다는 것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건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오해랄까? 그런 걸 조금이나마 변화시키고 싶어서 도전한 거예요. 방송 같은 언론미디어에서 청각장애인들은 불쌍하게 여겨지고, 동정 받아야 되는 존재로만 비춰지잖아요. 못하는 것에 대한 연민을 담은 캐릭터라 할까요? 게다가 무조건 수화만 하는 인물로 묘사돼요. 어렸을 때부터 수화 먼저 접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살아가면서 필요에 따라 배워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비장애인들이 봤을 때 청각장애인이 되게 밝다는 거, ‘어, 이것도 할 수 있네? 우리랑 다를 바 없네? 우리랑 똑같잖아.’ 이런 반응들이 댓글로 달릴 때마다, 제가 유튜브를 진행한다는 큰 보람을 느끼게 돼요.”

하개월 씨는 구화(口話)를 한다. 청각장애인은 무조건 수화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인식도 바로 잡는다.

“보람 하나만 더 얘기해도 돼요? 저의 엄마랑 같이 나온 영상이 있는데, 그걸 본 제 지인들이 똑같이 저한테 말했던 게, 저의 엄마처럼 자식을 키우고 싶다는 거예요. 저는 맨날 보며 같이 사는 엄마니까 뭘 의미하는 건지 몰라 ‘왜요?’ 하고 물었더니, ‘장애인도 할 수 있어. 더 열심히 해야 해. 노력해야 돼.’ 이런 말을 저의 엄마는 아예 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저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키웠다는 게, 엄마의 태도와 말투에서 느껴져 너무 좋았다는 거죠. 보통 방송 같은 걸 보면 부모들은 서럽게 울거나 눈물을 애써 참으면서, ‘우리 아들은 이랬고 우리 딸은 저랬고’ 말하는 모습만 나오잖아요. 저도 내심 촬영하면서 청각장애를 가진 딸의 엄마니까 그런 비슷한 장면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그런 언급이 전혀 없다 보니까 오히려 제가 당황이 되더라고요. 정말 고마운 엄마를 재발견한 셈이 됐죠.”

그는 다섯 살 무렵부터, 병원에서도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증상에 따라 서서히 청력을 잃어갔단다. 어렸던 남동생은 중이염 수술을 하고 청력을 잃게 됐는데, 누나인 그는 원인불명의 상태로 ‘소리’를 잃어갔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지 않으면, 높낮이 없는 ‘으어으어’ 하는 소리만 들린단다. 하지만 마주앉아 입 모양을 보면서 얘기하면, 일상의 카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수다’ 차원의 대화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취재 당시에도 가장 시끄러웠던(?) 탁자는 바로 우리의 자리였다.

“저의 지금 키가 초등학교 때의 키 그대로예요. 굉장히 컸죠?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대요. 청력이 안 좋으니까 앞자리에 앉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교탁 앞 맨 앞자리가 항상 저의 자리였죠. 반 애들은 키가 큰 제가 앞쪽을 막고 앉아 있는 걸 안 좋아했는데, 저는 반 친구들이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모습에만 항상 집중했어요.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선생님의 입 모양에서 시선을 떼면 안 됐거든요. 그때부터 입 모양을 보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것 같아요.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저의 절실한 필요에 따라 몸으로 익히게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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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스스로 열어가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아이돌 그룹 같은 연예인, 그 다음엔 아나운서가 장래희망이었단다. 밤 9시만 되면 집에서 항상 틀어놓던 뉴스에서 세상 돌아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아나운서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멋지게 보였는데, 자신의 발음이 어떻게 들리는지 몰랐던 탓에 그 꿈은 접어야 했다며, 그는 잠시나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바뀌고 바뀌던 꿈은 직장생활 3년차인 지금에 와선 유튜브 제작에 몰입하는 걸로 만족하게 됐다며,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도 계속 영상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확고하단다. 살아가는 흔적을 두고두고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제가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데, 어떻게 찾아냈는지 미국에 산다는 한 청각장애인이 저한테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저하고 상황이 너무 비슷하다는 거예요. 자신도 청각장애가 있고 남동생도 청각장애, 부모님은 비장애인이라고 했어요. 그 사람 본인은 지금까지 청각장애 남매로 살아가는 게 자신밖에 없는 줄 알며 살아왔대요. 그런데 제 영상을 보고 너무 큰 위로를 받았다는 거예요.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외로운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며 고마움을 전해왔죠. 기대하지 않았던 연락과 연결, 이런 인연과 만나는 것도 유튜버로선 큰 보람으로 남겨지는 것 같아요.”

물론 좋고 긍정적인 반응과 결과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그런 글이 없지만, 그가 첫 영상을 공개했을 때 이틀 뒤 첫 번째로 달렸던 댓글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당시 화면을 캡처해 놓았던 걸 인쇄해 왔다며, 그는 A4지 한 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지레짐작 예상했던 그대로 ‘쌍욕’의 한 줄 문장이었다.

“처음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고소해야겠다고 캡처부터 했죠. 그런데 삼십 분 정도 지나니까 자기가 알아서 먼저 지우더라고요. 첫 번째 댓글이 그랬기 때문에 생각이 참 복잡했어요. 이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깊어졌었죠. 결과적으로는 첫 번째 그 댓글이 처음이자 마지막 ‘악플’이 됐어요. 다른 분들은 절대 그런 글을 올리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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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열정과 함께 만들고 올리는 영상들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건 유튜브가 자신의 주 업무가 아니라는 현실이란다. 직장생활을 마친 뒤 그 나머지 개인 시간을 거의 다 할애하기 때문에, 시간과 자금이 부족하다는 제약이 늘 안타까움으로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하개월 씨의 영상작업에는 ‘도전’이 있다. 바로 이 대목이 남다른 특징으로 두드러지는데, 일상의 소소한 ‘사는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영상토론도 적극적인 자세로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층 토론이 필요한 내용까지도 그의 영상 설계도 안에 새겨져 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쯤이면 그 기획의 최종안이 나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닉네임이 왜 하개월이냐고요? (웃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고요. 지금 제 유튜브 구독자가 육천 명 정도 되는데요. 만 명이 되는 날 이벤트를 통해 공개할 거예요. 만 명의 구독자가 저와 함께하게 될 때, 저는 실시간 라이브를 진행할 예정인데요. 화면영상을 보면서 구독자와 채팅 같은 대화를 동시에 나누겠다는 거죠. 많은 분들이 함께 동참해 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바람을 하나 더 덧붙였다. 청각장애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 촬영을 하다 보면 예정시간을 매번 넘기게 되는데, 그건 그만큼 하고 싶은 마음속 얘기가 많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촬영카메라 앞에서 대화하다 보면, 같이 분노하기도 하고 울다가 웃는 화제로 바뀌기도 하거든요. 그건 그만큼 당사자들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게 많다는 반증이에요. 그래서 저는 정말 권해드리고 싶어요. 세상에 하고 싶은 의견이 있으신 분들 모두가 자신의 채널을 만들어서, 자신만의 유튜브를 운영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악플’ 따위가 달리면 어때요? 응원하는 이들이 훨씬 많으니까, 우리 같이 유튜브의 세상에서 만나요. 꼭 도전해 보세요. 멀게만 느껴지던 세상이 여러분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을 거예요.”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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