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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평생의 관리가 시작되었다 - 1형당뇨 당사자 박경준 씨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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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당뇨 당사자 박경준 씨
 
서울의 한 카페. 박경준 씨는 커피잔 옆에 조심스럽게 인슐린 주사를 내려놓았다. 그의 하루는 아침에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도 한 번. 세 번의 주사로 나뉜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그는 잠시 손을 멈춘다. 맞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괜찮을까’를 잠시 고민하게 된다. 인슐린 투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주사는 여전히 설명이 필요한 행동이다.
 
1형당뇨는 몸의 면역체계가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를 공격해 체내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질환이다. 체내에서 인슐린을 만들 수 없어 매일 외부로부터 인슐린을 투여해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식사 조절이나 운동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질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평생 인슐린 투여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다.
 
가파른 혈당 변화에 합병증 위험도 높아
까다로운 혈당 관리에 신경은 항상 곤두서있어
 
혈당 관리는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혈당이 높아지면 인슐린을 맞아 즉시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통, 갑갑함, 무력감 등이 찾아온다. 하지만 인슐린을 조금이라도 과하게 투여하면 이번엔 저혈당이 된다. 어지럽고 나른해지고, 감정이 예민해지는 등 증상도 다양하다.
 
혈당은 식사, 스트레스, 수면 상태, 활동량 등 온갖 요인에 따라 매번 다르게 반응한다. 변화 폭도 가파르고 예측이 어렵다 보니, 혈관에 반복적으로 부담이 쌓여 합병증 위험도 크다. 경준 씨의 주변에는 1형당뇨 환우가 많은데, 이들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 때면 거의 대부분이 합병증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혈당 변화는 몸의 불편함과 함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혈당이 불안정할 때는 하던 일을 계속해도 될지, 잠시 쉬어야 할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회의 도중 자리를 비우거나, 컨디션에 따라 외출이나 운전을 조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경준 씨는 “처음에는 눈치를 정말 많이 봤어요. ‘나를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컸죠. 어떤 고객 중에는 내 건강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아프다는 게 불쾌하다며 상담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분도 계셨어요. 그럴 때면 기분도 많이 안 좋고 하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에 힘들어하다 보면 저만 괴로울 걸 아니까 최대한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죠.”라며 담담히 말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경준 씨는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먼저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이제는 제가 먼저 말씀드려요. ‘제가 1형당뇨가 있어서 혈당이 높으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불편하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서 맞고, 아니면 잠깐 화장실에서 맞고 오겠다’고요. 오히려 이 이야기를 ‘누구나 갑자기 아플 수 있다’는 대화 주제로 꺼내면서 보험설계사로서 제 장점으로 활용하기도 해요.”라고 설명했다.
 
 
 
혈당 관리 조금만 소홀해도 케톤산 과다 생성
실신, 뇌 골절 상해 등 일상이 불안과 공포
 
인슐린을 제때 투여하지 못하면 신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지방을 분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케톤산이 과도하게 생성된다. 이 경우에는 실신 등 응급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준 씨는 “한창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에 몰두하던 때여서 혈당 관리에 잠시 소홀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지금까지 꾸준히 관리를 해왔으니까 이정도 관리로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죠 (…)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등교하려고 하니까 어머니가 ‘너 좀 지금 이상한데 왜 그래?’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평소보다 좀 어지럽다고만 생각하던 차였는데 엄마가 보기에는 눈에 초점도 없고 이상했나 봐요. 간이 키트 검사결과, 케톤산 수치가 높았고.. 바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가야 했죠.”라고 설명했다.
 
1형당뇨 당사자 중에는 경준 씨와 같이 사전에 검사를 통해 1형당뇨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많은 비율이 케톤산혈증으로 인한 실신으로 처음 알게 되기도 한다. 이 경우 뇌, 골절 등 상해를 입거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기도 해 공포의 대상이다.
 
경준 씨는 “잘 관리하다가도 가끔씩 ‘현타’라고 하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나’할 때가 있어요. 잠깐은 그렇게 관리 안 해도 괜찮은 것 같으니까 그냥 넘어가고요. 근데 그러다가 진짜 심각해지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매일 몇 시간에 한 번씩 꾸준히 관리해야 하니까 그 노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죠.”
 
또 경준 씨는 야외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가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 누군가가 그 장면을 보고 마약으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도착한 경찰 앞에서 그는 자신이 1형당뇨 당사자이며, 인슐린 투여가 치료의 일부라는 점을 설명해야 했다. 상황은 곧 정리됐지만, 경준 씨는 사회의 시선을 또 한 번 실감했다고 전한다.
 
인슐린 투여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치료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투여 행위는 여전히 오해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 때문에 당사자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 주변 환경을 먼저 살피게 되고, 건강의 위협으로 직결된다.
 
▲펜형 주사기 모습
 
어느 날 교통사고처럼 찾아오는 1형당뇨
가족에겐 충격, 본인에겐 평생 유지관리 과제
 
1형당뇨 당사자들은 1형당뇨를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고 표현한다. 예방도 어렵고, 몸이 보내는 신호도 거의 없다. 박경준 씨에게도 이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삶 속으로 들어왔다.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는 그날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학교에서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하잖아요. 평소처럼 검사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부르더니 ‘혈당 수치가 좀 이상하다, 병원 가서 다시 검사해 보자’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당뇨가 있으셔서 어린 마음에 ‘나도 이제 할머니처럼 당뇨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1형당뇨를 진단받은 날, 의사는 어머니에게 성인 손바닥만한 크기의 인슐린 주사기를 쥐여주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직접 그 큰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고도 끝내 손을 떨며 “내가 못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주사 바늘을 잡은 건 어린 경준 씨였다. 그는 자신의 배에 주사기를 ‘푹’ 찔렀다.
 
“의사 선생님이 시키니까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냥 앞에 있던 주사를 놨어요. 울고불고할 것도 없었죠.” 그 순간 이후 지금까지, 그는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놓고 있다. 멀쩡하던 아들에게 갑자기 평생의 짐이 생겼다는 사실은 어머니에게 큰 충격이기도 했다. 경준 씨는 종종 그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자는 동안 혈당이 오를 수도 있어서 어머니가 새벽마다 일어나 혈당을 체크해 주셨거든요. 어느 날은 희미하게 잠에서 깼는데, 어머니가 흐느끼고 계시더라고요. (…)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시지만, 가끔 옛날 생각이 나면 그때 이야기를 꺼내세요.”
 
그래도 경준 씨는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렸던 것도 있고, 제 성격 때문이기도 한데… 어차피 해야 하는 거니까요. 주사도 그냥 놓고, 관리도 하고.. 그냥 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1형당뇨 진단 이후 그에게 가장 아쉬웠던 일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니 더 이상 학교에서 개근상을 못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박경준 씨는 현재 한국1형당뇨환우회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박경준)
 
올해 추가되는 췌장장애의 한 분류로 인정
경제적 지원 등 새로운 길 열려, 기대
 
다행히 올해 7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1형당뇨는 새롭게 추가된 ‘췌장장애’의 한 분류로 공식 인정되었다. 2024년 국민건강보험 발표에 따르면 국내 1형당뇨병 환자는 약 5만 9천 명에 이른다. 장애인으로 공식 인정되면서 이들에게 새로운 지원의 길이 열린 셈이다.
 
경준 씨가 바라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주사를 맞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건강 상태가 일의 능력이나 사람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 것. 필요한 치료를 받으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다.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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