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행복 하나로, 언제나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 사람 사는 이야기


소박한 행복 하나로, 언제나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사람사는 이야기] 신혼부부 안은정 고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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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며 촬영하다 보면, 평소의 모습인지 아니면 긴장 때문인지 도통 웃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 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억지웃음은 보는 이들 눈에도 억지웃음으로 읽혀지기에, 자연스런 미소를 만들어내는 게 촬영자의 능력(?) 아닌 능력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만큼 그런 걱정 자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남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시종일관 서로를 마주보며, 행복한 웃음 하나로 공간 자체를 가득 채운 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열렸던 장애인 국제교류대회에 참가한 이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정다운 커플 한 쌍이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해서, 참가자들의 추천과 권유에 따라 ‘사람 사는 이야기’의 지면에 그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작년 4월에 결혼했단다.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인 안은정 씨와 고준형 씨가 그 주인공이다. 세상에 혼자 서기엔 불편하지만, 함께함으로써 온전한 삶을 공유하는 모습이 추천한 이들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참 인상적’이었다. 그 쏟아지는 ‘깨’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본다.

 

   
 

 

그냥 자연스럽게

얼굴도 모르는 초면이었는데도, 저 만치 서 있는 ‘남녀’가 이번 호 주인공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대화의 장소를 향해 옮겨가는 동안에도 그 두 사람은 내내 ‘붙어 있었다’. 카페 좌석에 마주앉은 뒤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마주보는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결혼은 언제 했는지 물으니 작년 4월에 했단다. 그럼 이젠 좀 지겨워질 때가 되지 않았냐 하며 짓궂게 질문을 던지니, 그건 절대 아니라며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잠시의 손사래가 끝나자마자 다시 마주보며 싱글벙글, 주변의 미혼 남녀들이 많이 속상해(?) 할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직장에서 처음 만났어요. 자립생활센터에 같이 근무를 했거든요.”

남편인 고준형 씨(33)는 사회로 나와 취업하기까지가 너무 힘들었단다. 일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상대적으로 발음하는 데 심한 장애를 가진 자신의 자리를 찾기가 가시밭길이었던 모양이다. 어려운 과정을 거친 뒤에야 센터에 입사하게 된 그를, 먼저 근무하고 있던 아내 안은정 씨(27)는 어떤 첫 인상으로 바라봤을까.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어요. 다른 느낌은… 하하하, 좋았어요.”

처음엔 남자와 여자의 관계 같은 의식은 전혀 없었는데, 사무실에 같이 있으면서 활동을 같이 하고 여러 현장의 집회에도 같이 참여하다 보니까, 주변에서 보기엔 좀 ‘튀었던’ 것 같단다. 센터의 팀장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참 보기 좋다면서 같이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두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호기심 비슷한 게 생기게 됐던 것 같다. 처음에 사귀자고 말한 게 누구냐고 물으니 ‘남자’였단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제 아내가 몸이 차요. 그래서 휴대용 손난로를 사러 간다고 하기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걸 산 뒤에 아내가 밥을 같이 먹자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호프집으로 가자고 해서, 한잔 하면서 말을 하게 됐죠. 사귀어 보자고.”

은정 씨의 반응은 어땠냐고 물으니, 여자들이 그럴 때마다 늘 하는 말을 했단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이다. 흔한 말로 ‘튕겼다’는 건데, 왜 그때 그렇게 대답했는지를 은정 씨한테 물었다.

“부끄러웠어요. 그런 제안은 처음 받는 거라서….”

서로가 사귀게 된 건 그냥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 같단다. 남녀가 아무리 비밀로 하며 사귄다 해도, 사무실을 책임지는 팀장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 어느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이 이젠 모두에게 공개하라고 했단다. 둘이 ‘한 팀’이 되어 지낸다는 사실 말이다.

 

이젠 같이 해요

준형 씨는 지체장애 1급이란다. 어렸을 때 걷지 못해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했단다. 그럼 은정 씨는? 뇌병변장애 3급이란다. 마찬가지로 아주 어린 시절에 기고 걷는 과정이 또래보다 훨씬 늦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장애가 나한테 참 힘든 거구나’ 하는 점을 진지하게 느끼게 된 시점은 언제인지를 물었다. 준형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는 별로 못 느꼈지만, 대학교 때도 조금밖에 못 느꼈지만,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가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취업 자체가 만만치 않았어요. 제가 언어장애가 심하고 성격도 화끈한 게 아니라 소심해서, 게다가 저 자체가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힘이 많이 들었죠.”

   
 
대학 전공은 행정학과였는데, 졸업 후 편입을 해서 재활복지와 사회복지를 다시 전공하며 공부했단다. 왜?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사회복지 분야에 지원율이 높아지고 복지관 사업도 많이 넓혀졌지만, 어디에 가서 뭘 하려 해도 우선 요구되는 게 바로 자격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은정 씨는 무엇이 힘들었을까?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왕따’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이 말을 언급하는 순간, 자리 내내 가득했던 미소가 그의 표정에서 잠시 사라졌다. 정말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극복했느냐 물으니, 교회를 다니면서 풀어갔단다.

“대학은 사회복지를 전공하다가 법학으로 편입했어요. 필요해서요.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법률적으로 바라보고 싶었거든요. 모든 교재가 다 한자 위주였기에 참 많이 힘들었죠.”

졸업 후 첫 입사를 한 곳이 앞서 언급했던 모(某)장애인자립생활센터였는데, 준형 씨와 사귀게 되면서부터 직장생활도 참 많이 힘들었단다. 왜? 업무에 조금만 차질이 생겨도, 그 화살이 두 사람한테 날아왔던 모양이다. 연애한다고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는 식의, 어느 조직사회에서나 똑같이 볼 수 있는 질투와 불평이 거기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런 이의제기가 반복되다 보니 남자 입장에서 먼저 직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고, 다른 자립생활센터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한 뒤에 지금의 일을 하게 됐단다. 지금의 일, 그건 뭘까?

“저작권협회의 일을 재택(在宅)근무 모니터링으로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면 7백 원이든 1천 원이든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50원, 100원만 내며 다운 받는 게 올라와요. 그건 다 불법이에요. 그걸 제가 집에서 컴퓨터로 모니터링 하는 거예요. 자료를 정리해서 협회로 보내면, 협회에서 권고를 하며 조치를 취하게 되죠.”

그럼 은정 씨는 지금도 센터 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오. 같이 해요.”

무엇을? 재택 모니터링 업무를 남편과 같이 하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신혼인데다가 직장이 집이고, 그것도 같은 일을 함께하고 있다니… 이건 깨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틀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올 게 없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시종일관 마주보며 싱글벙글, 눈빛은 ‘반짝반짝’이었던 게 아닌가.

 

서로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것

결혼해서 제일 좋은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은정 씨 대답은 단번에 이어졌다.

“같이 있는 거요. 하하하.”

예상했던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남편인 준형 씨는 뭐라고 답할까?

“좋은 거는 집중해서 일만 계속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집중한다는 거, 생활이 많이 안정됐죠. 예전에는 친구들 만나러 다니고 술도 마시는 시간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게 되더라고요. 아내가 혼자 있으면 좀 그렇거든요.”

아내한테 잡혀 지내는 게 아니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고 심적으로 안정되는 게 정말 좋다며 남편은 쾌활하게 웃었다. 그 다음에 남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갔을까? 그건 독자 여러분도 100% 다 맞출 거라 생각되는 불필요한 질문이 될 것 같다.

“같이 지내면서 좋은 거는 약점을 채워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뭐, 누구나 다 똑같겠죠. 저희 부부 같은 경우는 제가 언어장애가 좀 심하잖아요. 그럴 때 아내가 대신 옆에서 전화를 받아주고, 또 아내가 못하는 걸 제가 채워줄 수 있고요.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럼 부부싸움을 한 적은 있을까? ‘싸움’을 질문하는데 두 사람 다 ‘있다’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싸우게 될까? 은정 씨와 준형 씨는 정말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답을 동시에 말했다.

“사소한 거요. 하하하.”

그렇다면 어떻게 화해를 할까? 이런 분위기라면 화해하는 방법도 남다를 것 같았다. 이번에 준형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웃음 한번 짓고, 잘못했다고 웃으면 뭐….”

사실 웃음 하나로 부부싸움이 끝난다는 건 신혼일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런데 남편이 정색을 하며 우린 그게 아니란다.

“아내를 제가 칭찬하면 좀 그렇지만, 아내가 저보다 참을성이 정말 많아요. 굉장히 많아요. 정말 많이 참아줘요. 저도 모르게 막 화를 낼 때가 있는데, 그런 걸 다 받아주고 참아주거든요.”

이번에는 은정 씨가 곧장 말을 이어받았다.

“저도 처음에는 그 성격이 받아지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다 보니까 익숙해지고, 그냥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건 이해가 아니라 ‘포기’라고 했더니,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파안대소를 그치지 않았다. 그 웃음이 끝난 뒤 두 사람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뻔하다. 각자의 눈동자에 자석의 S극과 N극이 담겨 있다는 듯, 무슨 대화 끝에도 고정되는 건 마주보는 서로의 눈동자뿐이었다. 무슨 음식을 잘 하느냐 물으니 아내는 남편의 김치찌개, 남편은 아내의 카레와 어묵볶음이 최고라며 칭찬이 차고 넘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물론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이젠 ‘당신’ 차례입니다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했는지 물으니, 그건 아니라며 두 사람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일정한 반대가 계속됐고, 그걸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 짧지 않게 이어졌다고 했다. 이 대목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니 이 지면에선 훌쩍 건너뛰는 게 옳겠고, 이제부터의 미래를 묻는 걸로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앞으로 어떤 부부, 어떤 가정, 어떤 인생의 미래를 꿈꾸는지 듣고 싶다 했다. 준형 씨가 먼저 답했다.

“평범한 부부들처럼, 저희도 경제생활을 하면서 아이들 키우며 살고 싶어요.”

아이들이라…. 2세 계획이 어떤지를 물었다. 남편은 둘이나 셋을 원한단다. 그럼 아내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딱 하나를 원하고 있다 한다. 그렇다면 은정 씨가 꿈꾸는 가정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냥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서로를 배려할 줄 알고 좋은 가정으로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겠다고 물으니, 방긋 웃으며 그렇단다.

“저희는 여행을 좋아해요. 기차를 타고 오래 가다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고,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들도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둘이 함께했던 여행지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으니 준형 씨는 정동진, 은정 씨는 부산을 꼽았다. 부산? 왜 도시 이름이 나오는 건지 다시 물으니,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편했다고 한다. 지하철도 물론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둘이서 함께하는 취미생활은 무엇이 있냐고 물으니 영화감상이란다. 그 순간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더니, 탁자 위에 올려놓은 각자의 스마트폰 위로 시선이 ‘완전 꽂혔다’. <함께걸음>과의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턴 자유롭게 얘기 나누자고 했더니, 그때부턴 둘이서 그동안 봤던 영화가 무엇이고 무슨 내용이었는지의 대화가 물 쏟아지듯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5분 정도 각자 검색을 하더니 ‘오늘 봐야 할 영화’가 정해졌고, 이 만남 이후의 일정이 순식간에 결정되어버렸다.

‘그만 좀 마주봐라.’ 하며 지적 아닌 지적을 농담으로 던지니, 마주보며 웃는 입가의 끝이 귀에 걸리는 건 단 1초도 필요치 않았다.

“인연이라는 게 정말 있나 봐요.”

준형 씨가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맞는 말이다. 자신만의 인연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찾지 못하고 마주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찾지 못한 채로 마감될 수 있는 게 바로 우리네 인생이기도 하다. 인연은 ‘나만의’ 의지와 선택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왜냐? 나 아닌 상대방이라는 대상이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짝을 이미 만난 사람 그리고 인생의 인연이 확실한 짝을 만나고 있는 이들은 분명 행복하다. 이게 남들의 일이라고 치부하며 넘겨야 할 일일까? 아니다. 2014년은 수많은 커플들이 탄생하기 바라는 마음이기에, 이 글에 진지한 진심을 담아 마무리해야겠다. 다음 순서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작성자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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